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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세 노인에게 시집간 규수 [어우야담]

조선 로맨스 2026. 7. 19. 06:49

60세 노인에게 시집간 규수 [어우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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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새파랗게 젊은 처녀가 어찌 내일모레 관에 들어갈 노인의 품에 안긴단 말이오!"
모두가 끔찍하다며 거절했던 육순 노재상의 혼처. 하지만 굶어 죽어가는 부모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을 던진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첫날밤, 두려움에 떨며 눈을 꼭 감았던 소녀가 마주한 것은 늙고 추한 노인이 아닌, 상상조차 못 한 관능과 거대한 운명이었죠. 한순간의 선택이 완벽하게 갈라놓은 두 여인의 극적인 반전 드라마가 지금 시작됩니다.

※ 1: 엇갈린 선택, 부모를 위해 기꺼이 제물로 바쳐진 소녀

살을 에이는 듯한 조선의 매서운 겨울바람이 다 찢어진 문풍지를 거칠게 흔들고 지나간다. 방 안에는 온기조차 메말라버린 지 이미 오래다. 며칠째 제대로 된 곡기조차 구경하지 못한 늙은 부모는 솜이 다 빠져나가 납작해진 해진 이불자락을 뒤집어쓴 채,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앓는 소리만 간신히 내뱉고 있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방구석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그 참담하고 처절한 광경을 지켜보는 열여섯 살 소녀 소화의 눈동자에는 차라리 죽음이 낫겠다 싶은 깊은 절망과 서러움이 서려 있었다. 봄여름에 캐어 말려둔 나물은 진작에 동이 났고, 산에 올라 소나무 껍질을 벗겨다 가마솥에 끓여 먹는 것조차도 이제는 한계에 달해 있었다. 굶주림으로 인해 부모님의 얼굴은 뼈만 앙상하게 남았고, 퀭하게 파인 두 눈은 초점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매서운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이번 달을 넘기지 못하고 두 분 모두 돌아가실 것이 너무도 뻔했다. 소화가 소매 끝으로 소리 없이 눈물을 훔쳐내고 있을 때, 굳게 닫혀 있던 썩은 사립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거칠게 열렸다. 이내 동네를 뻔질나게 드나들며 온갖 소문을 물어 나르는 뚜쟁이 노파가 호들갑스러운 목소리로 좁은 마당을 쩌렁쩌렁 울렸다.

"아이고, 이 집에 뉘 계신가! 내가 오늘 아주 기가 막힌 혼처를 하나 물어왔네! 계시면 썩 나와보소!"

화려한 비단 두루마기를 걸친 노파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혼처의 조건은 가히 파격적이다 못해 비현실적이기까지 했다. 도성 한복판에서 으뜸가는 권세와 어마어마한 부를 누리고 있는 이 대감 댁에서 후처를 들인다는 것이었다. 대감마님은 조정 대신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훌륭한 재상이지만, 애석하게도 슬하에 대를 이을 자식이 없어 늘 적적해하던 차에, 건강하고 얌전한 평민 규수를 데려와 대통을 잇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만약 이 혼인만 성사된다면 당장 최고급 백미 수십 가마니와 번쩍이는 비단은 물론이고, 가난한 부모가 평생을 일하지 않고도 떵떵거리며 먹고살 수 있는 너른 전답과 번듯한 기와집까지 한 채 내어주겠다는 어마어마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그 산더미 같은 재물 뒤에는 너무도 치명적이고 잔혹한 조건이 하나 붙어 있었다. 이 대감의 연세가 올해로 예순이라는 것. 환갑을 바라보는, 얼굴에는 검버섯이 피고 언제 숨을 거두어 관동에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백발의 노인이었던 것이다.

뚜쟁이 노파는 소화의 집에 오기 직전, 이웃집에 사는 미모의 처녀 점순이네를 먼저 들렀다 왔다며 얼굴을 찌푸린 채 혀를 끌끌 찼다. 평소 허영심이 많고 콧대가 높았던 점순은 노파의 말을 듣자마자 방바닥을 뒹굴며 표독스러운 발악을 했다고 한다.

"내가 미쳤수? 시집가자마자 늙은이 수발이나 들다가 과부 될 일 있어? 새파랗게 젊고 예쁜 내가, 송장 냄새 나는 늙은이 품에 안기느니 차라리 우물에 빠져 죽어버리겠어! 당장 내 집에서 나가지 못해!"

점순의 날카롭고 매서운 패악질에 질려 쫓겨난 노파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소화네를 찾은 것이었다. 소화의 부모 역시 노파의 제안을 듣자마자 기겁을 하며 양손을 강하게 내저었다.

"아무리 우리가 이 차가운 방구석에서 굶어 죽을지언정,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열여섯 살 꽃다운 내 딸자식을 내일모레 관에 들어갈 노인네의 노리개로 팔아넘길 수는 없소! 우리가 짐승도 아니고 어찌 그런 천인공노할 짓을 한단 말이오! 당장 썩 돌아가시오!"

아버지가 가슴을 쥐어뜯으며 피 끓는 기침을 토해냈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노파를 향해 쉰 호통을 쳤다. 어머니 역시 바닥에 엎드린 채 소화의 차가운 손을 부여잡고 소리 죽여 짐승처럼 오열했다. 하지만 방구석에 앉아 있던 소화의 표정은 이 순간 오히려 묘하게 차분하고 서늘해져 있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어머니의 앙상한 손등 위로, 소화의 슬픈 시선이 오래도록 머물렀다. 피골이 상접하여 눈이 푹 꺼진 아버지의 주름진 얼굴과, 집안에 가득 찬 지독한 가난의 냄새가 그녀의 가슴 깊은 곳에 굳은 결심의 불씨를 지폈다.

'어차피 이대로 며칠을 더 버티다 함께 굶어 죽으나, 대감 댁에 팔려 가서 목숨을 연명하나 내 비참한 운명은 매한가지다. 나 하나 두 눈 딱 감고 그 늙은이의 제물로 희생하면, 적어도 우리 부모님 따뜻한 구들장에서 고깃국에 흰 쌀밥은 배불리 드시게 할 수 있지 않은가. 효도 한 번 제대로 못한 불효 여식이 몸을 팔아서라도 부모님의 목숨을 살려야만 한다.'

