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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부에게 장가든 줄 알았더니 『어우야담』

    가난한 총각이 후한 지참금에 혹해 나이 많은 과부에게 장가들었더랍니다.

    첫날밤 족두리를 벗기니, 세상에, 주름진 노파가 아니라 스무 살 꽃 같은 처녀지 뭡니까. 늙은 과부는 딸의 인물을 감추려 일부러 소문을 냈던 것. 횡재한 총각이 각시와 멋진 일을 하며 찾은 제2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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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가난에 허덕이던 노총각, 살기 위해 얼굴도 모르는 늙은 과부에게 장가를 갔습니다. 동네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맞이한 첫날밤. 떨리는 손으로 신부의 족두리를 벗긴 순간,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주름진 노파가 아니라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스무 살 꽃처녀였습니다! 대체 이 모녀에게는 어떤 기막힌 비밀이 숨겨져 있던 걸까요? 가슴 따뜻한 인생 역전 이야기,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 1: 찢어지게 가난한 노총각, 황당한 혼처를 제안받다

    한양 도성 밖, 찬 바람이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남산 자락의 후미진 골목에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운 낡은 초가집이 한 채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지붕을 덮은 이엉은 언제 갈았는지 기억조차 희미할 만큼 썩어 문드러져, 비가 오면 방 안으로 흙탕물이 뚝뚝 떨어지기 일쑤였고, 마당은 사람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되어 성인 허리춤까지 오는 억센 잡초들만이 무성했습니다. 대낮에도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이 남루한 폐가 같은 곳의 주인은, 올해로 서른 고개를 훌쩍 넘긴 가난한 노총각 박 도령이었습니다. 본래 그의 집안은 대대로 벼슬을 지낸 뼈대 있는 양반 가문이었으나, 조부 때에 억울한 당쟁에 휘말려 가세가 크게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부모님마저 이름 모를 역병으로 연달아 세상을 떠나시자, 홀로 남겨진 박 도령은 그야말로 입에 풀칠하기도 벅찬 참담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가난이라는 것은 단순히 배가 고픈 것을 넘어, 사람의 영혼과 자존심마저 서서히 갉아먹는 무서운 병과도 같습니다. 박 도령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사서삼경을 줄줄 외우고 붓글씨에 능해 훗날 과거에 급제하여 가문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큰 뜻을 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장 내일 아침 끓여 먹을 쌀 한 줌, 아궁이에 땔 나무 한 토막이 없는 현실 앞에서는 그 알량한 학문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선비의 체면을 버리고 남의 집 밭일을 거들거나, 깊은 산에 올라가 땔감을 해다 저잣거리에 내다 파는 삯일꾼 신세가 되었습니다. 혼기는 진작에 놓쳐버렸습니다. 번듯한 직업도 없고, 물려받은 재산은커녕 빚만 가득한 찢어지게 가난한 사내에게 귀한 딸의 평생을 맡길 부모는 이 세상 천지 어디에도 없었으니까요. 동네 사람들은 다 떨어진 갓을 쓰고 굽은 등으로 걸어가는 그를 보며 쯧쯧 혀를 찼고, 철없는 동네 아이들은 흙먼지를 일으키며 그를 뒤에서 놀려대기 일쑤였습니다.

    '내 팔자에 장가는 무슨 놈의 장가란 말이냐. 조상님들 뵐 면목이 없으나, 그저 이 지독하게 길고 추운 겨울이나 얼어 죽지 않고 무사히 버티면 그것이 다행이겠지. 모진 목숨, 끊어지지도 않는구나.'

    찬 바람이 구멍 난 문풍지를 매섭게 때리며 스며들던 어느 늦가을 밤이었습니다. 냉기가 올라오는 차가운 구들장에 얇은 홑이불 하나를 뒤집어쓴 채 웅크리고 누워 배고픔을 달래던 박 도령은 뼈가 시린 쓰디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사흘 꼬박 물 한 모금 외에는 곡기를 끊은 위장이 텅 비어, 천둥이 치듯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적막한 방 안을 처량하게 채웠습니다. 내일은 또 어느 대감마님 댁 뒷문에서 찬밥 한 덩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을까, 혹여 얼어 죽은 채로 발견되면 거적때기 하나는 덮어줄 사람이 있을까, 그런 비참한 생각의 늪에 빠져 있을 때였습니다.

    "박 도령, 계시오? 이보시오, 안에 박 도령 계시는가! 귀먹었소, 내 목소리 안 들리오!"

    적막을 깨고 사립문 밖에서 낯선 여인의 앙칼지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 늦은 밤에 누굴까 싶어 박 도령이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부스스 일어나 삐걱거리는 문을 열어보니, 달빛 아래 기괴한 모습의 여인이 서 있었습니다. 얼굴에는 하얀 분칠을 두껍게 하고, 입술은 쥐를 잡아먹은 듯 붉게 칠했으며, 값비싼 화려한 비단옷을 걸친 중년의 여인이 코를 찡긋거리며 냄새난다는 듯 마당에 서 있었습니다. 한눈에 보아도 한양 바닥에서 뚜쟁이질로 꽤나 이름 좀 날린다는 매파 할멈이 틀림없었습니다.

    "아이고, 세상에나 마상에나! 집구석 꼬라지하고는. 돼지우리도 이것보다는 낫겠구만. 귀신이 나올 것 같아 원, 쯧쯧. 그래, 자네가 그 땔감 팔아 연명한다는 몰락 양반 박 도령이 맞소?"

    "그렇소만, 이 깊은 밤중에 뉘신데 남의 집을 찾아와 이리 무례하게 함부로 주둥이를 놀리시는 게요? 볼일이 없거든 당장 물러가시오!"

    박 도령이 굶주림에 지친 와중에도 선비의 알량한 자존심을 세우며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자, 매파 할멈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넓은 소매 속에서 화려하게 수놓아진 비단 주머니 하나를 꺼내어 그의 눈앞에 흔들어 보였습니다. 찰그랑 찰그랑. 그것은 박 도령이 그토록 만져보고 싶었던, 틀림없는 엽전 꾸러미가 부딪히는 묵직한 소리였습니다.

    "에구, 성질머리하고는. 이보시게, 내 자네에게 아주 기가 막힌, 하늘에서 뚝 떨어진 동아줄 같은 혼처를 하나 물어왔지 뭔가. 자네, 장가갈 생각 없는가? 이렇게 비참하게 굶어 죽고 싶지 않으면 내 말 똑똑히 들으시게."

    "장가라니요? 당치도 않은 소리 마시오. 댁도 내 꼴을 보아하니 아실 테지만, 나는 가진 것 하나 없는 빈털터리, 내일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사람이오. 나 같은 못난 놈에게 시집올 여인이 조선 팔도 어디에 있단 말이오? 실없는 소리 마시고 당장 돌아가시오."

    "아따, 성미 참 급하시네! 그러니까 내가 이 야심한 밤에 발품을 팔아 찾아온 게 아니겠나! 두 귀 활짝 열고 잘 들으시게. 상대는 저기 저 으리으리한 북촌 기와집에 사는 아주 돈이 차고 넘치는 부자 과부댁일세. 죽은 남편이 남겨놓은 문전옥답이 수만 평이 넘고, 뒤뜰 창고에는 햅쌀과 최고급 비단이 썩어날 정도로 억수로 부자지. 그 댁 마님께서 집안의 기둥이 되어줄 든든한 사내를 새 서방으로 맞이하고 싶다며 나를 보내셨네."

    박 도령의 움푹 팬 눈이 커졌습니다. 북촌의 부자 과부라니. 하지만 이내 깊은 의구심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렇게 부유하고 남부러울 것 없는 분이 어찌 나같이 찢어지게 가난한 상놈이나 다름없는 자를 찾는단 말이오? 필시 내게 말하지 못할 무슨 흉측한 곡절이나 흠집이 있는 게 아니오?"

