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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침을 맞고 일어선 늙은 참봉 『선언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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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산판으로 큰돈을 긁어모았으나 매일 밤 들이부은 술과 고기 탓에 손발이 퉁퉁 붓고 굳어버린 늙은 참봉! 재산을 노린 조카의 계략으로 산송장 취급을 받던 그를 구한 건, 톡 쏘는 벌침과 함께 찾아온 당찬 양봉 과부 봉단이었습니다. 뼈를 깎는 통증을 이겨내고 되찾은 청춘, 그리고 눈부시게 뜨거운 합궁의 밤. 진정한 극락을 맛본 늙은 참봉의 통쾌한 반격과 달콤한 두 번째 인생이 지금 시작됩니다!

    ※ 1: 무너진 산중호걸과 하이에나 조카

    한때 윤 참봉이라 하면 인근 수십 리 산판을 모조리 주무르며 호령하던 거부 중의 거부였다. 수백 년 묵은 굵은 낙엽송과 금강송들이 그의 도끼날에 쓰러지는 소리가 곧 그가 긁어모으는 엽전 쏟아지는 소리였고, 거친 산사람 장정 수십 명을 거느리고 산을 내려와 저잣거리를 지날 때면 으리으리한 기와집 지붕들이 다 들썩일 정도로 그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돈이 물밀듯 밀려오니 자연스레 밤낮없이 기방의 질펀한 가락이 끊이지 않았고,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진 기름진 산해진미와 독하디독한 명주들이 그의 식도를 마를 새 없이 적셨다. 밤마다 기생들의 치맛자락에 파묻혀 기름진 꿩고기와 소갈비를 뜯으며, 남들은 그를 호탕한 산중호걸이라 불렀고, 그 스스로도 영원히 늙지 않는 무쇠 같은 몸통을 가졌노라 자부하며 거칠 것 없이 세상을 살았다.

    그러나 그 오만했던 방탕함의 대가는 너무도 잔혹하고 끔찍하게, 그리고 아주 도둑처럼 은밀하게 찾아왔다. 시작은 그저 잔칫상에서 술을 거나하게 마신 다음 날, 엄지발가락 관절이 조금 욱신거리고 벌겋게 달아오르는 정도였다. 며칠 푹 쉬면 나으려니 했던 그 가벼운 통증은, 불과 보름이 지나지 않아 마치 수만 마리의 독을 품은 불개미 떼가 뼛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마디마디를 사정없이 물어뜯는 듯한 끔찍한 고통으로 번져나갔다. 이른바 부자들의 병이라 불리는 몹쓸 병, 통풍이 뼛속까지 깊숙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아아악! 내 다리! 내 발가락! 누가 당장 무쇠 도끼로 이 썩어문드러질 다리를 좀 쳐내어다오! 제발 뼈를 좀 부숴다오!"

    밤마다 안방에서는 짐승의 단말마 같은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수십 년간 혈관 속에 쌓이고 쌓인 독한 술기운과 짐승의 고깃기름이 날카로운 유리 가루 같은 결정체가 되어 그의 관절과 연골을 무참히 난도질하고 있었다. 어느새 윤 참봉의 두 무릎은 둥그런 수박통만큼이나 흉측하게 벌겋게 부어올라 아주 얇은 명주 이불자락만 스쳐도 자지러질 듯한 비명을 토하게 만들었다. 도끼 자루를 단숨에 꺾어버리던 솥뚜껑만 한 두 손은 굵고 비틀린 나무뿌리처럼 기괴하게 굳어버려, 제 손으로 물 한 모금 떠 마실 숟가락조차 제대로 쥘 수 없는 처참한 지경에 이르렀다. 천하를 호령하던 산중호걸은 온데간데없고,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는 방구석에 누워 아랫것들에게 똥오줌을 받아내며 끙끙대는 늙고 비참한 산송장만이 덩그러니 남게 된 것이다.

    그 틈을 타 가장 먼저 피 냄새를 맡고 달려온 것은 피붙이를 빙자한 굶주린 하이에나, 바로 그의 조카였다. 윤 참봉이 걷지 못하고 병석에 눕자마자 조카는 하던 일마저 내팽개치고 본가로 달려와 거짓 눈물을 흩뿌리며 극진한 후견인 노릇을 자처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숙부님! 어쩌다 이 지경이 되셨습니까. 하늘도 참으로 무심하시지, 천하의 바위 같으신 숙부님께서 이리 앓아누우시다니요. 하지만 너무 염려 마십시오. 이제부터는 이 조카가 곁에서 숙부님의 수족이 되어 모든 집안 대소사를 책임지겠습니다."

    말은 청산유수처럼 번지르르했으나, 그의 번들거리는 눈동자는 윤 참봉의 짙어지는 병색을 볼 때마다 묘한 희열과 탐욕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조카는 집안의 오래된 충직한 하인들을 핑계를 대어 하나둘 내쫓고, 자신의 수족 같은 왈패들을 집안에 들여 윤 참봉의 눈과 귀를 완전히 가려버렸다. 의원을 불러 침을 맞아야 한다는 참봉의 호소에도 조카는 돌팔이들의 약은 믿을 수 없다며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막았다.