소화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당황한 표정의 노파를 향해 다소곳이, 그러나 굳건하게 고개를 숙였다.

"제가 가겠습니다. 그 혼인, 제가 하겠다고 대감마님께 전해주십시오."

"소화야! 안 된다! 네가 기어이 미친 게로구나! 이 어미가 널 어찌 키웠는데 그 사지로 걸어 들어간단 말이냐!"

어머니가 비명을 지르며 소화의 치맛자락을 생명줄처럼 붙잡고 매달렸지만, 소화는 희미하게 슬픈 미소를 지으며 어머니의 거친 손을 조심스레 떼어냈다.

"어머니, 제발 울지 마셔요. 이대로 함께 죽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대감마님 댁에 가면 적어도 주린 배를 움켜쥐고 고통 속에 밤을 지새우지는 않겠지요. 제 걱정은 추호도 마시고, 부디 아버님과 두 분 오래오래 평안하고 건강하셔야 합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가난한 초가집이 모여 있는 마을 어귀에 눈이 부시도록 으리으리하고 화려한 사인교가 당도했다. 동네 사람들은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몰려나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점순이처럼 단칼에 거절하지 못한 소화의 미련함을 멍청하다며 비웃었고, 어떤 이는 가난 때문에 늙은이의 씨받이 노리개로 팔려 가는 어린 소녀의 가여운 처지에 옷소매로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 사립문 너머로는 점순 역시 팔짱을 낀 채 비릿하고 오만한 웃음을 흘리며 소화의 뒷모습을 노려보고 있었다. 평생 입어보지 못한 최고급 붉은 비단옷을 입은 소화는 차마 부모님의 찢어지는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하고 화려하게 장식된 가마에 올랐다. 가마문이 닫히고, 덜컹거리는 진동과 함께 도성을 향한 행렬이 시작되었다. 좁고 어두운 가마 안에서, 소화는 무릎 위에 올린 두 손을 있는 힘껏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의 여린 살을 파고들어 붉은 피가 배어 나올 지경이었지만,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문 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화려한 비단옷 속에 감춰진 그녀의 가녀린 몸은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미세하게, 그러나 끊임없이 떨리고 있었다. 웅장하고 거대한 이 대감 댁의 솟을대문을 넘어설 때, 소화는 자신의 인생이, 여인으로서의 삶이 이제 영원히 끝났다고 생각하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 2: 붉은 초롱 아래, 관능으로 물든 뜻밖의 첫날밤

깊고 고요한 밤, 웅장한 이 대감 댁의 안채.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정적이 화려한 신방의 공기를 짓누르고 있었다. 널찍한 방 안에는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화려한 모란꽃이 금실로 수놓아진 거대한 병풍이 둘러쳐져 있었고, 방 한가운데 놓인 화로에서는 머리를 맑게 하는 은은하고 값비싼 침향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두 개의 거대한 붉은 밀랍 초가 소리 없이 일렁거리며 방 안 전체를 관능적인 붉은빛으로 물들였다. 묵직한 원삼과 답답한 족두리를 쓴 채 푹신한 명주 요 위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소화는 손가락 하나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얼어붙어 있었다.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나올 것처럼 쿵쾅거렸고, 뼛속까지 스며드는 지독한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았다. 곧 저 닫힌 방문이 열리고, 얼굴에 검버섯이 흉측하게 피고 허리가 굽은 쭈그러진 노인이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는 짐승처럼 거친 숨소리를 내며, 욕정에 눈이 멀어 자신의 옷고름을 무자비하게 뜯어낼 것만 같았다. 치켜뜬 불안한 눈동자는 바닥만을 향한 채, 소화는 하얗게 질린 입술을 비릿한 피맛이 날 때까지 꽉 깨물었다.

'그래, 그저 아무런 감정도 없는 고목나무 토막이 되었다 생각하자. 숨을 꾹 참고, 두 눈을 질끈 감고, 이 끔찍한 밤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거야. 내 부모님을 살린 대가다. 견뎌야만 한다.'

그때, 문밖에서 조심스러운 기척이 들리더니 이내 방문이 스르륵 열렸다. 소화의 가녀린 어깨가 흠칫하며 크게 떨렸다. 방 안으로 들어선 묵직하고 일정한 발걸음 소리가 그녀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멈추어 섰다. 소화는 공포심에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시선을 바닥에 고정했다. 그런데 그녀의 예상과 달리, 방 안을 채운 것은 늙은 노인의 퀴퀴하고 불쾌한 냄새가 아니었다. 오히려 깊은 산사에서나 맡을 법한 은은하고 기품 있는 묵향과 서늘한 밤공기가 섞인, 묘하게 가슴을 뛰게 하는 맑은 사내의 체향이었다.

"많이 기다렸느냐. 내 오랫동안 혼자 지내다 보니 이런 자리가 영 낯설어 조금 늦었구나."

나지막하고 깊은 동굴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목소리였다. 갈라지고 탁한 늙은이의 음성이 아닌, 거대한 산의 바위처럼 묵직하고 흔들림 없는 강건한 사내의 목소리. 당황한 소화가 조심스레, 아주 천천히 시선을 올렸다. 붉은 초롱빛 아래 서 있는 이 대감의 모습은 소화가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끔찍한 상상을 완전히 빗겨가 있었다. 예순이라는 나이가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꼿꼿하고 장대한 체구의 사내. 세월의 흔적이 굵게 패인 얼굴이었지만, 선이 굵은 이목구비와 밤하늘의 별처럼 맑고 날카로운 눈빛은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어내고 있었다. 천박한 욕정으로 번들거리는 노인의 눈동자가 아니라, 모진 세상의 풍파를 모두 겪어내고 깊이 품어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거대한 자애로움과 은은한 남성미가 그의 온몸에서 흘러넘치고 있었다.

이 대감은 바들바들 사시나무 떨듯 떠는 소화의 곁으로 다가와 조심스레 무릎을 굽혀 앉았다. 커다랗고 단단한 사내의 손이 소화의 떨리는 턱끝을 살며시 들어 올렸다. 굳은살이 배인 손가락 끝에서 전해지는 체온은 놀라울 정도로 기분 좋게 따뜻했다.

