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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구슬 삼키고 명의된 훈장
(출처: 조선 후기 야담집 《운림야담(雲林野談)》 「술호편(術狐篇)」에 전하는 호정(狐精) 설화를 바탕으로, 사람의 정기를 탐한 백년 묵은 여우와 그 구슬을 삼켜 의술의 이치를 깨친 한 선비의 이야기를 오디오 드라마로 새로이 각색하였습니다.)
태그 (1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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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 멘트
"매일 밤, 달빛이 창호지를 넘어 스며들 때면 어김없이 그녀가 찾아왔습니다. 머리칼에서는 짙은 매화 향이 났고, 살결은 한겨울 눈송이처럼 희고 차가웠지요. 그녀의 붉은 입술 사이로 넘어오던 그 뜨겁고도 달콤한 구슬의 감촉… 그것이 내 목숨을 갉아먹는 요괴의 독인 줄 알면서도, 나는 매일 밤 그 황홀한 죽음 속으로 기꺼이 몸을 던졌습니다. 살기 위해 요괴의 구슬을 삼켰으나, 결국 내 모든 것을 내어주게 된 한 사내의 기이하고도 애틋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시지요. 백 년을 묵은 여우와 촌구석 서당 훈장의 목숨을 건 합방, 그리고 세상을 구하는 명의로 거듭나기까지의 비밀이 지금 펼쳐집니다."
※ 1: 스며드는 유혹, 뼈를 깎아내는 달콤한 독
인적이 완전히 끊긴 첩첩산중의 밤. 짐승의 울음소리마저 잦아든 고요한 어둠 속에서, 낡은 서당의 문창호지 틈새로 새어 나오는 옅은 호롱불빛만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방 안에는 먹을 갈아놓은 벼루와 서책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지만, 그 방의 주인인 젊은 훈장의 시선은 글귀에 머물지 못한 지 오래다. 한때 넓은 어깨와 꼿꼿한 기골을 자랑하던 사내의 몸은, 이제 늦가을 거센 바람에 말라비틀어진 장작개비처럼 처참하게 야위어 있었다. 푹 꺼진 두 뺨 위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고, 창백하게 질린 입술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방 안의 공기가 이질적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은 자시(子時)가 막 지날 무렵이었다. 묵직하고 퀴퀴했던 묵향을 밀어내고, 등골이 오싹해질 만큼 짙고 관능적인 매화 향이 스멀스멀 방바닥을 타고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폐부를 찌르는 그 달콤하고도 기이한 향기는, 사내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아랫도리에 뻐근한 열기를 불어넣는 지독한 최음제와도 같았다.
스르륵-
바람 한 점 없는 밤이건만, 굳게 닫혀 있던 방문이 소리 없이 열린다. 달빛을 등지고 선 여인의 실루엣. 얇은 비단 치맛자락이 방바닥을 스치는 서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선 여인은, 가히 숨이 멎을 듯한 절색이다. 칠흑같이 검고 풍성한 쪽진 머리 아래로 드러난 목덜미는 비정상적일 만큼 희고 투명했으며, 달아오른 붉은 입술과 뇌쇄적인 눈빛은 훈장의 마지막 남은 이성마저 진흙탕 속에 처박아버리기에 충분했다. 여인이 소리 없이 다가와 훈장의 앙상한 무릎에 기대어 안긴다. 한여름의 밤공기 속에서도 그녀의 살결은 한겨울 계곡물처럼 서늘했다.
"오늘도 이리 늦은 밤까지 서책만 들여다보며 소첩을 기다리신 겝니까? 이리도 몸이 차가우신데, 어찌 촛불 하나에 의지하여 이 외로운 밤을 지새우시는지요."
여인의 목소리는 귓가에 끈적한 꿀을 발라놓은 듯 나른하고 달콤했다. 그녀의 차가운 손끝이 훈장의 거친 도포 자락을 파고들어, 식은땀으로 얼룩진 뜨거운 가슴팍을 뱀처럼 유연하게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훈장은 흠칫 몸을 떨면서도, 그녀의 손길을 밀어내지 못한다. 아니, 밀어낼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오한과 쾌락이 동시에 번져나가며 그의 전신을 지배했다.
'이 여인이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사람의 몸에서 이리도 짙은 냉기와 아득한 향기가 날 수는 없는 법. 내 몸의 기력을 파먹는 요괴임이 틀림없거늘… 허나, 허나 이 끔찍하도록 달콤한 늪에서 빠져나갈 방도가 없구나.'
"네가… 네가 또 온 것이냐. 내 몸이 하루가 다르게 허물어지고 뼛속까지 썩어 들어가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어찌 매일 밤 나를 찾아와 이리 어리석은 사내의 진을 빼놓는 것이냐."
훈장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힘이 없었으나, 원망보다는 애욕에 젖은 탄식에 가까웠다. 여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목을 두 팔로 감싸 안았다.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훈장의 야윈 흉곽에 밀착되자, 사내의 심장이 터질 듯 요동치기 시작했다.
"진을 빼놓다니요, 참으로 섭섭한 말씀이옵니다. 서방님과 제가 매일 밤 살을 섞고 나누는 이 뜨거운 정이 어찌 괴로움이겠습니까. 서방님도 소첩의 품을 이리도 간절히 원하며 아랫도리를 꼿꼿이 세우고 계시지 않사옵니까."
여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훈장의 갈라진 입술을 덮쳐왔다. 훈장은 짧은 신음을 내뱉으며 두 눈을 감았다. 여인의 서늘한 혀가 훈장의 입안을 헤집고 들어오자, 훈장의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거부할 수 없는 맹렬한 춘정이 화산처럼 끓어오른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그녀의 타액이 주는 강렬한 쾌감 속에 하얗게 녹아내렸다. 두 사람의 숨결이 거칠게 엉키고, 여인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훈장의 옷고름을 풀어헤쳤다.
두 사람의 나신이 어두운 방바닥 위로 뒤엉켰다. 여인은 훈장의 몸 위로 올라타 그의 가슴과 목덜미에 붉은 자국을 남기며 짐승처럼 그의 체온을 탐했다. 훈장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여인의 얇은 허리와 풍만한 엉덩이를 으스러져라 쥐어잡았다. 방 안을 채우던 호롱불이 파르르 떨리다 스스로 꺼져버린다. 짙은 어둠 속에서 오직 질척이는 입술 소리와 거친 숨소리, 그리고 땀에 젖은 살갗이 마찰하는 소리만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절정을 향해 치달을 무렵, 여인의 입술 사이로 작고 매끄러운 구슬 하나가 굴러 들어왔다. 체온보다 훨씬 뜨겁고, 신비로운 붉은빛을 머금은 요괴의 구슬이었다. 그 구슬이 혀를 타고 훈장의 입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훈장의 몸은 감전된 듯 크게 튀어 올랐다. 그의 단전 깊은 곳에 남아있던 마지막 한 줌의 생명력과 양기(陽氣)가 그 구슬을 타고 여인에게로 무자비하게 빨려 들어갔다.
구슬이 두 사람의 입을 오갈 때마다 훈장의 의식은 아득해졌고, 뼈가 녹아내리고 골수가 마르는 듯한 고통 속에서도 뇌수를 태워버릴 듯한 극한의 쾌락에 몸부림쳤다. 그의 허리가 반사적으로 튕겨 오르며 여인의 몸 안 깊숙한 곳을 파고들 때마다, 여인은 만족스러운 교성을 내지르며 훈장의 양기를 더욱 탐욕스럽게 빨아들였다.
'이대로 복상사하여 죽어도 좋단 말인가. 며칠을 더 넘기지 못할 텐데… 아아, 이 지독한 요괴의 살결을, 이 파멸의 굴레를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구나.'