    "곡절은 무슨 얼어 죽을 곡절! 굳이 흠을 잡자면... 흠흠, 나이가 좀 있으시지. 올해로 쉰을 갓 넘기셨나, 예순이 다 되어가시나... 아무튼 연세가 제법 있으시네만, 그게 무슨 대수인가? 그 댁에 데릴사위로 들어가기만 하면, 자네에게 시집오면서 지참금으로 당장 기름진 논 서 마지기와 아흔아홉 칸짜리 기와집 한 채, 그리고 평생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먹고살 막대한 재물을 내어주겠다고 굳게 약조하셨네. 자네 이대로 평생 홀아비로 이 썩은 초가집에서 얼어 죽고 굶어 죽을 텐가? 눈 딱 감고 부잣집 늙은 마님 한 분 극진히 모시고 살면, 평생 호의호식하며 뜨끈한 구들장에서 기름진 고깃국에 하얀 이팝나무 같은 쌀밥을 배터지게 먹을 수 있는데 말이야! 어때, 내일 당장 사주단자를 넣을 텐가?"

    그 간교한 말을 듣는 순간, 박 도령의 마른 얼굴이 수치심과 분노로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습니다. 아무리 가난에 찌들어 하루살이처럼 산다지만, 명색이 충효를 목숨보다 중히 여기는 양반의 자손이었습니다. 어머니뻘 되는 늙은 과부에게 그깟 돈 몇 푼을 보고 장가를 가라니, 이는 선비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고 영혼을 팔라는 치욕적인 제안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 이 발칙한 노파가 당장 주둥이를 닥치지 못할까! 당장 내 집에서 나가시오! 내 아무리 굶어 죽어 거름이 될지언정, 재물에 눈이 멀어 늙은 과부의 치마폭에 숨어 기둥서방 노릇이나 할 줄 아시오? 내 뼈대 있는 가문을 욕보이지 말고 썩 물러가란 말이오!"

    박 도령은 핏대를 세우며 버럭 소리를 지르곤, 썩은 사립문을 쾅 닫아버렸습니다. 매파 할멈은 문밖에서 "아이고, 굶어 뒈져도 싼 양반 놈의 꼬락서니!"라며 온갖 쌍욕을 투덜거리며 돌아갔고, 낡은 초가집에는 다시금 뼛속까지 시린 무거운 정적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당당했던 호통과는 다르게, 매파 할멈이 남기고 간 말은 거머리처럼 박 도령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들러붙었습니다. '평생 기름진 고깃국에 하얀 쌀밥... 뜨끈한 기와집 한 채...' 그날 밤, 뱃속에서 들려오는 천둥 같은 꼬르륵 소리와 뼛속을 파고드는 추위는 알량한 선비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고 조롱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해 탈진하여 방바닥에 쓰러져 천장을 보며 가쁜 숨을 몰아쉬자, 박 도령의 굳건했던 생각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그놈의 자존심이 당장 내 입에 밥 한 숟갈을 넣어주더냐. 가문의 영광이 다 무엇이냐. 이렇게 아무도 모르게 개죽음을 당해 짐승의 밥이 되느니, 차라리 어머니 같은 분이라도 모시고 한 번쯤 사람답게 살아보고 죽자. 나 같은 버러지 같은 놈을 거두어주시는 은인이시니, 평생 내 진짜 어머니라 여기고 정성을 다해 공경하며 살면 될 것이 아닌가. 그것이 은혜를 갚는 길일 것이다.'

    결국 생존이라는 잔혹하고도 원초적인 현실 앞에 무릎을 꿇은 박 도령. 그는 며칠을 굶어 다리가 풀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지팡이에 의지한 채 매파 할멈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수치심에 고개를 들 수조차 없었고 입술은 바싹 타들어 갔지만, 모기 기어가는 듯한 떨리는 목소리로 그 수치스러운 혼인을 받아들이겠노라 말하고 말았습니다. 비참한 항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밑바닥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을, 상상조차 못 한 엄청난 기적의 선택이 될 줄은 그 순간 꿈에도 모른 채 말입니다.

    ※ 2: 수군거리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기묘한 혼례식

    박 도령이 혼인을 승낙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혼례 날짜는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일사천리로 잡혔습니다. 과부댁에서는 어찌나 돈이 넘쳐나고 성미가 급했던지, 길일이니 뭐니 따질 겨를도 없이 모든 준비를 속전속결로 밀어붙였습니다. 며칠 뒤부터 박 도령의 낡은 초가집 앞으로는 매일같이 장정들이 짊어진 어마어마한 짐바리가 도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고급 비단 중에서도 가장 귀하다는 명주로 지은 사모관대와 붉은 단령부터 시작해서, 당장 열 식구가 먹어도 남을 산해진미가 가득 담긴 삼단 찬합, 번쩍이는 놋그릇 세트, 그리고 장정 두 명이 끙끙대며 들어야 할 만큼 묵직한 엽전 꾸러미 궤짝까지. 평생 구경조차 해보지 못한 귀하고 값비싼 물건들이 무너져가는 초가집 마당에 산더미처럼 쌓이자, 조용하던 산동네가 그야말로 발칵 뒤집히고 말았습니다.

    우물가에 모인 아낙네들과 주막 평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내들은 연일 박 도령의 이야기로 침을 튀기며 꽃을 피웠습니다.

    "아이고, 동네 사람들! 내 말 좀 들어보소. 글쎄 저 산기슭에 사는 찢어지게 가난한 박 서방이 북촌 늙은 과부한테 데릴사위로 장가를 간다지 뭔가! 그 집에 들어간 비단이 어찌나 고운지 내 눈이 다 멀 뻔했어!"
    "어허, 아무리 배가 고프고 세상이 말세라지만, 양반 체면에 어찌 돈 몇 푼에 팔려 제 에미뻘 되는 늙은 여편네의 치마폭에 기어 들어간단 말인가. 선비의 지조를 버린 더러운 놈! 쯧쯧, 조상님이 지하에서 통곡을 하실 게야."
    "에이, 말은 똑바로 하세. 막말로 우리가 양반 체면 챙겨주나? 그래도 솔직히 부럽긴 오지게 부럽네 그려. 저기 저 집으로 꾸역꾸역 들어오는 고기랑 비단 좀 보소. 당장 내일 굶어 죽어 거적때기에 말려 나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늙고 병든 마누라라도 모시고 평생 고깃국 먹으며 호강하는 게 백번 낫지 않겠는가? 나라도 줄만 닿으면 당장 가겠네!"

    동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박 도령의 낡은 집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수군거렸습니다. 어떤 이는 그의 타락을 신랄하게 비웃었고, 어떤 이는 속물이라며 땅에 침을 카악 뱉었으며, 또 어떤 이는 내심 배가 아파 질투가 섞인 매서운 눈길을 보냈습니다. 사람들의 조롱 섞인 시선을 견딜 수 없었던 박 도령은 아예 바깥출입을 뚝 끊고 어두컴컴한 방 안에만 틀어박혀 지냈습니다. 가슴 한구석이 시뻘건 숯검정처럼 타들어 가는 듯했습니다. 사람들이 쏟아내는 조롱과 멸시의 말들은 과거의 굶주림보다 훨씬 더 날카롭고 잔인한 비수가 되어 그의 자존심을 무참히 후벼 팠습니다.

    '이것이 다 내 부족함이 지은 업보니 달게 받아야지. 누굴 원망하겠는가. 그래, 내 평생 사랑을 나눌 아내로 모실 분이 아니다. 그저 짐승처럼 죽어가던 나를 사람 구실 하게 거두어주신 하늘 같은 은인이시니, 평생 내 어르신, 내 어머니 모시듯 지극정성으로 효도를 다하며 수발을 들고 살자. 그것이 돈에 팔려 간 내게 남은 유일하고도 마지막 도리일 것이다.'