"그리 겁먹지 말거라. 짐승도 제 새끼를 아끼거늘, 네가 가난한 부모를 살리기 위해 이 늙은이의 곁으로 온 그 지극하고 갸륵한 효심을 내가 어찌 가벼이 여기겠느냐. 너는 오늘부터 내게 이 세상 그 무엇보다 귀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러니 마음을 놓거라."

대감의 크고 투박한 손길이 소화의 머리 위에 얹혀 그녀의 목을 짓누르던 무거운 족두리를 부드럽게 벗겨내었다. 까만 머리칼이 어깨 위로 흐트러지자, 대감은 소화의 부드러운 머릿결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거칠지만 한없이 다정한 손길이 소화의 하얀 목선을 타고 내려와, 극도의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 있던 가녀린 어깨를 따스하게 감싸 안았다. 소화는 자신도 모르게 참았던 긴 숨을 내쉬었다. 노인에 대한 맹목적인 공포와 혐오감이 눈 녹듯 서서히 녹아내리고, 평생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기묘한 안도감과 야릇한 여인으로서의 떨림이 그 빈자리를 대신 채우기 시작했다.

"저고리가 긴장한 탓에 땀에 흠뻑 젖었구나. 고뿔에 걸릴라. 이리 온."

대감의 굵은 마디의 손가락이 소화의 가슴팍에 묶인 옷고름으로 향했다. 매듭을 푸는 손길은 결코 서두르지 않고 느릿하고 우아했다. 붉은 옷고름이 스르르 풀리고, 무거운 원삼이 툭 소리를 내며 방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얇고 하얀 명주 적삼 너머로,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오르락내리락하는 소화의 앳된 가슴선이 아스라히 드러났다. 대감의 맑았던 눈빛이 순식간에 짙은 사내의 색채를 띠며 깊어졌다. 그는 소화를 급하게 요 위에 눕히지 않았다. 대신, 뜨겁고 묵직한 숨결이 소화의 민감한 귓가를 스치더니 이내 그녀의 하얀 목덜미에 그의 뜨거운 입술이 내려앉았다.

"아..."

소화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억눌린 짐승 같은 단말마의 교성이 새어 나왔다. 화들짝 놀라 제 입을 막았지만, 대감의 숙련되고 여유로운 애무는 어린 소화가 감당하기엔 너무도 짙고 강렬했다. 나이 든 노인의 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돌덩이처럼 단단한 가슴팍이 소화의 연약한 몸을 빈틈없이 짓눌러왔다. 거친 사내의 숨소리가 방 안의 공기를 뜨겁게 달구었고, 대감의 입술이 소화의 쇄골을 지나 적삼 너머로 비치는 둥근 가슴의 곡선 위로 부드럽게 안착했다. 부드럽게 살결을 깨물고 애무하는 노련하고 뜨거운 혀놀림에 소화의 허리가 활처럼 휘어지며 몸이 달아올랐다.

'이것이... 진정 사내의 품이란 말인가. 내가 알던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다.'

처음 느꼈던 수치심과 두려움은 어느새 머리가 하얘질 만큼 아찔한 쾌락으로 변해 있었다. 치마끈이 스르르 바닥으로 흘러내리고, 한 줌 빛조차 아쉬운 뽀얀 속살이 서늘한 공기 중에 노출되었다. 대감의 거칠고 뜨거운 손바닥이 그녀의 무릎을 지나 허벅지 안쪽의 여린 살을 쓰다듬어 올리자, 소화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자신의 아랫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하지만 대감은 그녀의 입술을 엄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매만지며 달콤하게 속삭였다.

"참지 말고 소리를 내어도 좋다. 내 앞에서는 아무것도 숨길 필요가 없다. 오늘 밤, 너는 온전히 나의 여인이니."

그의 깊고 탐욕스러운 입맞춤이 소화의 붉은 입술을 완전히 집어삼켰다. 숨이 막힐 듯한 짙은 키스와 함께, 마침내 두 사람의 헐벗은 몸이 하나로 겹쳐졌다. 여인으로서 겪는 찢어질 듯한 첫 고통에 소화가 눈물을 찔끔 흘리며 몸을 움츠렸으나, 대감은 그녀가 고통에 익숙해질 때까지 움직임을 멈추고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기다려주었다. 고통이 서서히 잦아들자 다정하고도 묵직하게 파고드는 사내의 맹렬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붉은 촛불이 뜨겁게 녹아내려 바닥을 적실 때까지, 화려한 병풍이 둘러쳐진 신방 안에서는 젊은 여인의 애달픈 교성과 늙은 사내의 억눌린 짐승 같은 신음이 엉켜 들며 길고 긴 밤의 관능적인 서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끔찍한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늙은 지아비는, 그 운명적인 첫날밤 소화에게 세상 그 누구보다 가장 완벽하고도 맹렬한 사내로 그녀의 온몸에 각인되었다.

※ 3: 잉태된 기적, 극명하게 갈라진 두 여인의 운명

밝은 아침 햇살이 창호지를 부드럽게 투과하여 방 안을 환하게 비추었다. 소화는 나른하고 노곤해진 몸을 뒤척이며 천천히 두 눈을 떴다. 온몸의 뼈마디가 부서진 듯 뻐근하게 울렸고 허벅지 안쪽에는 묵직한 통증이 남아있었지만,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벅찬 감정과 여인으로서 사랑받았다는 충만함이 차올라 있었다. 옆자리는 이미 비어 있었지만, 지아비가 남긴 온기와 짙은 체향만이 남아 여전히 그녀를 따스하게 감싸고 있었다. 곧 방문 밖에서 시비들의 조심스럽고 공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님, 밤새 평안하셨사옵니까. 일어나셨으면 세숫물을 대령하겠나이다."

