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쫓겨난 과부, 한양 상권 삼키다 『청구야담』
쫓겨난 과부, 한양 상권 삼키다 『청구야담』
시댁에서 쫒겨난 부자 과부, 어느날 갑자기 머슴에게 찾아온 복, 뭘해서 돈을 벌고 어디까지 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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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300자 미만)
시댁의 탐욕에 밀려 한겨울 밤 빈손으로 쫓겨난 양반댁 며느리. 매서운 칼바람 속, 갈 곳 없는 그녀의 곁을 지킨 건 평생 소처럼 일만 하던 머슴뿐이었습니다. 무너진 사당 안, 두 사람의 엇갈린 신분은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뜨겁게 허물어지는데... 숨겨둔 재물로 거대한 부를 일궈내는 과부와 머슴의 발칙하고 아찔한 인생 역전극! 과연 이 둘이 향하는 끝은 어디일까요?
※ 1: 눈보라 치는 밤, 굳게 닫힌 솟을대문과 그림자
육중한 나무 문이 닫히는 소리가 차가운 겨울밤의 적막을 날카롭게 찢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굳게 닫힌 솟을대문 위로 무심한 눈발만이 흩날리고 있었다. 불과 한 시진 전까지만 해도 안방마님으로 불리며 이 거대한 기와집의 안채를 호령하던 몸이었다. 그러나 지아비가 이름 모를 병으로 세상을 떠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탐욕에 눈이 먼 시숙과 시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이빨을 드러냈다. 외간 남자와 내통했다는 터무니없는 누명을 씌워, 변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한겨울 자정이 넘은 시각에 홑겹의 소복 차림으로 쫓아낸 것이다.
'가증스러운 것들. 서방님이 살아계실 적엔 내 앞에서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하던 것들이, 이제 와서 가문의 재산을 독차지하려 나를 음해하다니.'
입술을 꽉 깨물었지만, 뼈를 에이는 듯한 삭풍은 야속하게도 얇은 명주 치마를 파고들었다. 신발조차 제대로 신지 못해 버선발로 딛고 선 얼어붙은 땅에서부터 끔찍한 한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눈앞이 아득해졌다. 친정은 이미 오래전 역모에 휘말려 멸문지화를 당했기에 돌아갈 곳도 없었다. 이대로 눈 속에서 얼어 죽거나, 산짐승의 밥이 되는 것 말고는 남은 길이 없어 보였다. 모진 운명을 한탄하며 눈물조차 얼어붙는 추위에 몸을 떨고 있을 때, 뒤에서 뽀드득거리는 둔탁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마님."
낮고 굵은 목소리. 익숙한 음성이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다가오고 있었다. 머슴 마당쇠였다. 언제나 말없이 장작을 패고 가마를 메던, 바위처럼 단단하고 과묵한 사내. 그의 어깨에는 낡은 봇짐 하나가 덜렁 매달려 있었고, 한 손에는 빛바랜 청사초롱이 희미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네가 어찌 여기 있는 것이냐. 당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어찌 마님을 홀로 두겠습니까. 제 목숨을 거두어 주신 분은 마님이십니다. 마님이 가시는 길이라면 거기가 저승이라도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이 바보 같은 사내. 쫓겨난 과부를 따라나서 봤자 굶어 죽는 것 말고 무엇이 기다린다고.'
"어리석은 소리 말거라. 나는 이제 네 마님이 아니다. 가문에서 버림받고 죄인으로 쫓겨난 몸이니, 나를 따라오면 너 역시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어서 돌아가거라."
"아닙니다. 제겐 마님뿐이십니다. 날이 찹니다. 이러다가는 동사하십니다. 우선 이 산을 넘어 아랫마을 낡은 사당으로 가시지요. 거친 길은 제가 업고 가겠습니다."
그는 더 이상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두툼한 솜옷을 벗어 덜벌 떨고 있는 가녀린 어깨 위에 무심하게 걸쳐주었다. 사내의 체온이 짙게 밴 거친 솜옷에서 훅 하고 끼쳐오는 흙내음과 땀 냄새가 묘하게 안도감을 주었다. 차갑게 얼어붙은 심장에 작은 불씨가 닿은 것 같았다.
"내 발로 걸을 수 있다. 앞장서거라."
눈이 무릎까지 쌓인 험한 산길이었다. 몇 번이나 미끄러지고 넘어졌는지 모른다. 그때마다 거칠고 커다란 손이 뻗어와 단단하게 몸을 지탱해주었다. 한때는 부정하다고 여겨 눈길조차 주지 않던 천한 머슴의 손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 그 어떤 양반의 손보다도 믿음직스러웠다. 매서운 칼바람 속에서 오직 서로의 숨소리에 의지한 채 산을 넘었다. 발바닥에서 흐른 피가 버선을 붉게 물들일 즈음, 어둠 속에서 형체만 겨우 남은 폐사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이라면 눈보라는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안으로 들어서자 퀴퀴한 먼지 냄새와 함께 오랫동안 방치된 낡은 목조 건물의 서늘함이 느껴졌다. 문짝은 반쯤 떨어져 나가 덜컹거렸고, 틈새로 바람이 매섭게 들이쳤다. 그는 서둘러 주변에서 마른 나뭇가지와 지푸라기를 모아왔지만, 눈을 맞아 젖어버린 탓에 불이 쉽게 붙지 않았다. 몇 번이나 부싯돌을 쳤지만, 야속한 불꽃은 이내 사그라지고 말았다.
"젠장... 날이 너무 궂어 불이 붙질 않습니다. 송구합니다, 마님."
그의 목소리에 깊은 자책이 묻어났다.
"괜찮다. 애쓰지 말거라."
덜덜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며 대답했지만, 이미 몸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입술은 파랗게 질렸고, 손끝은 감각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대로 잠이 들면 영영 깨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것을 눈치챈 듯, 그는 자신의 윗도리를 벗어 바닥에 깔고는 그 위로 마님을 앉혔다. 그리고는 얇은 적삼 하나만 걸친 채 벌벌 떨며 문가를 막아섰다. 매서운 바람을 자신의 넓은 등판으로 모두 막아내려는 듯한 시늉이었다.
'바보 같은 사내. 저러다 자기가 먼저 얼어 죽겠구나.'
