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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밤, 너의 전부는 내 것이다 (청구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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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3년 전, "가난한 선비의 풋사랑은 사양하겠으니, 당장 내일의 쌀이나 걱정하시지요."라며 그를 처참히 짓밟고 버린 송도 제일의 명기(名妓) 설희. 선비 명진은 쏟아지는 빗속에서 피눈물을 삼키며 대과에 급제,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마침내 붉은 관복을 입고 그녀 앞에 다시 선 그날 밤. "오늘 밤, 너의 전부는 내 것이다." 지독한 복수심으로 그녀의 저고리 고름을 거칠게 찢어내듯 푸는 순간, 그의 시선을 멈추게 한 것은 그녀의 몸에 새겨진 3년 묵은 충격적인 상흔과 눈물이었다. 애증으로 얽힌 하룻밤, 붉은 장막 속에서 숨겨졌던 진실이 밝혀진다.

    ※ 1: 붉은 달빛 아래 맺어진 시(詩)와 연(緣)

    조선시대, 수많은 상단과 인파가 오가며 밤낮없이 번화하던 송도의 거리는 해가 지면 더욱 짙은 향기를 뿜어냈다. 그중에서도 붉은 등불이 밤새 꺼지지 않는 기방 골목은 사내들의 은밀한 욕망과 헛된 꿈이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화려한 기방들 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치는 '청풍각(淸風閣)'의 가장 깊숙한 별채에는 '설희'라는 이름의 기생이 머물고 있었다. 그녀는 그저 곱게 분단장을 한 얼굴로 사내들의 혼을 빼놓는 흔한 여인이 아니었다. 사서삼경을 줄줄 외는 것은 물론이요, 붓을 들면 당대의 명필조차 감탄할 시를 지어냈고, 그녀의 가녀린 손끝에서 튕겨 나오는 거문고 소리는 듣는 이의 애간장을 녹이고 혼을 빼놓을 정도로 기가 막혔다. 그야말로 웬만한 사대부 양반들은 그녀의 그림자조차 밟지 못할 만큼 콧대가 높았다. 설희의 아름다움은 화려한 비단옷이나 번지르르한 장신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한겨울 눈보라 속에서도 꼿꼿하게 피어나는 한 떨기 붉은 동백꽃과도 같은 얼음장 같은 고고함에 있었다.

    그녀의 치마폭에 한 번 안겨보겠다며 수많은 권력가와 부호들이 집 한 채 값을 거뜬히 들고 줄을 섰다. 어느 날, 기세 등등한 한 판서가 그녀의 거문고 소리를 독점하겠다며 그녀의 방에 황금 송아지를 떡하니 들여놓았다. 하지만 설희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서늘한 목소리로 "저의 거문고는 시정잡배의 황금 소리가 아닌, 고고한 달빛 소리만을 아옵니다."라며 '금(金)' 자가 들어간 조롱 섞인 시를 읊어 판서의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게 만들었다. 또 어느 거상은 그녀의 고운 손목 한 번 잡아보려 수백 냥의 은덩이를 내밀었으나, 설희는 그 자리에서 그 돈을 가난한 백성들에게 모조리 뿌려버리고는 "저는 천한 기생의 붉은 치마를 입었을지언정, 돈에 팔려 다니는 노비는 아니옵니다."라며 거상의 뺨을 치듯 매섭게 쏘아붙였다.

    그렇게 남 사내들의 애를 태우며 '얼음꽃'이라 불리던 설희에게 묘하게도 어울리지 않는 불청객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송도 외곽 낡은 초가집에 사는 찢어지게 가난한 선비, '이명진'이었다. 그는 뼈대 있는 가문에서 대대로 물려받은 명석한 두뇌와 꼿꼿한 선비의 기개가 있었지만, 현실은 낡아빠진 서책 몇 권과 사계절 내내 입어 색이 바랜 홑겹 도포 한 벌이 전 재산인 빈털터리였다. 그의 방에는 붓이 닳아 몽당붓이 되어도 먹물이 묻은 손을 씻을 맑은 물조차 귀했고, 당장 내일 솥에 끓일 쌀 한 줌이 없어 냉수로 끼니를 때우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그런 가난뱅이 선비가 어찌 감히 송도 제일의 기생 설희의 문턱을 넘을 수 있었을까. 명진이 그녀에게 바친 것은 차가운 황금이나 번쩍이는 비단이 아니라, 자신의 뜨거운 피와 눈물로 적어 내린 '시(詩)'였다. 그는 매일 밤 청풍각의 높은 담장 너머로 흘러나오는 설희의 애절한 거문고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달빛 아래에서 자신의 절절한 마음을 시로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는 모두가 잠든 깊은 밤, 몰래 그녀의 방 창틈으로 그 종이를 밀어 넣곤 했다. 처음에는 그저 버려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달 밝은 밤, 그가 조심스레 시를 밀어 넣고 돌아서려던 찰나, 창문이 스르르 열리며 옅은 매화향과 함께 설희가 그를 불러 세웠다.

    "오늘 밤은 달이 유난히도 밝아 시상이 떠올랐을 뿐입니다."
    변명하듯 읊조리는 명진에게 설희는 고운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달이 밝은 것이 아니라, 선비님의 마음이 맑고 밝으신 게지요."

    다른 기생들은 흙먼지 묻은 도포 자락을 보며 가난뱅이 선비라 조롱하고 소금을 뿌려 쫓아내려 했지만, 설희만은 달랐다. 그녀는 명진의 투박한 종이 위에 적힌 시구 속에서, 세속에 물들지 않은 그의 고고한 영혼과 훗날 세상을 뒤흔들 빛나는 재주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다른 사내들이 욕정으로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자신의 '몸'만을 탐하려 들 때, 명진은 오직 진심이 담긴 시로써 외롭고 지친 그녀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던 것이다.

    설희는 밤이 이슥해지면 다른 이들 몰래 명진을 뒷문으로 들여 조촐하지만 정갈한 술상을 내어주곤 했다. 행수 기생 몰래 빼돌린 달콤한 약과와 추운 밤 얼어붙은 몸을 녹여줄 뜨끈한 국밥을 그의 앞에 밀어주며, 그녀는 명진의 시를 읽고 또 읽으며 밤을 지새웠다.
    "이것은 기방의 술값이 아니라, 선비님께서 주신 시 값의 보잘것없는 답례이옵니다. 부디 끼니를 거르지 마시고, 더 좋은 글을 써 주시옵소서."

    명진에게 그 은밀하고도 다정한 시간은 마치 천상계의 꿈만 같았다. 자신처럼 가진 것 없는 사내의 글을 유일하게 알아주는 여인. 이 차갑고 매정한 세상에서 자신을 그렇게 깊고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봐 주는 유일한 사람. 그의 텅 빈 가슴속에 걷잡을 수 없는 붉은 연모의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이 신분의 벽을 넘보는, 결국 둘 모두를 파멸로 이끌지도 모르는 '위험한 사랑'의 씨앗인 줄도 모른 채. 명진은 낮이나 밤이나 책을 펴도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자신이 수십 번 통독하던 성현의 경전보다 설희의 맑은 눈동자 속에서 더 깊은 우주의 이치를 발견하는 듯했다. 학문은 점차 뒷전으로 밀려났고, 그의 머릿속은 오직 그녀, '나의 설희'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올랐다.