'마님...' 그 높고 귀한 호칭이 아직은 너무도 낯설면서도, 소화의 심장을 주체할 수 없이 뛰게 만들었다. 문이 열리고, 최고급 비단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하녀들이 줄지어 들어와 소화의 수발을 들기 시작했다. 따뜻한 향초를 푼 물로 밤새 땀에 젖은 몸을 정성스레 닦아내고, 은은한 윤기가 흐르는 최고급 연분홍빛 비단 치마와 저고리를 걸쳤다. 탐스러운 흑단 같은 머리에는 영롱한 빛을 내는 비싼 옥비녀가 꽂혔다. 거울 속에 비친 여인은 더 이상 주린 배를 움켜쥐고 나무껍질을 씹어 삼키며 눈물짓던 가난하고 초라한 빈농의 딸이 아니었다. 도성 최고의 권세가이자 제일가는 부자, 이 대감 댁의 안방을 차지한 고귀한 안방마님 그 자체였다.

잠시 후 아침상에 오르는 음식들은 소화가 평생 구경조차, 아니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진수성찬이었다. 은은한 잣 향이 나는 윤기 흐르는 쌀밥에, 부드럽게 다진 꿩고기 완자, 바다 향이 물씬 풍기는 싱싱한 전복 초무침, 그리고 온갖 산해진미가 커다란 상 다리가 휘어질 듯 가득 차려졌다. 수저를 들다 말고 쌀밥을 보던 소화는 문득 고향의 냉골 방에 누워계신 불쌍한 부모님을 떠올렸다.

"유모, 혹여 내 부모님께서는 어찌 지내고 계신지 아는가? 혹여 아직도 굶고 계신 것은 아닌지 가슴이 미어지는구나."

소화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나이 지긋한 유모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굽혀 답했다.

"마님, 그런 염려는 거두시옵소서. 대감마님께서 마님이 가마에 오르신 그날 밤으로 즉시 사람을 보내어, 고향 댁에 최고급 백미 오십 가마와 따뜻한 비단 수십 필, 그리고 고향 마을에서 가장 크고 너른 기와집 한 채를 사서 부모님을 모시라 명하셨습니다. 일할 노비도 셋이나 딸려 보냈으니, 지금쯤이면 두 분 어르신 모두 따뜻한 아랫목에서 고깃국을 배불리 드시고 평안히 쉬고 계실 터이니 아무 염려 마시옵소서."

그 엄청난 은혜에 소화의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자신을 단지 대를 잇기 위한 도구나 제물로 대할 줄 알았던 늙은 지아비의 한없이 깊은 배려와 약속의 이행. 간밤에 자신을 여인으로 만들어준 그 뜨거웠던 온기와 합쳐져, 소화의 가슴속에는 이 대감을 향한 진정한 존경과 깊은 애정이 봄꽃처럼 만개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유수와 같이 흘러 어느덧 이 대감 댁에 들어온 지 꼬박 일 년의 세월이 지났다. 이 대감은 자신의 어린 후처로 들어온 소화를 제 목숨보다 끔찍이도 아꼈다. 낮에는 온화하고 지혜로운 스승이 되어 논어와 맹자를 가르치며 세상의 이치를 깨우쳐 주었고, 밤이 되어 방문이 닫히면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맹렬한 사내가 되어 밤마다 소화의 몸을 뜨겁게 탐했다. 지아비의 넘치는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소화는 눈에 띄게 아름답고 교양 있는 여인으로 완벽하게 피어났다. 그리고 기적처럼, 혼인한 지 꼬박 일 년이 되던 달에 소화의 아랫배가 봉긋하게 불러오기 시작했다. 환갑의 나이에 가문의 대를 이을 귀한 자식을 얻게 된 이 대감 댁은 그야말로 매일매일이 잔치와 축제 분위기였다.

반면, 소화의 이웃에 살며 가마에 오르는 그녀를 멍청하다며 비웃었던 미모의 처녀 점순의 운명은 끝을 모르는 시궁창으로 비참하게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점순은 소화가 도성으로 떠난 직후, 인물값만 번지르르한 이웃 마을의 젊은 농사꾼과 눈이 맞아 서둘러 혼인을 올렸다. 젊고 튼튼한 사내 품에 안겨 매일 밤이 즐겁다며 동네방네 떠벌리고 다녔으나, 그녀의 얄팍한 행복은 석 달을 채 넘기지 못했다. 점순의 남편은 뼈가 빠지게 농사를 지어 입에 풀칠하기도 모자랄 판에, 매일같이 투전판을 기웃거리며 가산을 탕진하는 몹쓸 노름꾼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성정마저 짐승처럼 포악하여, 돈을 잃고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날이면 점순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발로 걷어차며 무자비한 매질을 일삼았다.

장대비가 무섭게 쏟아지던 늦은 밤, 남편의 구타를 견디다 못해 맨발로 도망쳐 나온 점순은 질척이는 진흙탕에 뒹굴며 처절하게 오열했다. 맞아 터진 입술에서는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고, 비에 흠뻑 젖은 얇은 무명 치마는 여기저기 찢겨 너덜거렸다. 얼굴은 눈물과 진흙으로 범벅이 되어 귀신과도 같았다. 길바닥에 주저앉아 하늘을 원망하던 그녀의 머릿속에 불현듯 일 년 전, 이 대감 댁으로 향하던 소화의 화려한 붉은 가마가 스쳐 지나갔다. 늙은이에게 팔려 가는 미련한 년이라며 손가락질하고 조롱했던 그 가난한 소녀는, 지금쯤 비가 새지 않는 으리으리한 기와집에서 비단옷을 입고 산해진미를 먹으며 마님 소리를 듣고 지내겠지.

'내가 미쳤지... 내가 단단히 미친년이지! 그 늙은 재상이 당장 내일 숨을 거둔다 해도, 그때 그 가마에 탔어야 하는 것은 나였어... 부귀영화를 누려야 할 사람은 나였단 말이다!'

점순의 뼈저린 후회와 피맺힌 통곡 소리가 무심하게 쏟아지는 빗소리에 파묻혀 흩어졌다. 따뜻하고 화려한 안방에서 고귀한 생명을 잉태하고 지아비의 사랑을 듬뿍 받는 소화의 빛나는 삶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얄팍한 욕정과 어리석은 선택이 부른 완벽하고도 끔찍한 파멸의 서곡이었다.