가혹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곁에 남아준 사람. 그를 잃는다면 자신은 정말 완벽한 혼자가 될 터였다. 살아야 했다. 복수를 위해서라도,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라도 이 차가운 밤을 무사히 넘겨야 했다. 떨리는 숨을 크게 몰아쉬며, 오랫동안 지켜왔던 양반가의 법도와 체면을 차가운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리 오너라."
"예? 마님, 바람이 찹니다. 제가 막고 있겠습니다."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곁으로 오라 하였다."
단호한 목소리에 그가 머뭇거리며 다가왔다. 어둠 속에서도 붉게 상기된 그의 뺨과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눈동자가 보였다.
"내 몸이 너무 차구나. 불을 피울 수 없다면, 사람의 온기라도 빌려야 하지 않겠느냐. 나를 안거라."
"마, 마님... 어찌 감히 천한 놈이 마님의 옥체에 손을 대겠습니까. 그것은 짐승이나 하는 짓입니다."
"네가 안지 않으면 내가 널 안을 것이다. 내가 이대로 얼어 죽기를 바라는 것이냐!"
그제야 그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커다란 두 팔이 조심스럽게, 마치 깨지기 쉬운 도자기를 다루듯 가녀린 몸을 감싸 안았다.
※ 2: 무너진 사당 안, 얼어붙은 몸을 녹이는 금지된 온기
폐사당 안은 칠흑같이 어두웠지만, 서로의 숨결만큼은 생생하게 닿아왔다. 거칠고 두꺼운 사내의 팔이 허리를 감아오는 순간, 미세한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추위 때문이 아니었다. 평생 하늘처럼 우러러보던 마님을 품에 안았다는 두려움과, 감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던 오랜 연모의 정이 뒤섞인 떨림이었다.
그의 품은 상상 이상으로 뜨거웠다. 얇은 적삼 너머로 전해지는 탄탄한 근육의 결곽 펄떡이는 심장 박동이 얼어붙은 몸을 천천히 녹이기 시작했다. 코끝을 스치는 짙은 사내의 체취가 묘한 어지러움을 불러일으켰다. 늘 비단옷을 입고 은은한 향을 풍기던 죽은 지아비에게서는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원초적이고 생경한 생명력이었다.
'그래, 이것이 살아있다는 것이구나.'
"마님... 송구합니다. 제 몸이 너무 거칠어 불편하시지요."
귓가에 울리는 그의 낮고 쉰 목소리가 묘하게 자극적이었다.
"아니다. 따뜻하구나. 아주 따뜻해."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그의 넓은 등을 감싸 안았다. 얇은 천 너머로 느껴지는 온기에 무의식적으로 그의 품을 향해 몸을 더 깊이 파고들었다. 굳게 닫혀 있던 그의 몸이 흠칫 굳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사당의 뚫린 지붕 사이로 스며든 푸르스름한 달빛이 두 사람의 얽힌 실루엣을 비추었다.
얼어붙었던 피가 돌기 시작하자, 억눌려 있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억울함, 배신감, 외로움, 그리고 이 낯선 사내 품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안도감. 소리 없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차가운 눈물방울이 그의 거친 손등에 툭 떨어지자, 그가 흠칫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우십니까... 소인이 잘못했습니다. 당장 떨어지겠습니다."
그가 다급히 몸을 떼려 하자, 본능적으로 그의 옷깃을 꽉 움켜쥐었다.
"가지 마라. 곁에 있으라 하지 않았느냐."
"하지만..."
"명령이다. 나를 만지거라. 네 뜨거운 숨결로 나를 이 차가운 곳에서 벗어나게 해다오. 지난밤의 수치와 슬픔을 모두 잊을 수 있도록... 나를 취하거라."
도발적이고도 절박한 속삭임이었다. 양반가 여인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마저 버린, 생존과 복수를 위한 맹세이자 새로운 삶을 향한 첫걸음이었다. 그동안 금기시되었던 신분의 벽은 얼어붙은 사당 안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의 거친 숨소리가 거세졌다. 더 이상 주저함은 없었다. 투박하고 큰 손이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소복의 고름을 풀었다. 스르륵 풀려내리는 명주 천 사이로 하얗고 매끄러운 살결이 달빛 아래 드러났다. 거친 굳은살이 박인 손가락이 부드러운 곡선을 따라 천천히 쓰다듬을 때마다, 기이한 열기가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마님... 아니, 나의 여인. 평생을 바쳐 지키겠습니다."
그의 입술이 차갑게 얼어붙은 뺨을 지나 목덜미로 파고들었다. 뜨거운 숨결이 닿는 곳마다 불길이 이는 듯했다. 눈보라가 치는 겨울밤의 한기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낡은 사당 바닥은 거칠었지만, 그가 만들어내는 격정적인 움직임과 원초적인 애무는 그 어떤 비단금침보다도 달콤하고 강렬했다. 고통 섞인 신음이 이내 쾌락의 한숨으로 바뀌며 사당 안을 가득 채웠다. 짐승처럼 얽혀드는 육체의 대화 속에서, 그들은 철저하게 부서지고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연약한 과부는 강인한 여인으로, 천한 머슴은 그녀만을 위한 든든한 사내로.
밤이 깊어갈수록 둘의 몸짓은 더욱 절실해졌다. 그것은 단순한 욕정의 해소가 아니었다. 서로의 상처를 핥아주고, 다가올 험난한 미래를 함께 개척해 나가자는 무언의 결의였다. 땀으로 젖은 머리카락이 뒤엉키고, 숨 막히는 절정의 순간이 지나간 후,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은 채 거친 숨을 골랐다.
여명의 푸른 빛이 사당 안을 서서히 밝히기 시작할 무렵, 그녀는 그의 넓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조용히 속삭였다.
"이제부터 나를 마님이라 부르지 마라. 우리는 오늘 밤 부부의 연을 맺은 것이다."
"예... 부인."
그의 입에서 나온 낯선 호칭에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우리는 한양으로 갈 것이다. 내 시댁 놈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할 거대한 부를 쌓을 것이다. 내 밑천을 대어 줄 터이니, 너는 나의 수족이 되어 상단을 이끌어야 한다. 할 수 있겠느냐?"
"부인의 명이라면, 지옥불에라도 뛰어들겠습니다."
그의 결연한 눈빛을 확인한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밤새 구석에 벗어두었던 두툼한 솜바지 장옷을 집어 들었다.
