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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박맞은 여인을 살린 노총각

    태그 15개

    #조선로맨스, #야담, #민담, #오디오드라마, #반전드라마, #노총각, #버림받은여인, #인생역전, #조선시대사랑, #운명적만남, #부부의성공, #통쾌한복수, #사랑과신뢰, #전통로맨스, #감동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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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 멘트

    혼인한 지 석 달 만에 소박맞은 여인을 거둔 가난한 노총각. 사람들은 남이 버린 액운까지 품었다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버려진 천 조각으로 만든 물건 하나가 조선 팔도를 뒤흔들었고, 죽은 줄 알았던 전 서방이 돌아오면서 숨겨진 진실이 드러납니다.

    ※ 1: 장대비 속에서 찾은 인연

    유월의 하늘이 검게 내려앉더니 한양 남쪽의 작은 장터에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장사꾼들은 좌판을 걷어 들였고, 행인들은 처마 밑으로 몸을 피했다. 흙탕물이 발목까지 차오른 길 한복판에는 젖은 보퉁이 하나를 끌어안은 여인이 서 있었다.

    연화의 연분홍 저고리는 진흙으로 얼룩졌고, 단정했던 쪽진머리에서는 빗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몇 걸음 더 옮기려 했으나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저 여인, 조 참봉댁에서 소박맞은 며느리 아니야?"

    "아이도 못 낳고 시어머니에게 대들었다지. 액운을 달고 다니니 가까이하지 말게."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빗소리를 뚫고 연화의 귀에 박혔다. 그녀는 젖은 보퉁이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안에는 낡은 속적삼 두 벌과 바늘쌈지뿐이었다. 혼인할 때 가져간 비단이며 패물은 전부 시댁에 빼앗긴 뒤였다.

    '울지 말자. 저들이 바라는 대로 무너지지는 말자.'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지만 굶주린 몸은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연화의 시야가 흐려지며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그 순간 거칠고 커다란 손이 그녀의 어깨를 받쳤다.

    "이보시오. 정신을 차려 보시오."

    서른한 살의 강무진이었다. 장터 끝에서 삿갓과 나무그릇을 팔며 홀로 살아가는 노총각이었다. 키는 장승처럼 컸지만 늘 말수가 적고 옷차림이 초라해, 사람들은 그를 무진이라 부르기보다 산골 곰이라고 놀렸다.

    무진은 팔리지 않은 삿갓을 내팽개치고 연화를 안아 들었다.

    "강 서방, 그 여인을 데려가면 어쩌려고 그러나? 남편에게 쫓겨난 여자야."

    "남편에게 쫓겨났다고 사람도 아닌 것은 아니지요."

    "괜한 화를 집에 들이지 말게. 자네는 아직 장가도 못 들었잖나."

    무진이 빗속에 놓인 보퉁이까지 집어 들었다.

    "그러니 더 잘됐습니다. 성난 마누라가 기다리는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구경꾼들 사이에서 헛웃음이 터졌다. 무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연화를 업었다. 정신을 잃은 그녀의 숨결이 목덜미에 희미하게 닿았다. 차갑고 가벼웠다. 마치 조금만 늦었으면 빗물에 씻겨 사라졌을 사람 같았다.

    장터에서 반 시진 떨어진 산기슭에 무진의 초가가 있었다. 기울어진 사립문과 군데군데 짚을 덧댄 지붕, 한쪽 벽을 가득 차지한 목공 연장들이 집주인의 형편을 말해 주었다.

    무진은 아랫목에 연화를 눕히고 젖은 버선을 벗겨 화로 곁에 두었다. 직접 옷을 갈아입힐 수 없어 이웃 과부인 복례를 불러왔다.

    "세상에, 뼈밖에 남지 않았구먼. 얼마나 굶었으면 이 지경이래?"

    복례가 연화의 젖은 저고리를 갈아입히는 동안 무진은 부엌에서 멀건 쌀죽을 끓였다. 평생 혼자 먹고살며 익힌 솜씨라 맛은 없어도 속을 달래기에는 충분했다.

    밤이 깊어서야 연화가 눈을 떴다. 낯선 서까래 아래로 빗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몸을 일으키자 방문 밖에 앉아 나무를 깎던 무진이 고개를 돌렸다.

    "깨어났소?"

    "여기가 어디입니까?"

    "내 집이오. 걱정하지 마시오. 복례 아주머니가 옷을 갈아입혀 주었고, 나는 방에 들어가지 않았소."

    연화는 먼저 보퉁이를 찾았다. 머리맡에 얌전히 놓인 것을 확인한 뒤에야 숨을 내쉬었다.

    "왜 저를 데려오셨습니까?"

    "길에 쓰러진 사람을 보았으니 데려왔소."

    "제가 누군지 들으셨을 텐데요."

    "아이를 못 낳았다는 말도, 시어머니에게 대들었다는 말도 들었소."

    연화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런 여인을 집에 들이고도 두렵지 않으십니까?"

    무진은 깎던 나무토막을 내려놓았다.

    "소문이 사람을 때리지는 않지만, 굶주림과 장대비는 사람을 죽이오."

    무심한 듯한 말에 연화는 입술을 깨물었다. 불쌍하다는 위로보다 그 한마디가 더 깊이 파고들었다. 무진은 죽을 담은 사발을 문턱 안쪽에 놓고 물러났다.

    "천천히 드시오. 비가 그치면 가고 싶은 곳으로 데려다주겠소."

    "갈 곳이 없습니다."

    무진의 손이 잠시 멎었다.

    연화는 떨리는 손으로 죽사발을 들었다. 몇 숟갈 뜨지도 않았는데 눈물이 떨어져 죽 위에 작은 파문을 만들었다.

    "친정은 지난해 역병으로 모두 세상을 떠났습니다. 시댁에서는 제게 불길한 팔자라며 이혼장 한 장 없이 내쫓았습니다. 돌아오면 도둑으로 몰아 관아에 넘기겠다고 했고요."

    "서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소?"

    "죽었습니다."