※ 4: 가문의 대를 잇다, 늙은 지아비의 깊은 사랑과 유언

생사를 오가는 산고의 고통은 어린 소화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참혹하고 끝이 보이지 않았다. 꼬박 이틀 밤낮을 앓으며 처절한 비명을 토해내던 소화의 창백한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려 베갯잇을 흠뻑 적시고 있었다. 밑이 무참히 찢어질 듯한 하복부의 끔찍한 진통 속에서도 소화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악물며 자신의 뱃속에 품은 지아비의 귀한 핏줄을 세상에 내어놓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굳게 닫힌 방문 밖에서는 예순을 훌쩍 넘긴 이 대감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초조하게 서성이고 있었다. 평생 수많은 전장을 누비고 조정의 험난한 풍파를 겪으면서도 단 한 번도 흔들림 없던 위대한 노재상의 얼굴에는, 지금껏 본 적 없는 극심한 두려움과 어린 아내를 향한 짙은 애틋함이 역력하게 배어났다. 대감은 쉴 새 없이 마주 잡은 두 손을 떨며 하늘을 향해 자신의 모든 명운을 바쳐 아내와 아이를 살려달라 묵언의 기도를 올렸다. 마침내 셋째 날 새벽, 짙은 어둠을 밀어내며 붉은 여명이 밝아올 무렵, 세상을 호령하듯 깨우는 우렁차고 기운찬 아기의 울음소리가 무거운 정적을 깨고 안채를 가득 채웠다.

"마님! 대감마님! 득남이옵니다! 아주 건장하고 떡두꺼비 같은 사내아이옵니다! 가문의 대를 이을 귀한 도련님이 태어나셨사옵니다!"

피투성이가 된 산파의 감격스러운 외침에 굳게 닫혀 있던 방문이 거칠게 활짝 열렸다. 방 안으로 허겁지겁 뛰어 들어온 이 대감은 평소의 엄격한 체면과 양반의 위신마저 모두 잊은 채,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핏덩이인 아기를 조심스레, 아주 소중하게 품에 안았다. 예순을 훌쩍 넘긴 노인의 주름진 두 뺨 위로 뜨거운 감격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려 아기의 강보를 적셨다. 그 눈물은 단지 자신이 죽기 전 가문의 대를 이을 핏줄을 얻었다는 기쁨과 안도감만이 아니었다. 자신을 위해 꽃다운 청춘을 기꺼이 희생하고, 제 목숨을 건 끔찍한 산고까지 군말 없이 견뎌준 어리고 가여운 아내에 대한 한없는 고마움과 뼈저린 미안함의 결정체였다. 대감은 아기를 유모에게 넘긴 뒤, 산고로 완전히 탈진하여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고 쓰러져 있는 소화의 땀 젖은 머리칼을 떨리는 손으로 쓸어 넘기며 그녀의 이마에 깊고 다정하게 입을 맞추었다.

"고맙다... 참으로 장하고 고맙구나, 나의 소화야. 네가 내게 천하를 안겨주었어. 텅 비어있던 이 늙은이의 삶에 기적을 내려주었구나. 이 아이는 내 남은 목숨보다 귀하게, 그리고 네가 오늘 밤 흘린 땀방울보다 눈부시게 빛나도록 키울 것이다. 내 모든 것을 바쳐 너와 이 아이를 지킬 것이다."

소화는 가물거리는 흐린 의식 속에서도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지아비의 다정하고 물기 어린 목소리에 희미하게, 그러나 한없이 평온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들의 탄생은 적막했던 이 대감 댁에 완전히 새로운 활기와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대감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는 아들 명우의 재롱을 보고 학문을 가르치는 낙으로 자신의 마지막 여생을 보냈다. 소화 역시 한 아이의 굳건한 어머니가 되어, 예전의 나약하고 주눅 들었던 빈농의 딸이 아니라 도성에서 가장 기품 있고 흔들림 없는 단단한 안방마님으로 성장해 갔다. 하지만 야속한 세월과 하늘의 섭리는 인간의 행복을 영원토록 허락하지 않았다. 명우가 총명함을 빛내며 일곱 살이 되던 해, 칠순을 훌쩍 넘긴 이 대감의 기력이 눈에 띄게 쇠약해지기 시작했다. 평소 바위처럼 꼿꼿하던 넓은 등은 굽어졌고, 쩌렁쩌렁하게 집안을 울리던 목소리에는 힘이 빠져 잦은 기침 소리만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겨울의 초입, 살을 에이는 매서운 바람이 문풍지를 때리던 어느 날, 대감은 결국 피를 토하며 자리에 눕고 말았다. 용하다는 도성의 의원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며 산삼과 녹용 등 온갖 진귀한 약재를 달여 올렸지만, 하늘이 정해준 수명을 억지로 늘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신의 죽음이 코앞에 임박했음을 직감한 이 대감은 모두가 잠든 어느 깊은 밤, 소화를 홀로 자신의 병상으로 불렀다. 뼈만 남은 앙상하고 차가운 손이 소화의 부드럽고 따뜻한 손을 꽉 쥐었다. 소화는 차오르는 슬픔과 눈물을 억지로 삼키며 지아비의 곁을 묵묵히 지켰다.

"소화야, 울지 말거라. 인간이 태어나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천지의 거스를 수 없는 순리이거늘. 내 비록 몸은 늙고 병들어 이렇게 흉한 몰골로 떠나게 되었으나, 널 만나 얻은 지난 칠 년의 세월은 내 평생 그 어떤 권세와 영광보다 찬란하고 뜨거운 봄날이었다. 너로 인해 나는 진정 사내로서 행복했다."

"대감마님... 제발 그런 무서운 말씀은 거두어 주시옵소서. 곧 툭툭 털고 일어나실 것입니다. 명우가 장성하여 늠름하게 관복을 입고 혼례를 올리는 것까지 지켜보셔야 하지 않사옵니까. 저와 명우를 두고 어딜 가신단 말씀이십니까."

소화의 애달픈 흐느낌에 대감은 힘없이, 그러나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힘겹게 상체를 일으켜 자신의 베갯머리 아래에 숨겨두었던 붉은 끈으로 봉인된 두툼한 서책 하나를 꺼내어 소화의 품에 깊숙이 쥐여 주었다.