쾌락과 절망이 뒤섞인 눈물이 훈장의 핏발 선 눈가에 맺혀 베갯잇을 적셨다. 밤새도록 이어진 기괴하고도 애절한 정사는 새벽닭이 울기 직전, 훈장이 완전히 기절하고 여인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나서야 끝이 났다. 홀로 남겨진 훈장은 식은땀에 흠뻑 젖어 차가운 방바닥에 널브러진 채, 꺼져가는 숨을 헐떡이며 또 하루의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 2: 묘향산 깊은 골, 산신령의 엄중한 경고와 비책
며칠 뒤, 글 읽는 소리가 끊긴 지 오래인 서당 마루에 훈장이 쓰러지듯 엎드려 있다. 한 번 기침을 할 때마다 검붉은 피 덩어리가 마룻바닥을 적셨고, 이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바닥난 상태였다.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것조차 버거웠다. 훈장의 퀭한 두 눈은 멀리 병풍처럼 둘러쳐진 험준한 산세를 향해 있었다. 구름이 걸려있는 저 산은 옛부터 마을 사람들이 신령스러운 산이라 부르며 함부로 범접하지 않는 묘향산의 깊은 골짜기였다.
'어젯밤 그 여인의 눈빛은 평소와 달랐다. 나의 바닥난 정기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 내려는 듯, 그 어느 때보다 포악하고 탐욕스러웠지. 오늘 밤 그녀가 다시 찾아온다면, 나는 아침 해를 보지 못하고 송장이 될 것이 뻔하다. 이대로 방안에 누워 발정 난 개처럼 요괴에게 목숨을 내어줄 바에야, 마지막 남은 기력을 쥐어짜 산신령님께 매달려 보는 수밖에 없다.'
훈장은 마당 구석에 굴러다니던 굵은 나뭇가지를 지팡이 삼아 짚고, 굽은 등과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다리를 이끌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평소의 건장한 사내라면 반나절이면 가뿐히 오를 산길이었으나, 죽음의 문턱에 선 훈장에게는 지옥의 가시밭길과 같았다. 날카로운 나뭇가지에 얼굴이 긁히고, 비탈에 미끄러져 무릎이 깨져나갔다. 해가 지고 붉은 노을이 산등성을 물들일 무렵, 그의 두 발은 벗겨진 짚신 사이로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산을 오르는 내내 훈장의 귓가에는 그 요망한 여인의 끈적한 신음이 환청처럼 들려왔고, 콧가에는 환각과도 같은 매화 향이 맴돌아 그의 정신을 어지럽혔다.
달이 중천에 뜰 무렵, 깎아지른 듯한 거대한 절벽 아래에 다다른 훈장은 맑은 물이 솟아나는 옹달샘 앞에 이르러 결국 그 자리에 혼절하듯 쓰러지고 말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의식이 아득해지는 가운데, 주변을 서늘하게 감싸고 있던 짙은 밤안개가 순식간에 걷히며 눈이 멀어버릴 듯한 강렬한 백색의 빛이 스며들었다.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밀어 올리자, 거대한 바위 위에는 눈처럼 희고 긴 수염을 발밑까지 길게 늘어뜨린 노인이 온화하면서도 서슬 퍼런 눈빛으로 훈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범접할 수 없는 영기(靈氣)를 내뿜는 그 존재는 필시 묘향산의 산신령이었다.
"어리석고도 미련한 중생아. 사내의 그 알량한 춘정을 이기지 못하여, 하반신의 쾌락에 눈이 멀어 요괴에게 혼을 빼앗기고 제 명줄을 스스로 재촉하다니. 글을 읽어 성현의 도를 깨우쳤다는 선비의 꼴이 참으로 한심하고 추악하구나."
산신령의 목소리는 거대한 산울림이 되어 훈장의 뼛속까지 징웅징웅 울려 퍼졌다. 훈장은 피투성이가 된 몸을 간신히 뒤집어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쉰 목소리로 처절하게 애원했다.
"신령님… 신령님…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매일 밤 찾아와 제 옷고름을 푸는 그 여인이 짐승의 탈을 쓴 요괴인 줄 알면서도, 제 미천한 의지로는 도저히 그 기운을 떨쳐낼 수가 없었사옵니다. 그녀의 살결이 닿을 때마다 죽음의 공포보다 더 큰 애욕이 제 눈을 가렸습니다. 부디, 부디 이 어리석고 짐승만도 못한 목숨을 한 번만 살려주시옵소서."
산신령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쥐고 있던 굽은 지팡이로 바닥을 쿵, 하고 가볍게 내리쳤다. 그 작은 진동에 주변의 바위들이 웅웅거리며 울었다.
"그 여인은 필시 이 산에서 백 년을 묵은 꼬리 아홉 달린 붉은 여우일 터. 인간 사내들의 정기를 모아 천 년의 요력(妖力)을 완성하고 온전한 사람이 되고자, 너를 그 마지막 제물로 삼은 것이다. 네 입을 오가며 너의 양기를 빨아들이는 그 붉고 뜨거운 구슬은, 여우가 백 년 동안 산천초목의 기운과 인간의 피를 모아 정련한 정수의 결정체이니라. 바로 오늘 밤이 백일 째 되는 밤. 그 구슬이 네 몸의 마지막 남은 한 방울의 정기마저 모두 빨아들여 다시 여우의 배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너는 피 한 방울, 골수 한 방울 남지 않은 흉측한 미라가 되어 죽을 것이다."
죽음의 방식을 생생하고도 잔혹하게 전해 들은 훈장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고 사시나무 떨리듯 치아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그, 그럼 어찌해야 한단 말씀이십니까. 제게 남은 시간은 이제 반나절도 채 남지 않은 듯하옵니다. 저 요망한 짐승의 아귀에서 벗어날 비책을 제발 일러주시옵소서!"
산신령이 엎드린 훈장에게 바짝 다가와, 주변의 산짐승조차 듣지 못할 만큼 낮고 은밀한 목소리로 비책을 일러주었다.
"명심하고 또 명심하거라. 오늘 밤 그 요괴가 예의 그 고혹적인 자태로 다시 찾아와, 네 이성을 마비시키고 살을 섞으려 들 것이다. 그리고 절정에 다다를 무렵, 너와 입을 맞추고 구슬을 네 입안으로 깊숙이 밀어 넣겠지. 평소라면 네가 그 쾌락에 취해 구슬을 물고 있다가 다시 요괴의 혀끝으로 넘겨주었겠으나… 오늘 밤에는 구슬이 네 입에 들어오는 순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구슬을 너의 목구멍 깊숙이 꿀꺽 삼켜버려야 한다."
"구… 구슬을 제 뱃속으로 삼키란 말씀이시옵니까? 그 요괴의 독덩어리를 말입니까?"
"그렇다. 요괴가 너의 정수를 탐하듯, 네가 요괴의 백 년 정수를 통째로 빼앗는 것이다. 허나, 그 구슬을 삼키는 순간 오장육부가 불에 타는 듯한 끔찍한 고통이 뒤따를 것이다. 그리고 구슬을 삼킨 직후, 절대 방바닥에 쓰러져 고통을 호소해서는 안 된다. 곧장 방문을 박차고 나가 마당에 서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거라."
산신령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절대, 단 한 순간도 땅을 보아서는 아니 된다. 구슬을 품고 땅을 보면 땅의 이치만을 깨달아 푼돈이나 만지는 평범한 점쟁이나 풍수장이가 될 것이나, 밤하늘을 우러러 우주의 별빛을 눈에 담으면 천하의 모든 이치를 깨닫고 하늘의 지혜를 얻어 세상을 구원할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네가 구슬을 삼키면 요괴는 본력을 잃고 짐승의 모습으로 추락할 것이니, 오직 그것만이 네가 살 유일한 방도이니라."
말을 마친 산신령의 모습이 연기처럼 흩어지며, 훈장은 번쩍 눈을 떴다. 차가운 옹달샘 옆, 아침 이슬을 흠뻑 맞고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한 훈장의 눈빛에는 전에 없던 살기와 결연함이 서려 있었다. 그는 피투성이가 된 발로 다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늘 밤, 그 요괴의 혀를 뽑아버릴 작정이었다.
※ 3: 삼켜버린 붉은 구슬과 열려버린 하늘의 이치
다시 무거운 어둠이 내려앉은 서당. 평소라면 이불 위에 쓰러져 벌벌 떨고 있었을 훈장이지만, 오늘 밤은 달랐다. 그는 꼿꼿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 뚫어질 듯 방문의 창호지만을 노려보고 있었다. 두 주먹을 꽉 쥔 손바닥에는 식은땀이 흥건했고, 심장은 북을 치듯 광폭하게 뛰고 있었다. '구슬을 삼키고, 하늘을 본다. 구슬을 삼키고, 하늘을 본다… 절대 땅을 보지 않는다.' 머릿속으로 산신령의 당부를 천 번도 넘게 되뇌었다.