※ 3: 치마폭에 감춰둔 은화, 장사치로 다시 태어나다
며칠 뒤, 한양 도성 밖 마포 나루터. 거대한 돛배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고, 팔도에서 몰려든 장사치들의 고함소리가 끊이지 않는 조선 제일의 상업 중심지였다. 배에서 내린 짐꾼들이 쌀가마니와 소금을 나르고, 객주 앞에는 흥정하는 소리가 파도처럼 출렁였다.
그 번잡한 거리 한구석, 허름한 주막의 비좁은 곁방 안. 바깥의 소란스러움과 대비되는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낡은 소복 치마가 펼쳐져 있었다. 그녀는 차분한 손놀림으로 치마 밑단에 촘촘하게 박힌 바느질 선을 작은 칼로 조심스럽게 뜯어내기 시작했다. 투둑, 투둑. 실밥이 뜯어지는 소리가 날 때마다 곁에 앉아 숨을 죽이고 지켜보던 그의 눈이 점점 커졌다.
'시댁 놈들은 내가 맨몸으로 쫓겨난 줄 알겠지만, 나는 서방님이 쓰러지신 그날부터 이 순간을 준비해 왔다.'
바느질 선이 완전히 벌어지자, 두툼하게 솜이 덧대어진 줄로만 알았던 치마 폭 사이에서 은은한 빛을 뿜어내는 물건들이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은정(銀錠)이었다. 그것도 하나둘이 아닌, 족히 수백 냥은 되어 보이는 엄청난 양의 은 덩어리들이었다.
"헉... 부, 부인. 이게 대체 다 뭡니까?"
그는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은 덩어리들을 떨리는 손으로 집어 들었다. 평생 뼈 빠지게 농사를 지어도 은 한 냥 만져보기 힘든 세상이었다.
"내 서방님이 남기신 비자금이다. 시댁 식구들의 탐욕을 진작에 알고 있었기에, 은밀히 은으로 바꾸어 내 옷가지 속에 꿰매어 두었지. 나를 빈손으로 내쫓았다고 좋아하고 있겠지만, 진짜 알짜배기 재산은 모두 여기 있다."
그녀의 눈빛은 차갑게 빛났다. 그 밤, 사당에서 두려움에 떨던 나약한 과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철저하게 계산하고 미래를 도모하는 얼음처럼 차갑고 날카로운 여장부만이 앉아있었다.
"이 은화면 작은 객주 하나는 거뜬히 차리고도 남을 돈입니다. 이걸로 무엇을 하실 작정이십니까?"
"작은 객주? 겨우 그따위 것으로 만족하려고 이 험한 꼴을 당한 줄 아느냐. 나는 조선 제일의 거상이 될 것이다. 시댁 놈들이 내 발밑에 엎드려 살려달라 빌게 만들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네가 필요하다."
그녀는 남은 은정들을 쓸어 모아 전대(돈주머니)에 단단히 묶은 뒤, 그것을 그의 거친 손에 쥐여주었다.
"내일부터 당장 시장으로 나가거라. 우선 이 돈으로 북쪽에서 내려오는 인삼과 모시를 매점해라. 곧 청나라 사신단이 들어올 시기이니, 그 값이 두 배, 세 배로 뛸 것이다. 너는 이제 남의 집 마당을 쓰는 머슴이 아니다. 이 한양 바닥을 쥐락펴락할 대행수(大行首)다. 명심해라. 장사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배짱과 신용이다. 굽실거리지 말고 양반 앞에서도 당당하게 고개를 들거라."
"명심하겠습니다, 부인."
다음 날부터 그는 낡은 머슴 옷을 벗어 던지고 깔끔한 평민의 복장으로 갈아입은 뒤 마포장을 누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투박한 말투와 행동 탓에 다른 상인들에게 멸시를 당하기도 했지만, 그는 그녀가 일러준 대로 흔들림 없이 행동했다. 거대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과, 두려움을 모르는 결단력은 곧장 시장 사람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방 안에 머무는 그녀는 치밀한 정보망이었다. 주막을 오가는 상인들의 잡담 속에서 물가의 흐름을 읽어냈고, 날씨와 조정의 정세 변화를 분석하여 다음 투자처를 지시했다. 그녀의 예측은 단 한 번도 빗나가지 않았다. 인삼을 사들인 지 보름 만에 청나라 사신단의 규모가 예년보다 두 배로 늘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인삼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단 한 번의 거래로 그들은 투자한 은화의 네 배를 벌어들였다. 밤이 되면 그는 묵직해진 전대를 들고 돌아와 그녀의 앞에 쏟아부었다. 은화가 부딪히는 맑은 금속음이 좁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부인, 부인 말씀대로 인삼 값이 폭등했습니다. 오늘 객주들을 돌며 모두 처분하고 남은 이문입니다."
상기된 얼굴로 땀을 닦아내는 그의 얼굴에는 예전의 주눅 들고 비굴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당당한 사내의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손수 수건을 들어 그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었다.
"잘하였다. 수고가 많았어. 내일은 장마가 오기 전에 서해안의 소금을 몽땅 사들이거라. 돈을 아끼지 말고."
"예! 맡겨만 주십시오."
성공적인 거래가 끝난 밤이면, 좁은 방 안에서는 또 다른 열기가 피어올랐다. 쌓여가는 은화만큼이나 두 사람의 유대와 육체적 갈증은 깊어만 갔다. 시장에서의 긴장감과 피로를 서로의 살결을 비비며 씻어냈다. 그녀의 부드러운 손길이 그의 탄탄한 근육 위를 스칠 때마다, 그는 자신이 세상의 왕이라도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평생 바닥을 기던 그에게, 그녀는 재물이자 권력이었고, 구원 그 자체였다. 거침없이 굴러가기 시작한 두 사람의 탐욕과 애욕의 수레바퀴는 이제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속도로 한양 거리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 4: 거침없는 부의 축적, 상단을 장악하는 두 사람
어느덧 세 번의 모진 겨울이 지나고, 마포 나루터 후미진 골목에 자리 잡았던 작은 곁방은 이제 한양 도성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대객주 ‘청운상단’으로 변모해 있었다. 상단의 푸른 깃발이 한강의 샛바람에 나부낄 때마다 조선 팔도의 온갖 재물이 블랙홀처럼 한양으로 빨려 들어온다는 소문이 장안에 파다했다. 충청과 전라 평야에서 올라오는 쌀, 서해안의 소금은 물론이고, 평안도에서 내려오는 최고급 인삼과 멀리 청나라에서 은밀히 들여오는 진귀한 비단과 사치품에 이르기까지, 청운상단의 손을 거치지 않고서는 도성 안에서 제대로 된 장사를 할 수 없다는 말이 기정사실처럼 굳어졌다. 그리고 그 거대한 상단을 진두지휘하며 거침없이 이끄는 자는, 다름 아닌 과거 양반가의 천한 머슴으로 굽실거리던 바로 그 사내였다.