    스스로의 마음을 거듭 다독이며 입술을 꽉 깨물고 결심을 굳힌 박 도령. 드디어 운명의 혼례 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신랑이 된 박 도령은 과부댁에서 보내온 화려하고 빳빳한 붉은 단령을 갖춰 입고 허리에 흑림대를 단단히 둘렀습니다. 벼슬아치나 탈 법한 제법 윤기가 흐르고 튼튼해 보이는 말을 타고 북촌으로 향하는 길. 장안의 화제가 된 혼례답게 거리로 쏟아져 나온 구경꾼들의 시선이 화살처럼 따가웠지만, 그는 애써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입을 굳게 다문 채 앞만 보며 나아갔습니다.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면 자신을 선택해 준 과부댁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도착한 북촌의 과부댁은 밖에서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더 으리으리하고 장엄했습니다.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솟을대문은 위압감을 주었고, 수백 평은 족히 넘어 보이는 널찍한 마당에는 백여 명의 하객이 앉아도 넉넉할 만큼 거대한 차일이 쳐져 있었습니다. 온갖 귀한 꽃과 진귀한 과일, 높이 쌓아 올린 고기로 장식된 초례상은 그 화려함에 눈이 부실 지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혼례식장의 분위기는 잔칫집답지 않게 어딘가 몹시 묘하고 서늘한 기운이 흘렀습니다. 하객들의 얼굴에는 진심 어린 축하의 기쁨보다는 늙은 과부와 젊은 노총각의 기괴한 결합을 관찰하려는 호기심과 의아함이 서려 있었고, 신부 측 친척들은 하나같이 굳은 표정으로 입을 굳게 다물고 서슬 퍼런 눈빛만 교환하고 있었습니다.

    "신랑 입장하시어, 초례청으로 나아가시오!"

    집사의 우렁찬 목소리가 허공을 가르자, 박 도령이 긴장한 발걸음으로 초례청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이내 반대편 별당 문이 열리더니, 신부가 여러 수모들의 부축을 받으며 아주 천천히, 마치 구름 위를 걷듯 위태롭게 걸어 나왔습니다.

    박 도령은 힐끗 조심스레 신부 쪽을 곁눈질로 살폈습니다. 최고급 비단으로 지은 붉은 활옷을 입고 머리에는 화려한 보석이 박힌 무거운 족두리를 썼으며, 얼굴은 새하얀 천으로 푹 가려져 있어 이목구비를 전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신부의 걸음걸이가 몹시 무거워 보였고, 다리가 후들거리는지 수모들이 양옆에서 단단히 팔을 붙잡아 부축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바닥에 푹 쓰러질 것만 같이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아아... 연세가 예순이 다 되어가신다더니, 과연 거동조차 몹시 불편하신 모양이구나. 어찌 저렇게 병들고 쇠약한 노구로 이 험난한 혼례를 치르시며, 저리 무거운 족두리까지 쓰셨단 말인가. 뼈가 으스러질 듯 아프실 터인데... 마음이 참으로 짠하고 아프구나.'

    박 도령은 일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진한 연민에 콧잔등이 시큰해졌습니다. 돈 때문에 몸을 팔고 지조를 버린 자신의 비참한 처지가 한탄스러웠지만, 동시에 저렇게 늙고 병든 몸으로 생의 마지막 끄트머리에서 남은 여생을 의지할 반려자를 찾고자 했던 외로운 과부의 마음이 얼마나 애처롭고 절박했을까 생각하니, 미움 대신 묘한 동정심과 책임감이 솟아났습니다.

    절을 올리고 술잔을 나누는 교배지례가 진행되는 내내, 신부는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푹 숙인 채 가녀린 어깨를 바들바들 떨고 있었습니다. 박 도령은 행여나 신부가 쓰러질까 노심초사하며, 평소보다 훨씬 더 동작을 늦추어 최대한의 예를 갖추고 신중하게 절을 올렸습니다. 사람들의 비웃음 섞인 웅성거림 속에서도 묵묵히 혼례를 마친 두 사람. 어느덧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으리으리한 기와집 마당에 켜진 수십 개의 청사초롱이 붉게 타오르며 어둠을 밝히기 시작했습니다. 잔칫상의 산해진미가 바닥을 드러내고 구경꾼들과 하객들이 하나둘 자리를 뜰 무렵, 드디어 박 도령의 인생에서 가장 길고 기나긴 하루의 끝을 알리는, 피할 수 없는 첫날밤의 순간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박 도령의 심장은 주체할 수 없이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습니다. 두려움과 체념, 동정심, 그리고 앞으로 죽는 날까지 감당해야 할 기묘하고도 기형적인 부부 생활에 대한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그의 온몸을 차갑게 휘감았습니다. 천근만근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조용한 신방 앞에 선 박 도령은, 깊고 무거운 심호흡을 크게 한 번 내쉰 뒤, 조심스레 미닫이문 문고리를 잡고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 3: 족두리 아래 숨겨진 비밀, 첫날밤의 대반전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선 신방 안은, 오직 화려한 촛대 위에 꽂힌 은은한 촛불 몇 개만이 흔들리며 벽에 거대한 그림자를 만들어내어 몹시 묘하고 숨 막히는 긴장감을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방 한편에 놓인 십장생이 수놓아진 화려한 병풍 앞에는 당장 누워도 구름결 같을 원앙이 수놓아진 푹신한 보료가 정갈하게 깔려 있었고, 그 위에 붉은 활옷을 입은 신부가 무거운 족두리를 쓴 채 고개를 푹 숙이고 다소곳이 앉아 있었습니다. 방 안 가득 고급스러운 백단향 냄새가 옅게 배어 있어 박 도령의 어지러운 마음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박 도령은 문을 닫고 들어서자마자 헛기침을 '흠흠' 하고 한 번 내뱉고는, 신부와 제법 거리를 둔 채 방바닥만 멍하니 내려다보며 우두커니 앉았습니다. 대체 무슨 말부터 꺼내어 이 어색하고 두려운 침묵을 깨야 할지 막막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뻘을 넘어 할머니에 가까운 연배의 여인을 새신부로 맞이했으니, 사내로서 반말을 하며 위엄을 세워야 할지, 아니면 어르신 대하듯 깍듯이 존대를 해야 할지조차 가늠이 되지 않아 혼란스러웠습니다. 찰나의 순간이 억겁의 시간처럼 길게 느껴지던 그때, 한참을 바닥만 뚫어지게 보며 고뇌하던 박 도령이 마침내 무거운 입술을 뗐습니다.

    "저... 부, 부인. 아니, 마님. 제가 어찌 불러야 할지 몰라 송구하옵니다. 비록 제가 지지리도 가난하고 배운 것 없는 몰락한 선비라 염치없이 돈에 팔려 이 귀한 집에 들어왔으나, 제 마음가짐 하나만큼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결백합니다. 앞으로 마님을 제 목숨을 구해준 큰 은인으로 생각하고, 죽는 그날까지 지극정성으로 공경하며 모시겠습니다. 저를 남편이라 생각하시어 부담을 갖지 마시고, 그저 남은 여생을 편안히 보살필 충직한 수발꾼이나 머슴이라 여겨 주십시오. 제 평생을 바쳐 곁을 지키겠나이다."

    박 도령의 떨리지만 진심이 가득 담긴 고백이 조용한 방 안을 묵직하게 울렸습니다. 속물처럼 재물을 탐낸 것이 아니라, 은혜를 갚겠다는 선비의 굳은 의지가 엿보이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신부는 그 감동적인 말에도 아무런 대답이나 미동조차 없이 고개만 푹 숙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저 간헐적으로 가느다란 어깨가 파르르 떨리며 옅은 숨소리가 새어 나오는 것만이 그녀가 이 방안에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유일한 증거였습니다.

    '아아... 연세가 워낙 많으시니 초야의 긴장감에 심신이 놀라 무리가 가신 모양이군. 이러다 쓰러지시기라도 하면 큰일이지. 우선 저 목을 짓누르는 무거운 족두리부터 서둘러 벗겨 드려야 숨이라도 편히 쉬시겠구나.'

    박 도령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고 공손한 발걸음으로 신부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신부의 몸 떨림은 곁에서 느껴질 정도로 더욱 심해졌습니다. 박 도령은 행여나 신부가 놀랄까 아주 느리고 부드럽게 떨리는 손을 뻗어, 신부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는 묵직하고 화려한 족두리를 조심스레 들어 올렸습니다. 그리고 얼굴을 가리고 있던 하얀 천을 두 손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거두어 내렸습니다.