    짧은 대답 뒤에 방 안이 고요해졌다.

    "석 달 전, 장삿길에서 산적을 만나 죽었다고 했습니다. 시신도 보지 못했지만 시어머니는 제 팔자가 아들을 잡아먹었다고 했지요."

    연화는 더 말하지 못했다. 무진은 위로한다며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다만 비가 새는 자리에 낡은 놋그릇을 하나 더 받쳐 놓았다.

    "이 집은 보시다시피 가난하오. 쌀독도 바닥이고 지붕에는 구멍이 여섯 개나 있소. 그래도 갈 곳을 정할 때까지 머물 자리 하나는 내어 줄 수 있소."

    "저 같은 여자를 들이면 강 서방께서도 손가락질을 받습니다."

    "나는 서른이 넘도록 장가도 못 든 반편이라는 손가락질을 이미 충분히 받았소. 하나쯤 더 붙는다고 달라질 것도 없지."

    연화가 처음으로 희미하게 웃었다. 무진은 그 웃음을 보자 괜히 목덜미를 문지르며 시선을 돌렸다.

    '저 여인이 웃으니 쓰러질 듯하던 집 안이 갑자기 환해지는구나.'

    그날 밤 무진은 헛간에서 잠들었고, 연화는 아랫목을 차지했다. 새벽녘 비바람이 거세지면서 지붕 한쪽이 흔들렸다. 연화는 문풍지 너머에서 들리는 망치 소리에 눈을 떴다.

    무진이 빗속에서 지붕 위로 올라가 새 짚을 얹고 있었다. 자신이 누운 자리만큼은 비가 새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연화는 창호지에 손을 얹었다.

    '나를 내친 이는 기와집에 살았지만 비 한 방울 막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 사내는 가진 것도 없으면서 제 지붕을 뜯어 내게 덮어 주는구나.'

    동이 틀 무렵, 비에 젖은 무진이 헛간으로 돌아왔다. 그곳에는 연화가 내놓은 마른 수건과 따뜻한 숭늉 한 사발이 놓여 있었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낡은 초가에서 처음으로 서로를 향한 작은 온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 2: 버려진 천에 숨은 길

    연화가 무진의 집에 머문 지 닷새째 되던 날, 비가 잠시 그쳤다. 무진은 새벽부터 삿갓과 도롱이를 등에 지고 장터로 향했다. 저녁이 되어 돌아온 그의 등짐은 아침보다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았다.

    연화가 사립문을 열어 주며 등짐을 바라보았다.

    "오늘도 하나도 팔지 못하셨습니까?"

    "구경한 사람은 많았소."

    "구경만 했군요."

    "다들 무겁다고 하더군. 비를 맞으면 더 무거워지고 냄새도 난다면서."

    무진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으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장터에는 값싼 짚신과 삿갓을 만드는 이가 넘쳤다. 손재주가 아무리 좋아도 사람들이 필요로 하지 않는 물건을 만들어서는 굶주림을 피할 수 없었다.

    연화는 처마 밑에 걸린 도롱이를 만져 보았다. 짚을 두껍게 엮어 빗물을 흘려보내는 물건이었지만, 젖으면 어린아이 하나를 업은 것처럼 무거웠다.

    "도롱이를 짚이 아니라 천으로 만들면 어떨까요?"

    "천은 빗물이 스며들지 않소?"

    "스며들지 않게 만들면 되지요."

    무진이 피식 웃었다.

    "빗물을 막는 천이 있다면 임금님께 진상하고 벼슬부터 얻어야겠구려."

    "아직 없으니 우리가 만들자는 겁니다."

    연화는 보퉁이에서 바늘쌈지를 꺼냈다. 무진이 버리려고 쌓아 둔 삼베 조각과 무명 자투리를 크기별로 나누더니, 서로 엇갈리게 포개어 촘촘히 누비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놀림은 빠르면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무진은 나무를 다듬던 것도 잊고 바늘 끝이 오르내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바느질을 어디서 배웠소?"

    "친정아버지가 포목점을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바느질과 염색으로 이름이 나셨고요. 혼인하기 전까지 가게 일을 도왔습니다."

    "그런 재주가 있는데 어째서 빈손으로 쫓겨났소?"

    연화의 손가락이 순간 멈췄다.

    "시댁에서는 며느리의 재주도, 친정에서 가져간 물건도 모두 자기들 것이라 했습니다."

    무진은 더 묻지 않았다. 그날 연화가 만든 것은 소매도 깃도 없는 기묘한 덮개였다. 자투리 천을 세 겹으로 겹쳐 누빈 덕분에 질기고 따뜻했지만, 예상대로 물을 붓자 금세 젖었다.

    연화가 한숨을 쉬며 천을 화로 옆에 널었다. 그때 무진이 나무그릇에 칠하려고 데워 두었던 들기름을 잘못 건드렸다. 기름이 천 위에 엎질러지자 연화가 놀라 일어섰다.

    "제가 온 뒤로 귀한 기름까지 버리게 되었네요."

    "내 잘못이오. 어차피 시험에 실패한 천이라니 다행이지."

    무진은 기름 묻은 부분을 닦으려고 톱밥을 뿌렸다. 연화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의 손을 막았다.

    "그대로 두세요."

    "들기름 냄새가 배면 아무 데도 쓰지 못하오."

    "내일 아침까지만 기다려 봅시다."

    이튿날 연화는 완전히 마른 천 위에 물을 부었다. 기름이 스며든 부분에서 물방울이 동그랗게 맺히더니 옆으로 흘러내렸다. 반면 기름이 묻지 않은 곳은 곧바로 축축해졌다.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막혔소."

    "우연일지도 모릅니다. 다시 해 봐야 해요."

    무진은 들기름을 얇게 바른 천을 햇볕에 말렸다. 그러나 기름을 많이 먹인 부분은 끈적거렸고, 적게 바른 부분은 물이 샜다. 연화는 밀랍을 조금 섞어 보자고 했다. 밀랍은 바늘땀 사이를 메웠지만 식으면서 딱딱하게 굳었다.