    ※ 2: 비수에 찔린 사랑과 산산조각 난 옥가락지

    사랑이라는 지독한 열병은 명진의 차가웠던 이성을 마비시켜 버렸다. 그는 자신이 당장 내일 굶어 죽을지도 모르는 가난한 선비라는 비참한 현실도 잊고, 그녀가 결코 사대부의 정실이 될 수 없는 기생이라는 신분도 까마득히 잊은 채 위험하고 달콤한 환상에 빠져들었다.
    '그래, 그녀의 그 따뜻한 손을 잡고 이 번잡한 송도를 떠나자. 인적이 드문 산골짜기 작은 초가집이라도 좋다. 그곳에서 밭을 일구고 밤에는 서로 마주 앉아 시를 읊으며 살면 그것이 바로 무릉도원이 아니겠는가. 내 학문과 재주, 그리고 그녀의 지혜로움이라면 어찌 입에 풀칠 하나 못하겠는가.'

    명진은 자신의 그런 순진무구한 계획이 얼마나 어설프고 철없는 생각인지 알지 못했다. 그는 그저 설희가 동정과 연민, 혹은 재주를 아끼는 마음으로 베풀어준 맑은 '호의'를, 자신과 평생을 함께하겠다는 맹세의 '징표'로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뚫고 청풍각 담장 밖을 서성이던 명진은 참혹한 광경을 목격하고 만다. 설희가 송도에서 가장 악명 높고 탐욕스러운 고관대작의 거친 술자리에 불려 갔다가, 비단옷이 반쯤 찢긴 채 억지로 취해 비틀거리며 돌아오는 모습이었다. 빗물에 젖은 그녀의 뺨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초점 잃은 눈동자에서는 소리 없는 눈물이 비에 섞여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처연하고도 모욕적인 모습이 명진의 가슴 속에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소유욕의 불길을 당겼다.
    '내가 저 가여운 여인을 이 썩어빠진 수렁에서 구해야만 한다. 당장 오늘 밤 그곳을 벗어나게 하리라.'

    그길로 명진은 집으로 달려가 낡은 궤짝 밑바닥을 미친 듯이 뒤졌다. 그리고 자신의 전 재산이자 어머니가 남겨주신 유일한 유품인, 빛바랜 작은 옥가락지 하나를 조심스레 품에 품고 다시 청풍각으로 내달렸다. 그는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건 마음을 고백하며, 당장 이 밤에 함께 도망치자고 매달릴 작정이었다. 빗물에 흠뻑 젖은 생쥐 꼴을 하고서 설희의 별채 방 문 앞에 섰을 때, 방 안에서는 평소와 달리 뚝뚝 끊어지며 흐느끼는 듯한 기괴하고 불안한 거문고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 소리가 마치 불길한 파국을 예고하는 듯하여 명진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설희야, 나 명진일세. 문을 열어 다오."
    잠시 적막이 흐른 뒤, 방 안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얼음물에 담근 듯 차갑고 건조했다.
    "들어오시지요."

    명진이 떨리는 손으로 미닫이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설희의 손끝에서 거문고 줄이 '홱'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끊어져 버렸다. '쨍' 하고 귓가를 찢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좁은 방 안을 소름 끼치게 울렸다. 설희는 방구석에 시선을 둔 채 명진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선비님. 뜬구름 잡는 허망한 소리는 이제 그만 거두어 주시지요."
    "설, 설희야...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내가 오늘 자네를 데리고..."
    명진이 당황하여 말을 더듬으며 다가가려 하자, 설희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서늘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저는 이 송도 바닥에서 제일가는 기생, 청풍각의 설희입니다."

    그녀의 얼굴은 촛불 아래서 숨이 멎을 듯 아름다웠지만, 마치 차가운 빙옥(氷玉)으로 조각해 놓은 듯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평소 그를 다정하게 감싸주던 맑은 눈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오직 노골적인 경멸과 차가운 냉소만이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었다.

    "저를 하루 품는 하룻밤의 값은 천 금이옵니다. 선비님께서는 대체 저에게 무엇을 주실 수 있습니까? 밥술도 떠먹여 주지 못하는 그 쓸모없는 시 나부랭이 말고 말입니다."
    "설희야...!"
    명진은 거대한 쇠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착각도 유분수시지요."
    설희가 한 걸음 다가와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비수 같은 말을 내뱉었다. 그녀의 시선은 빗물에 젖은 명진의 얇은 도포 자락 사이로 볼품없이 튀어나온 옥가락지의 둥근 윤곽에 잠시 머물렀다. 그 순진하고 처절한 마음이 그녀의 오장육부를 갈기갈기 찢어놓는 듯 아팠지만,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고 더욱 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는 권력으로 세상을 호령하는 사내, 곳간에 은덩이가 썩어나는 부유한 사내가 좋습니다. 아까 보시지 않았습니까? 그 고관대작 나리 말입니다. 그분은 저에게 당장 최고급 비단옷과 보석을 안겨 주셨습니다. 선비님은 제게 무엇을 주실 수 있으신지요? 당장 내일 아침 솥에 불을 지필 쌀 한 줌조차 걱정해야 하는 가난한 선비의 찌질한 풋사랑은 이제 사양하겠습니다. 이 화려한 기방에 어울리는 재물이나 권력을 가져오지 못하신다면, 두 번 다시 제 방 문턱을 넘지 마십시오."

    그녀의 서늘한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날 선 비수가 되어 명진의 심장에 깊숙이, 그리고 잔인하게 박혔다.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듯한 고통 속에서, 명진은 품 속에서 애지중지 품어온 옥가락지를 끝내 꺼내지도 못한 채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자신의 순수했던 사랑, 피를 토하듯 써 내려간 시, 자신의 존재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더러운 오물처럼 부정당했다. 그녀가 추운 밤 자신에게 건네주었던 따뜻한 국밥과 달콤한 미소는 그저 '동정'이자 기생 특유의 '교태'에 불과했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내가... 내가 단단히 미쳤었구나. 내가 눈이 멀어 너를 잘못 보았어! 너 또한 결국 돈과 권력에 몸을 파는 속물 기생에 불과했구나!"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치밀어 오르는 피눈물을 삼키며 방을 뛰쳐나왔다. 그가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진흙탕을 밟고 기방을 빠져나가는 동안, 하늘에서는 그의 마음을 대변하듯 살을 에는 차가운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명진의 발소리가 빗소리에 묻혀 완전히 사라졌을 때, 꼿꼿하게 서 있던 설희는 벼락을 맞은 고목처럼 그 자리에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방 안에서, 그녀의 하얀 손은 조금 전 자신이 억지로 끊어버린 날카로운 거문고 줄을 핏방울이 맺히도록 꽉 움켜쥔 채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가슴을 쥐어뜯으며 소리 없는 오열을 토해내던 그녀의 입술 사이로 애끓는 기도가 새어 나왔다.
    "부디... 부디 이 모진 년을 평생 원망하시어, 뼈를 깎는 고통으로 대업을 이루십시오... 서방님..."

    ※ 3: 피눈물로 연마한 3년의 복수심

    그날 밤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를 맞으며, 정 많고 시를 사랑하던 순진한 청년 이명진은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가슴 속에 천년 묵은 얼음보다 더 차갑고 지독한 독기(毒氣)만을 품은 야차 같은 사내가 어둠 속에서 태어났다. 그는 송도를 벗어나는 산비탈 길목에서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밤새도록 눈물을 쏟아냈다.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끈적한 물기가 차가운 빗물인지, 심장이 찢어지며 흘리는 피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그의 꽉 쥔 주먹 안에는, 차마 설희의 앞에서 꺼내 보지도 못했던 어머니의 옥가락지가 마치 심장을 찌르는 차가운 쇠붙이처럼 날카롭게 쥐어져 있었다. 자신의 순결한 사랑이 한낱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비참하게 짓밟히고 조롱당했다는 사실에 숨이 막힐 듯 절망했다.

