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슴과 과부의 위험한 동거 [어우야담]
머슴과 과부의 위험한 동거 [어우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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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핏기가 가신 하얀 소복, 그리고 그녀를 묵묵히 바라보는 시커먼 그림자. 남편을 여의고 시집의 냉대 속에 갇힌 양반댁 과부와 평생 그녀만을 바라본 충직한 머슴. 결코 닿을 수 없던 신분의 벽은 깊은 밤의 정적 속에서 허물어지고 맙니다. 억압된 조선 시대, 금기를 깬 두 사람의 아찔하고도 치명적인 로맨스! 목숨을 건 이들의 기상천외한 탈출극이 지금 시작됩니다.
※ 1: 시들어가는 꽃과 그를 지키는 그림자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타오르던 석양이 거대한 기와지붕 너머로 서서히 모습을 감추기 시작하면, 안채에는 어김없이 무겁고 서늘한 정적이 짙게 깔려왔습니다. 세상의 모든 생기에서 철저히 소외된 듯한 솟을대문 안쪽의 풍경. 외부의 소음이라고는 가끔 불어오는 바람에 쓸리는 댓잎 소리가 전부인 그 적막한 공간 한가운데, 수분이 다 빠져나가 바싹 말라버린 고목처럼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이 덩그러니 서 있었습니다. 그녀의 나이 이제 고작 스물하나. 세상의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눈에 담고 사랑을 속삭여야 할 찬란한 청춘이었지만, 그녀의 시간은 혼례를 치른 지 불과 석 달 만에 남편이 피를 토하며 쓰러지던 그 참혹한 밤에 영원히 멈추어 버렸습니다. 얼굴조차 제대로 익히지 못했던 지아비의 죽음은 그녀에게 '남편을 잡아먹은 상스러운 년'이라는 잔혹한 주홍글씨를 이마에 새겨놓았고, 그날 이후 그녀의 삶은 빛이 들지 않는 차가운 감옥 그 자체였습니다.
"이 독기 가득한 년아! 네년의 그 흉흉한 팔자가 내 귀한 아들의 명줄을 끊어놓고도, 어찌 이리 낯빛에 핏기가 돈단 말이냐! 당장 사당 마루에 꿇어앉아 밤이 새도록 죽은 지아비의 명복을 빌고 또 빌 것이지, 어딜 감히 고개를 들고 밖을 쏘다녀! 당장 이년의 다리몽둥이를 분질러서라도 사당에 가두지 못할까!"
독사처럼 쏘아붙이는 시어머니의 서릿발 같은 호통이 귓가를 강타할 때마다, 여인은 창백해진 입술을 짓씹으며 속으로 피눈물을 삼켜야만 했습니다. 살아 숨 쉬는 매 순간이 죄악이었고, 밥술을 뜨는 것조차 사치로 여겨지는 지옥 같은 나날들. 외부로의 외출은 엄격히 금지된 채 두꺼운 담장 안에 유폐되었고, 시댁 식구들의 벌레를 보는 듯한 싸늘한 눈초리와 하인들의 은밀한 수군거림은 매일같이 그녀의 가슴에 수십 개의 비수를 꽂아 넣었습니다.
'차라리... 차라리 그날 밤 그이를 따라 내 목숨줄도 함께 끊어졌더라면, 이 모진 수모와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겪지는 않았을 것을... 내 팔자는, 내 운명은 어찌하여 이리도 기구하고 가혹하단 말인가. 신령님이 계시다면 당장이라도 이 숨통을 끊어주시련만...'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흘러내린 눈물이 하얀 볼을 타고 턱 끝에 맺히더니, 이내 서걱거리는 소복의 동정을 처연하게 적셨습니다. 추위인지 서러움인지 모를 감정에 휩싸여 가냘픈 어깨가 파르르 떨리고 있을 무렵, 등 뒤에서 흙바닥을 밟는 묵직하고도 일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마님... 해가 저물어 날이 찹니다. 옥체에 고뿔이라도 드실까 심히 염려되오니, 그만 찬 바람을 피하시어 방으로 드시지요."
투박하고 거칠지만, 그 속에 묘하게 따뜻한 온기가 서려 있는 낮고 깊은 목소리. 이 거대한 양반댁의 온갖 궂은일과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머슴, 돌쇠였습니다. 산처럼 떡 벌어진 넓은 어깨와 태양 아래 그을린 단단한 구릿빛 체구, 그리고 나무둥치를 베어내며 굳은살이 흉터처럼 박인 거친 두 손을 가진 사내. 그는 여인이 새색시의 연지곤지를 찍고 이 집안의 문턱을 넘던 그 첫날부터, 언제나 묵묵히 그녀의 주변을 맴돌며 짙은 그림자처럼 곁을 지켜온 유일한 사내였습니다. 여인이 끝없는 슬픔에 잠겨 며칠을 굶으며 곡기를 끊었을 때는 남몰래 부엌 아궁이 앞에서 밤을 새워 따뜻한 미음을 쑤어 문지방 앞에 조용히 놓아두었고, 뼛속까지 시린 한겨울 땔감이 부족해 그녀의 방바닥이 얼음장처럼 차가울 때는 험한 밤산을 타며 굵은 참나무를 한가득 베어다 아궁이가 펄펄 끓도록 밤새 불을 지펴주던 이였습니다.