    대신 조카는 매일같이 첩첩산중에서 구했다는 값비싼 녹용과 인삼, 그리고 기력을 돋운다는 기름진 고아 낸 탕약, 독한 뱀술 등 통풍 환자에게는 치명적인 독약이나 다름없는 보양식들을 간병이라는 명목하에 방 안으로 끊임없이 밀어 넣었다. 기름진 것을 먹을수록 혈관 속의 독기는 더욱 맹렬하게 날뛰어 윤 참봉은 매일 밤 불덩이 같은 고열과 부기에 시달리며 실신하기를 반복했다. 조카는 삼촌이 고통에 몸부림칠 때마다 겉으로는 안타까워 어쩔 줄 모르는 척 연기를 하면서도, 속으로는 어서 빨리 저 질긴 목숨줄이 끊어지기만을 간절히 저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비 내리는 음산한 오후, 조카는 기어이 품속에서 시커먼 속내가 담긴 두꺼운 종이 다발과 시뻘건 인주를 꺼내 들었다.

    "숙부님, 언제까지나 이렇게 신경을 쓰시며 누워계실 수는 없지 않습니까. 요즘 산판 인부들도 주인이 누웠다며 동요가 심하여 나무를 베지 않고, 전답의 소작농들도 세를 바치려 들지 않아 집안 곳간이 비어가고 있습니다. 숙부님께서 온전히 쾌차하실 때까지만이라도, 임시로 이 조카가 모든 재산의 권한을 대신 행사할 수 있도록 저당 문서와 전권 위임장에 옥인만 하나 꾹 찍어주십시오. 험한 일은 제가 다 짊어지겠습니다."

    '이 간악하고 무도한 놈! 내가 앓아누운 틈을 타서 내 평생 피땀으로 일군 수만 평의 산판과 전답을 통째로 네놈 이름으로 돌려놓겠다는 더러운 수작이 아니냐!'

    윤 참봉은 끓어오르는 분노로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입 밖으로는 침이 섞인 갈라진 신음만이 새어 나올 뿐이었다. 퉁퉁 부어올라 마디가 굳어버린 손가락은 저항은커녕 인주를 묻힐 힘조차 없었다. 조카는 짐짓 안타깝고 슬프다는 듯 한숨을 푹푹 쉬면서도, 은근슬쩍 참봉의 굳은 손목을 우악스럽게 억지로 쥐어당기고 있었다. 이대로 속수무책으로 내 평생의 일군 모든 것을 저 승냥이 같은 놈에게 빼앗기고 억울하게 두 눈을 감아야 한단 말인가. 뼈가 부서지는 육신의 고통보다 더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며, 늙은 참봉의 주름진 눈가에 뜨겁고 붉은 피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 2: 윙윙거리는 구원자, 당찬 양봉 과부

    "숙부님, 자 어서 무인을 꾹 누르시지요. 힘을 빼십시오. 다 숙부님과 이 가문을 편안하게 모시려는 제 갸륵한 충심입니다. 억지를 부리시면 관절만 더 상하십니다."

    조카가 기어이 악력으로 윤 참봉의 굳은 엄지손가락을 비틀어 억지로 시뻘건 인주에 처박고는 문서에 지장을 찍으려던 찰나였다.

    우당탕탕 쾅!

    천둥이 치는 듯한 굉음과 함께 굳게 닫혀 있던 안방의 육중한 나무문이 부서질 듯 거칠게 열려 젖혀졌다. 문짝이 벽에 부딪히며 방 안의 탁한 공기가 일순간에 소용돌이쳤다.

    "그 더러운 손 당장 치우지 못할까!"

    서늘한 산바람을 몰고 방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선 이는, 산자락 깊은 곳에서 홀로 꿀벌을 치며 산다는 앙칼지고 당찬 과부, 봉단이었다. 치맛자락에 흙먼지가 잔뜩 묻은 거친 무명치마에 머리를 무심하게 질끈 동여맨 그녀에게서는 매캐한 쑥부쟁이 향과 쌉싸름한 산풀 냄새, 그리고 달콤하고도 짙은 밀랍 냄새가 훅 끼쳐왔다. 조카는 갑작스러운 불청객의 난입에 당황하며 들고 있던 문서를 뒤로 감추고 앙칼지게 언성을 높였다.

    "누, 뉘 집 천한 여편네가 함부로 남의 뼈대 있는 양반가 안방에 허락도 없이 뛰어드는 게냐! 아랫것들은 뭣들 하느냐, 당장 저 미친 년의 머리채를 잡아 끌어내지 못하고!"

    그러나 봉단은 조카의 호통에 코웃음을 치며, 방구석에 늘어서 있던 값비싼 고깃국물 뚝배기와 새카만 보약 사발들을 향해 거침없이 발길질을 날렸다. 챙그랑! 와장창! 소리와 함께 고급 사기그릇들이 산산조각이 나며 방바닥에 엎질러졌고, 역겨울 정도로 기름진 약 냄새와 누린내가 진동했다.

    "아픈 병자에게 이런 치명적인 독을 매일같이 먹이고도 무사할 줄 알았더냐? 피가 끈적하게 굳어 뼈를 갉아먹는 통풍 환자에게 이런 짐승 고기와 기름진 탕약을 먹이는 것은 당장 그 숨통을 끊어놓겠다는 수작이지, 어찌 간병이라 할 수 있느냐! 네놈의 얄팍하고 시커먼 속내를 동네 개들도 다 비웃고 있는데, 어디서 감히 충심 운운하며 비린내를 풍겨!"

