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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죄수와 여옥졸의 밀약 『청구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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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억울한 살인 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날만 기다리던 선비. 차디찬 감옥 안, 절망에 빠진 그의 곁으로 젊은 과부 여옥졸이 은밀히 스며듭니다. "선비님의 억울함을 압니다. 제 모든 것을 바칠 테니, 살아남아 부디 저를 잊지 마십시오." 죽음의 문턱에서 뜨겁게 살을 맞대며 맺은 두 사람의 목숨을 건 언약. 차가운 철창 안에서 피어난 아찔하고 애틋한 하룻밤, 그리고 시작되는 통쾌한 반격의 이야기가 지금 펼쳐집니다.
※ 1: 악독한 사또의 죄를 뒤집어쓴 선비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고 천둥번개가 고을의 밤하늘을 무자비하게 찢어발기던 어느 그믐밤이었다. 평화로워야 할 조선 남부의 이 작은 고을은, 겉으로만 고요할 뿐 속으로는 이미 썩어 문드러진 지 오래였다. 그 중심에는 고을의 백성들을 제 발밑의 버러지처럼 여기며 고혈을 짜내는 악독한 사또, 최학수가 있었다. 그는 부임한 이래 수많은 백성의 재물을 갈취하고, 어여쁜 여인이라면 유부녀와 처녀를 가리지 않고 제 수청을 들게 만드는 희대의 색마이자 탐관오리였다. 사또의 탐욕스러운 시선이 이번에 머문 곳은, 고을에서 제일가는 만석꾼인 김 진사의 재산과 그가 최근에 새로 들인 젊고 아름다운 첩실이었다.
어둠이 짙게 깔린 깊은 밤, 굵은 빗줄기를 뚫고 복면을 쓴 한 무리의 사내들이 김 진사의 안채 담장을 소리 없이 넘었다. 그들의 선두에는 시퍼렇게 날이 선 비수를 든 최 사또가 서 있었다. 번개가 칠 때마다 복면 사이로 번뜩이는 그의 눈빛은 이미 탐욕에 미쳐 번들거리고 있었다. 안방 문을 부수고 들이닥친 사또는, 비명을 지르며 반항하는 김 진사의 가슴팍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비수를 깊숙이 꽂아 넣었다. 피가 쿨럭이며 쏟아져 나와 비단 이부자리를 붉게 물들였고, 젊은 첩실은 공포에 질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구석에서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사또는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아 헐떡이는 김 진사의 심장에 다시 한번 칼을 쑤셔 박고는, 비릿한 피 냄새를 맡으며 짐승처럼 기괴한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완전 범죄를 꿈꾸며 서둘러 담장을 다시 넘으려던 사또의 완벽한 흉계는, 뜻밖의 인물과 마주치며 암초에 부딪히고 말았다. 고을 외곽의 서당에서 가난한 아이들에게 늦은 밤까지 천자문을 가르치고 돌아가던 대쪽 같은 선비, 이명원이었다. 갈기갈기 찢어진 우산을 받쳐 들고 진흙탕 길을 걷던 이명원은, 담장을 훌쩍 뛰어넘어 골목길로 착지하는 복면 쓴 무리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번쩍하는 번갯불이 골목을 환하게 밝히는 찰나, 이명원의 맑고 올곧은 두 눈과 빗물에 씻겨 내려가는 피 묻은 비수를 든 최 사또의 섬뜩한 눈빛이 허공에서 날카롭게 부딪혔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렸으나, 이명원은 그 특유의 체구와 번들거리는 눈빛만으로도 그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채고 말았다.
'저, 저 자는 최 사또가 아닌가! 저 피 묻은 칼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경악으로 굳어버린 이명원을 향해, 사또는 찰나의 당황함을 숨기고 이내 뱀처럼 교활한 눈웃음을 지으며 어둠 속으로 쏜살같이 사라졌다. 그것이 비극의 서막이었다.
다음 날 아침, 빗방울이 채 마르기도 전에 고을 관아의 포졸들이 떼를 지어 이명원의 허름한 초가집 문을 박살 내며 들이닥쳤다. 영문도 모른 채 방 안에서 책을 읽고 있던 이명원은 무자비한 몽둥이질과 함께 밧줄로 꽁꽁 묶여 진흙 바닥으로 끌려 나왔다. 온 동네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가운데, 이명원은 짐승처럼 끌려가 관아의 넓은 마당 한가운데에 무릎이 꿇려졌다. 그의 앞에는 간밤에 사또가 김 진사의 심장을 찌를 때 썼던, 핏자국이 선명하게 들러붙은 끔찍한 비수가 증거물인 양 내동댕이쳐졌다. 단상 위에 오만하게 다리를 꼬고 앉은 최 사또가 입가에 비열한 미소를 띠며 호통을 쳤다.
"네 이놈! 찢어지게 가난한 주제에 평소 부유한 김 진사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네놈이, 간밤에 몰래 그의 안채로 스며들어 그를 잔혹하게 난자하여 죽인 것을 내 이미 낱낱이 알고 있거늘! 어찌 감히 살인마의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관장을 능멸하려 드느냐! 저놈의 주리를 틀고 정강이뼈를 부수어 당장 그 더러운 입에서 자백을 받아내어라!"