이제 시장통의 상인들과 권력을 쥔 양반들조차 그를 가리켜 ‘최 대행수’라 부르며 허리를 굽혔다. 바위처럼 다부진 체격에 윤기가 흐르는 최고급 명주 두루마기를 걸치고, 서늘하면서도 위압적인 눈빛으로 거리를 가로지르면,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세도가의 고관대작들조차 함부로 그를 무시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기에 바빴다. 호탕한 웃음 뒤에 숨겨진 잔혹한 결단력, 그리고 손해를 보지 않는 철두철미한 계산 능력은 그를 한양 상권의 절대적인 지배자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 모든 거대한 성취와 화려한 장막의 이면에는, 상단 가장 깊숙하고 은밀한 안채에서 발을 치고 앉아 치밀하게 천하의 판을 짜는 그녀가 존재했다. 그녀는 상단이 세워진 이후 단 한 번도 세상 밖으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오직 전국의 정보망과 장부만으로 상단의 모든 자금 흐름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매일 밤낮으로 각지의 객주에서 올라오는 파발의 보고서를 읽고, 날씨의 미세한 변화와 궁궐 안팎의 민심 동향을 파악하여 최 대행수에게 다음 투자처와 매점매석할 물목을 지시했다. 그녀의 차갑고 비상한 머리에서 나온 전략은 언제나 귀신처럼 맞아떨어졌고, 상단의 지하 금고에는 매일 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은정과 엽전 꾸러미가 산처럼 쌓여갔다.
달빛이 유난히도 밝고 교교하게 내려앉은 어느 늦은 밤, 화려한 십장생 자개장이 놓인 안방의 미닫이문이 스르륵 조용히 열렸다. 밖에서는 수백 명의 거친 상인들을 호령하고 양반들을 쥐락펴락하는 위풍당당한 대행수였지만, 안채로 들어선 그는 마치 길들여진 커다란 맹수처럼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비단 덧신을 벗었다. 넓은 방 안에는 서역에서 들여온 값비싼 침향이 은은하게 감돌며 사람의 이성을 몽롱하게 만들고 있었다. 방 한가운데, 붉은색 최고급 공단으로 지어진 치마저고리를 입은 그녀가 산더미처럼 쌓인 장부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나지막하고 우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늘 호조 판서와의 은밀한 만남은 어찌 되었느냐. 늙은 너구리 같은 자라 쉬이 틈을 보이지 않았을 터인데."
"부인께서 미리 짐작하신 대로였습니다. 흉년 구휼미를 핑계로 우리 상단이 비축해 둔 쌀을 시세의 반값에 내놓으라며, 관군의 힘을 빌려 으름장을 놓더군요. 제 놈의 권력으로 상단을 짓눌러 이문을 챙기려는 수작이 뻔히 보였습니다. 하여, 부인의 명대로 미리 뒷조사하여 확보해 둔 판서 영감의 첩실이 진 막대한 노름 빚 문서와, 그 첩실이 다른 사내와 배를 맞춘 증좌를 슬쩍 내밀어 보여주었습니다. 그 오만하던 영감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하더니, 이내 무릎이 꺾여 오히려 우리 상단에 내년 조세 운송권을 독점으로 넘기겠다 맹세하고 도망치듯 돌아갔습니다."
붓을 쥔 그녀의 하얗고 가녀린 손이 멈추더니, 이내 매혹적인 입술 사이로 차갑고 비릿한 미소가 번져나갔다.
"잘하였다. 권력을 쥐고 백성들 위에서 군림하는 양반이라는 자들은, 겉으로는 공자맹자를 읊으며 고결한 척을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짐승보다 못한 욕망과 탐욕으로 썩어문드러져 있지. 그 알량한 체면과 숨기고 싶은 약점만 제대로 틀어쥐면, 혈통이라는 족쇄 따위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는 종잇장에 불과한 것이다."
장부를 덮은 그녀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다가갔다. 3년이라는 세월 동안 거친 풍파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유함과 권력의 자양분을 한껏 머금은 그녀의 미모는 화려한 비단과 번쩍이는 패물 속에서 더욱 치명적이고 농염하게 피어나 있었다. 그녀가 섬세하고 하얀 두 손을 뻗어 그의 단단한 가슴팍에 얹고는, 두루마기의 고름을 천천히 유려한 손놀림으로 풀기 시작했다. 밖에서는 그 누구 앞에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대행수였지만, 오직 그녀의 부드러운 손길이 닿을 때마다 그의 거대한 몸은 묘한 긴장과 억누를 수 없는 흥분으로 미세하게 떨려왔다.
"오늘 하루도 참으로 고생이 많았다, 나의 든든한 사내여. 네가 아니었다면 이 거대한 복수의 판을 짜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녀의 붉은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달콤하고 매혹적인 속삭임에, 그는 더 이상 끓어오르는 욕정을 참지 못하고 짐승처럼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강하게 감아안았다. 낡은 폐사당의 거친 나무 바닥에서 얼어붙은 몸을 부둥켜안고 생존을 갈구하며 서로를 탐했던 그 처절한 밤과는 완전히 달랐다. 넓은 방 안을 대낮처럼 밝히는 수십 개의 밀랍 촛불 아래, 푹신하고 부드러운 최고급 비단 이부자리 위로 얽혀드는 두 사람의 몸은 이미 권력의 단맛에 깊이 중독되어 있었다.
"부인... 제 모든 것은 오직 부인의 것입니다. 이 하찮은 목숨도, 천하를 호령하는 이 거대한 상단도, 그리고 제가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숨을 쉬는 유일한 이유조차 오직 부인 때문입니다. 부인께서 명하시면 저는 불길 속이든 칼날 위든 기꺼이 춤을 추며 걸어갈 것입니다."