    그 순간, 박 도령은 다리에 힘이 풀려 하마터면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나자빠질 뻔했습니다. 그의 눈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둥그렇게 커졌고, 떡 벌어진 입은 턱이 빠진 것처럼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숨이 턱 막히고 심장이 멎는 듯한 엄청난 충격. 그가 혼례 전부터 수백 번 수천 번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각오했던, 백발이 성성하고 얼굴에 깊은 주름이 팬 늙고 병든 과부의 얼굴은 온데간데없었습니다.

    촛불의 불빛 아래로 천천히 드러난 신부의 얼굴은, 봄날 핀 복숭아꽃처럼 붉게 물든 뺨에 앵두같이 작고 도톰한 입술을 가졌으며, 백옥처럼 새하얀 살결을 지닌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십 대 초반의 꽃 같은 처녀였습니다! 검고 윤기 나는 탐스러운 머릿결과 사슴처럼 크고 맑은 눈망울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놀라서 얼어붙은 박 도령을 조심스레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이, 이, 이게 대체 어찌 된 영문이오! 분명... 분명 늙은 과부라더니... 귀, 귀신이오? 아니면 천년 묵은 여우가 둔갑이라도 하여 사람을 홀리려는 것이오! 썩 물러가시오!"

    박 도령이 소스라치게 놀라 방구석으로 뒷걸음질을 치며 소리치자, 눈물을 글썽이던 어여쁜 처녀가 황급히 치맛자락을 여미며 모기 기어가는 듯한 가냘프고 다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놀라지 마시어요, 서방님! 저는 사람을 홀리는 귀신도 여우도 아닙니다. 저는 오늘 낮에 서방님과 수많은 하객들 앞에서 백년가약을 맺고 부부의 연을 맺은 서방님의 진짜 부인이 맞습니다. 제발 진정하시고 제 말을 들어보아 주셔요."

    깊은 산속 은쟁반에 옥구슬이 굴러가듯, 꾀꼬리처럼 맑고 고운 목소리였습니다. 박 도령은 자신이 주린 배 때문에 헛것을 보고 있나 싶어 제 허벅지와 볼을 세게 꼬집어 보았습니다. '앗, 따가워!' 꿈이 아니었습니다. 눈앞에 앉아있는 이 절세가인은 너무나도 생생하게 온기를 내뿜는 현실의 사람이었습니다.

    "내 분명 며칠 전 매파 할멈에게 귀가 따갑도록 듣기로는, 나이가 예순이 다 되어가는 늙은 과부댁이라고 들었소! 동네 사람들도 다 그리 알고 있는데, 어찌 그대처럼 젊고 아름다운, 티끌 하나 없이 고운 처녀가 늙은 마님을 대신하여 이 신방에 앉아 있단 말이오? 나를 능멸하는 것이오?"

    처녀는 깊고 애절한 한숨을 내쉬더니, 치마폭에 붉어진 얼굴을 묻고 조심스레 그간의 기막힌 자초지종을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서방님과 혼담을 넣고 매파를 보낸 늙은 과부는 다름 아닌, 저를 낳아주신 제 어머니이십니다. 아버님께서 몇 해 전 몹쓸 병으로 일찍 돌아가시면서 저희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막대한 재산을 남기셨는데, 우리 모녀 단둘이서 여자의 몸으로 그 거대한 재산을 지키기가 너무도 벅차고 두려웠습니다. 게다가 제가 자라면서 인물이 조금 반반하다는 소문이 장안에 나돌자, 권세 있는 탐관오리들이 첩으로 들이겠다며 매일같이 권력을 앞세워 협박을 해왔고, 재물을 노리는 파락호와 한량 놈들이 밤마다 담을 넘어오기 일쑤였습니다. 하루하루가 피를 말리는 지옥이었습니다."

    그녀의 크고 맑은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툭툭 떨어져 붉은 치맛자락을 적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하나뿐인 저를 지키기 위해, 결국 목숨을 건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저를 집안 깊숙한 별당에 꽁꽁 숨겨두어 아무도 보지 못하게 하고, 밖으로는 '늙은 과부인 자신이 외로워 재산을 물려주고 새장가를 들 튼튼한 사내를 찾는다'고 거짓 소문을 내신 것입니다. 재물에 눈이 먼 탐욕스러운 자들과 여색만 밝히는 가벼운 놈들은 그 소문만 듣고도 기겁하며 다 떨어져 나갔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비록 가난하더라도 심성이 올곧고, 어른을 진심으로 공경할 줄 아는 진짜 의리 있는 사내를 찾기 위해 거짓으로 매파를 보내 시험하신 것이지요. 어머니의 그 가혹하고 수치스러운 시험을 통과하고, 기꺼이 늙은 여인의 남은 여생을 지켜주겠다며 사람들의 멸시를 견디고 초례청에 늠름하게 서신 분이 바로... 지금 제 눈앞에 계신 서방님이십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박 도령의 가슴은 거대한 북을 치는 것처럼 쿵쾅쿵쾅 요동쳤습니다. 늙은 과부에게 돈 때문에 팔려 왔다고 자신의 비참한 운명을 저주하며 절망했던 지난 며칠의 시간들이, 한순간에 구름 위로 솟아오르는 기적이 되어 눈앞에 찬란하게 펼쳐져 있었던 것입니다.

    "아아... 장모님의 뜻이, 그리고 부인의 처지가 그리도 깊고 험난하신 줄도 모르고... 나는 그저 알량한 선비의 자존심이 상했다며 내 처지만 한탄하고 하늘을 원망만 했으니... 이토록 부끄러울 데가 있단 말이오."

    박 도령이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부끄러움과 감격에 겨워 탄식하자, 처녀는 눈물을 훔치고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굳은살이 박인 박 도령의 거친 손을 자신의 작고 부드러운 양손으로 살며시 감싸 쥐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오늘 혼례를 지켜보시고는, 서방님의 됨됨이와 그 공손한 몸가짐을 크게 칭찬하시며, 평생을 믿고 의지할 든든한 태산 같은 분이라 하셨습니다. 서방님, 이렇게 모자라고 부족한 저를, 평생의 반려자인 아내로 기꺼이 맞아주시겠습니까?"

    새색시의 고운 손을 통해 다정하고 따뜻한 온기가 박 도령의 거친 손끝을 타고 온몸으로 전해졌습니다. 가난에 찌들어 꽁꽁 얼어붙었던 박 도령의 서글픈 마음이 봄눈 녹듯 스르르 녹아내리며, 벅찬 감동의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흘렀습니다. 그는 홀린 듯 처녀의 고운 두 손을 꽉 마주 잡았습니다. 기막힌 반전으로 시작된 두 사람의 아름다운 첫날밤, 신방의 촛불은 두 사람의 붉은 뺨을 비추며 밤이 깊도록 아름답고 따스하게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 4: 장모의 깊은 뜻, 그리고 시작된 두 사람의 진심

    아침 햇살이 창호지를 넘어 방 안을 환하게 비출 때까지도, 박 도령은 자신이 겪은 간밤의 일들이 혹여 한여름 밤의 달콤하고 허망한 꿈이 아닐까 끊임없이 의심했습니다. 조심스레 눈을 떠보니 제 품 안에는 여전히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새색시가 새근새근 옅은 숨을 내쉬며 곤히 잠들어 있었습니다. 창틈으로 스며든 아침 햇살이 아내의 새하얀 살결과 흐트러진 칠흑 같은 검은 머리칼을 비추었고,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가녀린 어깨를 가만히 바라보며 박 도령은 벅차오르는 감격을 주체할 수 없어 소리 없이 눈물만 뚝뚝 흘렸습니다. 어젯밤, 촛불이 다 타들어 가도록 밤새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된 아내의 고운 심성과 깊은 효심은, 그녀의 빼어난 외모보다 천 배 만 배는 더 아름답고 고귀했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자신을 하늘처럼 굳게 믿고 따르며 고마워하는 그 어여쁜 마음씨에, 박 도령은 이 여인을 위해서라면, 그리고 자신을 거두어준 이 집안을 위해서라면 제 남은 목숨이라도 기꺼이 바치겠노라 수십 번이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정갈하게 세수를 하고 의관을 반듯하게 정제한 두 사람은, 부모님께 첫 아침 문안 인사를 올리기 위해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안채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밝은 대낮에 바라본 처가의 풍경은 어젯밤 횃불 아래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장엄하고 기품이 넘쳤습니다. 넓고 윤이 나는 대청마루를 지나 안방의 묵직한 미닫이문을 열자, 그곳에는 백발이 성성하고 인자한 인상을 가진 노부인이 단정하고 기품 있는 명주 한복 차림으로 앉아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바로 박 도령이 자신의 신부인 줄로만 철석같이 믿었던, 장모님이었습니다. 박 도령은 아내와 나란히 서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뒤, 바닥에 납작 엎드려 마음을 다해 큰절을 올렸습니다. 땅에 닿은 이마에서 왈칵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 내려와 방바닥을 적셨습니다. 자신같이 버려진 사내의 진심을 알아봐 주고,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딸을 내어준 장모의 놀라운 혜안과 태산 같은 은혜에 대한 깊은 감사함 때문이었습니다.