여인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사내를 바라보았습니다. 양반과 천민이라는 억겁의 벽 앞에 사내의 시선은 늘 바닥을 향해 떨어져 있었지만, 바지춤을 꽉 움켜쥔 그의 두 주먹에서는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짐승 같은 분노와 깊고 애절한 연민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그것은 한낱 주인을 향한 하인의 충심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도 짙고 농밀한 감정이었습니다. 사내는 자신이 하늘처럼 모시는 이 가엾고도 처연하게 아름다운 여인이, 매일같이 독설에 시달리며 생기를 잃고 시들어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이 제 살갗을 도려내는 것보다 더한 고통이었습니다. 하늘과 땅처럼 아득한 신분의 격차가 그의 입을 틀어막고 눈을 가렸기에 감히 그녀의 옷깃조차 스칠 수 없었지만, 사내의 가슴 속 깊은 심연에서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뜨거운 연모의 불길이 조용히, 그러나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네가... 네깟 놈이 주제넘게 걱정할 일이 아니다. 내 어련히 알아서 들어갈 터이니, 넌 그만 물러가라."
여인은 애써 차갑고 매몰차게 대꾸하며 다시 등을 돌렸지만, 뱉어낸 그녀의 목소리 끝자락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이 넓고 삭막한, 아무도 자신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 끔찍한 집안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안위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이가 오직 저 천하고 천한 머슴뿐이라는 잔인한 현실이 서글프면서도, 동시에 얼어붙은 그녀의 가슴 한구석에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파문과 위로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서둘러 몸을 피해 방으로 들어온 여인은 굳게 닫힌 창호지 문에 어스름하게 비친 사내의 거대한 실루엣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습니다. 사내는 여인의 방에 희미한 호롱불이 켜지고 나서도, 꽤 오랜 시간 동안 마당을 떠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바위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 차가운 초승달 빛이 담벼락을 넘어와, 결코 닿을 수 없는 두 사람의 엇갈린 그림자를 서글프고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습니다.
※ 2: 달빛 아래 허물어진 경계
그로부터 며칠 뒤, 하늘에 커다란 구멍이라도 뚫린 듯 장대비가 미친 듯이 쏟아져 내리는 깊은 밤이었습니다. 천지가 개벽할 듯 번쩍이는 번개와 요란하게 내리치는 천둥소리가 낡은 안채의 창호지를 갈기갈기 찢어발길 듯 흔들어댔습니다. 거센 빗소리에 묻혀 세상의 모든 기척과 소음이 완전히 단절된 것만 같은 지독한 고립감. 홀로 텅 빈 냉골 같은 방에 웅크리고 앉아 두려움에 어깨를 떨던 여인은, 문득 천장의 낡은 틈새로 굵은 빗물이 뚝뚝 떨어져 내려와 방구석의 장판을 흥건하게 적시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당장이라도 방 안이 물바다가 되어 잠길 것만 같은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이렇게 깊고 험악한 밤에 곤히 잠든 다른 하인들을 함부로 깨워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망연자실하여 새어 들어오는 빗물만 바라보며 어쩔 줄 모르던 그때, 방문 밖에서 빗소리를 뚫고 조심스럽고도 묵직한 인기척이 들려왔습니다.
"마님... 빗줄기가 너무 굵고 험하여 안채를 살피러 왔사옵니다. 혹여 방 안에 비가 새는 곳은 없으신지요. 제가 들어가 틈을 막아도 되겠사옵니까."
세차게 쏟아지는 빗물에 온몸이 흠뻑 젖은 사내의 다급한 목소리였습니다. 여인은 화들짝 놀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오르는 강렬한 안도감과 묘한 긴장감을 동시에 느끼며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조심스레 문을 열어젖히자, 하늘에서 쏟아지는 폭우를 온몸으로 맞으며 서 있는 사내의 듬직한 실루엣이 순간적으로 번쩍이는 번개 불빛에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얇은 삼베 적삼이 빗물에 완전히 젖어 그의 피부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고, 그로 인해 사내의 억센 근육과 탄탄하고 넓은 가슴팍, 그리고 꿈틀거리는 핏줄까지 고스란히 비치고 있었습니다.
"저... 저기 방구석 천장에서 물이 자꾸만 새어 들어오고 있다. 내 힘으로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서둘러 들어오거라."
여인의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에 사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방 안으로 성큼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젖은 옷자락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와 함께, 비에 젖은 짙은 흙냄새, 그리고 사내 특유의 짙고 뜨거운 체취가 비좁은 방 안의 공기를 순식간에 가득 채우며 여인의 숨통을 조여왔습니다. 사내는 익숙한 솜씨로 젖은 방바닥을 훔쳐내고, 가지고 온 천과 도구를 이용해 천장의 틈새를 단단히 막아 임시방편으로 비를 차단했습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모든 작업을 끝마친 사내가 공손히 인사를 올리고 돌아서 방을 나가려는 찰나, 귀를 찢을 듯한 요란한 천둥소리와 함께 매서운 돌풍이 문틈을 비집고 들어와 방 안을 밝히던 유일한 촛불을 훅 꺼버리고 말았습니다.
"아앗!"