그의 크고 투박한, 굳은살이 단단하게 박인 손이 그녀의 붉은 저고리를 거칠게 벗겨내자, 눈부시게 하얗고 풍만한 속살이 황금빛 촛불 아래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녀는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요염하고 도발적인 미소를 지으며 그의 넓고 탄탄한 어깨를 강하게 끌어당겨 깊게 입을 맞췄다. 값비싼 서역의 향유가 발린 그녀의 매끄러운 살결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지러울 정도로 달콤한 체취가 그의 남은 이성마저 아득하게 증발시켜 버렸다. 뜨거운 숨결이 교차하고, 굶주린 짐승들의 혀가 얽혀들며 거칠고 끈적한 숨소리가 고요한 안방의 공기를 가득 채웠다.
'이 사내의 무식할 정도로 맹목적인 사랑과 맹세. 그리고 나를 향한 이 지독한 갈증. 이것이야말로 나를 이 자리까지 오르게 만든 가장 강력하고 날카로운 무기였지.'
그녀는 쾌락에 찬 숨을 헐떡이며, 자신의 몸을 탐하는 그의 구릿빛 등 근육을 긴 손톱으로 가볍게 긁어내렸다. 화려한 비단옷을 걸치고 대행수로 군림하는 지금도, 그의 벗은 육체는 여전히 짐승처럼 펄펄 끓을 듯이 뜨겁고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거친 맛이 있었다. 두 사람은 막대한 부와 무소불위의 권력이라는 달콤한 과실을 맛본 자들만이 나눌 수 있는, 지독하게 농밀하고 여유로우면서도 퇴폐적인 정사를 이어갔다. 비단결 같은 쾌락의 파도가 방 안을 몇 번이나 거세게 휩쓸고 지나간 뒤에야, 두 사람은 땀으로 흠뻑 젖은 서로의 이마를 맞대고 나른하고 만족스러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제... 오랜 시간 기다려온 우리의 진짜 축제를 시작할 때가 온 것 같구나."
그녀가 그의 단단한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채, 손가락으로 그의 심장 부근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서늘한 살기가 묻어났다.
"때라 하시면... 드디어 그놈들의 목줄을 조일 작정이십니까."
"내일 아침이 밝는 대로, 한양의 돈줄을 모두 쥐고 있는 밑단의 객주들과 전당포 주인들을 모조리 청운상단으로 불러 모으거라. 그리고 충청도와 전라도 일대의 알토란 같은 비옥한 땅을 담보로 돈을 빌려 간 양반들의 채무 상환 기일을, 일체의 예외 없이 일제히 앞당기라 지시해라. 핑계는 전염병으로 인한 자금 회수라 둘러대면 그만이다. 특히... '안동 김씨' 가문의 채무는 단 하루, 아니 단 한 시진의 유예도 주어선 안 된다. 갚지 못한다면 그들이 살고 있는 대궐 같은 기와집부터 조상 대대로 묻혀 있는 선산까지 모조리 빼앗아 내 발밑에 가져다 놓아라."
그녀의 서늘한 명령에 그의 눈빛이 먹이를 앞둔 늑대처럼 번뜩였다. 안동 김씨 가문. 바로 3년 전, 그녀에게 씻을 수 없는 모멸감을 안겨주며 한겨울 눈보라 속으로 맨몸으로 쫓아냈던, 썩어빠진 시댁의 본가였다. 복수의 칼날이 드디어 칼집을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 5: 시댁의 몰락과 발아래 엎드린 탐욕스러운 원수들
며칠 뒤, 평소라면 수많은 상인과 짐꾼들로 활기가 넘쳐야 할 청운상단의 드넓은 앞마당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무거운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상단의 수하들이 빙 둘러선 마당 한가운데, 두 명의 남녀가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초라한 행색으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었다. 한때 한양 도성에서 양반가의 기세를 하늘 높이 떨치며 콧대 높게 살아가던 안동 김씨 가문의 대마님과 그녀의 둘째 아들, 즉 3년 전 그녀를 매몰차게 쫓아냈던 늙은 시어머니와 시숙이었다. 가문의 막대한 재산을 며느리와 나누기 싫어 그녀를 음해하고 내쫓았지만, 그들의 바닥없는 탐욕과 오만함은 결국 그들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맹독이 되고 말았다.
청운상단이 한양의 상권을 장악해 나가는 동안, 그들은 시세 차익을 노리고 무리하게 상단의 쌀을 매점매석하여 큰돈을 벌어보려 발버둥 쳤으나, 번번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에 밀려 처참하게 실패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상실감을 달래려 투전판에 발을 들인 시숙은 밤낮없이 노름에 빠져 가문의 옥토와 기와집, 심지어 대대로 물려받은 노비 문서까지 모조리 객주들에게 저당 잡히는 신세로 전락했다.
자신들의 빚을 움켜쥐고 있는 뒷배가 청운상단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른 채, 돈을 빌려 쓴 전국의 전당포와 객주들이 일제히 무자비한 빚 독촉을 해오기 시작하자 그들은 완전히 벼랑 끝에 몰려 숨통이 끊어질 지경이었다. 결국 조선 제일의 갑부이자 무자비한 사채의 제왕이라는 청운상단의 대행수에게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돈을 빌리러, 아니 사실상 목숨을 구걸하러 이 치욕스러운 자리에 오게 된 참이었다.
"대, 대행수 어른! 부디, 부디 제발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저희 가문이 뼈대 있는 안동 김씨 가문이라는 것은 온 한양이 다 아는 사실이 아닙니까. 딱 한 달, 아니 보름만 기한을 연장해 주시면 이자를 두 배, 세 배로 쳐서라도 반드시 갚겠소이다! 제발 우리 가문의 숨통만은 끊지 말아 주십시오!"
화려했던 비단옷은 온데간데없이 때에 절은 도포 자락을 걸친 시숙이 비굴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하며 두 손이 발이 되도록 비벼댔다. 평소 평민들을 벌레 보듯 하며 양반의 체면을 자신의 목숨보다 중히 여기던 늙은 시어머니조차,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덜덜 떨며 차가운 흙바닥에서 고개를 단 한 치도 들지 못했다. 최고급 호랑이 가죽이 깔린 대청마루에 거만하고 위압적인 자세로 걸터앉은 그는, 턱을 괸 채 짐승의 시체라도 보는 듯한 차갑고 경멸 어린 눈으로 두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불과 3년 전, 무자비한 매질과 함께 봇짐 하나만을 마당에 내던지며 자신의 은인을 한겨울 밤의 사지로 쫓아냈던 바로 그 악랄한 인간들이었다.