그 뻔뻔하고 후안무치한 호통에 이명원은 핏발 선 두 눈을 부릅뜨고 고개를 쳐들었다.
"사또! 어찌 하늘이 두렵지도 않으십니까! 간밤에 살의를 품고 시퍼런 흉기를 든 채 김 진사 댁 담장을 넘은 것은 바로 사또와 그 수하들이 아니었습니까!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거늘, 어찌하여 무고한 백성에게 끔찍한 살인죄를 뒤집어씌우려 하십니까! 하늘의 천벌이 두렵지 않단 말입니까!"
"이놈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제 목숨을 부지하겠다고 감히 이 고을의 원님을 모함해? 여봐라! 저 주둥이를 찢어발기고, 저놈의 정강이뼈가 으스러져 가루가 될 때까지 쳐라! 당장 쳐라!"
사또의 광기 어린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건장한 형리들이 달려들어 이명원의 두 다리 사이에 굵은 주장장(주리를 트는 막대기)을 끼워 넣고 양쪽에서 거세게 비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짐승의 비명 같은 끔찍한 단말마가 관아 마당을 찢어놓았다. 살점이 무참히 뜯겨 나가고 정강이뼈가 어긋나며 우두둑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때렸지만, 이명원은 피가 흐르는 입술을 짓이기며 끝끝내 거짓 자백을 거부했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피를 토하는 그의 모습에 장마당에 모인 백성들은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돌렸으나, 사또에게 매수되어 뇌물을 두둑이 챙긴 거짓 증인들이 줄줄이 기어 나와 이명원을 끔찍한 살인마로 몰아세우는 거짓 증언을 쏟아냈다. 결국 이명원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극악무도한 사형수가 되어,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차갑고 축축한 지하 옥사 바닥으로 쓰레기처럼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온몸의 뼈마디가 부서지고 살가죽이 벗겨진 채 썩은 볏짚 위에 내팽개쳐진 이명원은, 억울함과 분노로 점철된 붉은 피눈물을 흘렸다.
'이대로 억울하게 죽을 수는 없다... 이대로 저 악마 같은 놈의 손에 내 목숨을 잃고 살인귀의 오명을 뒤집어쓸 수는 없다... 하늘이시여, 정녕 이 썩어빠진 세상에 진실을 밝혀줄 빛은 단 한 줌도 없단 말입니까.'
깊은 어둠 속으로 서서히 가라앉는 그의 의식 속에서, 죽음의 그림자가 차갑게 목을 조여오고 있었다.
※ 2: 상처를 어루만지는 여옥졸 옥단의 손길
지하 옥사에 갇힌 지 사흘의 시간이 지났다. 쥐새끼들이 찍찍거리며 썩은 볏짚 사이를 기어 다니고, 축축한 이끼와 시큼한 핏자국 냄새가 진동하는 그곳은 산 자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살아있는 지옥 그 자체였다. 사형 집행일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끔찍한 고문을 견뎌냈던 이명원의 숨결은 하루가 다르게 옅어져 갔다. 매질로 터진 등짝과 주리를 틀린 다리의 상처에서는 시뻘건 피와 누런 고름이 엉겨 붙어 흘러내렸고, 물 한 모금 제대로 넘기지 못한 육신은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위태롭게 식어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사형장으로 끌려가기도 전에 차가운 옥사 바닥에서 억울한 원귀가 되어버릴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 지독하고 끔찍한 절망의 공간에, 유일하게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는 한 줄기 빛 같은 이가 있었다. 관아에 속하여 여죄수들을 관리하고 옥바라지를 돕는 관비 출신의 젊은 여옥졸, 옥단이었다. 아직 스무 살의 고운 테를 벗기도 전에 가난한 남편을 병으로 잃고 과부가 된 그녀는, 어릴 적부터 관아의 옥사를 제집처럼 들락거리며 이 고을의 썩어빠진 생리와 권력자들의 추악한 민낯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목격해 온 여인이었다.
옥단은 이명원이 끌려오던 첫날부터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있었다. 그토록 맑고 올곧은 눈동자를 가진 사내가,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며 고을 백성들의 존경을 받던 선비가 돈을 노리고 사람을 잔혹하게 찌를 리 만무했다. 여인들의 몸을 탐욕스럽게 훑어 내리던 사또의 뱀 같은 눈빛을 수없이 겪어보았던 옥단에게, 이 사건의 진실은 보지 않아도 너무나 자명한 것이었다. 이명원은 그저 힘없고 배경 없는 탓에 사또의 완벽한 희생양으로 던져진 가엾은 먹잇감일 뿐이었다.