    "사위는 이제 그만 고개를 들게나. 간밤에 필시 귀신에 홀린 듯 크게 놀랐을 터인데, 내 딸아이에게 그간의 복잡한 자초지종은 다 들었는가? 이 늙은이가 자네를 속인 것을 너무 괘씸히 여기지는 말아 주게."

    "예, 장모님. 어찌 괘씸하다 하겠습니까! 오히려 저같이 비천하고 가진 것 없는 자에게 이토록 과분하고 망극한 은혜를 베푸시니, 그저 황송하고 목이 멜 따름이옵니다. 제 평생을 다 바쳐 뼈가 으스러지도록 일하고 모시어 이 크나큰 은덕을 갚아도 모자랄 것이옵니다."

    박 도령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그의 뺨에는 여전히 눈물 자국이 선명했습니다. 장모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오더니,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엎드려 있는 박 도령의 두 손을 따뜻하게 꽉 맞잡아 주었습니다. 그 손은 몹시 거칠고 깊은 주름이 패어 있었지만, 지난 세월 남편을 잃고 탐욕스러운 세상의 이리 떼들로부터 홀로 외동딸을 지키기 위해 억척스럽게 감내해야 했던 굳건하고 위대한 모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은혜라니, 당치도 않네. 오히려 이 늙은이의 억지스럽고 망측한 요구를 군말 없이 받아준 자네에게 내가 백번 천번 더 고맙지 않은가. 내 남편이 몹쓸 병으로 죽고 막대한 재산을 남기자, 평소에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던 친척 놈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어 재산을 빼앗으려 혈안이 되었었네. 게다가 내 딸아이가 커갈수록 미색이 뛰어나다는 소문이 돌자, 권력을 쥔 벼슬아치들부터 시정잡배들까지 담장을 기웃거리며 우리 모녀를 짐승처럼 노렸지. 피가 마르고 뼈가 깎이는 고통 속에서, 나는 결심했네. 세상 사내들은 모두 재물에 눈이 멀거나 껍데기 같은 예쁜 얼굴만 밝히기 십상인데, 그런 자들에게 내 귀한 딸을 주었다가는 금방 첩실을 들이고 버림받아 평생 피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 뻔하지 않겠는가."

    장모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 박 도령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을 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늙고 병든 과부가 새장가를 든다는 해괴망측한 소문을 내어, 재물만 탐하는 파락호들을 모두 걸러내려 한 것이라네. 자네는 달랐지. 비록 당장 내일 굶어 죽을지언정 선비의 지조를 지키려 호통을 쳤고, 결국 이 집에 들어오기로 결심했을 때도 늙고 병든 여편네를 어머니처럼 공경하며 평생 수발을 들겠다 다짐하지 않았는가. 그 고운 심성과 목숨을 건 책임감 하나면, 내 금지옥엽 같은 딸의 평생을 믿고 맡기기에 한 치의 부족함도 없다고 확신했네. 자네야말로 진정한 사내 중의 사내일세. 이제 우리는 뗄래야 뗄 수 없는 한 식구이니, 지난날 자네를 옭아맸던 끔찍한 가난과 시련은 모두 저 강물에 던져 잊어버리고, 부디 내 딸과 함께 의좋고 행복하게만 살아주게나."

    장모의 진심이 담긴 따뜻한 말 한마디에, 결국 박 도령은 아이처럼 소리 내어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지난 수년간 굶주림과 추위에 떨며 사람들에게 짐승 취급을 받고 멸시받던 지난 세월의 차가운 설움이, 봄눈 녹듯 따뜻하게 씻겨 내려가는 치유의 순간이었습니다. 곁에 있던 새댁 역시 남편의 등을 가만히 쓰다듬고 눈물을 닦아주며 조용히 함께 울었습니다.

    그날 이후, 박 도령의 팍팍했던 삶은 완벽하게 뒤바뀌었습니다. 낡은 초가집에서 찬물로 주린 배를 채우며 땔감을 팔던 가난한 노총각은 온데간데없고, 수만 평의 전답과 수백 명의 노비를 거느린 대지주 집안의 어엿하고 위풍당당한 바깥주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박 도령은 막대한 재물을 얻었다고 해서 결코 교만해지거나 사치를 부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매일 아침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의관을 갖추고 장모님께 문안 인사를 올렸고, 집안 대소사를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히 살피며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맛있는 산해진미나 귀한 과일이 들어오면 반드시 장모님과 아내의 입에 먼저 넣어주었고, 매서운 찬 바람이 부는 겨울이면 아내의 옥 같은 손이 시릴까 화로를 곁에서 단 한 순간도 떼어놓지 않았습니다. 새댁 또한 하늘 같은 남편의 깊은 사랑에 온 마음을 다해 보답했습니다. 남편이 본래 글공부에 매진하던 뼈대 있는 가문의 선비였음을 잊지 않고, 서재를 번듯하게 꾸며준 뒤 매일 밤 등잔불을 밝혀주며 곁에서 묵묵히 먹을 갈아주었습니다. 시집오기 전 별당에 갇혀 세상의 탐욕에 불안에 떨던 겁 많은 소녀는, 이제 듬직하고 다정한 지아비의 커다란 그늘 아래서 활짝 핀 모란꽃처럼 화사하고 기품 있는 여인으로 아름답게 변모해 갔습니다.

    두 사람이 머무는 방에서는 밤낮으로 다정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깊은 애정과 절대적인 신뢰가 강물처럼 도도하게 흘러넘쳤습니다. 기막힌 인연으로 맺어진 두 사람의 사랑은 척박한 땅에 내린 단비처럼, 하루가 다르게 더욱 굵고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며 집안 전체를 따스한 행복으로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 5: 뜻밖의 재물,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는 부부

    박 도령이 북촌의 대궐 같은 기와집에서 아리따운 젊은 아내를 얻어 매일같이 깨가 쏟아지게 살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문은, 발 없는 말이 되어 하룻밤 새 순식간에 한양 바닥 전체에 쫙 퍼져나갔습니다. 동네 우물가에 삼삼오오 모여 빨래를 하던 아낙네들과 주막 평상을 꿰차고 앉아 막걸리를 들이켜던 사내들은, 연일 박 도령의 인생 역전 이야기로 열띤 꽃을 피웠습니다.

    "아이고, 세상에 이런 기막힌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글쎄, 그 늙고 병든 과부가 신부가 아니라 장모였다지 뭔가! 진짜 신부는 천상의 선녀가 땅에 내려와 울고 갈 만큼 기가 막힌 절세가인이라는구만!"
    "아이고, 배야! 내 배가 아파 죽겠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늙은 여편네한테 돈에 팔려 장가간다고 박 서방을 삿대질하며 그리 놀려댔으니... 내 팔자야, 그깟 알량한 체면이 뭐라고! 나도 그날 눈 딱 감고 미친 척 그 뚜쟁이 할멈을 따라나설 것을 그랬어! 땅을 치고 후회해도 소용이 없네그려!"
    "쯧쯧, 다 하늘이 정해준 자기 밥그릇과 복이 따로 있는 법이지. 박 서방이 비록 가난에 찌들어 거지꼴로 살긴 했어도, 심성 하나만큼은 올곧고 착하지 않았나. 에미뻘 되는 늙은 어른을 끝까지 책임지고 거두겠다는 그 갸륵하고 기특한 마음을, 하늘이 어여삐 여기어 굽어살피신 게 틀림없어. 하늘의 그물은 성긴 듯해도 결코 빠뜨리는 법이 없다지 않은가."