    다음 날 아침, 핏발 선 눈으로 밝아오는 해를 바라보며 명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그의 몸속에 남아있던 모든 눈물과 온기는 밤새 뜨거운 증오와 뼈에 사무치는 복수심으로 바싹 말라붙어 버렸다. 그는 손바닥에 피가 맺히도록 쥐고 있던 옥가락지를 펼쳐보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영원한 사랑의 징표라 믿었던 그것은, 이제 평생 지울 수 없는 치욕과 모욕의 상징으로 전락했다. 그는 그것을 깊은 계곡물에 미련 없이 던져버리려다 이내 손을 거두고, 자신의 가슴팍 가장 깊숙한 안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이 치욕의 순간을 죽어서도 잊지 않겠다.'

    '당장 내일 쌀 걱정이나 하는 가난한 선비.' 설희가 경멸에 찬 눈초리로 내뱉었던 그 잔인한 음성이 귓가를 맴돌며 그의 뼛속 깊은 곳까지 선명하게 새겨졌다.
    '권력. 그리고 부.' 명진은 과거 자신이 그토록 속물적이라며 경멸하고 멀리했던 그 두 가지를, 기어이 내 손아귀에 쥐고야 말겠다고 독하게 맹세했다. 설희, 그녀를 가장 높은 곳에서 철저하게 짓밟아 무너뜨리기 위해. 아니, 그녀가 그토록 갈망했던 그 '권력과 재물을 쥔 사내'가 되어 보란 듯이 그녀 앞에 다시 서기 위해 그는 인간이기를 포기했다. 훗날 천하의 권력을 쥐고 그녀를 돈으로 사서 똑같은 굴욕감을 되갚아주리라. 그녀가 땅바닥을 기며 자신을 갈망하게 만들고, 얼굴에 차가운 은화 주머니를 던져주며 똑같이 비웃어주리라 다짐했다.

    그날로 명진은 초가집을 불태우듯 떠나 인적이 끊긴 첩첩산중의 버려진 암자로 숨어들었다. 그는 부서진 암자 문 앞에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피로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네 글자를 섬뜩하게 써 붙였다. 한때 달빛 아래에서 사랑의 시를 노래하던 부드러운 붓은 미련 없이 두 동강 내어 아궁이에 던져버렸고, 오직 세상을 통치할 '경국대전'과 적을 멸할 '병법서'만을 미친 듯이 파고들었다. 꽃내음 나는 사랑의 언어는 버리고, 피비린내 나는 권력의 언어를 택한 것이다.

    그는 잠이라는 생리적 욕구조차 사치라 여기며 사투를 벌였다. 한겨울에도 살얼음이 낀 차가운 계곡물에 머리를 박아 정신을 차렸고, 쏟아지는 졸음을 쫓기 위해 끝이 날카로운 송곳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무자비하게 찔러가며 서책을 눈에 새겼다. 허벅지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려 도포 자락을 적셔도, 그 육체적 고통은 그날 밤 가슴속에 박힌 상처의 끔찍한 고통에 비하면 그저 모기 물린 자국에 불과했다. 거친 산나물과 이슬로 연명하며 그의 육신은 앙상하게 말라갔지만, 그의 정신과 눈빛만큼은 시퍼렇게 날이 선 명검처럼 날카롭고 무서워졌다.

    가끔 칠흑 같은 밤이 찾아와 극도의 외로움에 정신이 아득해질 때면, 그는 미친 사람처럼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차가운 옥가락지를 꺼내 만지작거렸다. 손끝에 닿는 그 서늘한 감촉이 그의 해이해진 정신에 채찍질을 가했다. 눈을 감으면 어김없이 설희의 그 아름답고도 잔인했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을 벌레 보듯 경멸하던 그 싸늘한 눈동자. 그리고 지금쯤 자신이 아닌 돈 많고 배부른 늙은 권력가의 품에 안겨 요염하게 웃음 짓고 있을 그녀의 모습. 그 끔찍한 상상이 기폭제가 되어 그의 온몸의 피를 거꾸로 솟구치게 만들었고, 그의 정신을 짐승처럼 또렷하게 번쩍 뜨이게 했다.
    "설희야, 기다려라. 내 반드시 네년의 오만한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마. 네가 그토록 원하던, 하늘을 나는 권력을 쥔 모습으로 네 앞에 설 것이다."

    그렇게 지옥 같은 3년, 피눈물을 삼키며 뼈를 깎아낸 3년의 세월이 흘렀다. 한때 송도의 기방 담장 너머로 수줍게 시를 건네던 꽃송이 같던 순진한 선비의 얼굴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 자리에는 거뭇한 수염과, 세상의 모든 기만을 꿰뚫어 볼 듯 시퍼렇게 번뜩이는 매서운 눈빛을 가진 차가운 권력자의 얼굴이 자리 잡았다. 붓을 부드럽게 쥐던 하얀 손은 굳은살이 박이고 흉터가 가득한 거친 손으로 변했다. 그의 글씨체 역시 더 이상 봄바람처럼 부드럽지 않았다. 그의 답안지는 나라의 부패를 도려내는 날카로운 칼날이자, 조정을 뒤흔들 거대한 책략의 정수였다.

    마침내 대과(大科)를 치르는 날, 산에서 내려온 명진이 써 내려간 답안은 단순한 명문장이 아니라 기울어가는 나라를 부강하게 일으켜 세울 치밀하고 구체적인 방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를 읽은 임금은 용상에서 무릎을 치며 크게 기뻐하였고, 지체 없이 그를 장원(壯元)으로 발탁하였다.

    ※ 4: 붉은 관복을 입고 돌아온 사내

    가난한 산골짜기 샌님으로 손가락질받던 이명진이 대과에 장원 급제했다는 소식은 산불처럼 번져 순식간에 송도 바닥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사람들에게 그의 이름 석 자는 낯설었지만, 왕 앞에서 막힘없이 정사를 논하고 대신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그의 기백과 학식은 이미 장안의 화제였다. 임금의 총애를 한 몸에 받은 그는 단숨에 홍문관(弘文館)의 핵심인 '교리(校理)' 벼슬을 제수받았다. 비록 품계는 정5품이었으나, 왕의 곁에 가장 가까이 머물며 학문과 정사를 논하는 청요직(淸要職) 중에서도 핵심 요직. 조선의 모든 선비가 우러러보는 꿈의 자리이자, 훗날 정승 판서로 가는 권력의 거침없는 첫 관문이었다. 짐승처럼 살았던 3년 만에 사내의 운명이 하늘과 땅 차이로 뒤바뀐 것이다.

    3년 전, 찢어진 누더기 도포를 걸친 채 폭우 속을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쫓겨나듯 떠났던 길. 그 길을 명진은 이제 눈이 부시도록 화려한 붉은 관복(官服)을 차려입고, 머리에는 임금이 하사한 어사화(御賜花)를 화려하게 꽂은 채 당당히 백마를 타고 금의환향했다. 과거 그를 거지라 비웃으며 삿대질하던 왈패들과 상인들은, 위풍당당한 행렬 앞에서 사시나무 떨듯 바닥에 납작 엎드려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하지만 백성들의 환호 속에서도 명진의 심장은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붉은 관복 아래 감춰진 그의 가슴 속에는 오직 하나의 이름만이 독거미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설희.'
    지난 3년의 그 모진 세월 동안 자신이 미쳐 죽지 않게 버티게 해준 유일한 원동력. 이제 그 이름은 아름다운 첫사랑의 잔상이 아니라, 파멸시키고 싶은 복수의 동의어가 되어 있었다.