스르륵-
자시(子時)를 알리듯, 어김없이 문이 열리고 그 기이하도록 아름다운 여인이 방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오늘따라 여인의 눈빛은 이성을 잃은 맹수처럼 탐욕스럽게 번뜩였고,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화 향은 코를 찌를 듯이 진동하여 단숨에 방 안의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오늘 밤이 훈장의 마지막 정기를 취하여 자신의 천 년 요력을 완성하는 날임을, 요괴 스스로도 직감하고 흥분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서방님, 오늘은 어찌 이리 꼿꼿이 앉아 긴장하고 계시옵니까. 소첩이 그 굳어있는 몸을 아주 뼈마디까지 부드럽게 녹여드리겠사옵니다."
여인은 서늘하고도 억센 손으로 훈장의 목을 감아쥐고, 짐승처럼 거칠게 그를 방바닥으로 밀어 눕혔다. 평소의 부드럽고 교태 넘치며 서서히 사내를 녹여먹던 모습과 달리, 오늘은 다급하고 강압적이었다. 그녀의 옷고름이 신경질적으로 풀리며 눈부시게 하얀 어깨와 풍만한 젖가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훈장의 가슴 위로 무겁게 올라탄 여인은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그의 입술을 거칠게 탐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차가운 두 손이 훈장의 아랫도리를 거칠게 쓰다듬고, 그녀의 탐스러운 맨살이 훈장의 마른 몸에 밀착되어 끈적하게 비벼졌다. 두 사람의 타액이 질척하게 섞이고, 짐승 같은 숨결이 엉켰다. 훈장은 요괴가 이끄는 극강의 쾌락에 정신이 아득해지면서도, 필사적으로 이성의 끈을 붙잡고 때를 기다렸다. 이내 여인의 단전에서부터 무언가 비정상적으로 뜨거운 기운이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온다… 요괴의 정수, 그 구슬이 올라오고 있다!'
입술 틈을 비집고, 용광로의 쇳물처럼 뜨겁게 달아오른 붉은 구슬이 여인의 혀를 타고 훈장의 입안으로 굴러 들어왔다. 입천장이 다 까질 듯한 엄청난 열기였다. 평소라면 이 황홀하고도 고통스러운 감촉에 취해 멍하니 양기를 내어주었겠지만, 훈장은 두 눈을 부릅떴다. 여인이 훈장의 입안에 자리 잡은 구슬을 통해 그의 목숨 줄을 완전히 빨아들이기 위해 크게 숨을 들이마시려는 찰나였다.
"지금이다!"
훈장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자신의 혀를 강하게 말아 구슬을 목구멍 깊숙한 곳으로 힘껏 밀어 넣었다.
"꿀꺽-!"
목젖을 타고 묵직하고 펄펄 끓는 불덩어리가 넘어가는 끔찍한 감각. 구슬이 위장으로 떨어지는 순간, 훈장의 뱃속에서 폭약이 터진 듯한 엄청난 충격과 고통이 일어났다. 동시에 여인의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지며, 아름답던 얼굴이 경악과 분노로 무섭게 일그러졌다.
"이… 이것이 무슨 짓이냐! 내 구슬을, 나의 백 년의 정수를 당장 토해내지 못할까!"
아리따운 여인의 입에서 짐승의 쇳소리가 섞인 기괴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녀의 열 손가락 끝에서 날카로운 짐승의 발톱이 튀어나와 훈장의 목을 찢어버리려 달려들었다. 그러나 구슬을 삼킨 훈장의 몸에는 이미 요괴의 막대한 힘이 흘러들고 있었다. 훈장은 짐승 같은 괴력을 발휘해 자신을 덮치는 여인을 있는 힘껏 밀쳐내고 방문을 향해 몸을 던졌다.
우당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문창호지가 찢어지고 문살이 부서지며 훈장은 서당 마당으로 내동댕이쳐지듯 굴러떨어졌다. 뱃속이 시뻘건 숯불로 지져지는 듯한 엄청난 고통에 몸이 저절로 새우처럼 굽어지며 시선이 땅으로 향하려 했다.
'안 돼! 하늘… 하늘을 봐야 해! 땅을 보면 끝이다!'
허겁지겁 마당 흙바닥에 엎어진 훈장은 입에서 피거품을 뿜어내면서도, 목을 뒤로 꺾어 필사적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까만 밤하늘에는 수억 개의 별들로 이루어진 은하수가 눈이 시리도록 찬란하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 별빛이 훈장의 망막에 맺히는 순간이었다.
훈장의 뱃속에 자리 잡은 붉은 구슬이 폭발하듯 거대한 에너지를 뿜어내더니, 그 기운이 훈장의 척추를 타고 뇌수까지 단숨에 뻗어 올라갔다.
두 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우주의 무한한 빛. 그 별들의 움직임이 땅의 기운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바람의 흐름이 만물을 어떻게 살리고 죽이는지, 사람의 몸속을 흐르는 복잡한 기혈과 모든 질병의 근원이 무엇인지. 세상의 모든 비밀과 우주의 거대한 지혜가 거대한 폭포수처럼 훈장의 머릿속으로 미친 듯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훈장은 뇌가 부서질 듯한 엄청난 깨달음의 무게와 환희에 온몸을 부르르 떨며 포효했다.
"아아아아아-!"
하늘과 땅, 우주와 인간이 하나로 연결되는 거대한 진리를 깨우치며 훈장의 몸을 감싸고 있던 죽음의 그림자가 순식간에 걷히고, 막대한 생명력이 그의 핏줄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그때, 등 뒤의 부서진 방 안에서 뼈마디가 뒤틀리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짐승의 단말마가 터져 나왔다.
"끼이이이아아아악-!"
하늘의 이치를 완전히 깨우치고 거친 숨을 고르며 천천히 몸을 돌린 훈장. 그의 시선이 향한 어두운 방 안에는, 자신을 유혹하며 젖가슴을 부비던 아름다운 절세미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오직 털이 듬성듬성 빠진 채 피부가 썩어 들어가며 피를 토하고 있는 커다랗고 흉측한 늙은 붉은 여우 한 마리가 바닥을 긁으며 처참하게 경련하고 있을 뿐이었다. 요괴의 찬란했던 생명이, 그 지독했던 백 년의 집착과 탐욕이 마침내 비참한 끝을 향해 스러져가고 있었다.
※ 4: 쓰러진 요괴, 피어나는 연정과 처절하게 토해낸 구슬
밤하늘의 수많은 별빛이 은하수가 되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던 서당의 흙마당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기괴할 정도로 고요했다. 천지신명의 조화란 이런 것인가. 하늘의 이치를 깨닫고 우주의 거대한 지혜를 뇌수에 담게 된 훈장의 온몸은, 마치 번개를 맞은 듯 미세하고도 격렬하게 떨리고 있었다. 눈을 감아도 세상 만물의 흐름과 뭇 생명들이 태어나고 죽어가는 섭리가 생생하게 보였고, 귀를 막아도 바람이 품고 온 수백 리 밖 숲의 숨결과 대지의 고동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단전에 깊숙이 자리 잡은 붉은 여우 구슬은 화로 속에서 붉게 달아오른 숯불처럼 어마어마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뜨거운 기운은 훈장의 꽉 막혀 있던 기혈을 무자비하게 뚫고 지나가며, 요괴에게 뜯어 먹혀 바스라지기 직전이었던 그의 메마른 육신에 맹렬한 생명력과 사내로서의 양기를 폭발적으로 불어넣고 있었다. 터질 듯 팽팽해진 핏줄과 단단해진 근육, 그리고 머릿속을 가득 채운 우주의 진리에 훈장은 벅찬 환희를 느꼈다. 이것이 바로 산신령이 말한, 세상을 구원할 하늘의 지혜이자 거대한 힘이었다.