"잘 듣거라. 내 친척 무리 중에는 가문의 핏줄을 핑계로 재물을 탐내는 승냥이 같은 자들이 득시글거린다. 내가 눈을 감고 나면, 그들은 피 끓는 청춘의 과부인 너를 모함하고 어린 명우를 내쫓아 이 거대한 집안의 재산을 통째로 집어삼키려 들 것이 뻔하다. 이 책은 내가 평생을 바쳐 모은 막대한 재산의 은밀한 문건들과, 명우가 장성하여 관직에 오를 때까지 너희 모자를 무조건적으로 지켜줄 조정 최고위 대신들의 피로 쓴 서약이 담긴 비망록이다. 내가 죽거든 이 책을 네 품속 가장 깊은 곳에 감추고, 명우가 장원급제하여 스스로를 지킬 힘을 얻는 그날까지 절대 세상에 드러내지 말거라. 이것이 널 지켜줄 나의 마지막 방패다."

소화는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대감의 결연한 유언을 마음속 깊이 새겨넣었다. 자신이 떠난 후 혼자 남겨질 어린 아내와 아들의 험난한 앞날까지 완벽하게 안배해 놓은 늙은 지아비의 그 크고 위대한 사랑에 소화는 결국 참았던 울음을 토해내고 말았다.

"그리고 소화야... 칠 년 전, 널 처음으로 온전히 내 품에 안았던 그 밤을 기억하느냐. 끔찍한 두려움에 떨면서도 나를 위해 기꺼이 제 몸을 내어주던 네 그 맑고 슬픈 눈망울을, 나는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 다음 생이라는 것이 정녕 존재한다면, 그때는 내가 새파랗게 젊고 건장한 사내로 태어나 널 가장 먼저 찾아가마. 그때는 네가 주름진 노파가 되어 병들었다 해도, 내가 널 안아줄 것이다. 널... 진심으로 은애하였다."

그 절절한 고백이 이 대감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며칠 뒤, 하늘도 슬퍼하는 듯 첫눈이 고즈넉하게 내리던 고요한 새벽, 조선 최고의 권세가이자 소화의 세상 그 자체였던 이 대감은 가장 사랑하는 아내의 품 안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거대한 기와집은 하인들의 곡성으로 가득 찼고, 스물세 살이라는 눈부시게 젊은 나이에 청상과부가 된 소화는 거친 상복을 입은 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굳은 표정으로 지아비의 빈소를 지켰다. 슬픔에 무너져 내려 주저앉을 여유 따위는 그녀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이제 그녀는 늙은 지아비가 남기고 간 유일한 핏줄과 그가 물려준 이 거대한 제국을 짐승들로부터 지켜내야 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맹수 같은 어미가 되어야만 했다.

※ 5: 장원급제, 천덕꾸러기에서 조선 최고의 안방마님으로

이 대감의 시신을 산에 묻고 삼우제가 채 끝나기가 무섭게, 죽은 지아비의 우려대로 썩은 고기를 찾아 몰려드는 하이에나처럼 먼 친척들이 안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뻔뻔한 얼굴로 핏줄과 가문의 법도를 운운하며, 이제 겨우 일곱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명우가 거대한 가문을 이끄는 것은 이치에 어긋나니 장성한 양자를 새로 들여 집안의 막대한 재산을 대신 관리하겠다며 대놓고 으름장을 놓았다. 어떤 파렴치한 이들은 스물세 살의 젊고 아리따운 과부인 소화가 밤마다 외간 남자를 집안에 들인다는 불순하고 더러운 소문을 도성에 퍼뜨려, 그녀를 집안에서 쫓아내고 명우를 독차지하려는 치졸하고 악독한 계략까지 꾸몄다. 하지만 그들이 상대하는 여인은 예전의 겁 많고 여려 빠진 가난한 빈농의 딸이 아니었다. 조선 최고의 권세가였던 이 대감 곁에서 칠 년이라는 시간 동안 학문과 세상의 이치, 그리고 사람의 간악한 속내를 꿰뚫어 보는 법을 완벽하게 배운 그녀는 놀라울 정도로 냉철하고 지혜로웠으며 무서울 만큼 단호했다.

"다들 그 더러운 입 다물지 못하시겠습니까! 아버님께서 살아생전 남기신 유지가 명백히 적장자인 명우와 저에게 있거늘, 어찌 감히 타성의 피를 끌어들여 뼈대 깊은 이 가문의 정통성을 흐리려 하십니까! 제가 젊은 과부라 하여 만만히 보셨다면 큰 오산입니다. 이 시간 이후로 단 한 발자국이라도 안채로 더 걸음을 내딛으신다면, 당장 사헌부에 고발하여 가택 침입과 가주 능멸의 죄를 엄히 물을 것입니다! 또한, 이 대감마님과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조정의 판서 대감들께서 저승에 계신 아버님을 대신해 당신들의 목줄을 끊어놓을 것입니다. 당장 이 집에서 나가십시오!"

대청마루에 우뚝 서서 서릿발 같은 안광을 뿜어내며 벼락같이 내리치는 소화의 호통에, 기세등등하던 친척들은 창백하게 질린 채 주춤하며 도망치듯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소화는 남편이 목숨처럼 남겨준 비망록의 존재를 철저히 숨긴 채, 오직 아들의 안위와 교육에만 자신의 모든 피와 땀을 쏟아부었다.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차가운 우물물로 목욕재계하고 정화수를 떠놓은 뒤 명우의 무사 장성과 입신양명을 기원했고, 밤에는 다른 스승에게 맡기지 않고 자신이 직접 등잔불을 밝히며 사서삼경과 제자백가를 가르쳤다. 소화의 엄격하고도 지극한 사랑 속에서, 명우는 아버지를 빼닮은 꼿꼿하고 정의로운 성품과 어머니의 흔들림 없는 강인함을 동시에 물려받은 천재적인 두뇌의 청년으로 훌륭하게 자라났다.