    명진은 궁궐에서 임금과 대신들이 하사한 축하주가 채 깨기도 전에, 그 위압적인 붉은 관복 차림 그대로 말머리를 돌려 송도의 청풍각으로 향했다. 그의 발걸음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옛사랑에 대한 미련도 없었다. 오직 잔인한 정복욕만이 이글거릴 뿐이었다. 거리를 메운 구경꾼들을 가르고 기방 문 앞에 다다른 그는 오만하게 말에서 내리지도 않고 아래를 굽어보았다.

    "장원 급제하신 교리 나리께서 행차하셨다!"
    앞잡이의 고함 소리에 청풍각의 행수(行首) 기생은 버선발로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황급히 뛰어나와 땅바닥에 엎드렸다.
    "아이고, 귀하신 나리! 홍문관 교리 나리! 이 누추한 기방까지 어인 행차시옵니까!" 행수는 눈앞에서 살기를 내뿜으며 말 위에 앉아있는 저 서늘하고 위압적인 사내가, 3년 전 자신들이 소금을 뿌려 쫓아냈던 그 볼품없던 가난뱅이 선비 이명진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알아채지 못했다.

    "설희."
    명진이 턱을 치켜들고 말 위에서 낮게 으르렁거리듯 내뱉었다. 그의 목소리는 벼려진 차가운 쇠끼리 부딪히는 소리 같았다.
    "설희라는 기생년은 어찌 지내는가."

    "예? 아... 설희 말씀이시옵니까?"
    행수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려 애써 교태 섞인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여... 여전히 저희 청풍각, 아니 송도 제일의 으뜸이지요. 허허..."

    "오늘 밤, 그년의 시중을 들겠다." 명진은 행수의 대답 따위는 궁금하지 않다는 듯 일방적으로 명령했다. 그리고는 품 속에서 육중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무거운 돈주머니를 꺼내어 거만하게 바닥으로 툭 던졌다.
    '철커덩.' 그것은 3년 전, 설희가 자신을 버리며 그토록 목말라했던 바로 그 권력의 대가, '돈'이었다. 주머니가 터지며 행수의 발치로 은화와 엽전 무더기가 촤르르 굴러떨어졌다.

    바닥에 깔린 은화를 본 행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으나, 이내 안절부절못하며 곤란한 표정으로 손을 비벼댔다.
    "저... 나리, 참으로 송구하오나... 설희가 오늘 밤은 좀..."

    "무슨 문제라도 있다는 것이냐." 명진의 날렵한 눈꼬리가 매섭게 치켜올라가며 섬뜩한 살기를 띠었다. 그는 날렵한 동작으로 말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어둠이 깔린 기방 마당, 횃불의 일렁이는 빛을 받은 그의 붉은 관복이 마치 피를 뒤집어쓴 듯 위압적으로 빛났다.

    "아, 아닙니다요! 다만... 설희 년이 요 근래 알 수 없는 병이 깊어져 몸이 몹시 상한지라... 손님을 받지 않은 지가 꽤 오래되었습니다만..." "상관없다."
    명진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는 행수의 그 변명이 그저 자신을 피하기 위한 얄팍한 수작이거나, 몸값을 더 비싸게 부르기 위한 기생들의 흔해 빠진 농간이라고 치부했다. 오히려 속물적인 그 작태에 역겨움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당장 피를 토하고 죽어가는 병이 아니라면 내 앞에 끌어다 놓거라. 아니, 네년들이 굼뜨다면 내가 직접 가겠다. 그년이 숨어있는 방이 어디냐." 명진의 낮게 깔린 목소리에는 감히 어떤 거절이나 변명도 용납하지 않는 절대적인 권력의 힘이 실려 있었다. 그는 앞을 가로막는 행수를 거칠게 밀쳐내고는, 성큼성큼 안뜰을 가로질렀다. 3년 전, 비참한 몰골로 처량하게 쫓겨났던 바로 그 길을 지나 설희의 별채 방으로 스스로 미닫이문을 거칠게 열어젖히고 들어갔다.

    방 안은 3년 전과 다름없이 옅은 매화향이 감돌고 있었다. 명진은 방 한가운데 오만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스스로 독한 술잔을 채워 기울이며 그녀를 기다렸다. 3년 전 그날 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처절하게 찢겼던 자신의 심장. 그녀가 자신에게 안겨주었던 그 얼음장 같던 수치와 모욕을, 오늘 밤 그녀의 몸과 영혼에 곱절로 되갚아줄 그 짜릿한 복수의 시간만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말이다.

    ※ 5: 복수와 욕망이 뒤엉킨 하룻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길고 고통스러운 침묵 속에서 방 안을 밝히던 촛불만이 제 몸을 태우며 몇 번이나 파르르 떨다가 촛농을 붉게 떨구었다. 밖에서는 가야금 소리와 사내들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기방의 밤을 유흥으로 물들이고 있었지만, 명진이 앉아 있는 이 별채의 방 안만큼은 마치 세상과 단절된 심해처럼 무겁고 적막했다. 그는 스스로 거푸 술잔을 비워냈지만 취기가 오르기는커녕 머릿속은 더욱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의 이성은 3년 전 그날 밤, 억수같이 쏟아지는 폭우를 온몸으로 맞으며 치가 떨리도록 맹세했던 그 절망적인 순간처럼 날이 시퍼렇게 서 있었다. 문득 그는 자신이 지금 오만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이 화려한 보료 자리가, 3년 전 설희가 싸늘한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며 가난을 조롱했던 바로 그 자리임을 깨달았다. 방 안의 병풍도,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매화향도, 창호지에 비치는 달빛도 모든 것이 3년 전과 똑같았다. 오직 하나, 바닥을 기던 가난한 선비에서 하늘을 나는 권력자가 된 자신만이 변해 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굳게 닫혀 있던 미닫이문 밖에서 가녀리고 힘없는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문이 스르르 열리며 밤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설희였다. 3년이라는 세월은 그녀를 더욱 성숙하고 처연한 여인으로 만들어 놓았지만, 한때 송도를 호령하던 명기(名妓)의 화려함은 온데간데없고 짙고 어두운 그늘만이 그녀의 전신을 감싸고 있었다. 그녀는 화려한 붉은 치마 대신 장례를 치르는 사람처럼 상복에 가까운 하얀 소복 차림이었고,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은 마치 오랜 지병을 앓은 사람처럼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풍성하게 틀어 올렸던 쪽진 머리 대신 단출하게 비녀 하나만 꽂은 앙상한 모습이 그녀가 그간 겪었을 고초를 짐작게 했다. 그녀는 방 한가운데에 오만하게 버티고 앉아 있는 붉은 관복의 거대한 사내를 보자마자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아직 그녀는 눈앞의 이 두려운 권력자가 자신이 3년 밤낮을 눈물로 기다렸던 그 사내인지 꿈에도 알아보지 못했다.