    "이, 이 천한 과부 년이 미쳐 단단히 실성했구나! 네 년이 정녕 관아의 곤장을 맞아봐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조카가 길길이 날뛰며 주먹을 치켜들었지만, 봉단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매서운 호랑이 같은 눈빛으로 조카를 단숨에 쏘아보아 기를 죽였다. 그리고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누워있는 윤 참봉의 머리맡으로 성큼 다가왔다. 봉단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조그마한 대나무 호리병 하나를 조심스럽게 꺼내 들었다. 그녀가 호리병의 코르크 마개를 열자마자, 그 안에서 무언가 맹렬하게 날갯짓하며 윙윙거리는 섬뜩한 소리가 방 안의 무거운 정적을 가득 채웠다. 살아 펄떡이는 독한 산벌들이었다.

    "참봉 어른, 이 빌어먹을 병은 비싼 약재나 의원의 침 따위로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뼛속 깊이 엉겨 붙어 굳어버린 탁한 찌꺼기들을 이 독한 벌침의 불같은 기운으로 태워버리고 억지로 뚫어내야만 살 수 있습니다. 처음엔 뼈가 쪼개지고 살이 타들어 가는 듯 아프겠지만, 목숨을 부지하고 조카 놈의 구둣발 밑에서 벗어나고 싶으시다면 이 악물고 견디셔야 합니다."

    윤 참봉은 공포에 질려 두 눈을 부릅떴다. 벌의 독이라니, 멀쩡한 사람도 쏘이면 퉁퉁 붓고 열이 나 쓰러지는 판국에 다 죽어가는 자신에게 벌침을 놓겠다니. 그는 반항하려 했지만 혀조차 굳어 소리를 지를 기력조차 없었다. 봉단은 지체 없이 호리병에서 가장 크고 성난 꿀벌을 한 마리 나무 핀셋으로 집어 들더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윤 참봉의 퉁퉁 부어오른 붉은 무릎 관절의 한가운데 사정없이 독침을 꽂아 넣었다.

    "끄아아아아악!!"

    마치 야생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처절하고 소름 끼치는 비명이 온 저택의 기와지붕을 뒤흔들었다. 벌침이 꽂힌 자리를 중심으로 용광로 쇳물이 부어진 듯한 뜨거운 열기가 혈관을 타고 폭발적으로 퍼져나가며, 막혀 있던 혈관벽을 무자비하게 후벼 파는 듯한 상상 초월의 고통이 밀려왔다. 윤 참봉은 숨을 헐떡이며 눈알이 뒤집힐 듯 눈물을 쏟아냈다. 조카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겉으로는 펄펄 뛰었다.

    "네 이년! 기어이 네 년이 숙부님을 시해하려는구나! 내가 당장 관아에 고발하여 네 년을 살인죄로 능지처참에 처하게 만들 것이다!"
    "할 테면 해보거라! 이깟 벌침 몇 방에 죽을 목숨이었다면 벌써 네놈이 억지로 떠먹인 기름진 고깃국에 혈관이 터져 숨이 끊어졌을 것이다! 썩 물러나지 못해!"

    봉단은 당당하게 맞서며 앙칼지게 소리친 뒤, 이번에는 윤 참봉의 흉측한 갈고리처럼 굳어버린 손가락 마디마디에도 차례차례 살아있는 벌침을 놓기 시작했다. 따끔함을 넘어선 날카롭고 맹독성의 기운이 죽어있던 신경을 비명처럼 깨웠다. 고통 속에 이불을 쥐어뜯으며 몸부림치던 윤 참봉은 어느 순간, 기절할 듯한 아픔의 이면에서 미세하게나마 막혔던 피가 빠르게 용솟음치며 도는 듯한 기묘하고도 낯선 감각을 느꼈다.

    늘 돌덩이처럼 무겁고 얼음장같이 차갑기만 했던 관절 깊은 곳에서부터, 생전 처음 느껴보는 뜨거운 생명의 불씨가 지펴지는 듯했다.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윤 참봉의 시야에, 제 이마에 땀방울을 송글송글 맺힌 채 자신의 굳은 손을 억센 손아귀로 꾹꾹 주물러 핏길을 열어주는 봉단의 결연하고도 진지한 얼굴이 흐릿하게 들어왔다. 그것은 지난 3년간 그 어떤 간병인이나 의원에게서도 받아보지 못한, 날것 그대로의 지독하고도 맹렬한 생명력이자 구원의 손길이었다. 윤 참봉은 비명 속에서도 그녀의 투박한 손길에서 형언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끼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 3: 꿀물과 나물밥, 아침 이슬을 밟다

    벌침을 맞은 다음 날 새벽, 아직 동이 트지 않아 산자락의 찬 기운이 방 안을 서늘하게 맴도는 시간이었다. 어둠 속에서 고통과 피로에 지쳐 곤히 잠들어 있던 윤 참봉은 누군가 덮고 있던 이불을 거칠게 홱 걷어차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며 두 눈을 번쩍 떴다.