그러나 그 신선과도 같은 경이로운 환희는 아주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다. 훈장의 시선이 우수수 부서져 내린 창호지 문 너머, 짙은 어둠이 깔린 방바닥으로 향하는 순간, 그의 가슴은 커다란 돌덩이에 짓눌린 듯 턱 막히고 말았다. 불과 반 시진 전만 해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고혹적인 나신을 뽐내며 자신의 위에 올라타 거친 숨을 내뱉던 미색의 여인은 온데간데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백 년의 세월을 억지로 품어온 늙고 거대한 붉은 여우 한 마리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검붉은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구슬을 빼앗겨 천 년의 요력을 상실한 여우의 육신은 끔찍했다. 윤기가 흐르던 붉은 털은 듬성듬성 빠져 흉측한 살갗을 드러내고 있었고, 피부는 급격히 썩어 들어가는 듯 검게 말라비틀어지고 있었다. 한때 훈장의 몸을 유연하게 휘감았던 아홉 개의 꼬리는 생기를 완전히 잃은 채 먼지 구덩이 속에 처참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훈장은 자신도 모르게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부서진 문지방을 넘어 방 안으로 들어섰다. 이 흉물스러운 짐승은 불과 얼마 전까지 자신의 목숨을 앗아가려던 끔찍한 요괴였다. 당연히 복수심에 불타 통쾌하게 비웃어야 마땅할 터인데, 어찌 된 영문인지 훈장의 가슴 한구석이 칼로 저미는 듯 뻐근하게 아려왔다. 하늘의 이치를 깨달은 그의 혜안에는 이제 눈앞의 죽어가는 여우가 단순한 요괴나 짐승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 짐승이 그토록 사람이 되고자 했던 백 년의 처절한 세월이 내 눈앞에 아른거리는구나. 살을 에는 비바람을 맞으며 산짐승의 피로 연명하고, 인간들의 천대와 멸시 속에서도 오직 따뜻한 사람의 온기를 그리워하며… 그 캄캄하고 축축한 동굴 속에서 홀로 구슬을 닦고 또 닦아온 그 지독한 고독과 피눈물이 내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훈장은 천천히 무릎을 꿇고 쓰러져 경련하는 여우의 곁에 다가가 앉았다. 짐승의 목구멍에서 끓어오르는 거친 숨소리가 점차 잦아들고 있었다. 이대로 동이 터서 햇빛이 비치면, 여우는 한 줌의 재가 되어 흔적도 없이 흩어질 것이 자명했다. 훈장은 파르르 떨리는 손을 뻗어 여우의 거칠고 피 묻은 털을 어루만졌다. 놀랍게도 그 흉측한 여우의 몸에서, 매일 밤 자신의 품을 파고들며 이성을 마비시키던 그 서늘하고도 짙은 매화 향이 희미하게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 향기를 맡는 순간, 훈장의 머릿속으로 지난 수십일 간의 쾌락과 절망이 뒤섞인 밤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달빛 아래 신경질적으로 옷고름을 풀며 드러내던 여인의 눈부시게 하얀 목덜미와 풍만한 젖가슴. 귓가를 간지럽히며 아랫도리를 뻐근하게 만들던 나른하고 달콤한 속삭임. 죽음의 공포가 목을 조르는 와중에도, 그녀의 몸 안으로 파고들 때마다 미친 듯이 타올랐던 그 기괴하고도 황홀했던 정사(情事)의 감각들이 피부 위로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녀는 분명 자신의 진을 빼먹고 목숨을 앗아가려던 살육의 요괴였으나, 역설적이게도 훈장은 그녀와 땀을 흘리며 살을 섞고 질척한 입술을 포개던 그 밤들 속에서 평생 느껴보지 못한 깊은 애착과 맹렬한 사랑을 무의식중에 키워가고 있었다. 그녀가 앗아간 것은 사내의 얄팍한 기력만이 아니었다. 훈장의 영혼과 마음마저 송두리째 그녀의 서늘한 살결 속에 결박당해 버렸던 것이다.
'사람의 정기를 탐하는 요망한 흉물이라지만, 나를 품에 안고 헐떡이며 구슬을 넘겨주던 그 순간의 뜨거운 떨림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나를 자신의 천 년을 위한 제물로 삼으면서도, 그녀의 요염한 눈동자 속에는 늘 찰나의 슬픔과 지독한 연민이 일렁이고 있었지. 아아, 나는 이 짐승을, 나를 파멸로 몰아넣은 이 잔혹한 여인을 뼛속 깊이 사랑해 버렸구나.'
여우의 탁해진 두 눈에서 핏물이 섞인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려 방바닥을 적셨다. 자신을 다정하게 어루만지는 훈장의 손길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구슬을 빼앗아 간 사내를 원망하는 기색이나 분노는 조금도 없었다. 그저 백 년의 간절했던 꿈이 허망하게 부서진 것에 대한 깊은 체념과, 곁을 내어준 사내에 대한 슬픈 애정만이 담긴 맑은 눈동자였다.
그 애처로운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훈장의 가슴속에서 거대한 해일 같은 감정이 폭발하듯 일어났다. 이 여인을 이대로 죽일 수는 없다. 설령 내가 하늘을 찌르는 천하의 이치를 얻고 불로장생의 힘을 얻었다 한들, 이 밤의 끝에서 그녀가 재가 되어 내 곁에서 영원히 사라진다면 그따위 기나긴 삶과 지혜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안 된다… 이대로 널 보낼 수는 없다. 너의 백 년의 고독을, 나와 살을 맞대었던 그 뜨거운 밤들을 어찌 헛되이 흩어지게 두겠느냐."
훈장은 결심한 듯 두 눈을 부릅뜨고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리고 주저함 없이 자신의 입속으로 두 손가락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부드러운 목구멍을 거칠게 긁어내며 끔찍한 헛구역질이 시작되었다.
"우욱… 커어억…! 크윽!"
단전에 단단히 자리 잡은 구슬은 이미 훈장의 몸과 기혈에 완벽히 동화되어, 그와 하나가 되려 강렬하게 저항하고 있었다. 이 구슬을 다시 억지로 토해내는 것은 자신의 내장을 생으로 찢어 발기고 척추를 뽑아내는 것과 같은 필설로 다할 수 없는 끔찍한 고통을 수반했다. 입안 가득 비릿한 붉은 피가 차올랐고, 독한 위액이 역류하며 식도를 시뻘겋게 태우는 듯했다. 두 눈에는 핏발이 서고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으나, 훈장은 손가락을 더 깊이 쑤셔 넣으며 내장을 쥐어짜 냈다.
'네가 내게 주었던 그 미칠 듯이 뜨겁고 황홀했던 밤들을 어찌 잊겠느냐. 네가 살 수만 있다면, 네가 온전한 사람이 되어 내 곁에 숨 쉴 수만 있다면, 이깟 요괴의 구슬 따위 천 번, 만 번이라도 내어주마!'
눈알이 튀어나올 듯한 끔찍한 고통 속에서 훈장의 단전을 휘감고 있던 거대한 불덩어리가 서서히 목구멍을 타고 역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살점이 찢어지는 듯한 기괴한 소리와 함께 훈장의 입에서 영롱한 붉은빛을 뿜어내는 여우 구슬이 흥건한 피와 타액에 뒤섞인 채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구슬을 토해낸 훈장은 온몸의 기운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방바닥에 처참하게 고꾸라졌다. 그러나 그는 사력을 다해 벌벌 떨리는 팔로 바닥을 기어, 가쁜 숨을 몰아쉬는 여우의 피 묻은 주둥이 앞으로 다가갔다. 피비린내 나는 손으로 그 뜨거운 붉은 구슬을 쥐어, 헐떡이는 여우의 입안으로 조심스레, 그리고 깊숙이 밀어 넣었다.
"삼켜라… 어서 삼키고, 살아남아라. 나의 순수한 사내의 양기와 하늘의 거대한 기운이 섞인 이 새로운 구슬을 삼키고, 부디 사람이 되거라. 내 곁에서 영원한 여인이 되어 다오."