    "교리 나리를 뵙사옵..."
    설희가 메마른 입술을 달싹이며 인사를 올리려 천천히 고개를 들던 찰나, 그녀의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3년 만에, 그녀의 텅 빈 눈동자가 명진의 이글거리는 매서운 눈빛과 정면으로 얽혀 들었다. 권력의 살기와 짐승 같은 정복욕, 그리고 깊은 애증이 뒤섞인 그 차가운 불꽃을 마주한 순간, 설희의 눈동자가 거대한 지진이 난 것처럼 속절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너무도 큰 충격에 그녀가 들고 있던 백자 술주전자가 힘 빠진 손아귀에서 스르르 미끄러져 바닥으로 추락했다. '쨍그랑!'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주전자가 산산조각이 났고, 뜨겁게 데워진 술이 그녀의 하얀 버선발 위로 왈칵 쏟아져 내렸다. 화상을 입을 만큼 뜨거운 열기였으나, 그녀는 도망치지도 비명을 지르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서... 서... 선비님...?"
    그녀의 갈라진 목소리가 허공을 맴돌다 흩어졌다. 명진은 뱀처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두운 방 안에서 그의 거대한 체구가 만들어내는 그림자가 설희를 완전히 집어삼켰다.
    "가난한 선비는 3년 전에 죽어 땅에 묻혔다."
    명진이 내뱉는 목소리는 살얼음판을 걷는 듯 차갑고 서늘했다. 임금이 하사한 그의 붉은 관복이 설희의 하얀 소복과 극명하게 대비되어 마치 선혈처럼 붉고 선명하게 빛났다.
    "나랏님께 벼슬을 받아 붉은 관복을 입은 홍문관 교리, 이명진이라 불러라."

    그가 먹잇감을 노리는 야수처럼 천천히, 그리고 위압적으로 설희에게 다가갔다. 설희는 극도의 혼란과 공포에 질린 듯 뒷걸음질을 쳤지만, 이내 굳게 닫힌 벽에 등이 닿고 말았다.
    "어떠냐. 설희야."
    명진이 거칠고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가녀린 턱을 억센 악력으로 움켜쥐며 치켜올렸다. 3년 전 그녀가 자신에게 쏘아붙였던 그 경멸과 냉소의 눈빛을 하나도 남김없이 똑같이 돌려주며 그가 으르렁거렸다.
    "네년이 뱉은 말대로, 내가 세상을 호령하는 권력 있는 사내가 되어 돌아왔다. 네가 그토록 밤낮으로 원하고 몸을 달아 하던, 그 부유하고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사내가 되었단 말이다!"

    "서... 서방... 아니, 나... 나리... 참으로 축하... 드리옵니다... 진심으로..."
    턱뼈가 으스러질 듯한 고통 속에서도 설희는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순종했다. 그녀의 뺨을 타고 투명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려 명진의 거친 손등을 적셨다. 하지만 그녀의 그 병든 새처럼 얌전하고 순종적인 태도가, 오히려 명진의 가슴속에 똬리를 튼 분노의 불길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그는 그녀가 바닥을 기며 살려달라 빌고, 과거의 오만을 뼈저리게 후회하며 자신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리기를 바랐다.

    "축하? 하! 그래, 이런 경사스러운 날 축하주가 빠질 수 없지."
    명진은 짐승처럼 거칠게 그녀의 어깨를 나꿔채어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가녀린 몸이 그의 단단한 가슴팍에 힘없이 부딪혔다. 순간, 그녀의 몸에서는 기생 특유의 짙은 분향이나 난초향 대신, 오랫동안 병마와 싸워온 듯한 쓰디쓴 탕약 냄새와 서늘한 땀 냄새가 훅 끼쳐왔다. 하지만 복수심에 눈이 먼 명진은 그 미세한 변화를 알아채지 못한 채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대고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3년 전, 네년이 내 순정을 짓밟고 안겨주었던 그 끔찍한 모욕... 오늘 밤 네년의 천한 몸뚱어리로 낱낱이 갚아 받아야겠다. 그래, 네가 그토록 갈구하던 그 비싼 '값'을 이 방에 은화로 탑을 쌓아 치러주마."

    그가 그녀를 거칠게 밀어붙이듯 방 안쪽의 넓은 침상으로 끌고 갔다.
    "오늘 밤, 너의 전부는 내 것이다."
    이것은 사랑이나 연모의 감정이 아니었다. 오직 피비린내 나는 폭력과 정복욕, 그리고 뒤틀린 복수심의 발로였다. 그는 그녀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철저히 짓밟아 무너뜨림으로써 3년 전 자신의 산산조각 난 자존심을 보상받으려 했다. 짐승처럼 헐떡이는 그의 거친 손이 자비 없이 그녀의 하얀 소복 저고리 옷고름으로 향했다. '찌익-!' 하는 소름 끼치는 파열음과 함께 낡은 비단 옷고름이 힘없이 찢기며 풀려나갔다.

    어두운 촛불 아래, 거칠게 벗겨진 저고리 사이로 그녀의 가녀린 어깨선과 하얀 속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 모습은 3년 전, 그토록 그가 간절히 품에 안고 싶어 꿈에 그리던 바로 그 눈부신 자태였다. 시각적인 자극이 명진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걷잡을 수 없는 복수심과 함께, 3년 동안 산속에서 짐승처럼 억눌러왔던 사내로서의 짙은 욕망이 붉은 용암처럼 한꺼번에 폭발하듯 솟구쳐 올랐다.

    "울어라! 3년 전 비참하게 쫓겨나던 나를 비웃었듯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빌란 말이다! 살려달라고, 네년의 그 천박한 선택을 후회한다고 내 발밑에서 짖어보란 말이다!"
    명진이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그녀의 드러난 어깨를 으스러져라 움켜쥐고 침상으로 덮치려는 찰나였다. 순간, 그의 모든 동작이 일시 정지된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설희는 분명 굵은 눈물을 뚝뚝 쏟아내며 울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공포에 질려 겁먹은 짐승의 것도, 능욕을 당하는 여인의 수치심도 아니었다. 그녀는 그 끔찍할 만큼 거칠고 폭력적인 명진의 품 안에서 눈물을 비 오듯 쏟아내면서도, 묘하게도 안도와 환희가 뒤섞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눈부신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는 명진의 폭력적인 손길을 밀어내거나 저항하기는커녕, 오히려 두 팔을 들어 그의 넓은 등을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그 거친 숨결을 온몸으로 기꺼이 받아내고 있었다.
    "도대체... 왜 웃는 것이냐. 내가 이리도 끔찍하게 널 짓밟으려 하는데 두렵지 않은 것이냐! 아니면... 네년의 소원대로 이 권력과 돈 앞에 몸을 굴복하는 것이 뼛속까지 기쁘기라도 하단 말이냐!"
    분노와 살기로 팽팽하게 당겨졌던 명진의 이성이, 그녀의 그 기이하고도 슬픈 미소 앞에서 거대한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 6: 3년 묵은 진실과 무너진 복수심

    맹수처럼 설희를 덮치려던 명진의 억센 팔뚝이 허공에서 길을 잃고 우뚝 멈춰 섰다. 하얗게 질린 그녀의 어깨를 옥죄고 있던 그의 거친 손가락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미세하게 경련하듯 떨리고 있었다. 그는 분명히 이 자리에 피맺힌 복수를 완성하러 왔다. 자신의 권력과 재물 앞에서 자존심을 버리고 바닥을 기며 눈물 콧물 쏟아내며 살려달라 애원하는 그 비참한 몰골을 보러 온 것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설희는 찢겨진 옷자락 사이로 속살을 드러낸 채 울면서도, 마치 세상을 다 얻은 사람처럼 평온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 지독하게 모순된 표정 앞에서, 명진이 3년 동안 피눈물을 마시며 차곡차곡 쌓아 올렸던 거대한 증오의 탑이 근본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방 안의 공기는 두 사람의 뜨거운 숨결과 터질 듯한 긴장감으로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아무리 모진 고문을 가해도 끄떡없을 것 같던 명진의 강철 같은 이성이, 그녀의 그 알 수 없는 따뜻한 눈물 한 방울에 모래성처럼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다.
    "대체 왜 웃는 것이냐고 묻지 않느냐! 당장 말하라, 설희야! 내가, 지금의 내가 이깟 돈으로 널 사는 것이 이리도 즐겁고 기쁜 것이냐!"
    명진의 고함은 분노라기보다는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절망적인 비명에 가까웠다.