    어제까지만 해도 박 도령이 지나갈 때마다 손가락질하며 침을 뱉고 비웃던 마을 사람들은, 이제 질투와 부러움에 땅을 치며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한탄했습니다. 어떤 뻔뻔한 이들은 안면을 싹 바꾼 채 과거에 밥 한 숟갈 적선했던 것을 들먹거리며 박 도령을 찾아와 알랑방귀를 뀌고 돈을 꿔달라 구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박 도령은 자신을 멸시했던 그들을 조금도 원망하거나 매몰차게 내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뼛속까지 시리도록 가난하고 굶주렸던 참담한 시절을 거울삼아,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하여 굶주리는 이웃들에게 처가의 거대한 곳간을 활짝 열어 쌀과 보리를 아낌없이 나누어주었습니다.

    살을 에는 듯한 매서운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한겨울이 오면, 아내와 함께 밤낮으로 두툼한 솜옷 수백 벌을 지어 가난한 홀몸 노인들과 고아들에게 조건 없이 나누어주었고, 관아에서도 손을 놓은 구휼소를 직접 열어 굶주린 백성들에게 매일 뜨끈한 죽을 끓여 먹였습니다. 박 도령의 마음속에는 늘 확고한 신념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지금 내가 누리는 이 막대한 재물과 호사는 내 능력이 뛰어나서 얻은 것이 결코 아니다. 오직 장모님의 크고 깊은 뜻과, 나를 불쌍히 여긴 하늘의 도우심 덕분에 거저 얻은 기적일 뿐이지. 만약 내가 이 헛된 재물에 눈이 멀어 나 혼자 배불리는 데만 쓴다면, 언젠가 노하신 하늘이 나를 벌하시어 이 모든 것을 다시 흔적도 없이 거두어 가실 것이다. 베풀고 또 베풀어야 한다.'

    박 도령의 조건 없는 헌신과 선행이 계속되자, 처음에는 돈 많은 처가에 빈대처럼 얹혀사는 무능하고 파렴치한 사내라며 뒤에서 비열하게 수군대던 북촌의 콧대 높은 양반들도 점차 그를 다시 평가하기 시작했습니다. 박 도령은 처가의 막대한 재산을 관리함에 있어서도 특유의 영민함과 꼼꼼함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혹독하게 익혀둔 글솜씨와 깊은 학문은, 억울하게 착취당하던 소작농들의 잘못된 장부를 단숨에 바로잡고, 이리저리 얽혀 골치를 썩이던 복잡한 토지 문서를 명쾌하게 정리하는 데 큰 빛을 발했습니다.

    그의 곁에는 늘 든든하고 지혜로운 아내가 그림자처럼 함께했습니다. 하루는 오랜 가뭄으로 논바닥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쩍쩍 갈라져, 소작농 수십 명이 농사를 완전히 망쳐버리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가을 추수 때가 되어도 소작료로 낼 낟알 하나 건지지 못한 농민들이 마당에 엎드려 살려달라 통곡을 하자, 원칙과 동정심 사이에서 박 도령이 몹시 난감해하며 수심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때 아내가 쟁반에 정갈한 다과상을 내어오며 조용히 남편의 곁에 앉았습니다.

    "서방님, 어찌 그리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십니까. 가뭄과 홍수 같은 재해는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하늘의 뜻인데, 어찌 이 가혹한 형벌을 힘없는 백성들에게만 모두 짊어지라 하십니까. 무릇 진정한 부(富)란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서 시작된다고 하였습니다. 금년 소작료는 거두지 마시고 전액 감면해 주심은 물론이거니와, 오히려 당장 저들이 겨울을 날 수 있도록 우리 곳간을 열어 양식을 조금 내어주시는 것이 어떠하올지요. 그리하시면 저들은 서방님의 태산 같은 은혜에 뼛속 깊이 감복하여, 내년 봄이 오면 우리 땅을 자신의 피붙이처럼 여기며 두 배 세 배 더 열심히 밭을 갈고 땀을 흘릴 것입니다."

    아내의 지혜롭고 통찰력 있는 조언을 듣는 순간, 박 도령은 감탄하며 무릎을 탁 쳤습니다.

    "부인의 그 놀라운 지혜로운 말이 백번, 천번 지당하오! 내 잠시 눈앞의 작은 손해에 얽매여, 정작 우리 땅을 일구어주는 백성들의 고단한 피눈물을 헤아리지 못했구려. 부인은 참으로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훌륭한 스승이자 내조자요. 당장 명을 내리겠소."

    두 부부는 늘 이렇게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며, 흔들림 없이 집안을 훌륭하게 이끌어갔습니다. 박 도령의 따뜻한 인자함과 부인의 현명한 지혜가 조화롭게 어우러지자, 처가의 재산은 백성들에게 베풀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해가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날로 번창했습니다. 은혜를 입은 소작농들은 박 도령 부부를 살아있는 생불이자 부모처럼 따르며 열렬히 존경했고, 마을에 크고 작은 분쟁이나 억울한 일이 생기면 백성들은 관아의 사또를 찾아가기보다 먼저 박 도령의 집을 찾아와 지혜를 구하고 판결을 부탁할 정도였습니다. 거지나 다름없던 가난한 노총각 박 도령은, 어느새 척박한 북촌 땅에서 가장 존경받고 덕망 높은 진정한 어르신으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굳건하고 변치 않는 사랑은 집안을 지탱하는 든든한 주춧돌이 되어, 그 누구도 함부로 넘볼 수 없는 평화롭고 풍요로운 삶의 터전을 눈부시게 완성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 6: 시련을 넘어선 진정한 부부, 꽃피는 제2의 인생

    하지만 세상만사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하였던가요. 맑은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듯, 박 도령 부부의 웃음소리가 커지고 행복이 깊어갈수록 그들의 막대한 재물과 눈부시게 아름다운 아내를 탐내는 시커멓고 어두운 그림자가 뱀처럼 스멀스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최근 새로 부임한 한성부의 포도대장은 유난히 여색을 밝히고, 뇌물을 긁어모으는 탐욕스럽고 잔인하기로 소문난 자였습니다. 어느 화창한 봄날, 우연히 벚꽃을 구경하러 나섰다가 가마 밖으로 잠시 얼굴을 내민 박 도령의 아내를 길거리에서 보게 된 포도대장은, 그 절세가인의 자태에 단단히 넋을 잃고 음흉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권력에 취한 포도대장은 곧장 휘하의 아전들과 끄나풀들을 은밀히 풀어 박 도령 집안의 뒷조사를 샅샅이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가난했던 몰락 양반이 돈에 눈이 멀어 늙은 과부의 재산을 꿀꺽 삼키려 데릴사위로 들어갔다는 옛 소문을 교묘하게 짜깁기하고 부풀려, 박 도령에게 씻을 수 없는 끔찍한 죄를 뒤집어씌울 악랄한 구실을 만들어냈습니다. 달빛조차 구름에 가려 스산하던 어느 늦은 밤, 수십 명의 포졸들이 시뻘건 횃불을 들고 우르르 들이닥쳐 다짜고짜 박 도령 집의 굳게 닫힌 솟을대문을 부수고 마당으로 난입했습니다.

    "이놈, 박 서방! 당장 나와 무릎을 꿇어라! 네놈이 재물에 눈이 멀어 늙은 장모를 골방에 가두어 구박하고, 가여운 아내를 감금한 채 재산을 빼돌렸다는 끔찍한 투서가 관아에 들어왔다. 인면수심의 짐승 같은 놈, 당장 오랏줄을 받고 관아로 끌려가 네 죄를 자복하라!"