여우의 목구멍으로 구슬이 꿀꺽 넘어가는 순간, 짐승의 몸통 깊은 곳에서부터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찬란하고 눈부신 붉은빛이 화산처럼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낡은 서당 방 안을 가득 채우는 강렬한 빛의 소용돌이와 휘몰아치는 기운 속에서, 훈장은 끝내 의식을 잃고 깊고 평온한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 5: 사람으로 환생한 여우와의 애절한 정사, 그리고 신비한 의술의 전수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코끝을 부드럽게 간지럽히는 따스한 봄바람의 기운과, 거칠어진 볼을 애틋하게 어루만지는 보드라운 손길에 훈장은 천천히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찢어진 창호지 너머로는 어느덧 눈 부시게 밝은 아침 햇살이 방 안을 따스하게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훈장의 시선 끝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자태의 여인이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앉아 그를 애끓는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토록 훈장을 옭아매었던, 매일 밤 보았던 그 고혹적이고 치명적인 여인이었다. 그러나 완벽하게 달랐다. 서늘한 요기가 흘러넘치던 칠흑 같던 머리칼은 부드럽고 따뜻한 갈색빛을 띠며 어깨 위로 흘러내려 있었고, 시리도록 창백하여 소름이 돋던 피부에는 복숭아꽃처럼 화사하고 생기 넘치는 화색이 뺨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무엇보다 사내의 이성을 마비시키던 그녀의 요염한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던 서늘하고 탐욕스러운 요기는 온데간데없고, 오직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따뜻하고 맑은 수분이 맺혀 훈장을 깊은 애정으로 담아내고 있었다.
"서방님… 서방님, 눈을 뜨셨사옵니까."
여인의 입술을 타고 흘러나오는 목소리에는, 사내를 유혹하며 진을 빼놓던 요괴의 간드러진 비음 대신, 뼈에 사무치는 깊은 감격과 애절한 떨림이 가득 배어 있었다. 훈장은 아직 몽롱한 정신 속에서도 떨리는 손을 뻗어 여인의 고운 뺨을 쓰다듬었다. 손끝에 닿는 그녀의 살결은 놀랍도록 부드럽고, 화로의 온기처럼 따뜻했다. 더 이상 죽음의 냉기가 흐르고 시취가 풍기던 끔찍한 요괴의 살갗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피가 돌고 심장이 뛰는, 온전한 사람의 육신이었다.
"네가… 진정 사람이 된 것이냐. 그 지독한 요기의 굴레를 벗어던진 것이냐."
"모두 서방님께서 죽음을 각오하고 내어주신 그 은혜로운 구슬 덕분이옵니다. 서방님의 입을 통해 우주의 맑은 이치를 가득 머금은 구슬이 제 몸속으로 다시 들어오자, 백 년 동안 켜켜이 쌓여있던 탁하고 추악한 요기가 씻겨 내려가고 이리 온전한 사람의 몸을 얻게 되었사옵니다. 제게 새로운 생명을 잉태시켜 주신 제 목숨과 영혼, 그리고 이 뜨거운 몸뚱이는 이제 영원토록 모두 서방님의 것이옵니다."
여인의 맑은 두 눈에서 굵고 뜨거운 눈물이 뚝뚝 떨어져 훈장의 넓은 가슴팍을 흠뻑 적셨다. 훈장은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윗몸을 일으켜 여인을 자신의 품으로 으스러져라 끌어당겼다. 두 사람의 흉곽이 빈틈없이 맞닿고, 서로의 가슴속에서 세차게 뛰는 뜨거운 심장 박동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요괴와 제물의 관계로서 기력을 빼앗고 빼앗기던 생존의 사투가 아닌, 온전한 사내와 여인으로서 영혼의 밑바닥부터 나누는 진실된 첫 포옹이었다.
여인의 달아오른 체온은 훈장의 뼛속까지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던 지난밤들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눈 녹듯 녹여내었다. 훈장은 참을 수 없는 갈증을 느끼며, 짐승처럼 거친 숨을 헐떡이고는 여인의 붉고 촉촉한 입술을 탐욕스럽게 찾아 물었다. 지난밤들의 정사가 오직 양기를 빼앗기며 파멸과 죽음을 향해 미친 듯이 질주하는 파괴적이고 서늘한 쾌락이었다면, 아침 햇살이 축복처럼 쏟아지는 지금 이 순간 둘의 입맞춤은 서로의 영혼을 치유하고 생명의 온기를 나누는 성스럽고도 농밀한 의식과도 같았다.
훈장의 거칠고 단단해진 손길이 여인의 저고리를 부드럽게 벗겨내고, 매끄러운 어깨선과 풍만한 가슴을 타고 유연하게 흘러내렸다. 여인은 숨이 넘어갈 듯 달콤하고 교태로운 신음을 내뱉으며, 훈장의 튼실한 허리와 넓은 등을 두 팔로 힘껏 끌어안고 자신의 몸을 완전히 내어 맡겼다.
방 안을 무겁게 감돌며 사내를 최면에 빠뜨리던 서늘하고 독한 매화 향은 어느새 사라지고, 여인의 살결에서는 은은하면서도 아찔하게 달콤한 난초 향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서로의 온몸을 구석구석 핥고 빨며, 혀끝으로 피부의 결을 탐구하듯 두 사람은 그간의 상처와 고독을 씻어내었다. 사람이 된 여인의 몸 속은 요괴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부드럽고 델 듯이 뜨거웠으며, 그녀를 안는 훈장의 하반신은 하늘의 이치를 깨달은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하고 강인한 양기로 꼿꼿하게 서 있었다.
살과 살이 부딪히는 마찰음과 숨넘어가는 교성이 서당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훈장이 여인의 깊은 곳을 거칠게 파고들 때마다, 두 사람의 몸을 감싸고 도는 기운이 서로의 혈도를 자극하며 완벽한 음양의 조화를 이루었다.
오랜 시간 동안 뼛속까지 녹아내릴 듯한 뜨거운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고 난 뒤, 훈장의 단단한 가슴팍에 땀에 젖은 얼굴을 묻고 안긴 여인이 나른한 숨을 고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서방님, 저는 비록 사람의 온전한 몸을 얻어 요력을 잃었으나, 백 년 동안 심산유곡과 험한 산천초목을 누비며 몸으로 부딪혀 쌓아온 땅의 거대한 기운과 수만 가지 약초의 비결은 제 핏속에, 그리고 제 머릿속에 고스란히 살아 숨 쉬고 있사옵니다. 서방님께서는 어젯밤 밤하늘을 우러러 우주의 이치를 깨우치시어 사람 몸속을 흐르는 기혈과 오장육부의 병증을 꿰뚫어 보시는 신의 혜안을 얻으셨지요."
여인은 훈장의 가슴 위로 부드럽게 손가락을 미끄러뜨리며, 그의 단단한 복근과 혈 자리를 짚어 내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훈장의 몸속에서 짜릿한 기운이 맴돌았다.
"하늘의 이치를 꿰뚫어 병의 근원을 찾아내는 서방님의 그 위대한 눈과, 땅의 기운을 다루어 가장 완벽한 약재를 배합해 내는 소첩의 비방이 합쳐진다면… 이 세상에 감히 고치지 못할 병은 단 하나도 없을 것이옵니다. 저라는 미천한 짐승을 사람으로 살려주신 서방님의 그 크고 깊으신 은혜와 이 뜨거운 사랑을, 이제는 끔찍한 병마에 고통받고 죽어가는 가엾은 세상 사람들을 살리는 데 온전히 바치고 싶사옵니다."
그날부터 산속 깊은 곳의 낡은 서당은 더 이상 사서삼경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죽어가는 생명을 기적처럼 살려내는 비밀스럽고도 위대한 공간으로 변모했다. 훈장은 환자를 한 번 쓱 쳐다보고 가볍게 맥을 짚는 것만으로도, 그 환자의 오장육부 어디에 검은 병색이 깃들었으며 기가 어떻게 막혔는지를 귀신같이 짚어냈다. 그것은 산신령이 예언했던 대로 우주의 섭리를 읽어내는 하늘의 지혜였다.