    설희는 하얀 손을 뻗어 분노로 붉게 달아오른 명진의 거친 뺨을 조심스레, 그러나 벅찬 애정을 담아 어루만졌다. 그녀의 눈빛에는 더 이상 자신을 해치려는 짐승 앞의 두려움 따위는 한 점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깊고 깊은 바다와도 같은 슬픔, 그리고 자신이 짊어졌던 모든 무거운 짐을 드디어 내려놓았다는 깊은 안도감만이 처연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기뻐서... 서방님께서 마침내 원하시던 뜻을 이루시고 이렇게 훌륭한 사내가 되어 제 눈앞에 나타나 주신 것이 너무도 기뻐서 우는 것이옵니다."

    '서방님.'
    그 한마디가 마치 벼락처럼 명진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그의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나올 것처럼 미친 듯이 요동쳤다.
    "무슨 헛소리냐. 네가 내게 서방님이라니. 3년 전, 당장 내일 쌀 걱정이나 하는 가난한 선비의 풋사랑은 구역질이 난다며 나를 그 진흙탕 속에 짐승처럼 내다 버린 것이 바로 네년이 아니더냐!"

    설희는 소리 없이 눈물을 훔치고는, 굳어버린 명진의 두 손을 끌어와 자신의 창백한 뺨에 가져다 대었다. 그녀의 피부는 온기 하나 없이 얼음장처럼 차디찼다.
    "...모두, 거짓이었습니다."
    "무, 무엇이 거짓이란 말이냐!"
    "그날 밤 제가 서방님께 뱉었던 그 모진 말들, 권력이 좋고 재물이 좋다던 그 천박한 말들... 전부, 단 하나도 진심이 아니었사옵니다."
    마침내, 설희의 입술을 통해 3년 동안 두꺼운 얼음 밑에 갇혀 있던 충격적인 비밀이 세상 밖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날 밤, 비를 맞으며 찾아오신 서방님의 품 속에 숨겨진 그 작은 옥가락지의 윤곽을 보았을 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서방님의 마음이 이미 제게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깊고 깊게 뿌리를 내렸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 한없이 순수하고 뜨거운 사랑이, 결국 훗날 세상을 호령할 용이 되실 서방님의 날개를 무참히 꺾어버릴 족쇄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설희의 목소리가 젖어 들며 가늘게 떨렸다.
    "저는 그저 웃음과 몸을 파는 천한 기생일 뿐입니다. 어찌 이 붉은 치마폭으로, 장차 조정의 기둥이 되어 큰 뜻을 펼치실 서방님의 찬란한 앞길을 가로막을 수 있겠습니까. 서방님은 저와 함께 깊은 산속으로 도망쳐 평범한 촌부로 살자 하셨지만, 저는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 비좁은 단칸방에서 썩혀지기엔 서방님의 재주가 너무도 눈부시다는 것을. 서방님께서 붉은 관복을 입고 용상 앞에서 당당히 국정을 논하며 세상을 구하는 모습을, 저는 매일 밤 꿈결처럼 보았사옵니다."

    "설희야, 너, 대체 무슨 짓을..." 명진의 목소리가 충격으로 갈라졌다.
    "그래서 모질게 마음을 먹어야만 했습니다. 서방님을 이 더러운 기방 골목에서 영원히 쫓아내고 다시는 저를 찾지 않게 만들 방법은, 오직 저를 향한 '살의'에 가까운 '증오'와 '독기'를 심어드리는 것뿐이었습니다. 저를 끔찍하게 원망하셔야만 했습니다. 제 몸을 찢어 죽이고 싶을 만큼 저를 증오하셔야만, 그 분노를 땔감 삼아 학문에 매진하여 필히 대업을 이루실 수 있을 거라 믿었사옵니다."

    명진은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아무런 사고도 할 수 없었다.
    "그럼... 그 모욕적인 말들과, 네년이 고관대작의 품에 안겨 웃음 짓던 그 모습들이 모두..."
    "오직 서방님을 대과에 급제시키기 위해, 이 천한 년이 꾸며낸 천박하고 잔인한 거짓 연극이었사옵니다. 그리고... 그 거짓말을 뱉어낸 대가는, 제가 이곳에서 온몸으로 치러야만 했습니다."

    "대가라니, 대체 무슨 대가를 치렀단 말이냐!"
    명진이 다급하게 그녀의 어깨를 쥐며 소리쳤다. 그제야 그의 눈에 찢어진 소복 사이로 드러난 설희의 하얀 살결 위로, 끔찍하게 그어진 채찍 자국과 검붉은 흉터들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그날 서방님을 내쫓고, 저는 행수 어른께 말씀드렸습니다. 앞으로 3년 동안, 아니 서방님께서 장원 급제하시어 돌아오시는 그날까지 그 어떤 사내의 시중도 들지 않고 옥비녀를 지키겠다고 말입니다. 기방 제일의 상품이었던 제가 손님을 거부하니, 행수 어른의 대노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날부터 3년 동안 밥 한술, 돈 한 푼 받지 못한 채 뒷방에 갇혀 매일같이 모진 매질과 고문을 당하며 온갖 궂은일을 짐승처럼 해내야 했습니다. 몸이 몹시 아프다는 행수의 말은 변명이 아니옵니다. 매일 밤 서방님을 그리워하며 흘린 눈물과, 혹독한 매질로 얻은 골병으로 이제 제 목숨은 언제 꺼질지 모르는 촛불과도 같습니다."

    명진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온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자신의 몸을 찌르며 키워왔던 3년의 복수심은 갈 곳을 잃고 산산이 부서져 한 줌의 먼지가 되어버렸다. 자신이 산속에서 복수심에 취해 공부만 하는 동안, 그녀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이 지옥 같은 기방에서 몸이 부서지도록 고문을 당하며 홀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매일 밤, 저 달을 보며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설희가 힘없이 명진의 넓은 가슴에 쓰러지듯 기대며 속삭였다.
    "우리 서방님께서 꼭 장원 급제하시어, 오늘처럼 빛나는 관복을 입고 제 앞에 나타나 주시기를. 저를 죽일 듯이 원망하고 미워하셔도 좋으니, 제발 이 누추하고 끔찍한 기방에서 저를 빼내어 구원해 주시기를... 매일 밤 피를 토하며 빌었사옵니다."
    그녀가 3년이라는 영겁의 시간 동안 홀로 지켜온 정절과 뼈를 깎는 희생의 무게가, 거대한 해일이 되어 명진의 오만했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며 뜨겁게 적셔갔다.