순식간에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이자 극도의 공포에 질린 여인이 짧은 비명을 지르며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쳤고, 그만 치맛자락에 발이 걸려 중심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사내는 그 순간 짐승 같은 반사신경으로 몸을 날려 바닥으로 넘어지는 여인을 낚아채듯 자신의 품으로 깊숙이 끌어안았습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의 몸이 방바닥 위로 겹쳐지며 쓰러졌습니다. 찰나의 정적. 숨 막힐 듯한 고요 속에서, 오직 밖에서 미친 듯이 몰아치는 거센 빗소리만이 두 사람의 얽힌 몸을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사내의 두껍고 단단한 팔뚝이 여인의 가녀린 허리를 으스러질 듯 꽉 감싸 안고 있었고, 놀란 여인의 가파른 숨결과 달아오른 입김이 사내의 빗물 젖은 뜨거운 목덜미에 고스란히 닿아 퍼졌습니다.
'이러면... 이러면 아니 되는데... 나는 뼈대 있는 양반댁의 수절과부고, 이 자는 내 집안의 천한 머슴이다. 당장 밀어내고 호통을 쳐야 한다...'
머릿속으로는 수백 번, 수천 번 밀어내야 한다고 이성이 소리치고 있었지만, 여인의 몸은 그토록 오랜 세월 갈구하고 메말라 있었던 누군가의 벅찬 체온과 압도적인 힘 앞에 속절없이 녹아내리며 마비되고 있었습니다. 사내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평생을 억눌러왔던 감정, 여인의 한없이 부드럽고 달콤한 살결이 제 품 안에 온전히 들어차는 순간, 그의 이성을 가까스로 붙잡고 있던 썩은 동아줄 같은 인내심이 툭 하고 끊어져 나갔습니다. 사내의 크고 거친, 굳은살이 박인 손이 여인의 파르르 떨리는 둥근 어깨를 부서질 듯 감싸 쥐더니, 이내 거칠면서도 애틋한 손길로 그녀의 젖은 뺨을 천천히 쓸어내렸습니다.
"마님... 이 천한 놈을 당장 관아에 고발하여 제 목숨을 거두어 가신다 하여도, 오늘 밤만큼은... 이 순간만큼은 참을 수가 없습니다. 저를 죽이시려거든 안으신 후에 죽여주시옵소서."
사내의 억눌렸던,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거친 속삭임이 여인의 귓가를 파고드는 순간, 여인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자신도 모르게 사내의 굵은 목에 두 팔을 감아 두르고 말았습니다. 수백 년을 이어온 조선의 엄격한 금기와 신분의 벽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은 너무도 강렬하고 치명적으로 달콤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사내의 거칠고 뜨거운 입술이 여인의 부드러운 입술을 단숨에 집어삼켰습니다. 서투르고 조심스러웠던 찰나의 탐색은 이내 서로를 잡아먹을 듯한 뜨거운 갈망과 원초적인 욕망으로 변해갔고, 사내의 떨리는 손길은 거침없이, 그러나 애타는 몸짓으로 여인의 겹겹이 싸인 소복 고름을 풀어헤치기 시작했습니다.
하얗게 달빛에 드러난 여인의 눈부신 살결 위로, 사내의 단단하고 구릿빛이 도는 짐승 같은 육체가 빈틈없이 밀착되었습니다. 빗물인지 서로의 땀인지 모를 뜨거운 물기가 두 사람의 맞닿은 살갗을 적시며 미끄러졌습니다. 사내의 넓고 탄탄한 가슴에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묻은 여인은, 태어나 스물한 해 동안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폭풍처럼 밀려오는 아득한 쾌락과 짜릿한 관능에 몸부림치며 짐승 같은 교성을 내뱉었습니다. 밖에서 창호지를 찢을 듯 몰아치는 비바람 소리보다 더 거칠게, 숨통을 조이던 양반가의 윤리와 억압은 두 사람의 얽히고설킨 땀 젖은 몸뚱이 아래에서 형체도 없이 으스러지고 있었습니다. 밤이 깊도록, 차가운 냉골이었던 방 안에서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헐떡이는 짐승 같은 숨소리와, 살과 살이 질척하게 부딪히는 농밀한 소리만이 폭우 소리에 섞여 끊임없이 흘러넘쳤습니다.
※ 3: 은밀하고도 달콤한 밀회
그 폭풍 같았던 비 내리는 밤의 정사 이후, 두 사람의 억눌렸던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는 들불처럼 맹렬하게 타올랐습니다. 낮에는 보는 눈이 많아 철저히 냉랭하고 무심한 안채의 마님과, 시선을 바닥에 깐 과묵한 머슴으로 완벽하게 위장했지만, 시댁 식구들의 감시를 피해 스치듯 서로를 바라보는 찰나의 눈빛 속에는 금방이라도 서로를 탐할 듯한 끈적하고 농염한 욕망과 은밀한 신호가 오고 갔습니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거대한 저택에 숨 막히는 적막이 짙게 깔리기 시작하면, 두 사람은 인적이 완전히 끊긴 별당 뒤쪽의 버려진 낡은 헛간으로 스며들어 매일 밤 숨 막히는 밀회를 즐겼습니다.
말라비틀어진 건초 더미가 산처럼 쌓인 어두컴컴하고 습기 찬 헛간. 코를 찌르는 퀴퀴한 흙먼지 냄새와 소똥 냄새, 그리고 짚단 특유의 거친 냄새가 진동하는 그 누추한 곳은, 역설적이게도 두 사람에게만큼은 세상 그 어떤 화려한 궁궐보다 안전하고 달콤한, 오직 둘만의 완벽한 침소가 되었습니다.