깊은 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간수들이 독한 화로 앞에 모여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틈을 타, 옥단은 조심스럽게 감옥의 좁은 복도를 미끄러지듯 걸어 들어왔다. 그녀의 한 손에는 희미하게 타오르는 작은 호롱불이, 다른 한 손에는 고름을 짜내고 덧난 살을 달래줄 약초를 짓이긴 사발이 들려 있었다. 녹슨 자물쇠를 조심스레 열고 옥방 안으로 스며든 그녀는, 피투성이가 된 채 웅크리고 있는 이명원의 곁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선비님... 선비님, 의식을 놓으시면 아니 됩니다. 제발 눈 좀 떠보시어요. 상처에 약을 좀 발라야 진물이 덧나지 않고 열이 내립니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가냘프고도 다급한 목소리에, 이명원은 천근만근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밀어 올렸다. 희미하게 일렁이는 호롱불 빛 아래로, 수심과 연민이 가득 고인 옥단의 희고 고운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녀는 주저 없이 이명원의 피에 젖어 굳어버린 도포 자락을 조심스럽게 들추어냈다. 찢어진 살점들이 엉겨 붙어 옷을 떼어낼 때마다 끔찍한 고통이 밀려왔지만, 옥단은 따뜻한 물에 적신 부드러운 무명천으로 그의 상처를 닦아내며 끊임없이 입김을 불어주었다. 그녀의 보드랍고도 서늘한 손길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른 사내의 살갗에 조심스레 닿을 때마다, 이명원은 자신도 모르게 억눌린 신음을 뱉어냈다.
"으윽... 흐윽..."
"참으셔야 합니다. 조금만 참으시어요. 저 썩어빠진 최 사또의 악행은 고을 사람들이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선비님께서 억울한 누명을 쓰셨다는 것도 속으로는 다들 알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사옵니다."
옥단의 커다란 눈망울에서 결국 참지 못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져 이명원의 피맺힌 가슴팍을 적셨다. 이명원은 힘겹게 팔을 뻗어 약을 바르는 그녀의 손목을 가만히 움켜쥐었다.
"안다 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이오. 나는 내일모레면 목이 달아날 대역 죄인일 뿐이오. 이러다 발각이라도 되면 그대마저 험한 꼴을 당할 터이니, 어서 약사발을 거두고 나가시오."
이명원이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옥단은 오히려 그의 거칠고 차가운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안으며 뺨을 비비적거렸다.
"이대로 억울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저는 태어나 평생을 천것으로 살며, 양반들의 권력에 짓밟히고 희롱당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선비님은 다릅니다. 이 고을에서 저를 벌레가 아닌 사람으로, 여인으로 따뜻하게 바라봐 주신 분은 선비님 한 분뿐이셨습니다. 선비님은 반드시 살아서 저 악마 같은 사또의 목을 치고, 억울한 백성들의 피눈물을 닦아주셔야 할 분입니다."
그녀의 눈빛은 절망이 가득한 지하 옥사 안에서도 밤하늘의 별처럼 단단하고 명징하게 빛나고 있었다. 평생 서책만을 벗 삼아 꼿꼿하게 살아온 선비의 굳게 닫힌 가슴 한구석에, 처음 마주하는 여인의 이토록 맹렬한 강인함과 순수한 연민이 뜨거운 불씨가 되어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 여인은 대체 무엇이관대... 생면부지의 사형수에게 이토록 제 목숨을 걸며 다가오는가.'
서로의 애절한 시선이 허공에서 얽히고설켰다. 차디찬 옥방 안, 썩은 짚 더미 위로 무거운 침묵이 흘렀지만, 서로를 마주 보는 두 남녀의 심장 박동만이 묘하고도 강렬하게 공명하며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고 있었다.
※ 3: 캄캄한 감옥 안에서 섞이는 뜨거운 숨결
사형 집행을 불과 이틀 앞둔 늦은 밤. 감옥 밖에서는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이 불어와 창살을 거세게 흔들고 있었고, 옥사 안의 공기는 마치 얼음골처럼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기척 없이 이명원의 옥방 문을 열고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온 옥단의 숨결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가쁘고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녀의 떨리는 두 손에는 무거운 감옥의 이중 문을 모두 열 수 있는 커다란 무쇠 열쇠 꾸러미가 단단히 쥐어져 있었다. 발각되는 즉시 형장으로 끌려가 처참하게 능지처참을 당할 것이 뻔한, 목숨을 건 반역의 물건이었다.
"선비님... 선비님, 일어날 기력이 있으십니까."
숨을 헐떡이며 다가온 옥단을 보며 이명원은 소스라치게 놀라 상체를 일으켰다. 달빛조차 스며들지 않는 어둠 속이었지만, 찰랑거리는 열쇠 꾸러미의 쇳소리는 너무나도 명확했다.
"옥단아... 네가 정녕 미친 것이냐. 그 열쇠는 어찌 된 것이란 말이냐!"
"조용히 하셔요. 내일 밤 삼경(밤 11시~1시)에, 간수들이 마시는 술독에 짐승도 쓰러뜨린다는 독한 수면초를 잔뜩 타 놓을 것입니다. 사또가 내린 술이라 속이면 의심 없이 마실 겝니다. 모두가 정신을 잃고 깊이 잠들면, 제가 드린 이 열쇠로 옥문을 열고 뒤도 돌아보지 말고 한양으로 도망치십시오. 한양으로 가시어 대궐 앞의 신문고를 울리고 사또의 만행을 고발하시어, 반드시 선비님의 억울한 원한을 풀어야만 합니다."