    "자, 어서 일어나시지요. 산비탈에 이슬이 내렸습니다. 벌통에 꿀이 얼마나 찼는지 제 발로 확인하러 가야 합니다."

    우물가에서 찬물로 세수를 하고 들어온 봉단이었다.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소매를 걷어붙인 그녀의 모습은 단호하기 그지없었다.

    "이, 이 미친 새벽에 제정신이냐! 밖에 찬 서리가 내렸거늘, 이 굳어버린 다리로 어딜 간단 말이냐! 내 죽는 꼴을 보아야 직성이 풀리겠느냐!"

    "언제까지 더러운 방구석에 누워 천장만 쳐다보고 죽는소리만 할 겝니다? 벌침으로 기운을 뚫어놓아 살길을 열어주었으니, 이제부터는 제 두 발로 차가운 아침 이슬을 밟고 걸어 땀을 빼야만 탁한 피가 돌고 굳은 마디가 펴집니다. 군말 말고 어서 일어나십시오!"

    봉단은 억척스럽게 윤 참봉의 굵은 팔뚝을 잡아끌어 기어이 방바닥에서 마루 밖으로 끄집어냈다. 평생을 누군가의 부축이나 화려한 가마가 아니면 거동조차 하지 않으며 호의호식하던 참봉이었다. 불에 타는 듯한 발바닥의 통증과 뻣뻣하게 굳어버린 무릎 때문에 한 걸음을 떼는 것조차 천근만근 쇳덩이를 매단 듯 고통스러웠지만, 봉단은 단 한 치의 타협이나 양보도 없었다. 참봉이 비틀거리며 흙바닥에 넘어지려 할 때면 그녀의 단단한 어깨가 불쑥 나타나 든든한 지팡이가 되어주었고, 엄살을 부리며 주저앉으려 하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렇게 입에서 단내가 나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며 산 중턱 양봉장까지 걷고 나면, 참봉의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부어올랐던 관절에서는 기묘한 열기가 후끈하게 뿜어져 나왔다. 헉헉거리며 평상에 주저앉은 윤 참봉에게 봉단이 내미는 아침상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밥 꼬라지가 대체 이게 뭐냐! 내가 산에 사는 멧돼지나 고라니인 줄 아느냐!"
    "혈관의 독을 빼려면 이 산이 키운 맑고 쓴 것만 드셔야 합니다. 투정 부리지 말고 잔말 말고 드시지요."

    소반 위에는 맹물에 가까울 만큼 연하게 탄 묽은 꿀물 한 사발과, 소금이나 참기름 한 방울 치지 않고 그대로 데친 쌉싸름한 씀바귀, 그리고 질긴 취나물 무침뿐이었다. 평생 기름진 고기와 윤기 흐르는 쌀밥만 입에 달고 살던 참봉에게는 사약을 마시는 것 같은 고역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굶어 죽을 수는 없어 거친 나물을 질겅질겅 씹어 억지로 삼키고 달큰한 꿀물로 속을 달래다 보니, 늘 가스가 차서 더부룩하고 불쾌했던 뱃속이 신기하리만치 편안하게 가라앉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지독하고도 처절한 재활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되었다. 사흘에 한 번씩 살을 에는 듯한 지독한 봉침을 맨살에 맞고, 아침 이슬이 채 마르기도 전에 차가운 산 공기를 가르며 험한 산길을 올랐으며, 거친 풀죽과 산나물로 주린 배를 채웠다. 윤 참봉은 매일같이 봉단을 향해 쌍욕을 내뱉고 짜증을 부렸지만, 시간이 한 달 두 달 지날수록 그의 몸에는 거짓말 같은 기적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터질 듯이 부어올랐던 무릎의 부기가 눈에 띄게 가라앉아 예전의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벌겋게 달아올랐던 피부는 점차 본래의 혈색을 되찾아갔다. 무엇보다 기괴하게 비틀려 굳어있던 손가락 마디마디가 미세하게나마 부드럽게 펴지며 물건을 쥘 수 있는 감각이 돌아오고 있었다. 처음으로 누군가의 부축이나 지팡이 없이 스스로 두 다리로 온전히 산길을 오를 수 있게 된 어느 아침, 맑은 산바람을 가슴 깊이 들이마시던 윤 참봉은 문득 앞서 걷는 봉단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새벽 이슬에 흠뻑 젖어 치맛자락이 무겁게 가라앉았음에도, 짐을 진 그녀의 발걸음은 씩씩하고 경쾌했다. 늘 자신을 호되게 윽박지르고 매몰차게 대하는 듯했지만, 가파른 비탈길이 나타나거나 돌부리가 있으면 행여나 자신이 넘어질까 슬그머니 뒤를 돌아보며 보폭을 늦춰주는 그녀의 섬세한 배려를 윤 참봉은 모를 리 없었다.

    '내 평생 내 돈과 권력만 보고 아첨하며 단물만 빨아먹으려는 것들에게 둘러싸여 살았거늘... 늙고 병들어 가진 것 하나 없는 나를, 이리도 억척스럽게 살려내려 피땀을 흘리는 여인이라니.'