"아아... 돌쇠야, 조금만... 조금만 더 깊이 나를 안아다오. 부서져도 좋으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어둠 속에서, 여인이 사내의 넓고 땀방울이 맺힌 등을 가느다란 두 팔로 꽉 끌어안은 채 손톱을 세워 할퀴며 숨 넘어갈 듯 애타게 속삭였습니다. 사내는 대답 대신 짐승처럼 굵은 숨을 토해내며 여인의 가는 허리를 커다란 두 손으로 강하게 틀어쥐고, 미친 듯이 거칠고 파괴적인 몸짓으로 허리를 움직였습니다. 거친 짚단 위로 쓰러져 뒤엉킨 두 사람의 나체는 흘러내리는 땀으로 번들거렸고, 좁고 밀폐된 헛간 안은 두 사람이 내뿜는 후끈한 체열과 짙은 정사의 냄새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날카로운 지푸라기가 부드러운 살갗을 사정없이 찌르고 긁어대는 거친 감촉조차, 그들에게는 아픔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자신들이 살아 숨 쉬고 있으며 미치도록 서로를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강렬한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언제 문이 열리고 발각되어 목이 달아날지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와 피 말리는 긴장감은, 오히려 두 사람의 정사를 더욱 대담하고 폭발적이며 짐승처럼 만들었습니다.
폭풍우가 휩쓸고 간 듯 맹렬했던 행위가 서서히 끝나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사내의 넓은 가슴팍에 쓰러지듯 기댄 여인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사내의 굵고 투박한 손가락을 만지작거렸습니다. 사내는 여인의 이마와 목덜미에 들러붙은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고 다정하게 넘겨주며, 가슴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무겁고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마님... 아니, 부인... 우리가 언제까지 이 좁고 더러운 헛간에서 짐승처럼 숨어 지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꼬리가 길면 결국 밟히는 법. 만에 하나, 정말 만에 하나라도 우리 두 사람의 이 은밀한 사이가 늙은 마님의 귀에 들어가 발각이라도 되는 날에는... 마님께서는 가문의 명예에 씻을 수 없는 먹칠을 한 더러운 화냥년으로 몰려 사약을 들이켜고 참참히 돌아가실 것이고, 천하의 몹쓸 짓을 저지른 저는 그 자리에서 멍석에 말려 몽둥이에 뼈와 살이 으스러져 개죽음을 당할 것입니다."
사내의 뼈저리게 현실적이고 처절한 말에 여인의 맑은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그것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조선의 잔혹한 법도이자,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피비린내 나는 가혹한 현실이었습니다. 양반 과부와 머슴의 사통. 그것은 그 시대가 허락하는 가장 끔찍한 대역죄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매일 밤 사내의 넓은 품이 주는 뜨거운 생명력과, 짐승 같지만 맹목적인 그 지독한 사랑을 뼛속 깊이 알아버린 그녀는, 두 번 다시 핏기 없이 시들어가는 그 차갑고 시체 같은 수절 과부의 삶으로 되돌아갈 자신이 추호도 없었습니다.
'이 사내의 체온 없이는, 이 사내의 뜨거운 숨결 없이는 단 하루도, 아니 단 한 시진도 살아갈 수 없는 미천한 몸이 되어버렸는데... 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같이 죽을지언정 결코 떨어질 수는 없다.'
여인은 어둠 속에서 결연하고도 섬뜩한 빛을 발하는 눈동자로 천천히 고개를 들어 사내의 각진 턱 선을 애틋하게 어루만졌습니다.
"이리 매일 밤 숨을 죽이고 불안에 떨다 발각되어 참혹한 개죽음을 당하나, 시어머니의 그 악독한 구박과 독설 속에 서서히 말라 죽어가나, 내 목숨줄이 끊어지는 것은 매한가지다. 널 잃고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백번 낫다. 내게, 우리 두 사람이 살 수 있는 한 가지 방도가 떠올랐으니... 너는 하늘이 두 쪽 나도 내 말을 따르고 나를 믿어 주겠느냐?"
"마님께서... 부인께서 명하신다면, 제 목숨을 기꺼이 펄펄 끓는 불기둥 속에라도 내던질 것이옵니다. 그 어떤 지옥불이라도 부인과 함께라면 두렵지 않사옵니다."