이명원의 핏발 선 두 눈이 거세게 흔들렸다. 탈옥이라니, 그것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내가 도망친다면 열쇠를 관리하는 네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사또가 너를 살려둘 리 없어. 나 살자고 너를 사지로 몰아넣을 수는 없다!"
"제 목숨 따위는 조금도 두렵지 않습니다! 저 같은 천비 하나 죽어 없어진들 세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겠지만, 선비님이 이대로 죽으시면 이 고을 백성들은 영원히 저 악귀 같은 사또의 발밑에서 피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다만..."
옥단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무거운 쇳대 꾸러미를 이명원의 거친 손에 꽉 쥐여 주며, 그대로 무너져 내리듯 그의 상처투성이 가슴에 자신의 뜨거운 뺨을 기댔다.
"부디 한양으로 무사히 가시어 대과에 급제하고 그 큰 뜻을 이루신다면... 그리고 제 목숨이 그때까지 온전하게 남아있다면... 이 비천하고 어리석은 여인, 옥단이라는 이름 석 자만을 가슴속 깊이 잊지 말고 기억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오직 그것 하나면 족합니다."
그녀의 서글픈 눈에서 흘러내린 뜨거운 눈물이 이명원의 찢어진 가슴팍을 흠뻑 적셨다. 이명원은 그 절절한 눈물과 살갗을 파고드는 여인의 온기를 느끼며, 평생을 억눌러왔던 이성의 끈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 하나뿐인 목숨마저 기꺼이 내던진 이 가녀리고 위대한 여인. 죽음의 문턱, 이 칠흑 같은 지옥에서 만난 이 절실하고도 지독한 연정은, 벼랑 끝에 몰린 사내의 심장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던 가장 뜨겁고 원초적인 본능을 일깨워버렸다.
이명원은 조심스럽게,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고 거친 손길로 옥단의 허리를 끌어안아 자신의 품으로 강하게 밀착시켰다.
"내 어찌 너를 잊겠느냐. 내 비록 내일 목이 달아날지 모르는 죄수의 몸이나, 오늘 밤 하늘과 땅의 신령 앞에 내 목숨을 걸고 맹세하겠노라. 내가 살아서 다시 이 땅을 밟는 날, 너를 반드시 내 정실부인으로 맞이하여 평생을 곁에 두고 아껴줄 것이다."
옥단의 커다란 두 눈이 경악과 환희로 커지는 순간, 이명원의 뜨거운 입술이 그녀의 붉고 떨리는 입술을 거칠게 탐하고 들어왔다. 감옥의 퀴퀴한 볏짚 냄새와 피 냄새는 어느새 두 사람의 달아오른 체취와 숨 막히는 열기로 가득 덮여갔다.
'아아, 선비님...'
거칠고 투박한 사내의 손길이 떨리는 여인의 옷고름을 단숨에 끄르자, 차가운 옥사의 공기 속으로 옥단의 매끄럽고 하얀 속살이 눈부시게 드러났다. 이명원은 살점이 뜯겨나간 제 몸의 고통조차 완벽히 잊은 채, 옥단의 하얀 목덜미와 둥근 어깨선, 그리고 봉긋하게 솟아오른 가슴 위로 굶주린 짐승처럼 숨 가쁘게 입을 맞췄다. 옥단 역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두 팔을 뻗어 그의 넓은 등을 강하게 끌어안으며, 사내의 단단하고 뜨거운 몸을 제 안으로 온전히 받아들였다.
"하아... 아앗... 선비님..."
억눌린 달콤한 신음소리와 거친 숨소리가 좁디좁은 옥방 안을 짙고 끈적하게 채워 나갔다. 죽음을 바로 눈앞에 둔 극한의 상황 속에서 맺어진 두 사람의 살 섞음은, 그 어떤 명문대가의 화려한 혼례보다도 숭고하고, 처절하며, 절박한 언약의 의식이었다. 땀방울이 맺힌 두 사람의 살갗이 거칠게 마찰하며 불덩이 같은 열기를 뿜어냈고, 서로의 가장 깊은 곳을 파고드는 그 아찔한 쾌락과 감각은 이명원에게 반드시 살아남아 그녀를 지켜내야겠다는 미칠 듯한 맹렬한 의지를 불어넣고 있었다.
캄캄한 어둠 속, 오직 서로의 뜨거운 체온과 가쁜 숨소리에만 의지한 채 밤이 새도록 치열하게 이어진 정사. 그것은 단순한 육체의 쾌락을 넘어, 두 사람의 핏줄과 목숨을 영원히 묶어버리는 가장 원초적이고도 강력한 사랑의 밀약이었다.