    포도대장이 칼자루를 쥐고 서슬 퍼렇게 호통을 쳤습니다. 누가 들어도 말도 안 되는 억지스러운 날조이자 죄목이었습니다. 단번에 포도대장의 더러운 수작과 음모임을 알아챈 박 도령은, 끓어오르는 분노로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결코 이성을 잃거나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갑작스러운 난동에 겁에 질려 파랗게 질린 채 사시나무 떨듯 떠는 아내와 장모를 자신의 넓은 등 뒤로 단단히 숨긴 채, 포졸들 앞을 바위처럼 늠름하게 가로막고 섰습니다.

    "이 무슨 짐승만도 못한 무도한 짓거리인가! 나는 조선의 맑은 하늘 아래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처자식을 아끼고 보살폈으며, 어르신을 내 친어머니 이상으로 공경하며 모셨다. 죄 없는 양민의 평화로운 집을 군화를 신고 짓밟고, 억지 누명을 씌워 가정을 파탄 내으려 한 죄, 내 반드시 윗전에 낱낱이 고하여 네놈들의 목을 베어 그 책임을 엄히 물을 것이다! 나를 털끝 하나라도 건드렸다가는 무사하지 못할 줄 알아라!"

    예전의 가난에 찌들어 매파 할멈의 말 한마디에도 기죽어 지내던 무기력한 노총각 박 도령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가장의 강렬한 책임감은, 그를 두려움 없는 용맹한 투사로 만들었습니다. 박 도령은 포졸들에게 끌려가는 와중에도, 과거 가난한 선비 시절 학문을 나누며 굳건한 결의를 맺어두었던 도성 내의 올곧고 청렴한 선비들과, 그동안 곳간을 열어 은혜를 베풀었던 수많은 백성들의 힘을 믿고 있었습니다.

    박 도령이 억울하게 하옥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 아침, 포도대장이 이참에 강제로 박 도령의 아내마저 탐욕스러운 손길로 관아로 끌고 가려 하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수천 명에 달하는 엄청난 숫자의 백성들이 노도를 일으키며 관아 앞 광장을 겹겹이 에워싼 것입니다. 박 도령에게 은혜를 입어 목숨을 구했던 소작농들과, 혹독한 겨울 굶주림과 추위를 면했던 빈민들이 낫과 괭이, 몽둥이를 치켜들고 분노하여 들고일어난 것입니다.

    "하늘 같은 박 어르신은 우리 백성들의 부모요, 목숨을 살려주신 은인이시다! 썩어빠진 탐관오리 놈아, 어르신께 억울한 누명을 씌우려거든 당장 여기 있는 우리들의 목부터 치고 가라! 어르신을 내놓지 않으면 당장 관아를 불태워버릴 것이다!"

    백성들의 성난 함성이 거대한 지진처럼 온 한양 관아를 뒤흔들었습니다. 게다가 박 도령이 끌려가기 전 기지를 발휘해 미리 서찰을 띄워 놓았던, 사헌부의 청렴하고 지위 높은 관리들까지 군사를 이끌고 현장에 도착하여 포도대장의 끔찍한 직권 남용과 뇌물 수수 혐의를 낱낱이 파헤치며 엄히 추궁하기 시작했습니다. 사태가 폭동 수준으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자신의 더러운 죄상이 만천하에 드러나자, 겁을 먹고 혼비백산한 포도대장은 결국 덜덜 떨며 무릎을 꿇고 자신의 악랄한 죗값을 실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극적인 사건은 박 도령 부부의 애틋한 사랑을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더욱 단단하고 굳건한 반석 위에 올려놓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끔찍한 시련 앞에서도 자신의 목숨을 걸고 끝까지 처자식을 지켜준 남편의 듬직하고 거대한 뒷모습을 보며, 아내는 남편을 그야말로 하늘처럼 우러러보며 온 마음을 다해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장모 역시 사위의 늠름한 기상과, 백성들이 그를 위해 목숨을 걸고 일어나는 놀라운 광경을 지켜보며, 과거 자신의 위험했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에 가슴 깊은 감격의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서방님... 흑흑, 무섭지 않으셨습니까. 하마터면 저 악랄한 자들 때문에 서방님께서 큰 화를 당하여 목숨을 잃으실 뻔했습니다."
    "울지 마시오, 부인. 부인과 장모님을 지키는 일인데 사내가 되어 두려울 것이 대체 무엇이 있겠소. 내 목숨을 열 번 백 번 잃는 한이 있어도, 저런 짐승 같은 놈들에게 부인과 장모님의 머리카락 한 올조차 다치게 하지 않을 것이오. 하늘이 무너져도 내가 당신을 지킬 테니, 이제 안심하시오."

    사건이 모두 해결되고 평화가 찾아온 밤하늘의 영롱한 별빛 아래, 부부는 정원에 서서 서로를 꼭 끌어안았습니다. 거칠고 모진 풍파를 함께 이겨낸 두 사람의 심장 박동은 하나로 이어져 뛰고 있었고, 그 마음은 세상 그 어떤 보석보다 깊고 평온했습니다.

    그렇게 흐르는 강물처럼 평화로운 시간이 흘러, 장모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러운 손자 손녀들의 재롱을 보며 천수(天壽)를 넉넉히 누리다 따뜻한 미소 속에 평안히 눈을 감았습니다. 박 도령과 아내 역시 세월이 흘러 검은 머리가 파 뿌리처럼 백발이 성성해질 때까지, 평생 서로에게 화 한 번 내지 않고 아끼고 존중하며 한평생을 백년해로했습니다. 돈을 좇아 늙은 과부에게 수치스럽게 장가간다는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과 멸시를 묵묵히 뒤로하고, 그 안에 숨겨진 진실한 사랑과 굳건한 믿음을 당당히 쟁취해 낸 사내. 벼랑 끝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처럼 시작된 박 도령의 이 놀라운 혼인 이야기는, 한양 도성 전체에서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부부의 전설로 굳게 남아 오래도록 후세 사람들의 입과 귀를 타고 따뜻하게 오르내렸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사람의 인연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법이지요? 겉으로 보이는 조건보다, 그 안에 담긴 진실한 마음을 알아본 박 도령 부부의 이야기가 가슴을 따뜻하게 적십니다. 우리 시청자 여러분의 삶에도 늘 뜻밖의 행운과 따뜻한 인연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이야기가 재미있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따뜻한 댓글 부탁드립니다. 다음 시간에도 더 재미나고 구수한 옛날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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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스무 살 조선시대 처녀와 가난한 갓 쓴 선비가 초롱불 아래서 서로를 마주 보며 놀라워하는 표정, 조선시대 기와집 방안 배경, 컬러펜슬화 느낌, 따뜻하고 신비로운 분위기, 16:9 비율, 텍스트 없음
    A beautiful 20-year-old Joseon Dynasty maiden and a poor scholar wearing a gat (Korean traditional hat) looking at each other in surprise under a lantern light, inside a Joseon Dynasty tile-roofed house room background, colored pencil drawing style, warm and mysterious atmosphere, 16:9 ratio, no text

    씬 1 이미지 1-5]

    낡고 쓰러져가는 조선시대 초가집 방 안에서 웅크리고 있는 남루한 한복 차림의 상투 튼 사내, 수채화, 16:9, 텍스트 없음
    A shabby man with a topknot in traditional Hanbok crouching in a ruined Joseon Dynasty thatched-roof house room, watercolor, 16:9, no text

    화려한 비단 한복을 입은 나이 든 매파 여인이 초가집 마당에서 엽전 꾸러미를 들고 서 있는 모습, 수채화, 16:9, 텍스트 없음
    An older matchmaker woman in a gorgeous silk Hanbok standing in the yard of a thatched-roof house holding a string of brass coins, watercolor, 16:9, no text

    돈주머니를 보고 깜짝 놀라면서도 화를 내는 상투 튼 조선시대 가난한 선비, 수채화, 16:9, 텍스트 없음
    A poor Joseon Dynasty scholar with a topknot looking surprised and angry at a money pouch, watercolor, 16:9, no text