    그날 아침, 산 중턱에서 벌통의 뚜껑을 열고 상태를 살피던 봉단의 거친 손등 위에 커다란 꿀벌 한 마리가 웅웅거리며 내려앉았다. 봉단이 미처 쫓아내기도 전에, 윤 참봉의 투박하고 굵게 주름진 손이 먼저 다가가 그 벌을 아주 조심스레, 행여 그녀가 다칠세라 부드럽게 쓸어 날려 보냈다. 봉단이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어 쳐다보자, 윤 참봉은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먼 산으로 돌렸다.

    "험험, 그깟 아픈 벌침은 나 하나 맞는 것으로 족하다. 네 손이 상하면, 내일 아침 쓴 나물은 누가 무쳐준단 말이냐."

    여전히 퉁명스럽고 무뚝뚝한 말투였지만, 허공에서 짧게 맞닿았던 두 사람의 손끝 사이로는 산바람보다 더 풋풋하고 다디단, 오래 묵은 꿀 같은 연정의 향기가 조용히, 그러나 깊숙이 스며들고 있었다.

    ※ 4: 아침이 기다려지는 천당

    계절이 바뀌어 첩첩산중 산자락에 붉은 단풍이 타는 듯이 물들고, 서늘한 가을바람이 억새를 춤추게 할 무렵이었다. 윤 참봉의 몸에는 그야말로 환골탈태, 하늘이 내린 기적이라 부를 만한 놀라운 변화가 온전히 자리 잡았다. 수박통처럼 흉측하게 부어올라 옷깃만 스쳐도 자지러지던 무릎은 어느새 부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예전의 단단하고 굵직한 골격을 되찾았다. 뒤틀린 나무뿌리처럼 기괴하게 꼬여 있어 숟가락조차 쥐지 못하던 손가락 마디마디는 비록 거친 세월의 굵은 주름이 남았으나, 이제는 무거운 장작을 거뜬히 패고 도끼자루를 쥘 수 있을 만큼 자유롭고 강인하게 펴졌다. 더 이상 밤마다 뼈를 깎아내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에 시달려 짐승처럼 비명을 지르는 일도 없었다. 매일 아침 차가운 이슬을 맞으며 가파른 산을 오르고, 맑은 꿀물과 소금기 없는 거친 산나물로 속을 다스린 덕분에, 탁하고 끈적하게 엉겨 있던 핏속의 지독한 독기가 완전히 씻겨 나간 것이다.

    어느 달이 유난히도 밝고 시린 가을밤이었다. 산중 양봉장 한편에 자리한 작은 흙집 오두막 안에는 참나무 장작이 타들어 가는 붉은 화롯불이 따스한 온기를 내뿜고 있었다. 윤 참봉은 평상에 앉아, 건너편에서 묵묵히 밀랍을 끓여 불순물을 걷어내고 있는 봉단의 모습을 가만히 응시했다. 뜨거운 열기 탓에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고, 헝클어진 머리칼이 땀에 젖어 뺨에 달라붙어 있었다. 억척스럽게 산속에서 홀로 살아온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거칠고 투박한 손끝. 예전의 그였다면 기방의 분내 나고 비단옷을 휘감은 어린 기생들에게나 눈길을 주었겠지만, 지금 그의 깊어진 눈에는 그 어떤 화려한 치장을 한 여인보다 눈앞에서 묵묵히 땀 흘리는 봉단이 더없이 고결하고 눈부시게 아름다워 보였다.

    "봉단아."

    적막을 깨는 참봉의 나직하고도 묵직한 부름에 봉단이 젓고 있던 주걱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윤 참봉은 자리에서 일어나 지팡이도 없이 성큼성큼 다가가 그녀의 곁에 섰다. 그리고는 펄펄 끓는 밀랍 솥을 젓던 그녀의 거칠고 마디 굵은 손을 자신의 커다란 두 손으로 부드럽게, 그러나 결코 빠져나갈 수 없도록 단단하게 감싸 쥐었다. 갑작스러운 손길에 놀란 봉단의 커다란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촛불처럼 흔들렸다.

    "내 평생 수만 냥의 재물을 우습게 만져보고, 천하의 진수성찬이라는 것은 죄다 배 터지게 맛보며, 그것이 사내로 태어나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극락인 줄 알고 살았다. 허나 늙고 병들어 똥오줌을 받아내며 캄캄한 방구석에 처박혀 보니, 그 모든 것이 한낱 흩어지는 뜬구름이요, 내 뼈와 살을 갉아먹는 치명적인 독이었어."

    윤 참봉의 크고 따뜻한 두 손이 봉단의 거친 두 손을 온전히 제 가슴팍으로 끌어당겼다. 그의 넓은 가슴에서 규칙적이고 힘찬 심장 박동이 봉단의 손끝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네가 내 무릎에 쏘아준 그 매섭고 지독한 벌침이 아니었다면, 나는 진작에 그 악독한 조카 놈의 구둣발 밑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억울하게 숨을 거두었을 것이다. 죽어가던 늙은 산송장을 이리 펄펄 끓는 장정으로 살려놓았으니, 이제 내 몸통과 남은 숨결은 온전히 네 것이 아니겠느냐."

    "참봉 어른, 갑자기 무슨 당치도 않은 말씀을 그리하십니까. 저는 그저 죽어가는 사람을 두고 볼 수 없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당황하여 손을 빼내려는 봉단을, 윤 참봉은 억센 팔을 뻗어 더 강하게 끌어당겨 자신의 넓고 단단한 품안에 완전히 가두어버렸다.