    사흘 동안 두 사람은 수십 장의 천 조각을 망쳤다. 쌀은 떨어졌고 땔나무도 줄어들었다. 복례는 그 광경을 보고 혀를 찼다.

    "먹을 쌀도 없으면서 기름을 천에 처바르고 있으니, 둘이 나란히 미친 게 틀림없구먼."

    "잘되면 아주머니께 제일 먼저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 옷 입고 물에 빠져도 안 젖으면 내 믿어 주지."

    복례가 돌아가자 연화의 어깨가 축 처졌다.

    "그만두어야 할까요? 강 서방의 기름과 밀랍만 낭비했습니다."

    무진은 실패한 천들을 하나씩 만져 보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만두면 정말 낭비가 되오."

    그는 천에 기름을 고르게 먹일 방법을 궁리했다. 손으로 문지르면 두께가 달라지는 것이 문제였다. 무진은 밤새 나무를 깎아 길쭉한 틀을 만들고, 그 위에 둥근 나무 두 개를 맞물려 달았다. 손잡이를 돌리면 두 나무 사이로 천이 눌려 지나가는 압착 틀이었다.

    연화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이걸 밤새 만드신 겁니까?"

    "당신 손가락이 부어서 바늘도 제대로 잡지 못하잖소. 손으로 문지르지 말고 이 사이에 천을 넣어 봅시다."

    연화는 따뜻하게 데운 들기름과 밀랍을 천 위에 얇게 발랐다. 무진이 손잡이를 돌리자 둥근 나무가 천을 단단히 누르며 기름을 골고루 퍼뜨렸다. 연화는 다시 마른 천을 덧대어 누비고 가장자리를 촘촘하게 감쳤다.

    완성된 천에 물 한 바가지를 쏟았다. 물은 한 방울도 스며들지 않고 바닥으로 흘렀다.

    "됐어요."

    연화의 목소리가 떨렸다.

    "정말로 됐습니다!"

    기뻐서 돌아선 연화가 무진의 가슴에 부딪혔다. 무진은 반사적으로 그녀의 허리를 붙잡았다. 두 사람의 몸이 가까이 맞닿으며 시간이 멎은 듯했다.

    연화는 그의 거친 손이 허리에 닿은 것을 느끼고 숨을 삼켰다. 무진도 황급히 손을 놓으며 두 걸음 물러났다.

    "미안하오. 넘어질까 봐 그만……."

    "알고 있습니다."

    연화의 뺨이 붉어졌다. 그녀는 젖지도 않은 천만 연신 매만졌다. 무진은 괜히 압착 틀의 손잡이를 돌렸다.

    그날 저녁 두 사람은 방수 천을 펼쳐 놓고 쓰임을 의논했다. 펼치면 비를 막는 우의가 되고, 끈을 조이면 보따리가 되며, 밤에는 이슬을 막는 깔개가 되는 형태였다. 연화는 사람의 어깨와 팔이 편히 움직이도록 재단했고, 무진은 나무 단추와 대나무 고리를 만들었다.

    "이름을 무엇이라 할까요?"

    "연화포가 어떻소?"

    "제 이름만 들어가잖아요. 압착 틀이 없었으면 만들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저 나무 두 개를 붙였을 뿐이오."

    "그렇다면 무연포는요? 무진의 무와 연화의 연을 합쳐서요."

    무진은 그 이름을 조용히 되뇌었다.

    "무연포라…… 인연이 없다는 뜻처럼 들리기도 하는구려."

    연화가 그를 바라보며 살며시 웃었다.

    "인연이 없던 두 사람이 만든 천이라는 뜻으로 하면 되지요."

    그 순간 무진은 처음으로 가난한 자신의 집에 내일이라는 것이 생긴 듯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알지 못했다. 우연히 만든 그 천 한 장이 큰돈뿐 아니라, 연화가 애써 묻어 둔 과거까지 불러오리라는 것을.

    ※ 3: 빗소리에 열린 마음

    무연포가 완성된 다음 날, 무진은 연화가 만든 첫 번째 방수 누비옷을 들고 장터에 나갔다. 얇은 회색 천에 남색 끈이 달린 모양은 짚으로 만든 도롱이와 전혀 달랐다.

    사람들은 그의 좌판 앞에 모여 낯선 물건을 들춰 보았다.

    "이 얇은 천이 비를 막는다고?"

    "강 서방이 장가를 못 가더니 허풍부터 늘었구먼."

    "비 한 번 맞으면 속옷까지 다 젖을 게 뻔해."

    장터 사람들의 비웃음에도 무진은 대꾸하지 않았다. 맑은 하늘만 올려다보며 비가 내리기를 기다렸다. 그날따라 햇볕은 야속할 만큼 뜨거웠다.

    해가 기울도록 천을 산 사람은 없었다. 무진이 좌판을 거두려던 때, 산 너머에서 천둥이 울렸다. 잠시 뒤 굵은 빗방울이 장터 바닥을 두드렸다.

    사람들이 처마 아래로 달려가는 동안 무진은 일부러 장터 한복판에 섰다. 무연포를 어깨에 걸치고 끈을 당기자 넓은 천이 머리와 등을 덮었다. 빗물은 천 위에서 구슬처럼 맺혔다가 가장자리를 따라 흘러내렸다.

    반 시진이 지나 무진이 누비옷을 벗자 안쪽의 적삼은 보송보송했다.

    "세상에, 정말 안 젖었어."

    "짚 도롱이보다 훨씬 가볍군."

    가장 먼저 물건을 산 사람은 개성에서 온 보부상이었다. 그는 천을 우의로 입어 본 뒤 끈을 바꾸어 보따리처럼 묶었다.

    "비를 막고 짐도 싸며, 노숙할 때 깔개로도 쓴다니 이런 물건은 처음 보네. 열 장을 만들 수 있겠나?"

    "닷새 뒤에 다시 오시면 준비해 놓겠습니다."