여인의 붉은 입술 사이로 조심스럽게 흘러나온 이야기는, 평생 흙만 파먹고 살아온 사내의 상상을 초월하는, 너무도 기상천외하고 맹랑하며 소름 끼치는 계획이었습니다. 그것은 환약을 먹고 거짓 죽음을 위장하여 장례를 치른 뒤, 이 지옥 같은 양반댁의 굴레와 신분제의 사슬에서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도망치는 것. 조선의 서슬 퍼런 법도와 가문의 수많은 눈들을 완벽하게 속여 넘겨야만 하는, 목숨을 건 치밀하고도 대담한 연극의 시작이었습니다. 사내는 미세하게 떨리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는 여인의 흔들림 없는 눈동자를 마주 보며, 그녀와 함께라면 낭떠러지 끝이라도 기꺼이 추락하겠다는 굳건하고도 처절한 결의로 그녀의 작고 부드러운 손을 자신의 커다란 두 손으로 부서질 듯 꽉 맞잡았습니다. 어둠이 짙게 깔린 헛간 안, 두 사람의 운명을 송두리째 뒤바꿀 위험천만한 모의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 4: 발각의 위기와 치밀한 계략
가을의 문턱을 넘어선 스산한 바람이 솟을대문을 넘어 안채의 마당을 휩쓸고 지나갈 때면, 앙상해진 나뭇가지들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서로 부딪혔습니다. 매일 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그 습하고 퀴퀴한 헛간에서 짐승처럼 얽히며 나누는 은밀하고도 격정적인 밀회는, 기나긴 세월 동안 바싹 메말라가던 여인의 육체와 영혼에 지울 수 없는 강렬한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습니다. 시체처럼 창백하기만 했던 얇은 뺨에는 어느새 복사꽃이 피어난 듯 농염한 홍조가 돌기 시작했고, 삶의 의욕을 잃고 퀭하게 가라앉아 있던 눈동자는 밤이슬을 머금은 것처럼 아찔하게 반짝였습니다. 사랑받는 여인, 그것도 금지된 욕망을 탐하는 여인 특유의 끈적하고 관능적인 윤기가 하얀 소복 너머로 숨길 수 없이 배어 나오자, 평생을 아랫사람들을 부리며 매서운 눈초리로 집안을 통솔해 온 늙은 시어머니의 독사 같은 눈썰미가 이를 놓칠 리 만무했습니다.
"네년이 겉으로는 밤마다 사당에서 죽은 남편을 위해 기도를 올린다고 떠벌리더니, 어찌 갈수록 얼굴에 살이 오르고 기름진 땟물이 흐르는 것이냐! 남편을 잡아먹은 미망인의 낯짝이 흡사 밤 마실을 나가는 기생년처럼 번들거리는 꼴을, 내 이 두 눈을 뜨고는 도저히 보아 넘길 수가 없구나! 필시 뒤로 더러운 호박씨를 까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안방 마루에 죄인처럼 무릎을 꿇린 여인은, 벼락처럼 쏟아지는 시어머니의 독기 어린 추궁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습니다. 시어머니의 곁에 뱀처럼 똬리를 틀고 앉은 시누이들마저 벌레나 오물을 보듯 여인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비릿한 비웃음을 흘렸습니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고, 심장은 금방이라도 입 밖으로 튀어나올 듯 거칠게 요동쳤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이대로 가다간 덜미가 잡히는 것은 그저 시간문제일 뿐이다. 내 목숨이 끊어지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그이가, 나의 하나뿐인 정인이 모진 고문을 당하고 찢겨 죽는 것만은 결단코 막아야 해. 서둘러야 한다.'
여인은 덜덜 떨리는 두 손으로 치마폭을 꽉 움켜쥐고, 피가 나도록 아랫입술을 짓씹으며 애써 태연한 척 서러운 눈물을 짜냈습니다.
"어머니... 어찌 제게 그리 가혹하고 섭섭한 말씀을 하시옵니까. 밤낮으로 죽은 서방님을 그리며 피눈물을 흘리다 못해 몸져누웠으나, 이제는 밤마다 꿈속에서조차 서방님을 만나 뵙고 있사옵니다. 서방님께서 제 꿈에 나타나 이승의 미련을 버리고 부디 밥술이라도 뜨라며 피눈물로 위로해 주시니, 그 은덕으로 겨우 목숨만 연명하고 있을 뿐이옵니다. 밤새 울다 지쳐 제 몸이 온전치 못하여 붓기가 오르는 것을, 어찌 기생년의 천박함에 비유하시나이까! 차라리 제 목을 쳐주시옵소서!"
여인의 그럴싸한 거짓말과 목놓아 서럽게 쏟아내는 오열에 시어머니는 못마땅한 듯 혀를 쯧쯧 차며 고개를 돌렸습니다. 하지만 늙은 여우 같은 시어머니의 의심이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집안의 하인들을 몰래 불러 모아, 밤마다 안채 주변과 사당 근처를 철저히 감시하라고 엄명을 내렸습니다. 집안의 공기는 숨을 쉬기조차 힘들 만큼 팽팽해졌고, 두 사람은 며칠 동안 눈조차 마주치지 못한 채 애끓는 밤을 지새워야 했습니다.
그 무렵, 사내는 여인이 지시한 대로 깊은 밤 담장을 넘어 저잣거리의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습니다. 그가 찾아간 곳은 관아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독초와 금지된 약재를 거래하는 야바위꾼들의 뒷골목이었습니다. 평생 땅만 파던 머슴에게는 너무도 이질적이고 섬뜩한 곳이었지만, 품에 안았던 여인의 부드러운 살결과 그녀의 결연한 눈동자를 떠올리며 사내는 주저 없이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디뎠습니다. 거금을 쥐여주고 떠돌이 의원에게서 받아낸 것은 작고 검은 환약 두 알. 그것을 품에 넣고 돌아오는 사내의 발걸음은 무거우면서도 미친 듯이 뛰고 있었습니다.
사흘 뒤, 삼엄해진 감시의 눈을 피해 가까스로 헛간 뒤편의 후미진 담벼락 구석에서 마주친 두 사람은 서로의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한 채 짐승처럼 서로를 끌어안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사내의 거친 숨결이 여인의 뺨에 닿자마자, 여인은 미친 듯이 사내의 입술을 찾아 탐했습니다.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죽음을 눈앞에 둔 극도의 긴장감이 뒤섞인 입맞춤은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하고 맹렬했습니다. 사내는 여인의 혀를 깊게 옭아매며 한참을 탐하다가, 이내 여인의 떨리는 어깨를 부여잡고 품 안에서 비단보에 싼 작고 검은 환약을 꺼내어 그녀의 손에 쥐여주었습니다.