    "내 비록 이팔청춘의 젊고 건장한 사내는 아니나, 내게 허락된 남은 생애 동안 너의 든든한 산이자 따뜻한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싶구나. 더 이상 홀로 외롭게 이 거친 산속에서 짐을 짊어지지 마라. 나와 평생을 함께할 부부의 연을 맺어주겠느냐."

    투박하지만 진심이 꾹꾹 눌러 담긴 그 고백에, 봉단의 거친 뺨 위로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툭 하고 떨어져 내렸다.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어 홀로 이 깊은 산속에서 꿀벌을 치며 외롭고 모질게 견뎌온 세월이었다. 그녀 역시 매일 아침 투덜거리고 고함을 치면서도 자신의 뒤를 묵묵히 따라오며 땀방울을 흘리던 이 투박하고 거대한 사내에게 이미 걷잡을 수 없이 깊은 정을 느끼고 있었다. 봉단이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말없이 윤 참봉의 넓은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흐느끼자, 윤 참봉은 거친 숨을 내쉬며 그녀를 안아 들어 따뜻한 구들장 위로 눕혔다.

    붉은 화롯불이 일렁이며 벽면에 두 사람의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작은 오두막 안에서, 두 사람은 지난 세월의 모든 고단함을 씻어내는 깊고도 뜨거운 운우지정을 나누었다. 젊은 남녀의 가벼이 불타오르는 쾌락과는 차원이 다른,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자와 그를 구원한 자가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영혼을 보듬어주는 애틋하고도 맹렬한 합궁이었다. 굳었던 참봉의 관절 곳곳으로 뜨거운 피가 용솟음치듯 돌았고, 차갑게 식어있던 그의 가슴속에는 청춘 시절보다 더 맹렬한 사내의 생명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합궁의 황홀한 절정에 다다른 순간, 윤 참봉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봉단의 이마와 젖은 눈가에 깊이 입을 맞추었다.

    '천당이 극락세계 따로 있는 줄 알았더냐. 병이 기적처럼 나아 고통이 사라진 이 육신이 극락이 아니라, 어두운 밤 눈을 감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나를 향해 웃어주며 기다려주는 이가 있다는 것. 내일 아침 함께 맑은 이슬을 밟으며 걸을 사람이 내 품에 안겨 있다는 것. 다가올 내일의 아침이 사무치게 기다려지는 이 벅찬 마음이야말로, 사내가 누릴 수 있는 진짜 천당이로구나.'

    ※ 5: 손아귀에 돌아온 힘, 반격의 서막

    윤 참봉이 첩첩산중 오두막에서 기력을 완전히 회복하고 펄펄 끓는 생명력을 되찾았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조카는, 그사이 본가 대저택에서 마치 자신이 온전한 주인이라도 된 양 제 세상인 듯 활개 치고 있었다. 그는 윤 참봉을 모시던 늙고 충직한 하인들을 모조리 트집을 잡아 내쫓아버리고, 저잣거리에서 뒹굴던 질 나쁜 왈패들을 호위무사랍시고 집안에 들여 밤낮없이 술판을 벌였다. 곳간을 마음대로 열어 귀한 비단과 금은보화를 야금야금 빼돌려 기방에 뿌려댔고, 급기야는 윤 참봉 명의로 된 수만 평의 비옥한 전답과 거대한 산판 문서를 완전히 자신의 이름으로 합법적으로 돌려놓기 위한 마지막 작업에 착수했다.

    "흥, 그 지독하고 독기 품은 과부 년이 늙은이를 억지로 산속으로 데려가 봤자 고기반찬 없이 며칠이나 버티겠어. 오히려 잘된 일이지. 이참에 차라리 인적 없는 험한 산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숨을 거두어주는 게 내 수고를 덜고 뒷말도 안 나오는 가장 깔끔한 길이지."

    조카는 뇌물을 먹여 관아의 썩어빠진 아전들을 철저히 매수하고는, 윤 참봉이 병환으로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하여 모든 재산을 자신에게 양도한다는 완벽한 거짓 위임장과 재산 포기 각서를 꾸며냈다. 이제 병석에 누워 옴짝달싹 못 할, 어쩌면 이미 숨이 헐떡이며 죽어가고 있을 윤 참봉의 손가락을 억지로 끌어다 시뻘건 인주를 묻혀 옥인만 찍어 누르면 세상 모든 재산이 자신의 것이 되는 참이었다. 조카는 혹시 모를 반항이나 늙은이의 발악에 대비해 건장하고 험악한 왈패 대여섯 명을 대동하고 윤 참봉이 머무는 산속 양봉장 오두막으로 의기양양하게 들이닥쳤다.

    "숙부님! 이 불효막심한 조카가 집안 대소사를 수습하느라 이제야 찾아왔습니다. 아이고, 어찌 이 짐승이나 살 법한 험한 산속에서 제대로 된 약 한 첩 못 드시고 이리 고생을 하고 계십니까. 자, 제가 밑에 가마를 대기시켜 놓았으니 어서 타시고 저와 함께 안락한 본가 댁으로 가시지요."