    ※ 7: 성대한 혼례와 달아오른 모란꽃 신방

    붉은 관복으로 서로의 상처를 감싸 안으며 눈물로 밤을 지새운 다음 날, 장원 급제한 새파란 홍문관 교리 이명진의 행보는 장안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는 자신이 받은 왕의 하사금과 녹봉을 미련 없이 털어 명월관의 천한 기생 설희를 기적(妓籍)에서 파내어 속량시켰다. 그리고는 쇠약해진 설희의 손을 굳게 쥐고 곧장 궁궐로 향해 임금이 계신 편전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전하! 소신을 대과에 장원 급제시켜 이 붉은 관복을 입고 전하의 곁에 서게 한 것은, 성현의 가르침도 아니요 신의 얕은 재주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이름 없는 한 여인의 뼈를 깎는 지독한 희생과 사랑 덕분이었습니다. 부디 천한 신분이라는 세상의 껍데기를 거두시고, 소신을 향한 그 여인의 지고지순한 '정심(貞心)'을 어여삐 여겨 제 정실부인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명진의 목숨을 건 간청과, 3년간 끔찍한 고초를 겪으면서도 정절을 지켜 사내를 키워낸 설희의 이야기는 임금의 마음을 깊게 울렸다. 임금은 양반들의 거센 반발을 단칼에 물리치고 이례적으로 두 사람의 혼인을 허락했을 뿐만 아니라, "이토록 갸륵한 사랑은 조선의 자랑이 될 만하다"며 친히 궁중의 악공들과 최고급 비단, 그리고 어여물을 하사하여 유례없이 성대한 혼례를 치르게 하였다.

    며칠 뒤, 송도 바닥이 떠들썩할 만큼 화려한 혼례식이 열렸다. 왕이 하사한 화려한 꽃가마를 탄 설희와, 사모관대를 늠름하게 갖춰 입고 백마에 오른 명진의 행렬 위로 백성들의 오색 꽃가루와 환호가 비 오듯 쏟아졌다. 길고 길었던 3년의 엇갈림과 고통이 봄눈 녹듯 사라지고,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축복이 두 사람을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첫날밤. 은은한 매화향이 감도는 신방에는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커다란 화조도 병풍이 둘러쳐져 있었고, 방 한가운데에는 붉은 비단으로 지은 원앙금침이 깔려 있었다. 방 안을 밝히는 쌍문초 촛불이 두 사람의 거친 숨결에 파르르 흔들렸다.

    조심스러운 손길로 설희의 머리에 얹힌 무거운 족두리를 벗겨낸 명진은, 새빨간 연지곤지를 찍은 그녀의 고운 얼굴을 보며 벅차오르는 감격을 주체하지 못했다. 명진이 합환주를 나누어 마신 뒤 그녀의 옷고름으로 손을 뻗었으나, 며칠 전 복수심에 눈이 멀어 그녀의 저고리를 짐승처럼 찢어발겼던 기억이 떠올라 차마 손을 대지 못하고 허공에서 미세하게 떨고만 있었다. 혹여나 자신의 거친 손길이 그녀의 상처 입은 몸에 또다시 아픔을 줄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 뻣뻣하게 굳은 사내의 모습을 보던 설희가 참지 못하고 '푸훗' 하는 맑은 웃음을 터뜨렸다.
    "며칠 전 기방에서는 제 옷고름을 그리도 사납게 찢어내시며 '오늘 밤 너의 전부는 내 것이다' 으름장을 놓으시더니, 어찌 오늘 같은 훌륭한 밤에는 이리 바보처럼 손을 떠시옵니까? 3년 전 산골짜기 샌님으로 되돌아가신 겝니까?"

    설희의 짓궂은 농담에 명진의 얼굴이 귀끝까지 붉게 달아올랐다.
    "그... 그때는 피눈물에 눈이 뒤집힌 야차였고,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깨지기 쉬운 보물을 다루는 지어미의 사내가 아니냐. 네 몸에 남은 상처에 흠집이라도 날까 두려워 이리 심장이 터질 듯 뛰는 것을 어찌한단 말이냐."

    그러자 설희가 고개를 저으며 과감하게 자신의 하얀 손을 뻗어 명진의 단단한 목덜미를 끌어당겼다.
    "저는 방구석에 모셔두는 옥도자기가 아니옵니다. 지난 3년, 서방님을 그리워하며 독수공방한 이년의 한도 깊사옵니다. 부디 짐승처럼 거칠어졌다는 서방님의 그 사내다움을, 오늘 밤 제게 남김없이 증명해 보시지요."

    그 도발적이고 요염한 속삭임은 3년간 산속에서 금욕하며 억눌러왔던 명진의 이성의 끈을 완벽하게 툭, 끊어버리기에 충분했다.
    "내 널 다치게 할까 참으려 했거늘... 네년이 기어이 잠든 늑대의 코털을 건드리는구나. 오늘 밤, 네가 살려달라 애원해도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명진은 으르렁거리며 설희를 번쩍 안아 원앙금침 위로 눕혔다. 부드러운 비단 스치는 소리와 함께 설희의 저고리와 붉은 치마가 스르륵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촛불 아래 드러난 설희의 눈부신 하얀 속살 위로, 명진의 굳은살 박인 뜨겁고 거친 손바닥이 미끄러지듯 훑어 내려갔다. 투박한 사내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설희의 입술 사이로 참기 힘든 달콤한 교성이 옥구슬 굴러가듯 터져 나왔다.

    명진의 뜨거운 입술은 설희의 이마에서 시작해 콧등을 지나 붉은 입술을 탐욕스럽게 집어삼켰다. 두 사람의 혀가 뜨겁게 얽혀들며 지난 3년의 지독했던 갈증을 게걸스럽게 채워 나갔다. 명진의 입술은 곧 그녀의 목선을 타고 내려가, 과거 기방에서 모진 매질을 당해 그녀의 하얀 등과 어깨에 남겨진 검붉은 흉터들 위로 향했다.

    "아앗... 서방님, 거기는 흉하여..."
    설희가 부끄러움에 몸을 움츠리려 했으나, 명진은 단단한 팔로 그녀의 허리를 꽉 끌어안아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
    "내 눈에는 이 흉터들이 세상 어떤 꽃잎보다 아름답고 눈물겹다. 오늘 밤 내 입술로 이 상처들에 새 살이 돋게 할 것이다."

    그는 상처 하나하나에 경건하게 입을 맞추며 부드럽게 핥아올렸다. 고통스럽고 끔찍했던 과거의 기억이 사내의 집요하고 뜨거운 애무에 녹아내리며,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하는 짜릿한 쾌감으로 변해갔다. 설희는 활대처럼 허리를 휘며 명진의 넓은 등을 손톱으로 긁어내리듯 꽉 끌어안았다.

    마침내 사내의 단단하고 뜨거운 열기가 그녀의 가장 깊고 은밀한 곳을 빈틈없이 파고들었다.
    "흐읏...! 서, 서방님...!"
    찢어질 듯한 충만함과 달아오르는 쾌감에 설희의 발가락 끝이 곱게 오므라들었다. 명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그녀의 뺨 위로 떨구었다.
    "설희야... 나의 설희야... 널 온전히 품기 위해 3년을 돌고 돌아왔구나. 이제 넌 영원히 내 것이다."

    두 사람의 몸이 하나가 되어 리드미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조도 병풍 위로 일렁이는 촛불을 타고 두 사람의 뜨겁게 얽힌 그림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고요한 밤공기를 가르는 살이 맞부딪히는 마찰음과, 질척이는 소리, 그리고 짐승의 하울링 같은 거친 사내의 숨소리와 여인의 달아오른 교성이 신방을 터질 듯이 가득 채웠다. 3년의 원망과 그리움은 그렇게 서로의 몸을 탐하는 깊고 농밀한 땀방울 속으로 완벽하게 증발해 버렸다. 동이 틀 때까지 꺼지지 않은 촛불 아래, 부부의 연을 맺은 두 사람의 멈출 줄 모르는 뜨거운 사랑의 노래는 밤이 새도록 송도의 하늘에 울려 퍼졌다.