    밤하늘 아래 낡은 초가집 마루에 걸터앉아 고뇌하는 남루한 한복 차림의 사내, 수채화, 16:9, 텍스트 없음
    A man in shabby Hanbok sitting on the porch of an old thatched-roof house under the night sky in agony, watercolor, 16:9, no text

    눈물을 머금고 체념한 표정으로 길을 나서는 조선시대 가난한 선비의 뒷모습, 수채화, 16:9, 텍스트 없음
    The back of a poor Joseon Dynasty scholar walking away with tears and a resigned expression, watercolor, 16:9, no text

    씬 2 이미지 1-5]

    조선시대 마을 길에서 화려한 사모관대를 입고 말을 탄 신랑을 구경하며 수군거리는 한복 차림의 마을 사람들, 수채화, 16:9, 텍스트 없음
    Hanbok-clad villagers gossiping and watching a groom in splendid traditional wedding attire riding a horse on a Joseon Dynasty village road, watercolor, 16:9, no text

    으리으리한 조선시대 기와집 마당에 차려진 화려한 전통 혼례식 초례상, 수채화, 16:9, 텍스트 없음
    A splendid traditional wedding table set up in the yard of a magnificent Joseon Dynasty tile-roofed house, watercolor, 16:9, no text

    수모들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걸어 나오는 족두리를 쓴 조선시대 신부, 수채화, 16:9, 텍스트 없음
    A Joseon Dynasty bride wearing a jokduri (traditional bridal crown) walking with difficulty while being supported by helpers, watercolor, 16:9, no text

    얼굴을 가린 신부와 마주 서서 절을 올리는 사모관대 차림의 신랑, 수채화, 16:9, 텍스트 없음
    A groom in traditional wedding attire bowing face to face with a bride whose face is covered, watercolor, 16:9, no text

    청사초롱이 붉게 켜진 조선시대 기와집의 밤풍경, 수채화, 16:9, 텍스트 없음
    Night view of a Joseon Dynasty tile-roofed house lit by red and blue traditional lanterns, watercolor, 16:9, no text

    씬 3 이미지 1-5]

    은은한 촛불이 켜진 화려한 조선시대 신방 안에 앉아 있는 족두리 쓴 신부와 망설이는 신랑, 수채화, 16:9, 텍스트 없음
    A bride wearing a jokduri and a hesitating groom sitting in a splendidly decorated Joseon Dynasty bridal room lit by soft candlelight, watercolor, 16:9, no text

    신랑이 조심스럽게 신부의 족두리와 얼굴을 가린 천을 벗겨내는 모습, 수채화, 16:9, 텍스트 없음
    A groom carefully taking off the bride's jokduri and the cloth covering her face, watercolor, 16:9, no text

    족두리가 벗겨진 후 드러난 눈부시게 아름다운 스무 살 조선시대 처녀의 수줍은 얼굴, 수채화, 16:9, 텍스트 없음
    The shy and dazzlingly beautiful face of a 20-year-old Joseon Dynasty maiden revealed after the jokduri is removed, watercolor, 16:9, no text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주저앉은 사모관대 차림의 신랑, 수채화, 16:9, 텍스트 없음
    A groom in traditional wedding attire sitting on the floor in complete shock with his mouth wide open, watercolor, 16:9, no text

    눈물을 글썽이며 남편의 손을 다정하게 맞잡은 아름다운 새색시, 수채화, 16:9, 텍스트 없음
    A beautiful new bride with tears in her eyes affectionately holding her husband's hands, watercolor, 16:9, no text

    씬 4 이미지 1-5]

    아침 햇살이 비추는 방 안에서 다정하게 서로를 바라보는 한복 차림의 조선시대 부부, 수채화, 16:9, 텍스트 없음
    A Joseon Dynasty couple in Hanbok looking affectionately at each other in a room illuminated by morning sunlight, watercolor, 16:9, no text

    쪽진 머리에 단아한 한복을 입은 인자한 조선시대 노부인(장모)이 대청마루에 앉아 있는 모습, 수채화, 16:9, 텍스트 없음
    A benevolent Joseon Dynasty old lady (mother-in-law) with her hair in a chignon wearing a neat Hanbok sitting on the wooden porch, watercolor, 16:9, no text

    장모님 앞에 나란히 엎드려 큰절을 올리는 새신랑과 새댁, 수채화, 16:9, 텍스트 없음
    The new groom and bride bowing deeply side by side in front of the mother-in-law, watercolor, 16:9, no text

    눈물을 흘리며 장모님의 손을 꽉 잡고 감사해하는 조선시대 선비, 수채화, 16:9, 텍스트 없음
    A Joseon Dynasty scholar crying and tightly holding the mother-in-law's hands in gratitude, watercolor, 16:9, no text

    밤에 호롱불 아래서 책을 읽는 남편 곁에서 먹을 갈아주는 아름다운 아내, 수채화, 16:9, 텍스트 없음
    A beautiful wife grinding ink inkstone next to her husband reading a book under a lantern light at night, watercolor, 16:9, no text

    씬 5 이미지 1-5]

    우물가에 모여 놀라운 소문을 나누며 수군거리는 조선시대 한복 차림의 아낙네들, 수채화, 16:9, 텍스트 없음
    Joseon Dynasty women in Hanbok gathering at a well, gossiping and sharing the surprising rumor, watercolor, 16:9, no text

    쌀가마니를 열어 가난한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며 미소 짓는 상투 튼 양반, 수채화, 16:9, 텍스트 없음
    A noble man with a topknot opening a rice sack and handing it out to poor villagers with a smile, watercolor, 16:9, no text

    마루에 앉아 다과상을 내어오며 지혜롭게 남편에게 조언하는 단아한 아내, 수채화, 16:9, 텍스트 없음
    A graceful wife bringing out a tea table and wisely advising her husband while sitting on the porch, watercolor, 16:9, no text

    곳간과 전답을 둘러보며 소작농들과 화기애애하게 대화하는 조선시대 부부, 수채화, 16:9, 텍스트 없음
    A Joseon Dynasty couple looking around their storehouse and fields, talking harmoniously with tenant farmers, watercolor, 16:9, no text

    마을 사람들의 존경 어린 시선을 받으며 길을 걷는 위풍당당한 양반 남편과 고운 아내, 수채화, 16:9, 텍스트 없음
    A dignified noble husband and his beautiful wife walking down the street receiving respectful looks from villagers, watercolor, 16:9, no text

    씬 6 이미지 1-5]

    어두운 밤, 횃불을 들고 기와집 마당으로 들이닥친 조선시대 포졸들과 사나운 관상풍의 포도대장, 수채화, 16:9, 텍스트 없음
    Dark night, Joseon Dynasty guards carrying torches and a fierce-looking police chief rushing into the yard of a tile-roofed house, watercolor, 16:9, no text

    겁에 질린 아내와 장모를 등 뒤로 숨기고 당당하게 포졸들에게 맞서는 상투 튼 남편, 수채화, 16:9, 텍스트 없음
    A husband with a topknot hiding his frightened wife and mother-in-law behind his back and confidently standing up against the guards, watercolor, 16:9, no text

    관아 앞에 모여 농기구를 들고 억울함을 호소하며 남편을 지키려는 수많은 백성들, 수채화, 16:9, 텍스트 없음
    A large crowd of people gathering in front of the government office holding farming tools and protesting to protect the husband, watercolor, 16:9, no text

    달빛 아래 정원에서 서로를 애틋하게 끌어안고 있는 조선시대 한복 차림의 부부, 수채화, 16:9, 텍스트 없음
    A Joseon Dynasty couple in Hanbok affectionately hugging each other in a garden under the moonlight, watercolor, 16:9, no text

    세월이 흘러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부부가 다정하게 차를 마시며 미소 짓는 평화로운 모습, 수채화, 16:9, 텍스트 없음
    A peaceful scene of an older couple with graying hair smiling and drinking tea affectionately as time passed, watercolor, 16:9, no t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