그리고 곁에 선 여인은 묘향산 깊은 골짜기 절벽에서나 자라는 희귀한 독초와 약초들의 성질을 누구보다 완벽하게 통달하고 있었다. 훈장이 병의 원인과 혈 자리를 정확히 짚어주면, 여인은 백 년 묵은 여우로서 땅과 교감하던 동물적인 직감과 지식을 동원해 음양오행에 가장 알맞은 약초들을 절묘하게 배합하여 영약에 가까운 탕약을 달여 냈다.
밤이 되면 부부는 은은한 촛불만을 켜둔 채, 알몸으로 서로의 몸을 뜨겁게 탐구하며 인체의 신비로운 기혈을 연구했다. 여인은 훈장의 혈도를 입술과 손가락으로 짚어 내리며 기를 불어넣는, 방중술과 의술이 기묘하게 결합된 그녀만의 비법을 전수했고, 훈장은 그 짜릿한 쾌감 속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의학의 체계를 완벽하게 완성해 나갔다.
두 사람의 숨결이 진득하게 섞이고 뜨거운 살이 맞닿아 땀을 흘리는 매 순간순간이, 죽어가는 자를 살려낼 위대한 의술이 탄생하는 숭고하고도 관능적인 과정이었다. 훈장은 붓을 들어 서책에 신묘한 병증과 처방을 쉴 새 없이 기록했고, 여인은 곁에서 속살이 비치는 얇은 소복 차림으로 묵향을 풍기며 먹을 갈아주었다. 서방님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자신의 옷소매로 닦아주는 여인의 눈빛에는 세상을 향한 자비와 사내를 향한 지독한 애욕이 함께 묻어나고 있었다. 사내의 목숨을 갉아먹던 요괴의 끔찍한 유혹으로 시작된 파멸의 인연은, 어느새 세상을 구원할 조선 최고의 명의를 탄생시키는 가장 눈부시고 단단한 동반자의 연으로 묶여 있었다.
※ 6: 조선 최고의 명의가 된 훈장, 영원토록 뜨거운 백년해로
그로부터 십 년이라는 긴 세월이 강물처럼 흘렀다. 첩첩산중에서 내려와 한양 도성 한복판에서도 가장 목이 좋은 곳에 으리으리하게 자리 잡은 커다란 약방 앞은, 매일 아침 동이 트기 전부터 전국 팔도에서 몰려든 수백 명의 환자들과 가마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북적였다. 문지방을 넘기도 전에 숨이 멎어가는 송장도 탕약 한 모금이면 펄펄 뛰게 만든다는 조선 최고의 신의(神醫). 사람들은 그 의원을 가리켜 '천기(天氣)를 보고 혼을 부르는 의원'이라 부르며 신처럼 떠받들었다.
약방 안쪽 깊숙하고 고풍스러운 진료실, 중년의 중후한 티가 나기 시작했으나 여전히 범접할 수 없는 기품과 젊은 무관 못지않은 강건한 체격을 유지하고 있는 사내가, 얼굴이 흙빛이 된 부잣집 대감의 맥을 짚고 있었다. 바로 촌구석 서당에서 기침과 함께 피를 토하던 그 가엾은 훈장이었다.
"대감, 이 병은 겉으로는 단순한 해소병과 폐의 기운이 상한 듯 보이나, 실상은 평생 탐욕을 부리며 첩실들을 들이느라 아랫도리의 양기가 모두 빠져나가고 간에 쌓인 음흉한 울화가 화기(火氣)가 되어 정수리로 뻗친 탓이오. 한양의 돌팔이 의원들이 그저 기침을 멎게 한답시고 폐를 다스리는 탕약만 허구한 날 쏟아부었으니,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병이 나을 리가 있소."
훈장의 날카롭고도 거침없는 진단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진료실 뒤편의 화려한 주렴이 걷히며 코끝을 간지럽히는 은은하고 관능적인 난초 향과 함께 눈부시게 고운 자태의 안주인이 걸어 나왔다. 십 년의 세월이 무색할 만큼, 아니 오히려 세월의 농염함이 더해져 쳐다보는 사내들의 넋을 빼놓을 만큼 눈부신 미색을 간직한 그녀는, 훈장의 곁을 잠시도 떨어지지 않는 그의 끔찍한 조강지처였다. 부인의 하얗고 고운 두 손에는 이미 환자의 복잡한 병증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짙은 흑갈색의 탕약이 정갈한 백자 사발에 담겨 들려 있었다.
"이 약재는 첩첩산중 심산유곡에서 백 년의 정기를 머금은 적하수오와, 양기를 북돋는 웅담, 그리고 산삼의 잔뿌리를 땅의 습한 기운에 맞게 구중구포하여 달여낸 특효약이옵니다. 머리로 뻗친 화기를 아랫배로 내리고 간의 탁한 기운을 씻어내어 비어버린 양기를 채워줄 것이니, 이 탕약을 세 첩만 달여 드시면 밤에 첩실들 방 문지방이 닳도록 씻은 듯이 나을 것이옵니다."
부인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나른하고도 낭랑한 목소리는, 병에 지쳐 공포에 떨던 환자의 마음마저 스르르 녹여버릴 만큼 다정하고 매혹적이었다. 이렇게 부부가 호흡을 맞춰 내어준 약을 먹고 사경을 헤매던 환자가 불과 며칠 만에 툭툭 털고 일어나 지리산을 오르는 기적이 한양 바닥에서 매일같이 벌어졌다. 심지어 임금조차 내의원의 이름난 어의들을 모두 물리치고 이 부부를 대궐 깊숙한 편전으로 은밀히 불러들여 왕실의 병을 치료받고 금은보화를 하사할 정도였으니, 그들 부부의 부와 권세, 그리고 명예는 감히 하늘을 찌르고도 남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부부는 억수같이 쏟아지는 금괴와 비단 앞에서도 결코 교만해지거나 초심을 잃지 않았다. 돈이 없어 죽어가는 가난한 백성들에게는 곳간을 열어 돈을 받지 않고 귀한 약을 아낌없이 지어 주었으며, 역병이 도는 험한 촌락이라면 진흙탕 길도 마다하지 않고 두 손을 맞잡고 찾아가 병자들의 피고름을 직접 입으로 빨아내며 치료했다.
어느덧 하루 종일 밀려들던 진료가 모두 끝난 늦은 밤. 약방의 무거운 대문이 굳게 닫히고, 교교한 달빛만이 잘 가꾸어진 넓은 뒷마당을 은은하게 비추는 오붓한 시간. 훈장과 부인은 정원의 화려한 모란꽃 옆에 놓인 평상에 편안하게 마주 앉아, 값비싼 백자 호리병에 담긴 독한 향설주(香雪酒)를 나누어 마시고 있었다. 시원하고 달콤한 밤바람이 불어와 부인의 가볍게 흐트러진 갈색 머릿결과 얇은 비단 치맛자락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서방님, 오늘 하루도 그 많은 병자들의 기를 살피시느라 참으로 고단하셨지요. 이리 누워보시옵소서."
부인이 나긋한 미소를 지으며 평상 위로 다가와, 부드럽고 능숙한 손길로 훈장의 떡 벌어진 어깨와 굳은 목덜미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찌릿한 기운이 훈장의 피로를 눈 녹듯 씻어내렸다. 훈장은 호탕하게 껄껄 웃으며, 갑자기 부인의 얇은 손목을 낚아채어 짐승 같은 힘으로 끌어당겨 자신의 탄탄한 허벅지 위로 그녀를 살포시 앉혔다.
"네가 이리 밤마다 곁에서 내 양기를 보충해 주고 주물러 주는데 무엇이 고단하겠느냐. 그 옛날, 첩첩산중 무너져가는 촌구석 서당에서 발정 난 요괴의 모습으로 내 옷고름을 풀며 피가 마르도록 내 기력을 쪽쪽 빨아먹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 이리 내 위에 올라탄 널 안고 있는 것은 신선놀음이 따로 없지."
훈장의 짓궂고도 노골적인 농담에 부인은 요염하게 눈웃음을 치며 얼굴을 붉히고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그의 넓은 가슴팍을 가볍게 꼬집었다.