    무진은 태연하게 대답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걸음은 거의 달음박질이었다. 사립문을 열자 연화가 마루에서 바느질을 하다 일어났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무진은 품에서 은전 두 닢을 꺼내 그녀의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첫 물건이 팔렸소. 열 장을 더 만들어 달라는 주문도 받았소."

    연화의 눈이 둥그레졌다. 두 사람은 잠시 은전만 바라보다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무진은 쌀과 고기, 밀랍을 사 왔다. 연화는 오랜만에 흰 쌀밥을 짓고 돼지고기를 구웠다.

    비좁은 밥상에는 변변한 반찬도 없었지만 두 사람에게는 잔칫상이나 다름없었다.

    "강 서방은 이 돈으로 새 지붕부터 얹으세요."

    "우리 돈인데 어째서 내 지붕만 고치오?"

    우리라는 한마디에 연화의 젓가락이 멈추었다.

    "저는 잠시 머무는 사람입니다."

    "당신이 가고 싶다면 붙잡지 않겠소. 하지만 남들이 떠나라고 해서 가는 것은 바라지 않소."

    "제가 계속 머문다면 사람들은 강 서방을 비웃을 겁니다."

    "오늘 장터에서 이미 실컷 비웃음을 샀소. 그런데 비가 내리자 그 사람들이 내 물건을 사겠다고 줄을 서더군. 사람들의 입은 날씨보다 빨리 바뀌오."

    연화는 고개를 숙였다. 웃으려 했으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날부터 두 사람은 밤낮없이 일했다. 연화가 천을 재단하고 누비면 무진이 압착 틀을 돌려 기름을 먹였다. 밤이 깊으면 무진은 연화의 부은 손가락에 따뜻한 물수건을 감아 주었다.

    닷새 뒤, 보부상은 약속한 열 장을 모두 사 갔다. 이어 뱃사공과 약초꾼, 파발꾼이 주문을 넣었다. 무진은 삿갓을 팔던 좌판 대신 작은 천막을 얻었고, 연화는 복례를 불러 바느질을 가르쳤다.

    그러나 일이 잘될수록 연화의 불안도 커졌다. 밤마다 누군가 자신을 쫓아오는 꿈을 꾸었고, 남자 손님이 문을 두드릴 때마다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느 늦은 밤, 거센 바람이 불어 방문이 세차게 흔들렸다. 악몽에서 깨어난 연화는 숨을 몰아쉬며 밖으로 나왔다. 마루 끝에는 무진이 새 누비옷의 단추를 깎고 있었다.

    "또 잠들지 못했소?"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깨셨지요?"

    "당신이 뒤척이는 소리가 들리면 원래 잠이 오지 않소."

    무진은 따뜻한 물을 건넸다. 연화는 사발을 받다가 떨리는 손을 들켰다.

    "그 사람을 생각했소?"

    연화는 한참 뒤 입을 열었다.

    "전 서방 태식은 처음부터 저를 아내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친정의 포목점과 염색법이 필요해 혼인했지요. 친정 식구들이 역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태도는 더 심해졌습니다."

    "그자가 정말 죽은 것이 맞소?"

    "시어머니는 피 묻은 옷을 보여 주었습니다. 하지만 시신은 없었어요. 지금도 가끔…… 그 사람이 살아서 저를 찾아오는 꿈을 꿉니다."

    바람이 문틈으로 스며들자 등잔불이 흔들렸다. 무진은 자신의 겉옷을 벗어 연화의 어깨에 둘러 주었다.

    "이제 혼자 도망치지 마시오."

    "강 서방께서는 제가 두렵지 않습니까? 전 서방을 잡아먹었다는 소문도 있고,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나는 아이를 낳을 여인을 찾은 적이 없소."

    무진의 낮은 목소리가 빗소리 사이로 스며들었다.

    "그저 날이 저물었을 때 함께 밥을 먹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무사한지 궁금한 사람을 기다렸소."

    연화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았다. 무진의 손이 그녀의 뺨 가까이 다가왔지만, 그는 끝내 닿지 못하고 멈추었다.

    "싫으면 물러나겠소."

    연화는 대답 대신 그의 손목을 잡아 자신의 뺨에 가져다 댔다. 거친 손바닥의 온기에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오늘 밤만은 제가 버림받은 여인이라는 것을 잊게 해 주세요."

    무진은 서두르지 않았다. 눈물을 엄지로 닦아 준 뒤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연화가 눈을 감자 입술이 조심스럽게 겹쳐졌다. 짧게 닿았다 떨어진 숨결이 다시 서로를 찾아왔다.

    연화의 손이 무진의 옷깃을 움켜쥐었다. 무진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면서도 힘을 주지 않았다. 연화가 스스로 품 안으로 들어온 뒤에야 단단히 끌어안았다.

    두 사람은 등잔불 아래에서 오래도록 서로의 체온을 확인했다. 무진의 입술이 연화의 눈가와 뺨을 지나 목 가까이에 머물자 그녀의 숨이 가늘게 떨렸다.

    "무진……."

    처음으로 서방이라는 거리도, 강 씨라는 벽도 없이 불린 이름이었다.

    무진은 그녀를 번쩍 안아 아랫목에 내려놓았다. 흐트러진 옷깃을 여미려던 연화가 그의 손을 잡았다.

    "가지 마세요."

    그날 밤 두 사람은 말보다 깊은 온기로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창밖에는 세찬 비가 내렸지만, 낡은 초가의 작은 방만큼은 어느 때보다 따뜻했다.

    새벽이 밝자 연화는 무진의 팔을 베고 잠들어 있었다. 무진은 그녀를 깨우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이불을 끌어 올렸다.

    '내가 이 사람을 지킬 수만 있다면 가진 것을 모두 잃어도 좋다.'

    그때 사립문 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이어 낯선 사내들이 문을 걷어차며 들어왔다.

    "강무진이라는 자가 누구냐!"

    무진이 옷을 걸치고 마당으로 나가자 비단 도포를 입은 사내 하나가 말에서 내렸다. 연화도 놀라 뒤따라 나왔다가 그 얼굴을 보는 순간 그대로 굳었다.

    죽었다던 전 서방 조태식이었다.