"부인... 시장 저잣거리 깊은 곳에서 은밀히 활동하는 의원에게 평생 모은 삯을 모두 주고 구해온 약이옵니다. 이 약을 입에 넣고 삼키면, 반나절 동안은 완전히 숨이 멎고 온몸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굳어 영락없는 송장으로 보인다고 하옵니다. 바늘로 찌르고 불로 지져도 고통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 했습니다. 허나... 하루가 지나면 멈추었던 맥이 기적처럼 다시 돌아올 것이니, 제발, 제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제가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부인을 다시 파낼 것이옵니다."
사내의 목소리는 형편없이 떨리고 있었습니다. 약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여인은 사내의 거친 손바닥 위에 놓인 환약을 조심스레, 그러나 단호하게 집어 들었습니다. 자칫하면 약의 독성을 이기지 못하고 영영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는, 지독한 맹독성 약초를 섞어 만든 위험천만한 물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인의 맑은 눈빛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물러섬도 없었습니다.
"네가 나를 그 캄캄한 땅속에 묻고, 다시 네 손으로 나를 세상 밖으로 파내어 줄 것이니... 나는 그 어떤 지옥의 고통도 두렵지 않다. 내일 새벽, 내 숨이 완전히 멎고 온몸이 굳어지거든, 넌 그저 다른 하인들 틈에 섞여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절대 눈물을 보여서도, 동요해서도 아니 된다."
사내는 여인의 굳은 결의에 찬 창백한 얼굴을 애달프게 쓰다듬으며, 마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그녀의 온기를 영원히 각인시키려는 듯 그녀의 입술을 깊고 진득하게 머금었습니다. 언제 누구에게 들킬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담벼락 밑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타액을 삼키고 혀를 강하게 얽으며 죽음을 불사한 잔혹한 약조를 나누었습니다. 여인은 사내의 단단한 목을 부서질 듯 끌어안으며, 사내의 옷깃을 생명줄처럼 꽉 움켜쥐었습니다. 내일이면 모든 것이 영원한 끝을 맺을 수도, 혹은 끔찍한 굴레를 벗어던진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릴 수도 있는, 잔혹하고도 관능적인 운명의 밤이 숨 막히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 5: 거짓 장례와 기상천외한 탈주
다음 날 새벽, 동이 트기도 전의 푸르스름한 어둠을 찢고 안채에서 귀를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아이고, 마님이... 마님이 숨을 거두셨다! 작은 며느님께서 사당 마루 앞에서 목을 매고 목숨을 끊으셨다!"
기절할 듯 다급하게 외치는 하녀의 목소리에 곤히 잠들어 있던 온 집안이 순식간에 발칵 뒤집혔습니다. 혼비백산한 시어머니와 식구들이 허둥지둥 사당으로 달려갔을 때, 여인은 사당의 육중한 문고리에 하얀 명주 수건을 단단히 걸고 목을 맨 채 바닥에 쓰러져,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습니다. 사실 그녀는 새벽녘 사내가 구해온 검은 환약을 물 한 모금 없이 삼킨 뒤, 몸에 독 기운이 퍼져 마비가 오기 직전 스스로 목을 매는 시늉을 하여 쓰러진 것이었습니다. 여인의 얼굴은 핏기가 완전히 가셔 밀랍 인형처럼 창백했고, 떨리는 손으로 코 밑에 손가락을 대보아도 숨결은커녕 온기조차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황급히 불려 온 의원마저 식은땀을 흘리며 손목의 맥을 짚어보더니, 깊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내저어 여인의 완벽한 사망을 선고했습니다.
"쯧쯧쯧... 지독하고 독한 것. 가문에 해를 끼치느니 기어이 남편을 따라가 열녀비라도 세워달라는 심산이었더냐. 허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의 장례를 크게 치르는 것은 양반가의 법도에 어긋나는 일. 안 그래도 뒤가 구린 년이었으니 차라리 집안의 화근을 덜어 잘 된 일이다. 날이 더우니 시신이 썩어 문드러지기 전에 당장 거적에 말아 관에 뉘고, 선산 구석진 곳에 대충 묻어버려라. 상복을 입을 필요도 없다!"
시어머니는 어린 며느리의 끔찍한 죽음 앞에서도 눈물 한 방울은커녕, 오히려 안도하는 듯한 비정한 표정으로 차갑게 장례를 지시했습니다. 양반댁의 체면상 흉사로 자결한 며느리의 장례를 길게 끌 수 없다는 핑계였습니다. 사내는 다른 머슴들과 함께 여인의 가벼운 시신을 거칠게 다루며 거적에 말아 싼 뒤 얇은 관에 뉘일 때,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오열이 터져 나오는 것을 참기 위해 자신의 입술을 짓씹어 시뻘건 피를 흘려야만 했습니다. 차갑게 굳어버린, 마치 정말로 이승의 사람이 아닌 듯한 그녀의 뺨을 스칠 때마다 미칠 듯한 두려움과 공포가 사내의 온몸을 덮쳐왔습니다. '혹시라도 약이 과하여 정말 영영 깨어나지 못하시는 것은 아닐까.' 미칠 듯한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사내는 이를 악물고 눈물을 삼키며 다른 이들보다 앞장서서 무덤을 팔 구덩이를 미친 듯이 깊고 빠르게 파 내려갔습니다.