"어머머, 서방님도 참. 언제 적 해묵은 이야기를 아직도 들추어내며 소첩을 놀리시는 겁니까. 그 요망한 여우의 살결에 홀려 좋다고 헐떡이며 숨이 넘어가시던 사내가 대체 누구셨더라요? 소첩이 그 밤에 기력을 어찌나 빼드렸는지, 기침하시며 토해내시던 피가 사발로 한가득이셨지요."
"허허, 춘정에 눈이 멀어 내 숨이 꼴깍 넘어가 송장이 될 뻔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나… 결국 내 뱃속에 들어온 그 펄펄 끓어오르는 붉은 구슬을 생살을 찢는 고통 속에 토해내어 널 살려내고 이불 속으로 다시 끌어들인 것도 나 아니더냐!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날 밤 하늘의 이치만 덜렁 안 채 산속에서 홀로 늙어 죽은 늙은이가 되었을 것이고, 내가 아니었다면 너는 필시 꼬리 아홉 개 달린 흉측한 털가죽만 남긴 채 한 줌 재가 되어 바람에 흩어졌겠지."
장난스럽게 웃던 훈장의 눈빛이 이내 깊은 밤바다처럼 진지하고 끈적하게 변했다. 그는 부인의 얇은 저고리 고름을 한 손으로 스르륵 풀어헤치며, 달아오른 그녀의 뺨을 두 손으로 소중하게 감싸 쥐었다. 그리고 촉촉하게 젖어있는 그녀의 붉은 입술을 거칠게 탐하며 깊은 입맞춤을 나누었다.
"내 목숨을 갉아먹으며 피 말리게 하던 요괴가, 세상을 구하는 명의가 되게 해주고, 매일 밤 이토록 내 혼을 쏙 빼놓는 둘도 없는 완벽한 반려가 될 줄 그 누가 알았겠느냐. 참으로 기이하고도 미치도록 고마운 인연이로다."
입술을 떼어낸 부인 역시 숨을 헐떡이며, 훈장의 굵은 목을 두 팔로 단단히 껴안고 그의 뜨거운 품속 깊이 파고들었다. 그녀의 맨살이 훈장의 가슴팍에 밀착되었다.
"소첩이 어두운 동굴에서 구슬을 닦으며 꿈꾸었던 천 년의 요력보다, 이렇게 사람의 몸으로 서방님의 품에 안겨 살을 섞고 같은 날 늙어가는 이 하루하루의 밤이 만 배, 십만 배는 더 황홀하고 행복하옵니다. 죽어 백골이 진토 되는 그날까지, 아니 환생을 거듭해서라도 서방님의 곁에서 약을 달이고 이리 밤마다 속살을 부비며 영원토록 서방님을 모시고 살겠사옵니다."
달빛 아래, 두 사람의 그림자가 평상 위에서 하나로 농밀하게 포개어졌다. 한때 죽음과 탐욕, 그리고 서늘한 요기가 오가던 기괴한 정사의 기운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병든 세상을 살려내는 숭고한 의술의 기운과 서로를 향해 끓어오르는 지독하리만치 깊고 뜨거운 인간의 사랑만이 헐떡이는 두 사람을 부드럽게 감싸 안고 있었다.
무한한 하늘의 이치와 생명을 품은 땅의 기운이 만나 비로소 세상을 이롭게 하듯, 어리석었던 서당 훈장과 백 년 묵은 요망한 붉은 여우의 이야기는, 인간 세상에서 가장 애절하고 관능적이며 눈부신 전설이 되어 오랫동안 후세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들은 밤마다 지치지 않는 사랑을 나누며 그 누구보다 평화롭고 행복하게 백년해로하였다고 전해진다.
유튜브 엔딩멘트
"목숨을 건 쾌락에서 시작된 인연이 결국 세상을 살리는 기적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요괴마저 감화시킨 한 사내의 희생과 사랑, 오늘 이야기는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이들처럼 뜨거운 사랑과 기적이 피어나길 바랍니다. 이야기가 흥미로우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잊지 마시고요! 다음 시간에도 가슴 먹먹하고 기묘한 이야기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편안한 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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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화면 비율 16:9, 컬러펜슬화, 텍스트 없음.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초가집 서당의 열린 문틈으로 은은한 호롱불빛이 새어 나온다. 방 안에는 상투를 튼 젊고 콧대 높은 선비(훈장)와 쪽진 머리에 화려하고 고혹적인 한복을 입은 절세미녀(여우 요괴)가 서로 애틋하게 끌어안고 입을 맞추기 직전의 모습. 두 사람 사이로 붉고 영롱하게 빛나는 구슬이 공중에 떠 있다. 전체적으로 신비롭고 관능적이면서도 아련한 로맨스 판타지의 분위기.
[영어]
16:9 aspect ratio, colored pencil drawing, no text. Set in the Joseon Dynasty, dim light leaks from the open door of a traditional thatched-roof schoolhouse. Inside the room, a young, handsome scholar with a topknot (Sangtu) and an absolutely beautiful woman (fox demon) with neatly braided updo hair (Jjokjin meori) in an elegant and alluring Hanbok are holding each other affectionately, right before a kiss. Between them, a glowing, brilliant red bead floats in the air. The overall atmosphere is mysterious, sensual, yet melancholic romance fantasy.
1-1]
화면 비율 16:9, 수채화, 텍스트 없음. 조선시대 깊은 산속의 고요한 서당 외경. 달빛이 차갑게 내려앉은 초가집, 방 안에서 새어 나오는 흔들리는 호롱불빛.
16:9 aspect ratio, watercolor painting, no text. The exterior of a quiet schoolhouse deep in the mountains during the Joseon Dynasty. A thatched-roof house under cold moonlight, flickering oil lamp light seeping from the room.
1-2]
화면 비율 16:9, 수채화, 텍스트 없음. 서당 방 안, 야위고 병약해 보이는 상투 튼 선비(훈장)가 서책을 쥐고 앉아있고, 문이 열리며 아름다운 한복 차림의 여인이 들어오는 실루엣.
16:9 aspect ratio, watercolor painting, no text. Inside the schoolhouse room, a gaunt and sickly-looking scholar with a topknot sits holding a book, the silhouette of a beautiful woman in Hanbok entering through the opening door.
1-3]
화면 비율 16:9, 수채화, 텍스트 없음. 여인이 선비의 무릎에 기대어 안겨 있는 모습. 고혹적인 미소를 짓는 여인과 저항하지 못하는 선비의 애틋한 분위기.
16:9 aspect ratio, watercolor painting, no text. The woman leaning and resting in the scholar's lap. The affectionate atmosphere of the woman smiling alluringly and the scholar unable to resist.
1-4]
화면 비율 16:9, 수채화, 텍스트 없음. 입을 맞추는 두 사람 사이로 신비하게 빛나는 붉은 구슬이 넘어가는 몽환적인 묘사.
16:9 aspect ratio, watercolor painting, no text. A dreamlike depiction of a mysteriously glowing red bead passing between the two people as they kiss.
1-5]
화면 비율 16:9, 수채화, 텍스트 없음. 새벽녘, 홀로 남아 식은땀을 흘리며 방바닥에 쓰러져 가쁜 숨을 몰아쉬는 선비의 고통스러운 모습.
16:9 aspect ratio, watercolor painting, no text. At dawn, the scholar left alone, sweating cold sweat, collapsed on the floor, gasping for breath in pain.
2-1]
화면 비율 16:9, 수채화, 텍스트 없음. 지팡이에 의지해 험준하고 안개 낀 산(묘향산)을 힘겹게 오르는 상투 튼 선비의 뒷모습.
16:9 aspect ratio, watercolor painting, no text. The back of the scholar with a topknot struggling to climb a rugged, foggy mountain (Myohyangsan) leaning on a walking stick.
2-2]
화면 비율 16:9, 수채화, 텍스트 없음. 깎아지른 절벽 아래 맑은 옹달샘 앞에 피투성이가 된 발로 쓰러져 있는 선비.
16:9 aspect ratio, watercolor painting, no text. The scholar collapsed with bloody feet in front of a clear spring under a steep cliff.
2-3]
화면 비율 16:9, 수채화, 텍스트 없음. 눈부신 백색 빛과 함께 나타난 길고 흰 수염의 산신령이 지팡이를 들고 선비를 내려다보는 신비로운 장면.