"상환 기한을 늘려달라... 내 시장 바닥을 굴러다니며 익히 듣자 하니, 당신들 가문은 남편을 잃은 불쌍한 며느리가 외간 남자와 배를 맞았다는 더러운 누명을 씌워 한겨울 밤에 맨몸으로 쫓아내고는, 그 며느리가 챙겨 온 어마어마한 지참금마저 모두 가로채 호의호식했다 들었소만. 남의 피눈물을 짜내어 축적한 그 많은 재물을 다 어디다 두고, 어찌 이리 구차하게 상놈의 장사치 발밑에 엎드려 개처럼 목숨을 구걸하는 꼴이 되었소? 양반의 알량한 체면이 참으로 볼만하구려."
그의 폐부를 찌르는 조롱 섞인 말에 시어머니가 흠칫 놀라며 숨을 들이켰다.
"그, 그것이 어찌 된 영문이온지... 대, 대행수 어른께서 어찌 저희 가문의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집안 사정까지 그토록 소상히 아시는지요. 그것은 모두 무지몽매한 것들이 지어낸 헛소문이옵니다!"
"내가 어찌 아느냐고? 하하하! 헛소문이라고?!"
그의 호탕하지만 등골이 서늘해지는 웃음소리가 마당 전체를 무겁게 울렸다. 그는 천천히 마루에서 일어나 천근만근의 위압감을 뿜어내며 흙바닥에 엎드린 그들 앞으로 다가갔다. 비단 신발 코가 시어머니의 눈앞에서 멈춰 섰다.
"자,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자세히 보시오. 핏발 선 당신들의 눈으로 똑똑히 보란 말이오! 아직도 이 얼굴이 기억나지 않소? 안채의 장작을 패고, 당신들이 거드름을 피우며 타던 무거운 가마를 어깨가 짓무르도록 메고 다니던 천한 머슴, 마당쇠 놈이 바로 나요."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진실을 마주한 시숙과 시어머니의 두 눈이 극도의 공포와 경악으로 터질 듯이 확장되었다. 그들의 입이 흉측하게 떡 벌어졌으나, 너무도 큰 충격과 현실 부정에 목구멍이 꽉 막혀 아무런 소리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안면 근육이 마비된 듯 일그러진 시숙이 간신히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마, 마당쇠... 네, 네놈이 어찌... 이 거대한 천하의 청운상단 주인이란 말이냐! 이,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요술이다!"
"이곳의 진짜 주인은 내가 아니오. 나는 그저 주인의 뜻을 따르는 충견일 뿐. 당신들이 그토록 무참하게 짓밟고 시궁창에 버렸던, 내 목숨의 은인이자 이 거대한 상단의 진정한 주인이신 분이 따로 계시지."
그의 서늘한 선고가 끝나기가 무섭게, 굳게 닫혀 있던 대청마루 안채의 묵직한 미닫이문이 스르륵 소리를 내며 좌우로 열렸다. 최고급 붉은 비단이 깔린 마루 위로, 왕실의 여인이나 입을 법한 화려하고 기품 있는 당의를 입고 머리에 눈부신 옥비녀를 꽂은 한 여인이 천천히, 아주 우아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숨이 멎을 듯이 고고한 자태와 온 세상을 얼어붙게 만들 만큼 차가운 눈빛. 3년 전, 무자비한 눈보라 속으로 버려졌던 바로 그 유약했던 과부였다.
"참으로 오랜만이군요, 어머니. 그리고 시숙 어른."
그녀의 서늘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마당에 울려 퍼지자, 귀신을 본 듯한 공포에 사로잡힌 시어머니는 헛바람을 들이켜며 눈이 뒤집힌 채 그대로 흙바닥에 나자빠졌다.
"네, 네년이... 네년이 어떻게 살아있단 말이냐! 한겨울 산속에서 얼어 죽거나 짐승에게 뜯어 먹혀 마땅할 네년이 어떻게... 귀, 귀신이냐, 사람이냐!"
"사람이지요. 당신들의 그 알량하고 추악한 탐욕 덕분에 뼈를 깎는 고통을 씹어 삼키며 지옥의 밑바닥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입니다. 가문의 재산을 독식하려 억울한 누명을 씌워 나를 죽음으로 내몰 때는, 3년 뒤 이런 비참한 몰골로 내 발아래 엎드려 살려달라 빌게 될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하셨겠지요."
그녀는 길게 늘어진 비단 치맛자락을 우아하게 끌며 계단을 내려와 그들 앞에 우뚝 섰다. 그녀의 그림자가 두 사람의 떨리는 몸을 완전히 덮었다.
"당신들이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무리하게 돈을 빌려 쓴 한양의 모든 객주와 전당포 뒷배가 바로 나, 청운상단의 안주인이라는 것을 그 멍청한 머리로 알 리가 없었겠지. 지금 당신들 가문의 대궐 같은 기와집, 옥토가 넘치는 논밭, 선산, 그리고 노비 문서까지. 지금 내 손아귀에 쥐어지지 않은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당신들은 이제 한 뼘의 땅도, 물 한 모금 마실 바가지 하나 없는 완벽하고 처절한 거지 꼴이란 말입니다."
"제, 제수씨! 내가 눈이 멀어 미쳤었네! 모두 저 늙은 어머니가 시킨 짓이었어! 제발, 제발 나를 살려주게! 한 번만, 딱 한 번만 용서해 준다면 평생 제수씨의 종노릇을 하며 은혜를 갚겠네!"
자신의 어미마저 팔아넘기며 시숙이 눈물 콧물을 범벅으로 흘리며 짐승처럼 기어 와 그녀의 비단 치맛자락에 더러운 손을 뻗으려 했다.
그러나 그의 손끝이 치마에 닿기도 전에, 거대한 맹수와 같은 대행수가 벼락같이 발을 날려 시숙의 가슴팍을 무자비하게 걷어찼다.
뼈가 부러지는 듯한 둔탁한 소리와 함께 시숙이 검붉은 피를 토하며 수장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그 더러운 상놈의 손을 마님의 옥체에 뻗느냐. 네놈의 손모가지를 잘라 개의 먹이로 주기 전에 당장 땅에 머리를 처박아라."