    태식은 연화의 흐트러진 머리와 무진의 방에서 나온 모습을 번갈아 보았다. 그의 입가에 섬뜩한 웃음이 걸렸다.

    "내 아내가 웬 사내의 집에서 아주 재미있게 지내고 있었군."

    연화의 입술이 새하얗게 질렸다.

    "당신이…… 어떻게 살아 있지?"

    "살아 있는 서방을 두고 다른 사내와 몸을 섞었으니, 네년은 간통죄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

    태식은 품에서 붉은 관인이 찍힌 문서를 꺼냈다.

    "그리고 무연포라는 물건도 돌려받아야겠다. 그 제조법은 연화가 우리 집안에서 훔쳐 달아난 것이니까."

    무진이 연화의 앞을 막아섰다. 태식의 뒤에는 관아의 나졸들이 쇠사슬을 들고 서 있었다.

    버려진 줄 알았던 여인의 과거가 살아 돌아온 순간이었다. 두 사람이 함께 만든 첫 번째 희망도, 이제 막 확인한 사랑도 한꺼번에 빼앗길 위기에 놓였다.

    ※ 4: 산 사람을 죽인 문서

    연화는 태식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피 묻은 도포 한 벌만 남기고 죽었다던 사내가 번듯한 비단옷을 입은 채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관인이 찍힌 혼인 문서와 고소장이 들려 있었다.

    "내가 살아 돌아온 것이 그리 놀라우냐?"

    "시어머니께서 당신이 산적에게 죽었다고 했어요. 제 팔자가 서방을 잡아먹었다며 저를 내쫓았고요."

    "어머니가 며느리를 꾸짖은 것과 내가 살아 있는 것이 무슨 상관이지? 넌 이혼장도 받지 않고 달아난 유부녀다."

    연화의 몸이 휘청거리자 무진이 그녀를 받쳤다. 태식은 그 손을 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감히 남의 아내에게 손을 대다니. 저자를 당장 묶으시오."

    나졸들이 마당으로 들어왔다. 무진은 저항하지 않았으나 연화의 앞을 가로막은 채 비켜서지 않았다.

    "이 여인은 비 오는 길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살 곳도, 먹을 것도 주지 않고 내쫓아 놓고 이제 와 아내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그건 네놈이 상관할 일이 아니다."

    "무연포가 큰돈이 된 뒤에야 나타났으니 물건을 노린 것 아니오?"

    태식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

    "무연포의 제조법은 원래 우리 집안의 것이다. 연화가 시댁의 밀랍 배합법을 훔쳐 저자와 물건을 만든 것이 분명하다."

    연화가 분노로 떨리는 목소리를 내었다.

    "거짓말입니다. 그 천은 무진과 제가 수십 번 실패하며 만든 것입니다."

    "증거가 있느냐?"

    "당신이 죽었다고 속인 증거부터 밝히세요."

    태식은 더 듣지 않고 나졸에게 손짓했다. 무진과 연화는 각각 쇠사슬에 묶여 관아로 끌려갔다. 장터 사람들은 길가에 늘어서서 수군거렸다. 며칠 전까지 무연포를 사겠다며 줄을 섰던 이들도 살아 돌아온 서방과 간통한 여인이라는 말에는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

    '결국 나 때문에 이 사람까지 죄인이 되는구나.'

    연화가 고개를 숙이자 옆에서 걷던 무진이 쇠사슬에 묶인 손으로 그녀의 손끝을 건드렸다.

    "앞만 보시오."

    "저만 없었다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없었다면 내 삶에도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오. 웃을 일도, 내일을 기다릴 일도 말이오."

    연화는 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들었다.

    관아의 동헌에는 태식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는 연화가 자신의 아내임을 증명하는 혼인 문서와 호적을 내놓았다. 문서상 연화는 여전히 조태식의 처였고, 태식이 죽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었다.

    사또가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조태식이 살아 있는데 어찌 남편이 죽었다고 말했느냐?"

    "시어머니가 피 묻은 옷을 보여 주며 죽었다고 했습니다. 시신을 찾지 못했지만 장례까지 치렀습니다."

    "공식 사망 신고나 매장 기록이 없구나."

    "저는 글을 몰랐습니다. 시댁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태식이 냉큼 끼어들었다.

    "제가 장삿길에서 오래 소식이 끊긴 것은 사실이나, 죽었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연화가 다른 사내와 살고 싶어 집을 뛰쳐나온 것입니다."

    "거짓말!"

    연화가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당신 어머니는 제 머리채를 끌고 대문 밖으로 내던졌습니다. 친정에서 가져온 비단과 패물도 빼앗았어요."

    "며느리가 집안 물건을 훔치려 하니 막은 것뿐입니다."

    태식이 내놓은 진술서에는 그의 어머니와 집안 하인들의 수결까지 찍혀 있었다. 모두 연화가 재물을 훔쳐 달아났다는 내용이었다.

    사또는 무진을 바라보았다.

    "강무진, 너는 저 여인에게 남편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느냐?"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두 사람이 한방에서 지냈느냐?"

    동헌 안이 고요해졌다. 연화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무진이 모든 죄를 혼자 짊어지려 입을 열었지만, 연화가 먼저 고개를 들었다.

    "함께 지냈습니다."

    "연화!"

    "거짓으로 이 사람을 지키고 싶지 않습니다. 저를 사람답게 대해 준 유일한 사람입니다. 죄를 물으시려거든 제게 물어 주십시오."

    태식이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들으셨습니까? 제 입으로 간통을 인정했습니다."

    사또는 한동안 세 사람을 살피다가 형방을 불렀다.

    "연화와 강무진은 도망하지 못하도록 옥에 가두어라. 그러나 아직 형벌을 내리지는 않겠다. 조태식의 행적과 장례를 치렀다는 증언부터 조사할 것이다."

    차가운 옥 안에서 연화는 벽을 등지고 앉았다. 남녀의 옥은 나무 창살로 나뉘어 있었고, 무진은 건너편에 갇혔다.