※ 4: 한양을 향한 필사의 도주
이튿날 밤, 두 사람이 피 끓는 언약을 나누며 약조했던 삼경(밤 11시~새벽 1시)의 시간이 귀신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한낮부터 추적추적 내리던 진눈깨비는 밤이 깊어지자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을 동반한 혹한으로 변해 관아의 담장을 거세게 때리고 있었다. 날씨가 이토록 궂고 바람이 매서우니, 지하 옥사를 지키는 간수들은 일찌감치 순찰을 포기하고 비좁은 당직실 화롯가에 다닥다닥 모여앉아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다. 옥단은 낮 동안 장터 구석의 후미진 약재상에서 남몰래 구해둔, 산돼지조차 단숨에 쓰러뜨린다는 독한 수면초(睡眠草)를 펄펄 끓여 진하게 달여두었다. 그녀는 특유의 싹싹하고 앳된 미소를 얼굴에 덧씌운 채, 그 수면초 달인 물을 가득 섞은 탁주 항아리와 기름진 돼지고기 수육을 쟁반에 받쳐 들고 간수들이 모여 있는 당직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이고, 날도 이리 찬데 옥사를 지키시느라 고생들이 참으로 많으십니다요. 사또 나으리께서 내일 있을 사형수의 처형 준비로 며칠째 노고가 많다며, 간수 나으리들께 특별히 내리신 술부조와 안주이옵니다. 어서들 이 독한 술로 한 잔씩 들이켜시고 꽁꽁 언 몸을 녹이시지요."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와 며칠간의 철야로 피로에 찌들어 있던 간수들은, 탐욕스러운 사또가 웬일로 술을 다 내렸냐며 낄낄거리면서도 한 치의 의심조차 없이 탁주 사발을 받아 들었다. 그들은 옥단이 따라주는 뽀얀 탁주를 단숨에 목구멍으로 벌컥벌컥 들이켰다. 독한 수면초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고 무서운 것이었다. 두어 사발을 비우며 수육을 씹어 삼키던 간수들은 술기운이 채 오르기도 전에 하나둘씩 눈이 풀리며 고개를 바닥으로 툭툭 떨구기 시작했고, 이내 짐승처럼 코를 골며 깊고 어두운 수렁 같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들의 요란한 코골이 소리가 적막한 옥사 마당을 가득 채우자, 그제야 옥단은 치마폭 속에 깊숙이 숨겨두었던 차가운 무쇠 쇳대 꾸러미를 꺼내어 쥐었다.
그녀의 발걸음은 눈 위를 걷는 고양이처럼 깃털같이 가벼웠지만, 가슴속 심장은 금방이라도 갈비뼈를 뚫고 튀어나올 듯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이명원이 갇혀 있는 가장 깊은 지하의 중죄인 옥방 앞. 옥단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는 손으로 커다란 자물쇠 구멍에 열쇠를 꽂아 넣고 힘껏 비틀자, '철컥' 하는 둔탁하고 무거운 쇳소리와 함께 그토록 견고하게 닫혀 있던 죽음의 옥문이 스르르 열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짐승처럼 숨을 죽이고 때를 기다리던 이명원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바로 전날 밤, 이 차가운 볏짚 위에서 옥단과 살을 섞으며 나누었던 그 뜨겁고 원초적인 정사의 열기가 아직도 그의 핏줄 속을 생생하게 관통하며 흐르고 있었다. 그 강렬한 생의 감각과 여인의 달콤했던 체취는, 며칠간 굶주리고 매를 맞아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그의 육신에 기적 같은 힘을 불어넣고 있었다.
"옥단아..."
"선비님, 어서 제가 준비한 이 두툼한 누비옷을 걸치십시오. 밖은 살을 에는 칼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한양으로 가시는 길에 산속에서 요기하실 마른 식량과 짚신 두어 켤레, 그리고 엽전 몇 닢입니다."
옥단은 자신이 평생을 옥바라지를 하며 푼푼이 모아두었던 전 재산과, 이틀 밤을 꼬박 새워 피나는 바느질로 지은 솜옷을 이명원의 넓은 품에 안겨주었다. 이명원은 그 거칠고도 따뜻한 옷을 받아 들며, 자신을 위해 목숨마저 내던진 옥단의 야윈 어깨를 부서질 듯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녀의 하얀 귓가에 닿는 이명원의 거친 숨결은 비장함을 넘어 피를 토하듯 뜨거웠다.
"내 목숨을 구하고 이 사내에게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준 너의 은혜, 뼛속 깊이 새기고 또 새길 것이다. 내가 도망치고 없는 동안, 저 악마 같은 사또의 모진 핍박과 고문이 고스란히 너를 향할까... 오직 그것이 가장 두렵고 뼈가 시리구나. 부디, 제발 살아남아야 한다. 내가 목숨을 걸고 한양에 당도하여 기필코 돌아와 너를 구할 것이니, 모진 고초가 있더라도 절대 숨을 놓지 마라."
"걱정 마셔요, 서방님. 저는 천것으로 태어나 온갖 짐승 같은 양반들의 수모와 모진 풍파를 다 겪으며 질기게 살아남은 목숨입니다. 서방님께서 한양에 당도하시어 무사히 억울함을 푸실 날만을 가슴에 품고 기원하며, 그 어떤 잔혹한 고초가 제 살을 찢어놓아도 입을 굳게 다물고 버텨낼 것입니다. 어서, 날이 밝아 간수들이 깨어나기 전에 발길을 재촉하십시오!"