마침내 짧고 초라한 장례가 끝나고, 해가 완전히 저물어 짙은 어둠과 스산한 바람만이 선산의 묘지를 무겁게 덮었을 때였습니다. 사내는 몸을 숨기고 있다가 곡괭이 하나만을 챙겨 들고 짐승처럼 산속을 뛰어올랐습니다. 칠흑 같은 산길을 오르며 나뭇가지에 얼굴이 긁히고 넘어져 무릎이 깨져도 고통을 느낄 새가 없었습니다. 채 굳지도 않은 묘지에 도착한 사내는 괭이를 내던지고 갓 덮은 축축한 흙을 맨손으로 미친 듯이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돌덩이와 나무뿌리에 손톱이 빠지고 열 손가락에서 붉은 피가 철철 배어 나왔지만, 사내의 손놀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제발... 제발 숨이 붙어 살아만 계셔 주십시오. 이대로 저만 덩그러니 남겨두고 가시면 아니 됩니다. 제발!'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손가락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 속에서도 사내는 짐승처럼 흙을 파냈습니다. 마침내 얇은 나무 관뚜껑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흙투성이가 된 뚜껑을 힘껏 열어젖힌 순간, 사내는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에 숨을 멈추었습니다. 구름 사이로 창백하게 쏟아지는 달빛 아래, 관 속에 누워있는 여인은 여전히 미동조차 없이 굳어 있었습니다. 사내는 덜덜 떨리는 피투성이 손으로 여인의 차가운 몸을 안아 올렸습니다. 얼음덩어리 같은 피부, 아무런 기척 없는 몸뚱이. 절망의 비명이 사내의 목구멍을 찢고 터져 나오려던 바로 그 찰나였습니다.
"콜록... 으윽... 하아..."
아주 미세하고 가느다란 기침 소리와 함께, 죽은 듯 멈춰있던 여인의 가슴이 기적처럼 크게 한 번 부풀어 올랐습니다. 파랗게 질려 굳어있던 입술 사이로 이승의 뜨거운 숨결이 터져 나왔고, 굳게 닫혀있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천천히, 아주 천천히 열리며 사내의 얼굴을 담아냈습니다.
"부인...! 살아계셨군요... 마침내 살아 돌아오셨어!"
사내는 억눌렸던 짐승의 울음을 터뜨리며 여인을 자신의 넓은 품에 부서질 듯 꽉 끌어안았습니다. 죽음의 문턱을 헤매다 돌아온 여인 역시 아직 마비가 덜 풀려 덜덜 떨리는 가녀린 팔을 힘겹게 들어 올려 사내의 땀 젖은 등을 단단히 감싸 안았습니다.
"네 품이... 어둠 속에서도 네 품이 이리도 뜨거운 것을... 내 어찌 널 두고 저승으로 갈 수 있겠느냐..."
죽음이라는 가장 거대한 공포의 문턱을 함께 넘어온 두 사람은, 이곳이 음산한 무덤가라는 사실도, 옷이 흙투성이라는 사실도 완전히 잊은 채 서로의 얼굴에 미친 듯이 짐승처럼 입을 맞추었습니다. 피와 흙으로 범벅이 된 사내의 거친 입술이 여인의 눈물 젖은 뺨과 창백한 목덜미를 거칠게 탐했고, 여인은 사내의 옷깃을 생명줄처럼 움켜쥐며 그 뜨거운 열기와 생명력을 온몸으로 빨아들이듯 받아들였습니다. 짙은 흙냄새와 죽음의 서늘한 공기가 맴도는 열린 관 옆에서, 엉망으로 뒤엉킨 두 사람은 서로의 체온과 미친 듯이 뛰는 심장 박동을 통해, 억압받던 과거로부터의 완벽한 자유와 두 사람이 온전히 살아있음을 뼛속 깊이 각인하고 있었습니다.
※ 6: 원앙처럼 백년해로
그 처절하고 기상천외했던 탈출의 밤으로부터 어느덧 삼 년이라는 평화로운 세월이 훌쩍 흘렀습니다. 서슬 퍼런 양반들의 세력이 닿지 않는 조선의 남쪽 끝자락, 푸른 파도 소리가 아침을 깨우는 작고 한적한 해안가 촌락에는 금실이 좋기로 온 마을에 소문이 자자한 젊은 부부가 터를 잡고 살고 있었습니다.
"서방님, 뙤약볕에 땀이 비 오듯 쏟아집니다. 그만 허리를 펴시고 시원한 막걸리에 새참부터 드시고 하시지요."