    유튜브 엔딩멘트

    저희 역사엑스파일이 준비한 오늘의 야담, 어떠셨나요? 짝사랑하던 기생의 모진 말에 버림받고, 피눈물 나는 복수심으로 장원 급제한 한 사내의 이야기였습니다. 3년 만의 재회, 지독한 복수로 시작된 그 하룻밤은 결국 3년간 쌓인 눈물겨운 오해를 풀고 서로의 상처를 덮어주는 따뜻한 치유의 밤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를 치열하게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은 때로는 '복수심'이나 '결핍'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차가운 껍데기를 온전히 벗겨내고 나면, 그 깊은 내면에는 이 이야기처럼 맹목적이고 뜨거운 '사랑'이 숨 쉬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오늘 이야기가 여러분의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로 응원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클릭 한 번이 저희가 다음 이야기를 발굴하는 가장 큰 힘이 됩니다. 그럼, 다음 시간에도 더 깊고 흥미로운 어른들의 역사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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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high quality color ink wash painting of a handsome Joseon dynasty scholar and a beautiful gisaeng in hanbok looking at each other with intense emotion under moonlight, romantic and dramatic atmosphere, 16:9, no text, masterpiece

    Scene 1 Images:

    1. A vibrant night street in Joseon dynasty, glowing red lanterns illuminating a grand traditional house, watercolor, 16:9, no text, Joseon dynasty
    2. A beautiful gisaeng with a jjokjin meori hair style, wearing an elegant silk hanbok, playing the geomungo in a candlelit room, cold expression, watercolor, 16:9, no text, Joseon dynasty
    3. A poor young scholar in a faded hanbok, sitting in a messy room with books, looking longing out the window, watercolor, 16:9, no text, Joseon dynasty
    4. A poor scholar handing a folded poem through a slightly opened traditional paper window to a delicate woman's hand, moonlit night, watercolor, 16:9, no text, Joseon dynasty
    5. A beautiful gisaeng and a scholar sitting together in a cozy traditional room, looking at each other warmly with a small table of food, watercolor, 16:9, no text, Joseon dynasty

    Scene 2 Images:

    1. A poor scholar looking shocked and angry outside a house in the rain, seeing a gisaeng being dragged by a wealthy nobleman, watercolor, 16:9, no text, Joseon dynasty
    2. A scholar holding a small jade ring tightly in his hand, standing in front of a traditional sliding door, heavy rain, watercolor, 16:9, no text, Joseon dynasty
    3. A beautiful gisaeng with a cold, cruel expression, violently snapping the string of her geomungo, a scholar standing in shock, watercolor, 16:9, no text, Joseon dynasty
    4. A poor scholar staggering away in a heavy rainstorm, deeply heartbroken, dark and moody, watercolor, 16:9, no text, Joseon dynasty
    5. A beautiful gisaeng collapsing on the floor alone in a dark room, clutching a broken geomungo string, crying intensely, watercolor, 16:9, no text, Joseon dynasty

    Scene 3 Images:

    1. A man in a faded hanbok writing large characters with blood on a wooden board outside an old temple, determined expression, watercolor, 16:9, no text, Joseon dynasty
    2. A scholar studying intensely in a dark room illuminated by a single candle, stabbing his own thigh with a tool to stay awake, watercolor, 16:9, no text, Joseon dynasty
    3. A rugged, bearded scholar with a sharp, cold gaze, standing on a mountain peak looking down, watercolor, 16:9, no text, Joseon dynasty
    4. A scholar aggressively writing on an exam paper in a grand courtyard, intense focus, watercolor, 16:9, no text, Joseon dynasty
    5. A Joseon king in red dragon robes smiling and holding up a brilliant exam paper, watercolor, 16:9, no text, Joseon dynasty

    Scene 4 Images:

    1. A handsome man wearing a bright red official's robe and a hat with colorful paper flowers (Eosahwa) riding a white horse through a cheering crowd, watercolor, 16:9, no text, Joseon dynasty
    2. A high-ranking official in a red robe throwing a heavy pouch of coins onto the ground in front of a bowing older woman, nighttime, watercolor, 16:9, no text, Joseon dynasty
    3. A cold-eyed official in a red robe walking aggressively through the courtyard of a traditional house holding torches, watercolor, 16:9, no text, Joseon dynasty
    4. A powerful official sitting alone in a dimly lit traditional room, drinking from a small cup, waiting menacingly, watercolor, 16:9, no text, Joseon dynasty
    5. Close up of a man's face in the shadows of candlelight, wearing a red hanbok, eyes filled with dark desire and revenge, watercolor, 16:9, no text, Joseon dynasty

    Scene 5 Images:

    1. A very pale, beautiful woman in a plain white traditional sobok, looking frail and sad, slowly entering a dimly lit room, watercolor, 16:9, no text, Joseon dynasty
    2. A high-ranking official in a striking red robe standing imposingly in a dark room, casting a large shadow over a frightened woman in white, watercolor, 16:9, no text, Joseon dynasty
    3. Close up of a shattered white porcelain alcohol pitcher on a wooden floor, hot liquid spilling over a woman's white traditional socks (beoseon), dramatic lighting, watercolor, 16:9, no text, Joseon dynasty
    4. A man in a red robe aggressively grabbing the shoulders of a woman in white, pushing her towards a traditional bed, intense and dark atmosphere, watercolor, 16:9, no text, Joseon dynasty
    5. A woman with a torn white jeogori revealing her bare shoulder, crying but smiling warmly and gently embracing the angry man, highly emotional, watercolor, 16:9, no text, Joseon dynasty

    Scene 6 Images:

    1. A man in a red official's robe looking completely shocked and confused, his hands frozen in mid-air above a weeping woman, watercolor, 16:9, no text, Joseon dynasty
    2. A pale woman with a beautiful smile touching the cheek of an angry, confused man with her cold hand, candlelit room, watercolor, 16:9, no text, Joseon dynasty
    3. Flashback scene: A gisaeng in a dark room being harshly beaten with a stick by an older woman, looking up at the moonlight with tears, watercolor, 16:9, no text, Joseon dynasty
    4. Flashback scene: A frail woman in ragged clothes sitting alone in a cold, dark storage room, clasping her hands and praying to the full moon, watercolor, 16:9, no text, Joseon dynasty
    5. A powerful man falling to his knees in despair and regret, holding his face in his hands, while a frail woman in white watches him with deep love, watercolor, 16:9, no text, Joseon dynasty

    Scene 7 Images:

    1. A man gently taking off his large, red official's robe and wrapping it warmly around the shoulders of a shivering, fragile woman, watercolor, 16:9, no text, Joseon dynasty
    2. Close up of a man's rough hand tenderly placing a small, faded jade ring onto the finger of a pale woman's scarred hand, watercolor, 16:9, no text, Joseon dynasty
    3. A beautiful, romantic scene of a man and woman embracing deeply and warmly under the soft glow of candlelight, healing and emotional connection, watercolor, 16:9, no text, Joseon dynasty
    4. A high-ranking official kneeling resolutely in the grand courtyard of a Korean palace, pleading passionately to the unseen king, dramatic daylight, watercolor, 16:9, no text, Joseon dynasty
    5. A loving mature husband gently blowing on a spoon of warm medicinal porridge to feed his recovering wife in a bright, peaceful traditional room, happy ending, watercolor, 16:9, no text, Joseon dynas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