그렇게 숨 막히는 세월은 흐르고 흘러, 소화의 나이도 어느덧 삼십 대 중반을 넘어섰다. 숱한 시련과 독수공방의 외로움 속에서도 그녀의 자태는 단 한 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밤마다 텅 빈 넓은 방에 홀로 누울 때면, 과거 늙은 지아비가 자신의 연약한 몸을 부서져라 안아주었던 그 뜨겁고도 맹렬했던 첫날밤의 관능적인 온기와, 두려움에 떨던 자신을 따뜻하게 감싸주던 너른 가슴을 떠올리며 여인으로서의 고독을 달랬다. 그 찬란했던 사랑의 기억 하나만으로도 소화는 짐승들이 득시글거리는 이 거친 세상을 능히 버텨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명우가 열여덟 살이 되던 해, 조선 팔도의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모두 모여 실력을 겨루는 대과(大科)가 도성에서 열렸다. 명우는 어머니가 정성스레 지어준 푸른 도포를 입고 당당한 발걸음으로 과거 시험장으로 향했고, 소화는 아들이 돌아올 때까지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하루 종일 가문의 사당에 엎드려 죽은 지아비에게 기도를 올렸다. 한 달 뒤, 고요하던 도성이 발칵 뒤집히는 엄청난 소식이 전해졌다. 수천 명의 쟁쟁한 선비들을 제치고 왕 앞에서 치른 전시에서 당당히 수석을 차지하여 장원급제의 영예를 안은 이가, 바로 죽은 이 대감의 아들 이명우였던 것이다.

"마님! 대감마님! 도련님께서... 아니, 명우 나으리께서 장원급제를 하셨사옵니다! 임금님께서 친히 나으리의 답안지를 보시고 극찬을 아끼지 않으시며, 어사화를 내리셨다 하옵니다! 우리 도련님이 조선 최고의 인재가 되셨사옵니다!"

나이 든 유모가 체면도 잊은 채 마당을 가로질러 뛰어 들어오며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소식을 전했다. 그 순간, 방 안에서 차를 마시려던 소화가 쥐고 있던 귀한 다기 잔이 바닥으로 툭 떨어져 쨍그랑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소화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짐승처럼 오열하기 시작했다. 지난 십여 년간 젊은 과부라는 이유로 세상으로부터 받아야 했던 온갖 멸시와 설움, 늙은이에게 팔려 온 천한 년이라는 조롱, 그리고 홀로 가문을 지키고 아이를 키우며 감내해야 했던 뼈를 깎는 외로움과 고통이 그 뜨거운 눈물 속에서 한꺼번에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대감마님... 하늘에서 보시고 계시옵니까. 우리의 아이가... 대감마님의 그 고귀한 핏줄이 기어이 이 거친 세상에서 제힘으로 우뚝 섰사옵니다. 제가... 비천한 소녀였던 제가, 아버님의 유언을 완벽하게 지켜내었사옵니다..."

며칠 후, 임금의 교지를 받고 도성을 행진하던 명우는 머리에 화려하게 펄럭이는 어사화를 꽂고 붉은 비단 관복을 늠름하게 차려입은 채 자신이 태어난 집으로 돌아왔다. 거대한 솟을대문 밖에는 가문의 부활을 축하하러 온 고관대작들과 구경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명우는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마당 한가운데 서 있는 어머니 소화를 향해 무릎을 꿇고 땅에 이마가 닿도록 가장 깊은 큰절을 올렸다.

"어머니, 소자 임금님의 지극한 은혜를 입고 마침내 아버님의 유업을 이을 완벽한 준비를 마쳤사옵니다. 이 모든 영광은 홀로 험난하고 모진 세월을 견디며 제게 하늘의 이치를 가르치고 바른길로 인도해주신 어머니의 피눈물 나는 은덕이옵니다. 이제 제가 어머니를 지킬 것이옵니다."

소매 끝으로 맺힌 눈물을 우아하게 닦아낸 소화는 당당하고 고고한 걸음으로 아들에게 다가가 그의 듬직한 어깨를 감싸 안았다. 십여 년 전, 굶어 죽어가는 부모를 살리기 위해 천덕꾸러기 가난한 집 딸에서 늙은이의 후처로 팔려 갔다고 손가락질받던 나약한 소녀는, 이제 조선 땅 그 누구도 감히 함부로 우러러볼 수 없는 가장 존귀하고 위대한 권세가의 안방마님이 되어 있었다. 대감의 유언대로 가문을 완벽하게 재건한 그녀의 기품 있는 얼굴에는, 그 어떤 화려한 보석보다 찬란하고 눈부신 승리의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 6: 길거리에서의 엇갈린 재회, 뼈저린 후회와 완벽한 해피엔딩

도성 한복판의 널찍한 거리는 장원급제한 이명우의 화려한 유가(遊街)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든 백성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태평소와 꽹과리가 어우러진 경쾌하고 요란한 풍악 소리가 푸른 하늘 높이 울려 퍼지고, 도성에서 가장 이름난 기생들이 화사한 옷차림으로 춤을 추며 행렬의 맨 앞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 뒤로 건장하고 윤기가 흐르는 백마에 올라탄 명우는 군계일학처럼 빛나는 수려한 외모와 압도적인 기품으로 길가에 늘어선 모든 이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백성들은 연신 환호성을 지르며, 죽은 이 대감의 피를 물려받은 이 훌륭하고 젊은 인재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열광했다.

그 화려하고 웅장한 행렬의 바로 뒤편에는, 여덟 명의 건장한 장정이 어깨에 메고 가는 조선 최고급 사인교가 조용히, 그러나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풍기며 따르고 있었다. 그 화려한 가마 안에는 장원급제자의 어머니이자 이 대감 가문의 진정한 지배자인 소화가 타고 있었다. 가마의 얇은 발 사이로 살짝살짝 비치는 소화의 고혹적인 자태는 삼십 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너무도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최고급 명주실로 짜낸 은은한 옥색 비단 치마에, 탐스러운 머리에는 황실의 여인들이나 쓸 법한 귀하고 화려한 칠보 비녀가 햇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길을 걷던 여인들은 모두 부러움의 탄성을 길게 내뱉으며,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거머쥔 듯한 그녀의 고귀한 모습을 동경과 질투가 뒤섞인 눈빛으로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환호하는 군중들 사이, 썩은 물이 고여 악취가 진동하는 시궁창 옆 구석에 잔뜩 웅크리고 앉아 그 눈부신 행렬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는 한 여인이 있었다. 수년 동안 빨지 않아 때가 꼬질꼬질하게 묻은 흉측한 누더기 치마에, 얼굴은 지독한 영양실조와 잦은 매질로 인해 원래의 이목구비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일그러져 있었다. 앞니는 부러져 성한 곳이 없었고 머리는 산발을 한 그 더러운 거지 여인은, 바로 십수 년 전 소화의 이웃에 살았던 점순이었다. 그녀의 삶은 묘사하기조차 끔찍한 지옥 그 자체였다. 노름꾼 남편은 빚쟁이들에게 쫓겨 그녀를 버리고 야반도주한 지 오래였고, 점순은 남편의 빚 대신 사창가에 팔려 갈 뻔하다가 피투성이가 된 채 도망쳐 나와 도성의 가장 깊은 밑바닥을 전전하는 거지가 되어 있었다. 하루하루 동냥질로 썩은 밥을 주워 먹으며 사람들의 잔인한 발길질과 가래침을 견뎌야 하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비참한 짐승의 나날들이었다.