    "무진, 제가 살아서 나가면 당신 곁을 떠나겠습니다."

    "싫소."

    "태식은 저를 이용해 당신의 물건까지 빼앗을 겁니다."

    "그 천은 다시 만들면 되오."

    "목숨까지 빼앗기면요?"

    무진은 창살 사이로 손을 내밀었다.

    "내가 서른한 해를 살아 보니, 목숨만 붙어 있다고 사는 것이 아니더군. 지킬 것이 하나도 없던 때보다 당신을 지키다 쓰러지는 편이 낫소."

    연화는 창살 너머로 그의 손을 잡았다.

    그때 옥졸이 다가와 낡은 바늘쌈지 하나를 내밀었다.

    "복례라는 여인이 맡기고 갔다. 네 보퉁이 안쪽에서 발견했다더군."

    연화는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바늘쌈지를 뜯어 보았다. 두 겹으로 된 안감 사이에서 기름종이 한 장이 나왔다. 친정 포목점의 거래 장부 일부와 태식이 쓴 차용증이었다.

    차용증에는 태식이 연화의 아버지에게 거액을 빌리며 포목점의 염색법을 담보로 삼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아래의 날짜였다. 태식이 죽었다고 장례를 치른 날보다 보름 뒤, 북쪽 의주의 객주에서 새로 작성된 문서였다.

    연화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 사람은 죽은 것이 아니었어요. 빚을 피하려고 죽은 척한 겁니다."

    그리고 차용증 뒷면에는 작은 글씨가 하나 더 적혀 있었다.

    조태식이 빚을 갚지 못할 경우, 연화의 친정 재산과 염색법에 관한 권리는 전부 연화에게 돌아간다는 아버지의 유언이었다.

    죽은 줄 알았던 태식이 살아 돌아온 것처럼, 빼앗긴 줄 알았던 연화의 권리도 낡은 바늘쌈지 속에서 되살아나고 있었다.

    ※ 5: 훔친 비법의 대가

    다음 날 아침, 복례는 장터의 보부상과 무진에게 나무를 팔던 상인들을 데리고 관아에 나타났다. 의주에서 온 객주 한 사람도 태식의 차용증을 알아보았다.

    "이 수결은 분명 조태식의 것입니다. 죽었다던 사람이 제 가게에 찾아와 이름을 바꾸고 비단 장사를 시작했지요. 빚쟁이들이 나타나자 다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사또가 태식을 노려보았다.

    "네가 죽었다는 소문을 일부러 퍼뜨린 것이냐?"

    "장삿길에 소문이 잘못 난 것뿐입니다. 제가 직접 죽었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아내가 장례까지 치르는데도 어찌 석 달 동안 돌아오지 않았느냐?"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습니다."

    태식은 끝까지 발뺌했다. 그는 차용증이 위조되었다고 주장했고, 연화가 자신을 모함하려고 객주를 매수했다고 소리쳤다. 혼인 문서가 유효한 이상 연화는 자신의 아내이며, 아내가 가진 기술과 재산도 남편 집안에 속한다고 우겼다.

    사또는 즉시 판결하지 않았다. 대신 태식에게 명했다.

    "무연포가 네 집안의 기술이라 했으니 직접 같은 물건을 만들어 보아라. 강무진과 연화도 따로 만들게 하겠다. 어느 쪽의 말이 참인지 살펴볼 것이다."

    태식에게 사흘의 시간이 주어졌다. 관아 밖으로 나온 그는 곧장 무진의 초가로 사람을 보냈다. 집 안을 뒤져 실패한 천 조각과 밀랍 찌꺼기를 훔치고, 압착 틀의 모양까지 베껴 오게 했다.

    그는 장터의 욕심 많은 포목상에게 돈을 주고 무연포와 비슷한 물건을 대량으로 만들었다. 천에 들기름을 흠뻑 바른 뒤 뜨거운 밀랍을 덮었으니 겉보기에는 물이 스며들지 않았다.

    "누비 간격 따위가 무엇이 중요하겠느냐? 물만 막으면 되는 천이다."

    태식은 관아의 시험도 끝나기 전에 가짜 무연포를 장터에 내놓았다. 진짜보다 절반이나 싼 가격에 팔자 상인들이 몰려들었다. 태식은 곧 부자가 될 생각에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한편 옥에서 풀려난 무진과 연화는 관아 뒤뜰에 마련된 작은 작업장에서 처음부터 다시 천을 만들었다. 압착 틀도 없었고 좋은 천도 부족했다.

    연화가 밤새 바느질하다 손가락을 찔렀다. 붉은 피가 천에 떨어지기 전에 무진이 그녀의 손을 잡아 입가로 가져갔다. 상처를 살피는 그의 눈에 걱정이 가득했다.

    "쉬었다 합시다."

    "사흘 안에 끝내지 못하면 모든 것을 빼앗깁니다."

    "손을 망치면 이겨도 다시 만들 수 없소."

    무진은 자신의 옷자락을 찢어 연화의 손가락에 감아 주었다. 연화는 그의 지친 얼굴을 바라보다 어깨에 기대었다.

    "전에는 누군가에게 기대면 약해지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지친 사람이 잠시 기대는 건 약한 것이 아니오."

    "그렇다면 조금만 이러고 있겠습니다."

    무진은 말없이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러나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무진은 관아에서 버리는 목재로 작은 압착 틀을 만들었다. 연화는 촘촘한 세모꼴 누비 간격을 사용했다. 물이 한곳에 고이지 않고 사방으로 흘러가게 하는 친정어머니의 재단법이었다. 들기름과 밀랍은 계절에 따라 굳기가 달라졌기에 연화는 콩기름을 조금 섞어 유연함을 더했다.

    시험을 하루 앞둔 밤, 장터에 다급한 종소리가 울렸다. 태식의 가짜 무연포를 입고 산길을 달리던 파발꾼이 낭떠러지에서 굴러떨어진 것이다.

    밀랍이 굳은 천은 추운 밤공기에 딱딱해졌고, 어깨 부분이 찢어지면서 말안장에 걸렸다. 파발꾼은 다리가 부러졌으며, 품에 지녔던 관문서까지 빗물에 젖었다.