    마당 한가운데 놓인 평상에 넓은 등을 돌리고 꼿꼿하게 앉아 있는 윤 참봉을 향해, 조카가 비릿하고 조롱 섞인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는 품에서 정성껏 꾸며온 두꺼운 문서를 꺼내 들어 허공에 펄럭였다.

    "아, 그전에 먼저 여기 이 문서에 지장 하나만 꾹 찍어 주시지요. 제가 누워계신 숙부님 대신 방대한 집안 살림과 산판을 도맡아 관리하려니, 건방진 아랫것들과 소작농들이 주인 행세를 하려 든다며 말을 듣지 않아 관아에 제출할 명분이 좀 필요해서 말입니다. 자, 손을 이리 주십시오."

    조카가 건방지게 평상 위로 문서를 들이밀며, 저항할 힘조차 없을 것이라 확신한 윤 참봉의 굽은 어깨를 우악스럽게 홱 잡아채려는 찰나였다.

    휙- 퍽! 빠직!

    "아아아아악!!"

    갑자기 등 돌려 앉아 있던 윤 참봉이 산짐승처럼 번개같이 몸을 돌리더니, 두꺼운 참나무 통나무 같은 팔뚝을 뻗어 조카의 손목을 움켜쥐고는 그대로 꺾어버리듯 명치를 묵직한 주먹으로 박살 낼 듯 후려쳤다. 뼈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숨이 턱 막히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뒤에 서서 낄낄대던 왈패들이 기겁하며 품에서 몽둥이를 꺼내 다가서려 했지만, 평상에서 호랑이처럼 벌떡 일어선 윤 참봉의 서슬 퍼런 살기와 거대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기세에 짓눌려 감히 발걸음을 한 발짝도 떼지 못하고 얼어붙어 버렸다.

    "네 이 빌어먹을 호로자식 놈! 내가 독한 약에 취해 썩어 문드러지기를 밤낮으로 기도하며 기다렸더냐!"

    우렁차고 산을 쪼갤 듯한 벼락같은 호령 소리가 가을 산 전체를 쩌렁쩌렁 울렸다. 누군가의 부축이나 지팡이조차 없이, 두 다리로 대지를 바위처럼 굳건하게 딛고 선 윤 참봉의 모습은 다 죽어가던 병자라기엔 너무도 거대하고 위협적인, 과거 전설적인 산중호걸의 완벽한 부활이었다. 명치를 맞고 바닥에 개구리처럼 나동그라진 조카는 눈물 콧물을 흘리며 헛바람을 들이켜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수, 수, 숙부님...? 어, 어찌 다리가... 그 흉측하게 굳었던 손가락이 어떻게 이렇게... 이, 이건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닙니까!"
    "네놈이 내 숨통을 끊으려 매일같이 억지로 쑤셔 넣던 그 기름진 독을 완전히 끊어내고, 맑은 산의 정기를 마시며 굳은 피를 돌게 하였느니라! 네놈이 썩은 아전 놈들과 결탁해 내 평생 일군 재산을 통째로 삼키려 한 그 얄팍하고 간악한 수작을 내가 눈감고 누워 모를 줄 알았더냐!"

    윤 참봉은 바닥에 뒹구는 거짓 문서 다발을 집어 들더니, 단숨에 북북 찢어 갈기갈기 허공에 눈송이처럼 날려버렸다. 그리고는 사시나무 떨듯 떠는 조카의 멱살을 한 손으로 틀어쥐어 허공에 번쩍 들어 올렸다. 굳어있던 손아귀에는 과거 수십 근짜리 산판 무쇠 도끼를 깃털처럼 휘두르던 시절의 가공할 만한 괴력이 고스란히 돌아와 있었다. 조카의 발버둥이 허공에서 허우적거렸다.

    "네놈의 목숨을 이 자리에서 당장 짐승처럼 끊어놓고 싶으나, 내 형님의 하나뿐인 핏줄이기에 마지막 자비로 살려 보내는 것이다. 목숨을 부지하고 싶거든 지금 당장 내 집에서 짐을 싸서 이 고을을 영영 떠나거라. 다시 한번 내 눈앞에 띄거나 내 소작농들을 괴롭힌다면, 그땐 내 산판의 수십 명 나무꾼들에게 명해 네놈을 장작 패듯 갈기갈기 패버릴 것이다! 썩 꺼져라!"

    윤 참봉의 불호령에 조카는 바지에 오줌을 지리며 혼비백산하여, 왈패들마저 버려두고 엎어지고 자빠지며 꽁지가 빠지게 산 밑으로 도망쳤다. 왈패들 역시 무기를 집어 던지고 살려달라 빌며 뿔뿔이 흩어졌다. 그 통쾌하고 속 시원한 광경을 마루 곁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봉단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와, 씩씩거리는 윤 참봉의 억센 팔짱을 꼭 꼈다. 늙은 참봉의 호탕하고 시원한 웃음소리가 맑고 높은 가을 하늘 위로 굽이치며 끝없이 퍼져나갔다.