옥단은 쏟아지는 눈물을 소매로 훔쳐내며 이명원의 등을 억지로 떠밀었다.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주춤거리던 이명원은, 옥단의 젖은 뺨을 감싸 쥐고 그녀의 붉은 입술에 마지막으로 짧고도 강렬하게, 마치 영혼을 나누어주듯 깊은 입맞춤을 남겼다. 그리고는 어둠이 짙게 깔린 관아의 뒷담을 훌쩍 뛰어넘어 거친 비바람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짐승들이 울부짖고 칼바람이 몰아치는 험준하고 가파른 산길. 이명원은 찢겨나간 발바닥에서 붉은 피가 배어 나와 짚신을 붉게 적시는 것도 모른 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짐승처럼 달리고 또 달렸다. 가파른 고개를 넘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차가운 진흙 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잃을 뻔할 때면, 차가운 감옥 안에서 자신을 온몸으로 끌어안아 주던 옥단의 그 뜨거웠던 체온, 달빛 아래 빛나던 보드라운 살결, 그리고 절정의 순간 귓가에 맴돌던 그녀의 애달픈 교성이 환청처럼 귓가를 때리며 쓰러진 그를 다시 무자비하게 일으켜 세웠다.
'기다려라, 옥단아. 내 반드시 이 지옥 같은 살인귀의 누명을 벗고 한양의 군사를 이끌고 돌아가, 널 내 곁에 평생 두고 내 심장처럼 아껴줄 것이다!'
사내의 끓는 가슴속에 새겨진 그 지독하고도 처절한 사랑의 언약은, 천 리 밖 낯선 한양을 향해 피투성이로 내달리는 이명원에게 그 어떤 진귀한 명약보다도 강하고 불굴의 의지가 되어주고 있었다. 그는 오직 옥단을 살려내야 한다는 맹렬한 집념 하나로, 깎아지른 절벽과 끝없는 산맥을 맨몸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 5: 둥둥둥 신문고가 울리다
이명원이 어둠을 틈타 옥을 파옥(破獄)하고 탈출한 다음 날 아침, 남부 고을의 관아는 그야말로 벌집을 쑤신 듯 발칵 뒤집혔다. 술에 취해 곯아떨어졌던 간수들이 뒤늦게 깨어나 사형수가 감쪽같이 사라진 텅 빈 옥방을 발견하고는 혼비백산하여 사또에게 달려갔다. 완전 범죄를 목전에 두고 희생양을 놓쳐버린 최 사또는 길길이 날뛰며 악귀처럼 분노를 토해냈다.
"이 빌어먹을 놈들! 눈을 시퍼렇게 뜨고 밥이나 축내는 버러지 같은 놈들! 감히 내일 목이 달아날 대역 죄인을 놓치다니! 당장 옥방을 지키던 간수들의 목을 베어 마당에 매달고, 어젯밤 감옥을 드나든 모든 자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잡아들여라!"
가장 먼저 의심의 화살을 맞은 것은, 감옥의 열쇠를 관리하며 간수들에게 술을 내어주었던 여옥졸 옥단이었다. 머리채를 잡힌 채 거친 포승줄에 묶여 관아 마당 한가운데에 꿇어앉혀진 그녀의 가냘픈 등 위로, 사또의 광기 어린 무자비한 가죽 채찍이 짐승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네 이년! 네년이 옥방 열쇠를 꿰차고 짐승 같은 사내놈들에게 술을 먹였으니, 필시 네년이 그놈과 배를 맞추고 옥문을 열어준 것이렷다! 그 도망친 살인마 놈이 어느 길로 도망쳤는지 당장 실토하지 못할까! 바른대로 불지 않으면 네년의 살가죽을 모조리 벗겨내어 개먹이로 던져줄 것이다!"
피융, 짝! 피융, 짝!
살점이 터져 나가고 붉은 피가 그녀의 하얀 소복을 처참하게 적시며 바닥으로 흘러내렸지만, 옥단은 입술에서 피가 나도록 꽉 깨문 채 단 한마디의 비명조차 내뱉지 않았다. 살을 에는 듯한 매질이 거세질수록, 의식이 흐려지는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자신을 부서질 듯 끌어안아 주던 이명원의 다정하고도 펄펄 끓어오르던 뜨거운 품만이 생생하게 떠오를 뿐이었다.
'서방님은 지금쯤 험한 산을 몇 개나 넘으셨을까... 발이 부르트지는 않으셨을까. 내 이 한 몸 갈가리 찢겨 부서져 서방님이 그 큰 뜻을 이룰 수만 있다면, 이깟 매질은 백 번 천 번이라도 달게 견디리라. 내 목숨이 끊어지는 한이 있어도 절대 입을 열지 않으리라.'
고통 속에서도 오히려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 그녀의 독기 어리고 초연한 눈빛에, 매를 내리치던 형리들과 사또마저 등골이 서늘해지며 질려버릴 지경이었다.
바로 그 시각, 천신만고 끝에 마침내 한양 도성의 굳게 닫힌 궐문 앞에 당도한 이명원은, 임금이 다스리는 대궐 밖에 높이 설치된 거대한 신문고(申聞鼓) 앞을 향해 귀신처럼 비틀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억울한 사연을 가진 백성이 직접 원통함을 호소할 수 있도록 나라에서 설치한 거대한 북. 이명원은 산길을 헤치며 피투성이가 되고 고름이 터진 두 손으로 묵직한 북채를 움켜쥐고, 하늘을 향해 원한을 토해내듯 혼신의 힘을 다해 신문고를 미친 듯이 내리치기 시작했다.