    사또는 태식과 포목상을 당장 잡아들였다.

    "관아의 시험이 끝나기도 전에 물건을 팔았느냐?"

    "저는 그저 사람들이 원하기에……."

    "네놈의 욕심 때문에 파발꾼이 죽을 뻔했고 중요한 문서까지 망가졌다!"

    태식은 포목상에게 책임을 돌렸지만, 포목상은 태식이 내민 제조 지시서를 꺼내 놓았다. 거기에는 무진의 집에서 훔친 압착 틀 그림까지 그려져 있었다.

    이튿날 관아 마당에서 마지막 시험이 열렸다. 태식의 천은 처음에는 물을 막았지만, 여러 번 접자 밀랍이 갈라졌다. 불 가까이에 두자 기름이 흘러나와 불길까지 치솟았다.

    무진과 연화의 무연포는 달랐다. 수십 번 접었다 펼쳐도 갈라지지 않았고, 물을 부은 뒤 안쪽을 확인해도 마른 상태였다. 연화가 누비옷의 끈을 풀어 보따리와 깔개로 바꾸어 보이자 구경꾼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졌다.

    사또가 물었다.

    "두 사람이 각자 무엇을 만들었느냐?"

    "연화가 천의 겹과 누비 간격, 기름의 배합을 고안했습니다. 저는 기름을 고르게 먹이는 압착 틀과 나무 단추를 만들었습니다."

    "어느 한 사람의 기술만으로 만들 수 있겠느냐?"

    "만들 수 없습니다."

    연화도 고개를 숙였다.

    "무연포는 저 혼자 만든 물건이 아닙니다. 버려진 천을 제가 이었고, 무진이 쓸모를 갖게 해 주었습니다."

    사또는 태식이 제출한 제조법을 펼쳤다. 그가 집안의 비법이라 주장한 문서는 무진의 초가에서 훔친 실패 기록을 베낀 것이었다. 그 안에는 두 사람이 이미 버린 잘못된 밀랍 배합까지 그대로 적혀 있었다.

    결국 태식의 죽음을 증명했다던 피 묻은 도포에서도 진실이 드러났다. 옷에 묻은 것은 사람의 피가 아니라 장터에서 구한 소의 피였고, 태식의 어머니가 하인에게 거짓 장례를 준비시킨 사실도 밝혀졌다.

    사또가 판결문을 내려놓았다.

    "조태식은 빚을 피하고자 죽음을 꾸몄으며, 아내의 재산을 빼앗고 거짓 증언으로 내쫓았다. 그 뒤 혼인 관계를 악용해 연화와 강무진을 모함하고 제조법까지 훔쳤다. 엄히 죄를 묻겠다."

    태식은 곤장을 맞고 먼 고을의 관노로 보내졌다. 그의 어머니와 거짓 증언을 한 하인들에게도 벌이 내려졌다. 빼앗겼던 포목과 패물은 연화에게 반환되었다.

    관아를 나선 연화는 한동안 푸른 하늘만 바라보았다. 무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가고 싶소?"

    연화는 그의 손을 잡았다.

    "비가 새더라도 제가 돌아갈 집은 하나뿐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초가에 도착했을 때, 사립문 앞에는 수십 명의 보부상과 역참 관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앞에 선 관리가 두꺼운 주문서를 내밀었다.

    "파발꾼들을 위해 무연포 삼백 장을 만들어 주시오."

    무진과 연화는 주문서에 적힌 숫자를 보고 동시에 숨을 삼켰다.

    가난한 초가의 쌀독을 채우는 정도가 아니었다. 두 사람의 운명을 완전히 뒤집을 주문이었다.

    ※ 6: 버려진 것들이 세운 집

    무연포 삼백 장은 두 사람이 밤을 새운다고 감당할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무진은 큰 주문을 기뻐하기보다 먼저 걱정했다.

    "욕심을 내어 모두 받았다가 날짜를 지키지 못하면 신용을 잃소."

    "우리 둘이서 만들 생각을 버리면 됩니다."

    연화는 장터와 인근 마을을 돌아다녔다. 남편을 잃고 품팔이하던 과부, 시댁에서 쫓겨난 여인,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바느질삯을 제대로 받지 못하던 노파들을 찾아갔다.

    "일한 만큼 정확히 품삯을 드리겠습니다. 익숙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제가 가르쳐 드릴게요."

    처음 모인 사람은 여섯 명에 불과했다. 그중에는 연화를 도우며 잔소리를 아끼지 않던 복례도 있었다.

    "내가 물에 빠져도 안 젖으면 믿겠다고 했지? 이제 믿었으니 품삯이나 후하게 주게."

    무진은 초가 옆의 빈 외양간을 고쳐 작업장으로 만들었다. 혼자서는 하루에 하나 만들기도 어려웠던 압착 틀을 발로 밟아 움직이는 방식으로 개량했다. 두 사람이 손잡이를 돌리던 일을 한 사람이 할 수 있게 되면서 생산 속도가 세 배로 빨라졌다.

    연화는 일을 잘게 나누었다. 천을 고르는 사람, 자투리를 잇는 사람, 누비는 사람, 기름을 먹이는 사람, 완성품을 시험하는 사람이 따로 맡았다. 마지막에는 반드시 물을 붓고 수십 번 접어 품질을 확인했다.

    "빨리 만드는 것보다 한 장도 실패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천을 입는 사람은 비바람 속에서 목숨을 걸고 달릴 테니까요."

    소문을 들은 여인들이 하나둘 작업장을 찾아왔다. 연화는 그들의 과거를 묻지 않았다. 바늘을 잡을 손과 다시 살아 보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받아 주었다.