그녀는 가슴을 움켜쥐고 고통에 짐승처럼 신음하는 시숙과 넋이 나가 기절하기 직전인 늙은 시어머니를 싸늘하게, 조금의 동정심도 없는 눈으로 내려다보며 마지막 선고를 내렸다.
"용서?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내일 해가 뜨기 전까지 당신들의 그 잘난 안동 김씨 본가에서 짐을 빼서 맨몸으로 나가시오. 만약 내일 아침 관군들이 들이닥쳤을 때 여전히 내 집에 머물러 있다면, 관아에 막대한 채무 불이행과 사기죄로 고발하여 당신들 모자를 평생 소금밭의 관노비로 만들어 뼛골을 빼먹을 테니. 이것이 지옥에서 돌아온 내가 당신들에게 베푸는 처음이자 마지막 자비요."
자신들을 향한 끔찍한 절규와 울부짖음을 마당에 남겨둔 채, 그녀는 단 한 줌의 미련도 없이 몸을 돌려 안채로 향했다. 지난 3년간 하루도 잊지 않았던 복수의 완성은 피 냄새가 날 만큼 지독하게 달콤했고, 옥비녀를 꽂은 그녀의 고고한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 6: 밝혀지는 진짜 계획, 그리고 완벽한 자유
시댁 식구들을 비참한 꼴로 마당에서 내쫓아내고 한양에서 완전히 매장해버린 그날 밤. 청운상단의 가장 깊숙한 안채, 아무도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밀실 안에는 묘하고도 무거운 적막이 부드럽게 흐르고 있었다. 최고급 백자 향로에서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진한 침향의 연기가 방 안을 구름처럼 몽환적으로 채우고 있었다. 낮 동안 그녀를 완벽한 지배자로 만들어주었던 화려한 비단 당의와 무거운 가체, 보석 패물마저 모두 바닥에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그녀는 가벼운 속적삼 하나만 걸친 채 화려한 자개 거울 앞에 고요히 앉아 있었다. 허리까지 길게 늘어뜨린 흑단 같은 머리카락을 참빗으로 빗어내리는 그녀의 뒷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거울 속에 비친 그녀의 얼굴에는 복수를 완성한 자의 후련함과 함께, 묘하게 속내를 짐작할 수 없는 짙고 퇴폐적인 미소가 입가에 맴돌고 있었다.
스르륵,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그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오랜 원수를 갚고 상단의 권력을 완벽하게 공고히 다진 승리의 날이었지만, 웬일인지 그의 굳은 표정은 어딘가 복잡하고 그림자가 져 있었다. 그는 발소리조차 내지 않고 조용히 다가와 그녀의 좁고 가녀린 등 뒤에 섰다. 말없이 손을 뻗어 그녀의 손에서 빗을 건네받은 그는, 칼을 쥐고 장부를 넘기던 굳은살 박인 투박한 손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을 다루듯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빗어내리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숨 막히는 침묵과 머리카락이 스치는 소리만이 방 안을 채웠다.
"부인... 이제 정말로 우리의 복수가,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부인을 옭아맸던 억울한 누명도 벗겨졌고, 그 더러운 자들은 땡전 한 푼 없이 거리의 구걸하는 개자식들로 전락했습니다. 이제... 앞으로 어찌하실 작정이십니까? 부인께서 원하시기만 한다면, 관아에 그들의 악행과 진실을 모두 밝혀 다시 고결한 양반 여인의 신분을 완벽하게 되찾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리된다면... 저는 다시 부인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그림자로 돌아가야겠지요."
그의 목소리 끝에는 숨길 수 없는 체념과 두려움이 짙게 배어 있었다. 그녀가 양반으로 돌아간다면, 천한 머슴 출신인 자신은 감히 그녀의 곁에 남편으로 설 수 없다는 뼈저린 현실의 자각 때문이었다. 거울 너머로 그의 불안하게 흔들리는 검은 눈동자를 가만히 응시하던 그녀는, 이내 어깨를 들썩이며 참았던 가벼운 웃음을 툭 터뜨렸다.
"양반의 신분? 내가 뭣 하러 그 숨 막히고 답답한 위선자들의 굴레 속으로 다시 스스로 걸어 들어간단 말이냐. 그리고... 억울한 누명이라니. 너는 아직도 나를 시댁의 악독함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한 가엾고 순진한 여인으로 알고 있는 것이냐?"
빗질을 하던 그의 큰 손이 허공에서 멈칫 굳어버렸다. 거울 속 그녀의 눈빛이 요염하면서도 얼음장처럼 서늘하게, 기이한 빛을 내뿜으며 빛나고 있었다.
"무... 방금 무슨 말씀을 하신 것인지... 제가 감히 뜻을 헤아리지 못하겠습니다."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려 우뚝 솟은 그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가느다랗고 하얀 손가락이 그의 거칠고 강인한 턱선을 따라 미끄러지듯 유혹적으로 쓰다듬어 올라갔다. 그녀의 손길이 닿은 곳마다 불이 붙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네가 오래전부터 밤낮으로 나를 남몰래 연모하고 있었다는 것을, 내가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 생각했느냐? 마당에서 장작을 팰 때마다 창문 너머로 나를 힐끔거리던 그 끈적한 눈빛, 내 가마를 멜 때 내 치맛자락이 스치기만 해도 터질 듯 붉어지던 그 두꺼운 목덜미. 나는 네가 나를 짐승처럼 원하고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모조리 알고 있었다."
그의 숨이 턱 막혀왔다. 평생 목숨을 걸고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왔던 불경스러운 속마음과 욕망을, 그녀가 이미 처음부터 낱낱이 간파하고 즐기고 있었다는 충격에 그의 동공이 지진이 난 듯 흔들렸다.
"병약하고 무능하기 짝이 없던 내 서방님이 죽고 난 뒤, 시어머니와 시숙 놈이 내 친정이 몰락한 틈을 타 가문의 막대한 재산을 독차지하려 안채에서 작당 모의를 하는 것을, 내가 어찌 눈치채지 못했겠느냐. 그들이 눈에 가시 같은 나를 외간 남자와 내통했다는 더러운 누명을 씌워 내치려 모의할 때... 밤이 깊어 그 사내의 저고리를 몰래 내 방 문지방에 슬쩍 흘려두어 함정을 완성한 것은, 다름 아닌 바로 나였다."