둥! 둥! 둥! 둥!
세상을 깨우고 하늘을 찢을 듯한 육중하고도 거대한 북소리가, 한양 도성의 대궐 안마당을 거침없이 넘어 임금의 고요한 침전까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밖에 무슨 일이냐! 뉘가 이 새벽부터 이토록 피를 토하듯 처절하게 북을 울리는 게냐! 당장 나가서 사연을 알아보라!"
다급하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승지들과 궁궐 수비대 앞에서, 이명원은 마침내 북채를 떨어뜨리고 바닥에 엎드려 짐승처럼 통곡하며 가슴속에 품고 온 피 묻은 고발장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신은 남부 고을에 사는 힘없는 백성이자 가난한 선비 이명원이옵니다! 고을을 다스리는 최 사또가 무고한 백성 김 진사를 잔혹하게 난자하여 살해하고 그 재물과 여인을 탐하였으며, 우연히 이를 목격한 소인에게 도리어 살인죄를 뒤집어씌워 참수하려 하였사옵니다! 부디 어두운 곳을 밝히시는 암행어사를 보내시어 그 극악무도한 짐승의 만행을 철저히 조사하시고, 수십 년간 핍박받은 고을 백성들의 피눈물을 닦아주시옵소서!"
그의 목소리는 죽음의 문턱을 넘어선 자만이 낼 수 있는, 창자가 끊어지는 듯 처절하고도 강력한 울림이었다. 이명원이 목숨을 걸고 품속에서 꺼내놓은, 사또의 끔찍한 만행이 적힌 피 묻은 장계와 한양에 올라오기 전 고을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남몰래 모아두었던 백성들의 지장 찍힌 탄원서가 즉각 임금의 어전에 올려졌다. 사태의 심각성과 지방 관아의 썩어빠진 폐단을 직감한 조정은, 즉각 호랑이 같은 암행어사를 임명하여 파견했다. 명을 받은 암행어사는 수십 명의 정예 역졸들을 이끌고 바람처럼 남부 고을을 향해 말을 내달렸다.
며칠 뒤, 남부 고을의 관아 앞마당에서는 끝내 사형수의 행방을 입 밖에 내지 않은 옥단의 공개 처형이 잔혹하게 준비되고 있었다. 입을 열지 않는 옥단의 목을 베어, 반항하는 고을 백성들에게 끔찍한 본보기를 보이려는 사또의 악랄한 속셈이었다. 망나니가 징그러운 칼춤을 추며 날이 선 대도를 머리 위로 치켜들고 시퍼런 물을 뿜어내는 찰나,
"암행어사 출도야!!!"
하늘을 두 쪽으로 찢는 듯한 역졸들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굳게 닫혀 있던 관아의 대문이 산산조각 나며 흩어졌다. 마패를 높이 치켜든 암행어사와 철퇴를 든 수십 명의 군관들이 폭풍우처럼 마당으로 들이닥쳤다. 그리고 위풍당당한 그 어사의 곁에는, 옥단이 그토록 옥사에서 애타게 그리워하며 생사를 기원하던 사내, 이명원이 정갈한 양반의 도포를 차려입고 불타는 눈빛으로 당당하게 서 있었다.
※ 6: 정실부인이 된 여옥졸
"저, 저, 저놈이 어떻게 살아서 여기까지...! 한양에 당도하기 전에 분명 산짐승에게 뜯어 먹혀 죽었을 터인데!"
백주대낮에 귀신이라도 본 듯, 최 사또의 얼굴이 잿빛으로 흉측하게 질리며 그 자리에 무릎이 꺾여 털썩 주저앉았다. 진실은 물을 보듯 너무도 명백하고 추악했다. 어사의 엄정하고도 서슬 퍼런 조사 끝에, 사또가 김 진사를 살해한 피 묻은 의복과 증거들, 그리고 그동안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어 긁어모은 비밀 장부들이 사또의 안채 바닥 밑에서 모조리 쏟아져 나왔다. 천인공노할 만행이 만천하에 드러난 최 사또는 즉각 관직을 박탈당하고 무거운 칼을 쓴 채 오랏줄에 꽁꽁 묶여 의금부로 압송되었다. 길고 길었던 고을의 지독한 먹구름이 마침내 통쾌하게 걷혀 나가는 순간이었다.
모든 소란이 정리되고 사또가 끌려가자마자, 이명원은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피투성이가 된 채 마당에 쓰러져 있는 옥단에게로 미친 듯이 달려갔다.
"옥단아! 옥단아...!"
그는 옥단을 잔인하게 결박하고 있던 형틀의 밧줄을 맨손으로 거침없이 풀어내고는, 정신을 잃어가는 그녀를 제 품이 으스러질 듯 꽉 끌어안았다.