    삼백 장의 무연포는 약속한 날보다 이틀 먼저 완성되었다. 역참에서는 처음 주문한 물량의 두 배를 추가로 요청했다. 한양과 개성의 보부상들이 몰려들었고, 포구의 뱃사공들은 배를 덮을 만큼 큰 방수포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무진은 방수 누비옷에 머물지 않았다. 접으면 작은 보따리가 되는 장옷, 곡식을 습기로부터 지키는 덮개, 빗속에서도 젖지 않는 약초 주머니를 만들었다. 연화는 쪽빛과 먹빛으로 천을 염색하고, 물건마다 작은 연꽃과 나무 문양을 수놓았다.

    두 사람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딴 무연방은 반년 만에 장터에서 가장 큰 가게가 되었다. 이듬해에는 기와를 얹은 작업장과 창고까지 세워졌다.

    돈이 쌓이자 사람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무진을 산골 곰이라 놀리던 이들은 그를 강 대방이라 부르며 허리를 굽혔다. 연화에게 불길한 여인이라 손가락질하던 사람들은 딸을 작업장에 들여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어느 저녁, 무진은 장부를 정리하는 연화 앞에 작은 나무 상자를 내려놓았다. 상자 안에는 화려한 패물 대신 그가 직접 깎은 연꽃 비녀가 들어 있었다.

    "이제 집도 생겼고 쌀도 넉넉하니, 늦었지만 제대로 묻고 싶소."

    무진은 연화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내 아내가 되어 주겠소?"

    연화가 비녀를 들었다. 매끈하게 다듬은 꽃잎 한쪽에는 아주 작은 흠집이 남아 있었다.

    "이 흠집은 무엇입니까?"

    "처음 만들 때 실수한 것이오. 새로 만들까 했지만…… 우리도 흠이 있는 채로 만났으니 굳이 감추고 싶지 않았소."

    연화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사람들은 제가 버려진 여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한 번도 저를 주워 왔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사람은 물건이 아니니 주울 수도, 가질 수도 없소. 당신이 내 곁에 머물러 준 것이오."

    "그렇다면 앞으로도 계속 머물겠습니다. 늙어서 바늘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요."

    두 사람의 혼례는 무연방의 넓은 마당에서 열렸다. 연화는 붉은 활옷을 입었고, 무진은 평생 처음으로 고운 사모관대를 갖추었다. 복례와 작업장의 여인들이 가족을 대신해 자리를 채웠으며, 보부상과 파발꾼들도 축하하러 찾아왔다.

    초례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선 무진의 손이 떨렸다. 연화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날 장터에서 저를 업었을 때보다 더 떨고 계십니다."

    "그때는 정신없는 사람을 업었지만, 오늘은 제 평생을 맞이하는 날이니 그렇소."

    "첫날밤에도 이렇게 떠실 겁니까?"

    무진의 귀가 붉어졌다.

    "그날 일은 아직도 생각만 하면 심장이 먼저 뛰오."

    연화가 족두리 아래로 미소를 지었다.

    "오늘 밤에는 도망가지 마세요."

    "당신이 놓아줄 때까지 움직이지 않겠소."

    하객들은 두 사람이 무슨 말을 나누는지 모르면서도 함께 웃었다.

    혼례가 끝난 밤, 새로 지은 안방에는 붉은 촛불이 밝혀졌다. 무진이 연화의 족두리를 벗겨 주자 단정한 쪽진머리와 붉어진 얼굴이 드러났다.

    "이렇게 좋은 날에도 제가 꿈에서 깰까 두렵습니다."

    "그렇다면 확인해 보시오."

    연화는 무진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빠르고 힘찬 심장 소리가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꿈이 아니군요."

    무진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이마를 맞댔다.

    "비 오는 날 당신을 데려온 뒤로 내 삶이 온통 꿈 같았소."

    두 사람의 입술이 천천히 포개졌다. 첫날 서로의 상처를 달래려 나누었던 입맞춤과 달리, 이제는 숨길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었다. 붉은 촛불 아래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하나로 겹쳐졌다.

    몇 해 뒤 무연방은 조선 팔도에 물건을 보내는 큰 상단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연화와 무진은 처음 살았던 초가를 허물지 않았다. 지붕만 새로 얹고, 갈 곳 없는 이가 찾아오면 잠시 머물 수 있는 방으로 남겨 두었다.

    어느 장맛날, 소박맞은 젊은 여인이 아이를 안고 그 초가 앞에 쓰러졌다. 연화는 망설이지 않고 여인을 안으로 들였다. 무진은 젖은 짐을 받아 들고 따뜻한 죽을 끓였다.

    "제가 누군지 아시고 도와주십니까?"

    연화가 여인의 차가운 손을 감싸 주었다.

    "사람을 돕는 데 그 사람의 과거까지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무진은 비가 새는 곳에 놋그릇을 받쳐 놓으며 웃었다.

    "우리도 이 집에서 시작했소. 버려진 천 조각과 아무도 돌아보지 않던 두 사람이 만났지."

    연화는 창고에 쌓인 비단이 아니라, 마당에서 함께 웃으며 일하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태식은 재물을 얻기 위해 사람을 버렸고, 무진은 가진 것이 없으면서도 사람을 품었다. 끝내 큰 부자가 된 것은 비법을 훔친 자가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준 두 사람이었다.

    버려진 천은 이어 붙이면 세상에 없던 옷이 되었다. 버려졌다고 믿었던 삶도 따뜻한 손 하나를 만나자 새로운 인연이 되었다.

    무진이 연화의 어깨에 무연포를 둘러 주었다.

    "비가 많이 내리는구려."

    "괜찮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함께 막을 지붕이 있으니까요."

    두 사람은 하나의 우산처럼 넓은 무연포를 나누어 쓰고 빗속을 걸었다. 그 뒤로 자신들이 세운 기와집과 작업장의 불빛이 따뜻하게 빛나고 있었다.

    유튜브 엔딩 멘트

    남이 버렸다는 이유로 가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연화와 무진이 큰 부자가 된 비결은 특별한 행운이 아니라 서로의 상처와 재주를 믿어 준 마음이었습니다. 오늘 이야기가 따뜻하셨다면 구독과 좋아요로 함께해 주세요. 다음 조선 로맨스에서도 가슴 뛰는 인연으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