16:9 aspect ratio, watercolor painting, no text. A mysterious scene where a mountain spirit with a long white beard holding a staff appears with blinding white light and looks down at the scholar.
2-4]
화면 비율 16:9, 수채화, 텍스트 없음. 산신령이 엎드린 선비에게 다가가 은밀하게 귓속말로 비책을 알려주는 모습.
16:9 aspect ratio, watercolor painting, no text. The mountain spirit approaches the prostrate scholar and secretly whispers a hidden plan into his ear.
2-5]
화면 비율 16:9, 수채화, 텍스트 없음. 아침 이슬을 맞고 깨어난 선비의 눈빛에 결연함이 서려 있는 클로즈업 묘사.
16:9 aspect ratio, watercolor painting, no text. A close-up description of the scholar waking up covered in morning dew, with determination in his eyes.
3-1]
화면 비율 16:9, 수채화, 텍스트 없음. 다시 밤이 된 서당. 꼿꼿이 앉아 긴장한 표정으로 방문을 노려보는 선비.
16:9 aspect ratio, watercolor painting, no text. The schoolhouse at night again. The scholar sitting upright, staring at the room door with a tense expression.
3-2]
화면 비율 16:9, 수채화, 텍스트 없음. 탐욕스러운 눈빛의 여인이 선비를 거칠게 방바닥으로 밀어 눕히는 관능적이면서도 위압적인 장면.
16:9 aspect ratio, watercolor painting, no text. A sensual yet overpowering scene where a woman with greedy eyes roughly pushes the scholar down to the floor.
3-3]
화면 비율 16:9, 수채화, 텍스트 없음. 두 사람이 입을 맞추는 순간, 선비가 눈을 부릅뜨고 붉은 구슬을 꿀꺽 삼키려는 찰나의 역동적인 모습.
16:9 aspect ratio, watercolor painting, no text. The dynamic moment when the two kiss, the scholar opens his eyes wide and is about to swallow the red bead.
3-4]
화면 비율 16:9, 수채화, 텍스트 없음. 구슬을 빼앗긴 여인이 경악하며 비명을 지르고, 선비가 방문을 부수며 마당으로 굴러떨어지는 장면.
16:9 aspect ratio, watercolor painting, no text. The woman, deprived of the bead, screams in horror, and the scholar breaks the room door and rolls into the yard.
3-5]
화면 비율 16:9, 수채화, 텍스트 없음. 마당에 엎어진 선비가 찬란한 은하수가 쏟아지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우주의 지혜를 깨닫는 경이로운 모습.
16:9 aspect ratio, watercolor painting, no text. A wondrous sight of the scholar lying in the yard, looking up at the night sky filled with a brilliant galaxy, realizing the wisdom of the universe.
4-1]
화면 비율 16:9, 수채화, 텍스트 없음. 하늘의 이치를 깨달은 선비가 방 안을 들여다보자, 털이 빠진 거대한 늙은 붉은 여우가 쓰러져 있는 모습.
16:9 aspect ratio, watercolor painting, no text. As the scholar who realized the principles of heaven looks into the room, a giant old red fox with missing fur lies collapsed.
4-2]
화면 비율 16:9, 수채화, 텍스트 없음. 선비가 죽어가는 여우의 곁에 무릎을 꿇고 애틋한 표정으로 거친 털을 쓰다듬는 장면.
16:9 aspect ratio, watercolor painting, no text. The scholar kneels beside the dying fox and strokes its rough fur with an affectionate expression.
4-3]
화면 비율 16:9, 수채화, 텍스트 없음. 뱃속의 구슬을 꺼내기 위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입안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헛구역질하는 선비.
16:9 aspect ratio, watercolor painting, no text. The scholar puts his fingers in his mouth and gags with a painful expression to take out the bead from his stomach.
4-4]
화면 비율 16:9, 수채화, 텍스트 없음. 선비의 입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붉은 구슬이 피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지는 극적인 순간.
16:9 aspect ratio, watercolor painting, no text. The dramatic moment when the brilliantly shining red bead falls to the floor along with blood from the scholar's mouth.
4-5]
화면 비율 16:9, 수채화, 텍스트 없음. 기진맥진한 선비가 헐떡이는 붉은 여우의 입안으로 붉은 구슬을 밀어 넣으며 빛이 뿜어져 나오는 장면.
16:9 aspect ratio, watercolor painting, no text. An exhausted scholar pushing the red bead into the mouth of a panting red fox, with light bursting out.
5-1]
화면 비율 16:9, 수채화, 텍스트 없음. 아침 햇살이 비치는 방 안, 선비가 눈을 뜨자 요기가 사라진 따뜻하고 아름다운 인간 여인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다.
16:9 aspect ratio, watercolor painting, no text. In a room illuminated by morning sunlight, as the scholar opens his eyes, a warm and beautiful human woman devoid of demonic energy looks down at him.
5-2]
화면 비율 16:9, 수채화, 텍스트 없음. 인간이 된 여인과 선비가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뜨겁게 끌어안는 애절하고 감동적인 장면.
16:9 aspect ratio, watercolor painting, no text. A sorrowful and touching scene where the woman who became human and the scholar embrace each other passionately while shedding tears.
5-3]
화면 비율 16:9, 수채화, 텍스트 없음. 따스한 난초 향이 감도는 방 안에서, 선비와 여인이 부드럽고 깊은 입맞춤을 나누는 로맨틱한 모습.
16:9 aspect ratio, watercolor painting, no text. A romantic view of the scholar and the woman sharing a soft and deep kiss in a room filled with a warm orchid scent.
5-4]
화면 비율 16:9, 수채화, 텍스트 없음. 여인이 산속의 희귀한 약초들을 선비에게 보여주며 땅의 기운과 의술을 설명하는 모습.
16:9 aspect ratio, watercolor painting, no text. The woman showing rare mountain herbs to the scholar and explaining the energy of the earth and medical arts.
5-5]
화면 비율 16:9, 수채화, 텍스트 없음. 촛불을 켠 방 안, 여인이 먹을 갈고 선비가 붓을 들어 의학 서책을 집필하는 숭고한 부부의 모습.
16:9 aspect ratio, watercolor painting, no text. In a room lit by candles, a sublime image of the couple where the woman grinds ink and the scholar holds a brush to write a medical book.
6-1]
화면 비율 16:9, 수채화, 텍스트 없음. 십 년 후 한양 도성, 사람들로 북적이는 크고 웅장한 조선시대 약방의 활기찬 외경.
16:9 aspect ratio, watercolor painting, no text. Ten years later in Hanyang city, the lively exterior of a large and grand Joseon Dynasty pharmacy crowded with people.
6-2]
화면 비율 16:9, 수채화, 텍스트 없음. 중년의 기품이 흐르는 명의(선비)가 진지한 표정으로 병자의 맥을 짚고 진맥하는 모습.
16:9 aspect ratio, watercolor painting, no text. A dignified middle-aged renowned physician (the scholar) taking the pulse of a patient with a serious expression.
6-3]
화면 비율 16:9, 수채화, 텍스트 없음. 여전히 아름다운 부인(전직 여우)이 정성스럽게 덖은 탕약을 들고 진료실로 걸어 나오는 단아한 자태.
16:9 aspect ratio, watercolor painting, no text. The graceful figure of the still beautiful wife (former fox) walking into the clinic holding carefully roasted herbal medicine.
6-4]
화면 비율 16:9, 수채화, 텍스트 없음. 밤이 깊은 약방 뒷마당, 달빛 아래 평상에 앉아 다정하게 술잔을 기울이는 부부.
16:9 aspect ratio, watercolor painting, no text. In the backyard of the pharmacy late at night, the couple affectionately sharing a drink sitting on a wooden bench under the moonlight.
6-5]
화면 비율 16:9, 수채화, 텍스트 없음. 선비가 부인을 무릎에 앉히고 뺨을 어루만지며 입을 맞추는, 평화롭고 영원한 사랑을 암시하는 아름다운 엔딩 장면.
16:9 aspect ratio, watercolor painting, no text. A beautiful ending scene hinting at peaceful and eternal love, where the scholar sits his wife on his lap, strokes her cheek, and kisses 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