"서, 서방님... 정녕, 정녕 서방님이 맞으십니까. 험한 산길을 지나 살아서... 이리 눈부시게 빛나는 모습으로 제 앞에 다시 돌아오셨군요. 꿈이 아니지요..."
"그래, 내가 왔다. 네가 내게 내어준 생명, 네가 목숨을 걸고 열어준 그 길을 따라 한양에 닿아, 마침내 억울함을 풀고 널 온전히 구하러 내가 돌아왔다. 이 바보 같고 미련한 여인아, 나 하나 살리겠다고 네 몸이 이리 찢어지도록 고초를 겪다니... 내 너를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이명원의 붉어진 두 눈에서 쏟아진 뜨거운 눈물이 옥단의 상처 나고 창백한 뺨 위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수많은 고을 사람들과 한양에서 내려온 관원들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마당 한가운데서, 이명원은 타인의 시선 따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옥단을 번쩍 안아 들어 자신의 집으로 거침없이 향했다.
그날 밤, 이명원의 방 안에는 은은한 매화향과 함께 훈훈하고 끈적한 온기가 짙게 감돌고 있었다. 차갑고 쥐가 끓던 퀴퀴한 옥방의 짚 더미와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푹신하고 포근한 비단 이부자리 위에서, 이명원은 채찍에 맞아 상처투성이가 된 옥단의 여린 몸을 마시 끊어질세라 조심스럽고 애틋한 손길로 쓸어내리고 있었다.
"그 춥고 캄캄했던 밤, 사형수의 옥방에서 내가 네게 한 맹세를 기억하느냐. 살아서 이 땅을 다시 밟는 날, 널 반드시 내 제일가는 정실부인으로 맞이하겠다던 그 약속 말이다. 오늘 밤, 하늘이 맺어준 우리의 혼례를 다시 치르자꾸나."
'아아, 서방님...'
옥단의 고운 눈가에 감격과 환희의 눈물이 고여 흐르자, 이명원은 짐승처럼 부드럽게 그녀의 눈물을 입술로 핥아 훔쳐내었다. 이내 두 사람의 입술이 자석처럼 강렬하고 뜨겁게 다시 맞닿았다. 어두운 옥방에서 나누었던 첫 정사가 죽음의 공포 속에서 피어난 짐승같이 절박하고 원초적인 교감이었다면, 오늘 밤 서로를 탐하는 손길은 온전한 자유와 사무치는 애정이 듬뿍 담긴, 농밀하고 아찔할 만큼 달콤한 사랑의 의식이었다.
"아아... 흐읏, 서방님..."
이명원의 뜨거운 혀끝이 옥단의 하얀 목덜미를 타고 부드럽게 내려가며 선명하게 남은 붉은 상처 자국마다 애틋하게 입을 맞추자, 옥단은 활처럼 허리를 휘며 달아오른 뜨거운 숨을 쉴 새 없이 내뱉었다. 서로를 갈구하던 사내의 거칠고 단단한 육체가 여인의 가장 깊고 은밀한 곳을 가득 채우며 들어설 때, 두 사람은 서로의 몸과 영혼이 완벽하게 하나로 녹아들어 얽매이는 짜릿하고 몽롱한 환희를 경험했다. 흔들리는 호롱불빛 아래, 땀방울이 맺힌 두 몸뚱이가 얽혀 밤이 깊도록 끝없이 이어진 뜨거운 몸짓은, 두 번 다시는 서로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맹렬하고 영원한 사랑의 각인이었다.
이후 이명원은 그해 열린 대과에 당당히 급제하여 훌륭하고 공명정대한 관직에 올랐다. 반상(양반과 상놈)과 천민이라는 거대하고 견고한 신분의 벽을 보란 듯이 깨부수고, 이명원은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살을 섞은 옥단을 당당히 정실부인으로 맞이하여 평생토록 끔찍이 아끼며 사랑했다. 조정의 만류와 꽉 막힌 사대부들의 수군거림도, 죽음의 문턱에서 목숨을 나눈 두 사람의 굳건한 언약을 결코 갈라놓을 수는 없었다. 절망의 끝 캄캄한 감옥에서 서로의 맨살을 맞대며 맺었던 그들의 뜨겁고 치열했던 밀약 이야기는, 진정한 연정과 의리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며 백성들 사이에서 수백 년이 지나도록 전설처럼 회자되었다.
유튜브 엔딩멘트
오늘 들려드린 <청구야담> 속 '억울한 죄수와 여옥졸의 밀약' 이야기, 어떠셨나요? 차디찬 감옥 안, 죽음의 문턱에서 피어난 두 남녀의 아찔하고도 끈적한 사랑, 그리고 마침내 통쾌하게 누명을 벗고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 뜨거운 언약을 지켜낸 선비의 사내다운 뚝심이 가슴을 짜릿하게 울리는 것 같습니다. 오늘 이야기가 흥미로우셨다면 잊지 마시고 '구독'과 '좋아요', 그리고 따뜻한 댓글 부탁드립니다. 다음 이 시간에도 100세 시대 여러분의 지루한 밤을 후끈 달아오르게 할, 숨겨진 19금 역사 로맨스와 감동적인 야담으로 찾아오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