점순의 총기를 잃고 흐리멍덩해진 동공이 화려한 백마를 탄 청년의 얼굴을 스치듯 지나쳐, 그 뒤를 따르는 거대한 가마의 흩날리는 발 사이로 향했다. 그 순간, 점순의 심장이 날카로운 비수에 찔린 듯 멎어버렸다. 고상하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가마 밖을 부드럽게 내다보는 저 눈부신 여인. 십수 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지만 점순은 단번에 그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자신과 함께 이웃집에 살며 가난에 허덕이던, 그리고 자신이 송장 냄새가 난다며 죽기보다 싫다고 매몰차게 걷어찼던 그 늙은 노인네의 혼처를 기꺼이 받아들였던 그 미련하고 멍청한 빈농의 딸 소화였다.

'아아... 저 여인이 정녕 내가 비웃었던 그 소화란 말인가... 거짓말이다, 이건 꿈이다. 저토록 찬란하고 눈부신 가마 자리, 저 위대한 장원급제자의 어머니 자리는... 원래 나에게 주어졌던, 내 것이 될 수도 있었던 자리였거늘!'

가마 안에 편안히 앉은 소화의 기품 있는 눈길이 우연히 환호하는 군중 속을 천천히 훑다가, 시궁창 옆에 웅크린 거지 여인에게 아주 잠시, 찰나의 순간 머물렀다. 소화의 눈빛에는 그 어떤 동요나 놀라움도 없었다. 그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천한 백성을 바라보는, 지체 높고 고귀한 마님의 자애롭고 평온한 시선일 뿐이었다. 소화는 그 흉측한 거지가 과거 자신을 조롱했던 점순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아보지 못한 채 부드럽게 시선을 거두었고, 화려한 가마는 유유히 점순의 앞을 지나쳐 저 멀리 찬란한 빛을 향해 멀어졌다.

점순은 더러운 흙바닥에 엎드려 짐승처럼 땅을 치며 피맺힌 통곡을 터뜨렸다. 자신의 그 알량하고 어리석은 선택이 만들어낸 이 참혹하고도 극명한 결과가 뼛속 깊이 사무치다 못해 영혼을 갈가리 찢어놓고 있었다. 한낱 썩어 없어질 젊은 육욕과 얄팍한 허영심에 눈이 멀어 그 어마어마한 노재상의 품을 거부했던 자신은 거리의 악취 나는 시궁창에서 벌레처럼 썩어가고 있는데, 굶어 죽어가는 늙은 부모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을 제물로 던졌던 그 어린 소녀는 지금 조선 팔도에서 가장 존경받는 위대한 어머니이자 권세가의 안방마님으로 천하를 호령하고 있었다. 피눈물이 점순의 더러운 뺨을 타고 흘러내려 진흙과 섞였지만, 축제에 열광하는 지나가는 사람 중 그 누구도 거지 여인의 절규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멀어지는 가마 안에서 소화는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십수 년 전, 살을 에이는 눈보라 치던 겨울밤 화려한 가마에 오르며 느꼈던 그 지독했던 공포와 뼛속 깊은 절망이, 이제는 그녀의 삶을 가득 채우는 완전한 평화와 환희로 바뀌어 있었다. 은혜를 입은 부모님은 천수를 누리다 따뜻한 방에서 편안히 눈을 감으셨고, 자신은 세상 그 누구보다 크고 자상하고 위대한 지아비를 만나 진정한 여인으로서의 황홀한 쾌락과 숭고한 사랑을 알았다. 그리고 이제는 그 지아비의 피를 빼닮은 훌륭한 아들이 가문을 완벽하게 재건하며 세상을 빛내고 있었다.

'나의 대감마님... 이제야 비로소 제가 아내로서, 그리고 어미로서의 임무를 온전히 다한 듯합니다. 훗날 제 수명이 다하여 황천길에서 대감마님을 다시 뵈올 때, 당당히 고개를 들고 나아갈 수 있겠습니다. 그때는... 당신께서 약속하신 대로 저를 다시 당신의 넓은 품에 깊이 안아주십시오. 영원토록 당신의 여인으로 살겠나이다.'

풍악 소리는 더욱 웅장하게 거리를 울려 퍼졌고, 눈부시도록 찬란한 햇살이 소화가 나아가는 앞길을 마치 축복하듯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지독한 가난과 처절한 희생으로 시작되었던 그녀의 잔혹한 운명은, 결국 지극한 효심과 흔들림 없는 헌신에 하늘이 감복하여 내린 가장 완벽하고도 눈부신 해피엔딩으로 장엄하게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유튜브 엔딩 멘트

"여러분, 오늘의 반전 드라마 어떠셨나요? 눈앞의 두려움을 피하고 허영을 쫓은 자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지만, 부모를 위해 기꺼이 헌신을 택한 소녀는 결국 가장 찬란한 꽃으로 피어났습니다. 운명이란 참으로 얄궂으면서도 공평한 것 같습니다. 소화의 용기 있는 희생과 노재상의 깊은 사랑에 감동하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부탁드립니다. 다음에도 더욱 아찔하고 몰입감 넘치는 조선 로맨스로 찾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