    ※ 6: 밀랍초가 밝힌 새로운 인생

    조카 일당을 단숨에 내쫓고 본가로 내려와 집안의 어지러운 질서를 완벽하게 바로잡은 윤 참봉은 다시 예전의 막강한 권력을 지닌 거부의 자리로 돌아왔다. 억울하게 쫓겨났던 충직한 하인들을 모두 불러들여 곡식을 후하게 베풀었고, 썩어빠진 아전들의 비리를 낱낱이 고발하여 관아를 뒤집어놓았다. 그러나 겉모습과 지위만 예전으로 돌아왔을 뿐, 죽음의 문턱을 경험한 윤 참봉의 속내와 삶의 방식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해 있었다. 그는 밤마다 술독에 빠져 살며 돈만 밝히던 방탕하고 탐욕스러웠던 과거의 삶을 미련 없이 청산하고, 자신을 살려낸 봉단의 맑고 소박한 삶의 철학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굳게 다짐했다.

    윤 참봉은 가장 먼저 자신이 소유한 첩첩산중의 거대한 산자락 절반을 미련 없이 내어, 마을 사람들과 함께 관리하는 '양봉 조합'을 대대적으로 설립했다.

    "나처럼 늙고 병들어 아무 데도 오갈 데 없고 소외된 노인네들을 모조리 산으로 모아 일자리를 줍시다. 매일 산을 타며 벌통을 치고 자연과 벗 삼아 움직이면 몸에 좋은 맑은 피가 돌 것이고, 거기서 얻은 귀한 꿀을 저잣거리에 내다 팔면 노인들 용돈벌이도 충분히 되니 이보다 더 좋은 적선과 보시가 세상 천지에 어디 있겠소."

    자신의 재산을 헐어 늙고 가난한 이웃들을 돌보겠다는 참봉의 놀라운 제안에 마을 사람들은 감격했고, 봉단 역시 두 팔 걷어붙이고 적극적으로 나섰다. 두 사람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양봉장에서 꿀을 채취하고 남은 부산물인 밀랍을 알뜰하게 모아 은은한 빛을 내는 초를 만드는 '밀랍초 공방'까지 산자락에 열었다. 가난하고 소외되어 죽을 날만 기다리던 마을의 늙은 노인들은 매일 아침 참봉의 양봉장으로 출근하여 벌통을 정성껏 돌보고, 공방에 모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밀랍초를 빚어내며 완전히 새로운 삶의 희망과 활력을 되찾았다.

    추운 겨울이 찾아온 어느 저녁, 눈이 소복하게 쌓인 산자락 공방 안에서는 노랗게 녹인 밀랍을 실에 입혀 초를 빚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참봉 어른, 이 밀랍초가 타들어 가는 향기가 참으로 구수하고 따스하여 꽁꽁 언 마음마저 다 녹여주는 것 같지 않습니까."

    공방 한구석에서 정성껏 노랗게 빚어 굳혀낸 어여쁜 밀랍초 하나를 소중히 쓰다듬으며 봉단이 환하게 미소 지었다. 밖은 살을 에는 듯한 삭풍이 몰아쳤지만, 아궁이 불이 지펴진 공방 안은 노인들의 웃음소리로 훈훈하기 그지없었다. 윤 참봉은 방금 갓 빚어낸 봉단의 초에 붉은 불씨를 조심스레 붙여, 일렁이는 불빛으로 봉단의 주름진 얼굴을 따뜻하게 비추며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초에서 피어오르는 달콤한 향기도 물론 좋지만, 내게는 우리 어여쁜 마누라 몸에서 나는 풋풋하고 짙은 꿀 냄새가 세상 천하제일이오. 이 작은 초 하나가 칠흑같이 어두운 방을 눈부시게 밝혀주듯, 당신이 내 캄캄하고 썩어 문드러지던 인생의 막바지 나락을 이리도 환하고 눈부시게 밝혀주었구려. 당신은 하늘이 내게 덤으로 내려준 살아있는 부처요, 관음보살이오."

    한때 쾌락과 탐욕의 늪에 빠져 몸과 마음이 모두 병들어 산송장이나 다름없었던 윤 참봉. 그는 아내의 지독한 벌침과 쓰디쓴 산나물로 썩어가던 육신의 병을 기적처럼 고쳤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 진정한 사랑을 만나 오만했던 영혼의 완벽한 구원을 얻었다. 두 부부가 다정하게 맞잡은 거친 두 손 위로, 은은하고 따뜻한 밀랍초의 황금빛 불빛이 영원히 꺼지지 않을 듯 포근하고 아름답게 흔들리고 있었다. 모든 것을 잃을 뻔했던 황혼의 끝자락에 기적처럼 찾아온 그들의 꿀같이 달콤하고 눈부신 제2의 인생은,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굳건한 소나무처럼 이제 막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만개를 맞이하고 있었다.

    유튜브 엔딩멘트

    오늘의 야담, 재미있게 들으셨나요? 탐욕과 향락에 빠져 모든 것을 잃을 뻔했던 늙은 참봉이 당찬 여인의 사랑과 지독한 꿀벌의 힘으로 진짜 청춘을 되찾는 통쾌한 이야기였습니다. 돈보다 귀한 것은 결국 내 곁에서 아침을 함께 맞아주는 사람이라는 것, 잊지 마셔야겠죠? 황혼에도 달콤한 꿀바람이 불어오길 바라신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꾹 눌러주세요! 다음 시간에도 가슴 뜨거워지는 흥미진진한 로맨스 야담으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