"예...?! 부... 부인께서 스스로 방에 몸을 망칠 증좌를 두셨단 말씀이십니까? 어찌 그런 위험한 짓을..."
"그래야만 했지. 그래야만 그 멍청하고 탐욕스러운 것들이 신이 나서 함정에 빠진 줄도 모르고 나를 서둘러 쫓아낼 것이 아니냐. 내 몸을 샅샅이 뒤져 숨겨둔 재산을 뺏을 생각조차 못 할 만큼 이성을 잃고 서둘러서, 한밤중에 나를 당장 맨몸으로 쫓아내게 만들어야 했지. 그것만이 내가 오랫동안 치맛자락 속에 은밀히 바느질해 숨겨둔 수천 냥의 은화를 온전히 들고 그 지옥 같은 집구석을 빠져나올 유일하고도 완벽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가 불에 달궈진 쇠처럼 끈적하고 치명적으로 달아올랐다. 그녀는 얇은 속적삼의 고름을 스스로 천천히 풀어헤치며, 그대로 그의 넓고 뜨거운 가슴에 뺨을 비비며 얼굴을 묻었다.
"추운 눈보라 속으로 버려진 나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걸고 따라올 거라 확신했던 단 한 사람. 바로 너라는 사내를 평생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완벽한 사냥의 계획이었지. 고고한 양반가 며느리의 거추장스러운 탈을 쓴 채로는, 평생 네 뜨거운 품에 마음껏 안길 수 없었을 테니까. 널 가지기 위해 난 양반이라는 껍데기를 내 손으로 버린 것이다."
그녀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고백은 너무도 충격적이고 파괴적이었다. 지난 3년간 그들이 겪었던 그 모든 비극과 생사를 넘나들던 고난, 뼈가 시리도록 추웠던 눈보라 치던 밤의 필사적인 도피가 모두 이 아름답고도 치밀하며 무서운 여인의 머릿속에서 탄생한 완벽한 연극이었다니. 그녀는 시댁에 당한 나약한 피해자가 아니라, 처음부터 이 모든 잔혹한 판을 짜고 자신마저 장기말로 사용한 거대한 지배자이자 포식자였다.
그러나 척추를 타고 오르는 그 섬뜩한 충격은 이내 머릿속을 하얗게 태워버릴 만큼 거대하고 폭발적인 쾌감과 희열로 돌변했다. 오직 자신이라는 천한 사내 하나를 온전히 소유하기 위해 하늘이 내린 신분마저 스스로 찢어버리고 지옥불에 뛰어든 여인. 세상 천지에 이보다 더 지독하고 광기 어리며, 달콤하게 미친 사랑이 어디 있단 말인가.
"부인... 당신은 참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무서운 여인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완전히 이성을 잃은 굶주린 짐승의 으르렁거림처럼 짐승처럼 낮고 탁해졌다. 그는 더 이상 단 1초의 주저함도 없이 그녀를 가볍게 번쩍 안아 들어, 최고급 명주가 깔린 푹신한 요 위로 거칠게 내던지듯 눕혔다.
"내가 그리도 무서우냐?"
그녀가 속적삼 사이로 눈부신 살결을 드러낸 채 나른하고 치명적으로 미소 지으며 그의 굵은 목에 두 팔을 단단히 감아 당겼다.
"제 육신과 영혼이 남김없이 당신의 그 치밀한 거미줄에 먹혀 뼈조차 남지 않는다 해도 기꺼이 좋습니다."
그의 펄펄 끓는 뜨거운 입술이 그녀의 붉은 입술을 숨을 쉴 틈조차 주지 않고 거칠고 탐욕스럽게 탐했다. 3년 전, 무너져가는 폐사당 바닥에서 얼어붙은 몸을 녹이기 위해 절박하게 나누었던 생존의 온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자신들을 억압하던 모든 원수들을 발밑에 짓밟고 서로를 온전히 소유했다는 완벽하고 오만한 승리감, 그리고 서로의 광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지독한 애욕이 두 사람의 짐승 같은 육체를 빈틈없이 휘감았다. 거추장스러운 양반의 신분도, 세상을 옭아매는 가증스러운 도덕과 윤리도 모두 갈가리 찢어 벗어던진 두 마리의 아름다운 괴물이 서로의 체온과 땀방울 속으로 완벽하게 녹아들었다. 달빛조차 그들의 거침없는 정사에 압도되어 숨을 죽인 고요한 밀실 안에는, 질척하고 농밀하게 살이 부딪히는 소리와 쾌락에 찬 짐승 같은 신음만이 밤이 새도록 끝없이 울려 퍼졌다. 치밀하게 짜인 판 위에서 천하의 부와 자신이 원하는 사내마저 완벽하게 쟁취해 낸 과부와, 기꺼이 그녀의 영원한 충견이자 연인이 되기를 선택한 머슴의 은밀하고도 황홀한 밤이었다. 그 누구도 닿을 수 없는 끝을 알 수 없는 부와 욕망의 정점, 그것이 바로 그들 스스로가 피를 묻혀가며 만들어낸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자유이자 타락한 해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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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빼앗긴 줄 알았던 여인의 치밀한 반전 계획, 그리고 그녀를 향한 한 남자의 맹목적인 사랑! 시댁을 발아래 무릎 꿇린 두 사람의 짜릿한 복수극과 은밀한 로맨스, 어떻게 들으셨나요? 흥미로우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리며, 다음에도 더 아찔하고 재미있는 조선 야담으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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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16:9 비율, 컬러펜슬화, 글씨 없음. 조선시대 배경, 눈 내리는 추운 겨울밤, 화려함이 빛바랜 소복을 입은 아름다운 양반가 과부와 다부진 체격의 듬직한 머슴이 오래된 사당 안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애틋하고 은밀하게 눈을 맞추는 장면. 여자는 쪽진 머리, 남자는 상투 머리에 투박한 옷차림. 두 사람 사이의 묘한 긴장감과 따뜻한 분위기, 한국 전통 목조 건물 내부 배경.
16:9 ratio, color pencil drawing, no text. Joseon dynasty background, a snowy cold winter night, a beautiful noble widow in a slightly faded traditional white mourning hanbok and a sturdy, well-built servant making affectionate and secret eye contact over a campfire inside an old ruined shrine. The woman has traditional braided hair (jjokjin meori) and the man has a topknot with rustic clothing. A subtle tension and warm atmosphere between the two, interior background of a traditional Korean wooden build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