새하얀 수건을 머리에 곱게 두른 여인이 커다란 대바구니를 이고 푸른 밭고랑 사이로 사뿐사뿐 걸어왔습니다. 한때 숨 막히는 양반댁 안채에 갇혀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시체처럼 시들어 가던 양반 과부의 모습은 이제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남해의 따가운 햇볕에 기분 좋게 그을린 건강한 구릿빛 피부와 흙일로 조금은 거칠어진 손끝, 그리고 소박한 무명 치마를 허리춤에 질끈 묶은 모습은 영락없는 평범한 촌부였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환하고 생기 넘치는 미소가 쉴 새 없이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묵묵히 밭을 매던 사내가 여인의 목소리에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흙 묻은 굵은 손을 바지춤에 툭툭 털고 성큼성큼 다가왔습니다. 사내의 어깨는 과거 머슴 시절보다 더욱 산처럼 넓고 단단해져 있었고, 그의 눈빛에는 늘 여인을 향한 깊고 다정한 애정이 뚝뚝 묻어났습니다.
"부인이 이리 고운 얼굴로 땀을 닦아주며 새참을 내어오니, 내 어찌 힘이 솟지 않을 수 있겠소. 당장이라도 이 밭을 천 평쯤은 거뜬히 더 갈아엎을 수 있을 것 같소."
사내는 주위를 한 번 쓱 살피더니, 여인이 바구니를 내려놓는 틈을 타 그녀의 가는 허리를 덥석 끌어안고 땀에 젖은 그녀의 뺨에 기습적으로 쪽 하고 소리 나게 입을 맞췄습니다.
"아앗, 참으로 주책이십니다! 남들이 지나가다 보면 어쩌려고 이리 대낮부터 실없는 장난을 치십니까."
여인이 얼굴을 붉히며 사내의 단단한 가슴을 가볍게 찰싹 내리쳤지만, 그녀의 눈가에는 숨길 수 없는 사랑스러움과 충만한 행복감이 듬뿍 묻어났습니다. 태생부터 달랐던 양반과 머슴이라는 끔찍했던 신분의 굴레도, 죽음보다 차갑고 잔혹했던 시댁의 속박과 억압도 이제는 아주 아득하고 먼 전생의 일처럼 희미해졌습니다. 파도 소리만이 들려오는 이 멀고 먼 타향에서, 그들은 그저 서로의 숨결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서로를 끔찍이도 아끼고 사랑하는 평범한 사내와 여인일 뿐이었습니다.
어느덧 해가 지고 바닷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는 밤이 이슥해지자, 소박한 초가집 안방에는 희미하고 따뜻한 호롱불만이 방 안을 아늑하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고된 농사일로 지친 몸을 깨끗하게 씻고 정갈한 요 위에 나란히 누운 두 사람. 사내의 두껍고 믿음직한 팔베개를 베고 누운 여인이 사내의 흉터투성이인 단단한 가슴팍을 부드러운 손길로 천천히 쓸어내렸습니다. 과거 좁고 더러웠던 헛간에서의 밀회처럼, 언제 들킬지 몰라 숨죽이며 쫓기듯 정을 통하던 그 지독한 불안감과 공포는 이제 단 한 줌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들의 밤은 고요하고 평온했으며, 밤새도록 온전히 서로의 체온과 숨결만을 음미할 수 있는 완벽한 자유와 평화로움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이렇게... 쫓기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당신 품에 온전히 안겨 잠드는 매일 밤이... 제게는 가끔 너무도 과분하여 꿈결같이 느껴집니다."
여인의 나지막하고 애틋한 속삭임에, 사내가 여인의 부드러운 몸을 자신의 넓은 품 쪽으로 깊숙이 끌어당겼습니다. 사내의 커다랗고 거친 손이 여인의 소박한 무명 저고리 고름을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고도 정성스러운 손길로 풀어 내렸습니다.
"이것이 진정 꿈이라면, 내 평생 무슨 짓을 해서라도 부인이 이 꿈에서 영원히 깨지 않도록 당신을 안고 지킬 것이오."
사내의 짙고 열정적인 목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입술이 어김없이 뜨겁게 맞닿았습니다. 쫓기듯 급박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급할 것 하나 없이 서로의 달콤한 살결과 체취를 깊이 음미하는 느릿하고도 지극히 관능적인 손길이 이어졌습니다. 사내의 뜨거운 입술이 여인의 하얀 목덜미를 지나 둥글고 매끄러운 어깨선을 따라 진득하게 내려가자, 여인의 붉은 입술 사이로는 달콤하고 나른한, 억누를 필요 없는 교성이 방 안을 가득 채우며 흘러나왔습니다. 낡은 요 위에서 뱀처럼 얽힌 두 사람의 알몸은 창호지를 뚫고 들어온 은은한 달빛을 받아 눈부시게 아름다운 곡선을 그려냈습니다. 하늘이 내린 신분의 벽을 산산이 부수고, 끔찍한 죽음마저 완벽하게 기만하며 목숨을 걸고 쟁취해 낸 기적 같은 사랑. 지난날 억눌리고 찢겼던 서로의 상처를 따뜻한 입술로 치유하듯, 두 사람은 밤이 새도록, 그리고 달이 지도록 서로를 뜨겁게 안고 탐하며, 한 쌍의 아름다운 원앙처럼 영원히 변치 않을 백년해로의 밤을 엮어가고 있었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신분의 벽을 넘어 뜨거운 사랑을 확인한 두 사람, 과연 이들의 기상천외한 탈출 계획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억압된 시대를 조롱하듯 자유를 찾아 떠난 머슴과 과부의 뒷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구독과 좋아요 꾹 눌러주시고 다음 화를 기대해 주세요! 여러분의 댓글은 더 재미있는 조선 로맨스를 만드는 데 큰 힘이 됩니다. 그럼 다음 이야기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